00408 만주에 부는 바람 =========================================================================
408.
“대마도는 언제 정화하실 거예요?”
“대마도는 오무라 시에서 150km 넘게 떨어져 있는데, 거기도 정화해야 하는 거야?”
“소중한 우리 땅인데 만약을 대비해 해두는 게 좋죠. 하는 김에 레드몬도 정리하면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거예요.”
1389년 고려 창왕 때 박위와 1419년 조선 세종 때 이종무가 대마도 토벌한 이후 577년 만에 대마도가 대한민국 품으로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대한민국이 아니라 내 개인 땅으로 돌아왔지만, 대한민국을 영원히 떠날 생각이 없어 대한민국 영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는 대마도를 후쿠오카, 기타큐슈와 엮어 비자 없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키울 생각이었다.
또한, 대한민국 사람에게 최대한 많은 일자리를 보장하고, 대마도에 정착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생각이었다.
후쿠오카와 기타큐슈도 세계적인 무역도시로 키울 원대한 꿈을 가졌지만, 그 바탕을 이루고 달콤한 과실을 딸 사람은 한국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해야지.”
“언제요?”
“으음.... 5일간 쉬고 7월 10일부터 하자.”
“그럼 6여단에 9일까지 대마도로 이동할 준비를 마치라고 통보할게요.”
“6여단이 대마도로 이동하면 이키 섬은 어쩌고?”
“전체가 모두 이동하는 게 아니라 6여단 1대대는 이키 섬에 남고, 2대대와 3대대가 대마도를 지킬 거예요.”
“인원도 얼마 없는데, 부대를 해외로 너무 많이 빼낸 것 같다.”
“하람이 오빠가 집을 지키고 있잖아요. 나진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상아의 말처럼 하람이 있는 한 나진시를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하람을 규슈에 데려오지 않은 건 다시는 일본 땅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는 녀석의 뜻을 존중해서였다.
대신 내가 없는 동안 김도형 대장과 강승원 국장을 도와 나진시와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람이 사냥을 도우면 일과 위험부담이 반의반으로 줄어든다. 해외원정도 녀석에게 맡기면 되고, 방사선 레드몬도 모두 잡으라고 하면 된다.
반대로 이번처럼 내가 밖에 장기간 나가 있으면 녀석에게 집과 나진시를 맡기면 됐다.
홍염의 기사단과 흑사자 공대, 미래 레드포스 3개 여단을 마음 놓고 규슈로 빼내 올 수 있었던 이유도 하람이 집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신분상의 문제로 드러내놓고 이용할 순 없었지만, 그럴듯한 신분만 만들면 아내들에게 일을 몽땅 떠넘긴 것처럼 하람에게 골치 아픈 일을 모두 맡기고 나는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하람에게 해외원정을 몽땅 맡기고 집에서 우리 예쁜 상아랑 뒹굴면 딱 좋겠다. 그지?”
“하람 오빠 이용해서 놀 궁리만 하는 거예요?”
“가끔 그러면 좋겠다는 뜻이야. 상아는 오빠랑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게 싫어?”
“저야 무조건 좋죠. 그렇지만 놀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미스트 존을 공략해야 은하 언니 각성시키죠.”
“그 일은 당연히 해야지.”
“언제 하실 건데요?”
“상급 레드몬 몇 마리 더 잡고.”
록펠러 회장과 옐친 대통령의 힘을 빌려 알아낸 상급 레드몬 소재는 총 다섯 곳이었다.
인도네시아 코모도 섬의 코모도왕도마뱀(Komodo dragon), 탄자니아의 검은 코뿔소(Black Rhinoceros), 호주 태즈메이니아 섬 타이거 스네이크(Tiger Snake), 시베리아 북동쪽 끝 추크치 자치관구(Chukchi Autonomous Okrug)의 순록, 남수단의 블랙맘바였다.
이외에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앙골라, 브라질, 베네수엘라, 페루, 콜롬비아에서도 유인원과 원숭이류, 코끼리, 사자, 악어, 수달, 타마린 등 많은 종류의 상급 레드몬 제보가 있었다.
바다에서도 대형 고래와 상어, 대왕오징어, 개복치, 황새치, 청새치, 거북 등 작년 한 해만 1,000건이 넘는 상급 레드몬 신고가 세계포스협회에 접수됐다.
그러나 대부분 신빙성이 없는 제보들로 세계포스협회가 내건 포상금을 노린 허위 신고였다.
다섯 건은 세계포스협회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로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꼭꼭 숨겨둔 비밀문서를 록펠러 회장과 옐친 대통령이 인맥과 황금을 총동원해 간신히 빼냈다.
상급 레드몬의 소재를 파악하며 미스트 존에 대해서도 알아내려 했지만, 미스트 존에 대한 내용은 론 하워드 세계포스협회 협회장이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금고에 보관돼 있어 빼낼 수가 없었다.
세계포스협회는 레드몬과 관련된 수많은 비밀을 극비문서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는 사회 불안을 초래한다는 것으로 이 때문에 위험한 레드몬이 있는 것을 모르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매년 수십만 명에 달했다.
우리도 이런 사실을 상급 레드몬의 소재를 파악하며 알게 된 것으로, 인류의 안전이란 목적을 갖고 설립한 세계포스협회가 과연 목적대로 움직이는지, 로스차일드 가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다섯 마리 다 잡을 거예요?”
“상급 레드주얼을 얻으려면 그게 좋겠지.”
“코모도왕도마뱀과 블랙맘바는 B급으로 분류됐는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하면 하람이를 앞세우면 되지.”
“정말요?”
“응!”
“진짜 하람 오빠를 방패로 세우실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안될 건 없지만, 다른 사람을 앞에 세운 적 이제껏 한 번도 없었잖아요.”
“세울 사람이 없었잖아.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들을 세울 수도 없고, 미성년자인 시랑이를 세울 수도 없잖아. 그러나 하람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녀석이자, 몸도 튼튼하고, 인간도 아니니 세워도 상관없잖아.”
“오빠! 농담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아니면 진심이에요?”
“알아서 생각해.”
“농담을 진담처럼 말하니까 저도 헷갈리잖아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상아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할 때도 있네. 흐흐흐흐~”
“히잉~”
상아의 울 것 같은 얼굴을 뒤로하고 베란다로 나가 밤이 내려앉은 기타큐슈와 간몬 해협을 바라봤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기타큐슈와 시모노세키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기 위해 해외에서 관광객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방어탑과 순찰 도는 5여단 험비의 서치라이트만이 간간히 보일 뿐이었다.
우리가 머물는 집은 아다치 산 정상에 있는 별장으로 기타큐슈와 바다 건너 시모노세키가 한눈에 보이는 요지에 있었다.
별장은 일본식이 아닌 우리에게 친숙한 서양식으로 지은 지 1년이 조금 넘은 초현대식 건물이었다.
좁고 답답한 일본식이 아닌 나진시의 우리 집처럼 천장이 높고 구조도 잘빠진 구조로 아내들도 모두 마음에 들어 해 침대와 세면대, 욕조, 변기 등 전 주인이 쓰던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새것으로 교체한 후 한 달 가까이 계속 이곳에서 머물렀다.
“지홍아! 맥주!”
“고마워!”
“치익~”
아리가 건넨 캔맥주 뚜껑을 따자 시원하고 맛있는 소리가 났다. 소리에 홀려 단숨에 캔을 비우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아이고 머리야!”
“천천히 마셔. 엄청나게 차가워.”
“머리 깨질 뻔했다.”
“설마 내 남편이 맥주 먹다가 쓰러지기야 하겠어?”
“인생 아무도 모르는 거야. 일본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기나 했어?”
“하긴 일본이 반으로 쪼그라들 거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그러니까 방심하면 끝이야. 나라고 별수 있겠어. 순식간에 당하는 거지.”
“일본처럼 될까 봐 걱정돼?”
“아니.”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해?”
“중국으로 들어간 요코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해서 그래. 일본을 떠나지 못하게 좀 더 타이트하게 감시했어야 하는 건데.”
“우리나라도 아니고 일본에 있다가 도망친 요코를 무슨 재주로 잡아? 우리가 부처님도 아니고, 걔들도 손오공도 아닌데, 방법이 없지. 더군다나 날아다니는 애들을 혼슈에 묶어두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어.”
“그렇긴 한데 생각할수록 신경 쓰이네.”
“중국에서 한참 힘을 키우고 있겠지. 그러다 충분한 힘을 얻으면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럼 그때 잡으면 돼.”
“중국에 있는 놈들을 무슨 재주로 잡아?”
“변신 주얼로 모습을 바꿔 잠입하면 되지. 그리고 꼭 네가 잡을 필요는 없잖아.”
“그야 그렇지. 누구든 잡기만 하면 그만이지.”
“그럼 하람 오빠를 보내도 잡아도 되잖아. 하람 오빠 혼자만 가도 요코 일행은 싹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
“길도 모르는 녀석을 혼자 보내라고?”
“말이 그렇다는 거야. 방법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어. 그러니 미리 신경 쓰지 마. 때가 되면 좋은 방법이 생길 거야.”
“언제부터 우리 아리가 천하태평이 된 거야? 전에는 안 그랬잖아.”
“너 만나고서 이렇게 됐어.”
“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편을 모시고 살려면 마음을 넓게 가져야지 조급하게 굴면 집안이 엉망이 되니까 그렇지.”
“내가 럭비공이야? 어디로 튈지 모르게?”
“그럼 아니었어?”
“내가 언제?”
“이렇게 많은 아내를 거느렸으면서 몸을 사리지 않는데, 그게 럭비공이 아니면 뭐겠어. 축구공이야?”
“레드몬을 상대하는데 몸을 어떻게 사려?”
“좀 더 안전하게, 좀 더 신중하게 사냥하라는 뜻이야. 네 실력이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잖아. 최상급 피지컬리스트가 되고 나서 호승심과 자만심이 너무 강해졌어. 최근에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레드몬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게 눈에 보여.”
“그건 후쿠오카에서 깨달은 게 있어서 그런 거야.”
“무얼 깨달았는지 모르지만, 한쪽에 치우치면 안 돼.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레드몬을 일부러 어렵게 잡는 게 올바른 행동은 아니잖아. 어렵게 사냥해야 할 레드몬을 쉽게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거고.”
“흐음...”
아리의 말을 듣고 나자 내가 또 너무 몸을 쓰는데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스킬에 집중한 나머지 근접전투를 소홀히 해 격투에 집중한 것인데, 그것이 또 지나치게 한쪽으로 흐른 것 같았다.
승무도를 전수해주신 이기석 사범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사범님은 모든 물줄기와 수없이 많은 물결 그리고 흐름이 결국 바다에 가서 하나가 된다는 만류귀종(萬流歸宗)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셨다.
만류귀종은 불교종파 간의 다툼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말로 연각(緣覺, 부처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깨달아 자유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이든 대승(大乘, 인간 전체의 평등과 성불을 이상으로 삼는 교리)이든 결국 그 끝은 열반이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동양철학에서 도를 깨달으면 결국 모든 것의 근본이 같다는 말을 이른 것으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는 말로 흔히 사용됐다.
노승이 삼십 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선지식을 친견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편안한 휴식처를 얻고 나자 처음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였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고려 말 백운화상의 시구로 선(禪)의 수행과 깨달음을 체험해 나가면서 겪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이기석 사범님과 싸우면 1초면 끝낼 만큼 내가 압도적으로 앞섰다. 사범님은 능력자가 아닌 선도를 익힌 무도인으로 전투력으로 따지면 소희에게도 밀렸다.
그러나 그분의 칼끝과 움직임에는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심오함과 굳건함이 깃들어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강함과는 다른 것일지라도, 꼭 이루고 싶은 경지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당연한 말이지. 그런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내가 보는 산은 나무와 레드몬만 가득하고, 물은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일 뿐이야. 대체 어느 경지에 올라야 산이 산으로 보이고, 물이 물로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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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