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9 열도 해체 =========================================================================
399.
“아빠가 그러는데 일본이 재건을 대가로 홋카이도와 규슈, 시코쿠를 포기할 것 같대요.”
“대마도와 오키 제도는?”
“대마도와 오키 제도는 규슈 나가사키 현에 속한 섬이라 당연히 포함됐죠.”
“우리에게 넘겨주는 거 맞지?”
“네, 아빠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신다고 했어요.”
“규슈는?”
“최소 두개 현 이상을 달라고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프랑스와 중국의 반대가 심해 쉽진 않은가 봐요.”
“혼슈의 레드몬을 모두 처리해주는 대가가 고작 대마도와 오키 제도야?”
“이번에 로스앤젤레스가 코요테에 제대로 당하며 느낀 게 많은지 클린턴 대통령은 반쯤 넘어왔어요. 그리고 아빠와 옐친 대통령이 방사성 물질 오염이 심한 땅이라는 걸 부각하며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시간을 질질 끌며 일본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작은 땅에 연연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은데.”
“혼슈에 남은 일본인이 모두 죽기를 바라면 그것도 괜찮죠. 하지만 두고두고 괴롭히려면 지금이 적기예요. 지난 세월의 앙갚음을 하려면 적당히 살아 있어야 할 수 있잖아요.”
“앙갚음을 꼭 해야 해? 모두 없애버리는 게 속 편하지 않을까?”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하지만, 미국은 일본이 완전히 사라지길 원하지 않아요.”
“왜?”
“한국과 중국, 러시아를 견제해야 하니까요.”
“하긴 일본이 있어야 돈도 거의 안 들고, 자기들이 입을 피해도 거의 없겠지.”
중국이 이이제이를 통해 오랑캐로 오랑캐를 견제했듯이, 미국도 일본을 내세워 한국과 중국, 러시아를 견제했다.
우리가 느끼기엔 욕지기가 나오는 열 받는 짓이었지만, 미국으로선 지극히 당연한 일로 일본이 사라지면 삼국과 미국이 직접 대면해야 했다.
그건 미국이 바라지 않는 일로 미국이 원하는 건 영토가 아니라 자기들 멋대로 조종하며 곶감 빼먹듯 알만 쏙쏙 빼먹을 수 있는 꼭두각시였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 첨예하게 대립할 때 미국이 자주 사용한 방법으로 북한이 사라지며 핑곗거리가 줄어들어 현재는 전보다 조금 덜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친미파들을 이용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남의 땅에 군대를 상주시키고, 방위비를 부풀려 돈을 벌고, 술 먹고 민간인을 때리고 강간하고 죽이고, 기지를 엉망으로 사용해 환경오염까지 일으키는 등 피해가 극심했다.
더욱 황당한 건 북한이 사라져 미군이 한반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 남아있었다.
북한이 사라지자 중국과 러시아를 이유로 들어 아직도 궁둥짝을 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 그들이 원하는 건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가 아니라 일본처럼 방패막이가 되어줄 꼭두각시였다.
“미국은 하람 오빠와 써커들이 사라져 충분한 물자만 공급하면 아베 마사히코가 가진 전력으로 혼슈는 되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오빠가 나서지 않아도 일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하람이를 쥐어박아서라도 일본으로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 거야?”
“정말 그러시려고요?”
“내가 미쳤어. 겨우 마음잡고 살려는 놈을 거기에 다시 보내게. 그게 인간이 할 짓이야?”
“정말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너는 내가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으로 보이냐?”
“아니요. 세상에서 가장 정 많은 남자로 알아요.”
“근데 왜 놀랐어?”
“그래야 오빠가 재미있는 반응을 보이죠.”
“이런....”
“헤헤헤헤~~~”
깜찍하게 웃는 제니퍼를 품에 안고 뽀뽀를 날리자 은비가 입술을 쭉 내밀고 팩 토라져 방을 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니퍼의 빵빵한 가슴을 더듬으며 입술을 빨았다. 달콤한 바닐라 향이 폴폴 풍기는 입술을 빨자 꿀꿀했던 기분이 풀리며 기분이 좋아졌다.
“이러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
“요코 일행이 캄차카 반도로 넘어가는 걸 막아줬으니 대마도와 오키 제도는 무조건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300억 달러 투자와 상급 레드몬도 사냥 비밀 협정을 무기로 클린턴을 압박하면 일본을 도와주지 않고도 대마도와 오키 제도는 수중에 넣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거 좋은 생각인데.”
“괜찮으면 아빠에게 말씀드릴게요.”
“그래. 대신 비밀협정은 소문나면 안 된다고 꼭 말씀드려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새어나가지 않을 거예요.”
제니퍼의 예쁜 엉덩이를 두들겨 보내주며 생각보다 열 배는 근사한 아내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니퍼가 열렬히 나를 좋아한 게 같이 살게 된 계기가 됐지만, 정략결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느낌은 눈 녹듯 사라졌고,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내만이 남았다.
“좋은 일이라도 있어?”
“그래 보여?”
“입꼬리가 올라갔잖아.”
“볼수록 제니퍼가 예뻐서 그래.”
“이제야 그걸 알아본 거야?”
“내가 많이 둔하잖아요.”
“알면 고쳐.”
“알았어.”
소연의 질책에 달리 변명할 말이 없었다. 정말 내 사람이란 믿음을 갖기 전엔 유별나게 비딱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봤다.
방어본능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상대는 진심을 다하는데 나만 이런다면 그건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해하는 일이었다.
“이동 시간을 줄여야겠어.”
“어떻게?”
“동선은 더는 줄일 수 없으니 빠른 비행기로 바꿔야지.”
“여객기 중에 더 빠른 게 있어?”
“콩코드 여객기.”
“사고 자주 나는 비행기?”
“반대야. 사고가 가장 적은 초음속 여객기야.”
“그래? 나는 왜 사고가 자주 난 비행기로 알았지?”
“언론 매체의 힘이지.”
1969년 3월 첫 비행에 성공한 콩코드 여객기(Concorde Airliner)는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로 슈퍼 크루징을 이용해 최대속도 마하 2.04, 순항속도 마하 2.02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런 빠른 속도에 힘입어 8시간 가까이 걸리던 런던-뉴욕을 3시간 20분대로 단축했고,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유럽에서 콩코드 여객기를 이용해 뉴욕으로 날아가면 오히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대신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비행기 폭이 매우 좁았고, 최대 탑승 승객도 120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운임이 엄청나게 비싸 아음속 항공기 일반실 운임의 열 배가 넘었다.
또한, 많은 연료와 엄청난 유지보수비,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 문제, 소닉 붐, 영공 내 초음속 비행 규제 등 골치 골칫거리도 많았다.
“너무 좁지 않아?”
“필요 없는 가재도구를 줄이면 크게 불편하진 않을 거야.”
“그렇다면 콩코드로 바꾸는 것도 괜찮겠네. 다른 것보다 지구 자전 속도보다 빨라 시간을 거꾸로 가는 게 정말 마음에 든다. 잘하면 원정일수를 3분의 1로 줄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하늘에서 시간을 소비한다고 할 순 없어. 그 시간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니까. 땅에서 편히 쉬는 게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좁은 의자에 앉아 자는 것도 아니고 침대에 편히 누워 자면서 가는 거라 땅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방음도 완벽하고 변화무쌍한 날씨만 아니면 기체가 크게 흔들리는 것도 아니라서 오히려 더 큰 대형 여객기로 바꾸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바꾸지 말자는 거야?”
“아니, 있으면 도움은 될 거야. 시간을 따라잡는 여객기니까. 대신, 급할 때만 쓰고 시간이 많을 때를 대비해 좀 더 큰 여객기를 구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그렇게 하고 일단 3대만 주문해. 한 대는 우리가 쓰고, 한 대는 미래 2공대 쓰고, 한 대는 경호팀 쓰게.”
“알았어.”
소연과 콩코드 여객기로 전용기를 바꾸는 걸 협의하는 사이 던디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오빠~”
문이 열리자 로라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뛰어와 품에 안겼다. 집 나간 서방을 10년 만에 찾기라도 한 듯 미친 듯이 뽀뽀를 해대는 통에 얼굴에 립스틱 자국 수십 개나 남았다.
눈물의 상봉이 끝나자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가왔다. 시간이 없어 사냥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자 친히 스코틀랜드까지 왕림하셨다.
록펠러 가문과 옐친 대통령에 밀려 나와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자주 온다고 해놓곤 얼굴 보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 같네요. 많이 섭섭해요.”
“죄송합니다. 일본 문제로 상반기 원정도 겨우 시간을 냈습니다.”
“방사능에, 써커에 지구촌이 일본 때문에 난리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여왕의 동승 요구에 상아, 소연, 로라와 함께 리무진에 같이 타고 가며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일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나 다 아는 아주 상식적인 얘기로 새삼스럽게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이야기였지만, 여왕은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제를 바꿔가며 말을 걸어왔다.
[차가 거북이야? 왜 이렇게 느려?]
[일부러 천천히 가는 거예요. 그래야 더 많은 시간을 오빠와 함께 있을 수 있죠.]
[내 기분을 풀어주고 싶으면 규슈라도 넘겨주던지.]
[그건 여왕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에요. 관여해서도 안 되고요. 중립을 지켜야 할 여왕이 그런 일에 끼어들면 심각한 타격을 받아요.]
[여왕도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네.]
[그렇죠. 엄청나게 많은 직책을 가졌지만, 대부분 명예직으로 실질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은 거의 없는 편이죠. 그와 비교하면 오빠는 미래 레드몬 회장과 미래 공대 공대장 두 개가 전부지만, 모두 오빠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오빠가 더 큰 권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죠.]
[내 마음대로 한다고?]
[네!]
[그런 적이 있었나?]
[아니요. 없었어요.]
[그런데 무얼 내 마음대로 해?]
[언제나 오빠 뜻에 맞게 언니들이 움직였잖아. 소연 언니가 오빠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한 적이 있었나요?]
[아니, 없어.]
[그럼 된 거 아닌가요?]
[그렇지.]
[그것 봐요. 다 오빠 뜻대로 한 거잖아요. 히히히히~]
상아의 말이 틀리진 않았지만, 왠지 생각할수록 기분이 묘했다. 잘못된 것도 없는데, 기운이 쪽 빠졌다.
‘배부른 생각이야. 남들은 마누라가 살림을 못 해 고민인데, 나는 매우 잘해 고민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돌이나 안 던지면 다행이지. 하지만 너무 잘난 아내들에 둘러싸여도 문제야! 내 무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나잖아. 젠장!’
30분이면 올 거리를 2시간이나 걸려 느릿느릿 기어 숙소에 도착했다. 그길로 숙소에 들어가지도 않고, 레드몬을 잡으러 북쪽 밀밭을 향해 달렸다.
B급 엘리트 레드몬 붉은 사슴 2마리와 C급 1마리, 중급 7마리, 새끼 5마리로 구성된 암컷 붉은 사슴 무리를 상대로 화풀이하듯 모두 때려잡고 돌아오자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차 안에서 보낸 시간의 절반 만에 일을 끝내고 돌아와 그만 돌아간다고 하자 여왕이 팔을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고령의 여왕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점심만 먹고 돌아가기로 약속하자 그제야 팔을 풀어줬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모두 감기조심하세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