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7 국빈초대 =========================================================================
397.
“거기에 나도 포함하려고 한 거야?”
“그렇죠. 동양인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인종차별주의자지만, 오빠는 최고의 능력자라 수집목록에 추가하면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겠죠. 덤으로 저와 아만다, 캐서린을 쫓아내는 재미도 쏠쏠할 테고요.”
“웃기고 있네.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여?”
“테일러와 제시카, 티파니가 점찍어 이제껏 넘어오지 않은 남자는 없어요. 지나친 자신감이라고 말할 순 없죠.”
“혼자선 유혹을 못 해 셋이 함께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예요. 셋 다 매력은 철철 넘치니까요. 다만 그 매력이 사갈 보다 더 악독한 독을 품고 있다는 게 문제죠.”
“지독한 냄새만으로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데 매력이 넘치기는 개뿔! 너희와 친한 친구인 줄 알고 구역질이 치미는 걸 간신히 참은 것뿐이야. 앙숙인 줄 알았으면 악수도 안 했어. 더러워서 안 되겠다. 손 좀 씻자. 세면대 어디 있어?”
“일단 이걸로 닦으세요.”
아영이가 건넨 물수건으로 허물이 벗겨지도록 손바닥을 문지르자 근처에서 우리를 힐끔거리던 테일러와 제시카, 티파니가 인상을 팍 구겼다.
일부러 보란 듯이 물수건 다섯 장을 사용해 양손을 광이 나도록 닦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만찬장 밖으로 나갔다.
악수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물수건으로 손을 닦는다는 건 매우 예의 없는 행동으로 상대에 대한 지독한 모욕이었다.
“그건 기감력 덕분으로 실체를 알아 넘어가지 않은 것이지, 대다수 남성은 테일러와 제시카, 티파니의 미소, 애교, 뛰어난 화술, 관능적인 매력에 걸려 꼼짝도 못해요.”
“유혹 스킬을 쓰는 거 아니야?”
“셋 다 멘탈리스트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조사하라고 해야겠네.”
“관심 있어서 그런 건 아니죠?”
“세상에서 최고로 예쁜 미녀가 홀딱 벗고 덤벼도 다른 놈과 놀아나는 여자하곤 절대 그 짓 안 해.”
“남자들은 예쁘면 다 용서한다고 하던데, 오빠도 그런 거 아니에요?”
“다른 놈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안 그래. 그런 여자는 트럭을 실어줘도 싫어. 옆에 오는 것도 싫고, 근처에 있는 것도 싫어. 왠지 알아?”
“혼자만 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니까 그렇겠죠.”
“바로 그거야. 나는 내 여자를 다른 놈과 공유할 생각 따윈 해본 적도 없어. 나뿐만 아니라 남자는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야. 자기 여자를 다른 남자와 공유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야? 데리고 살 여자가 아니더라도 나와 사귀는 동안 다른 놈과 어울리는 것도 있을 수 없고, 나와 살게 됐는데 다른 놈과 놀아나다 걸리면 둘 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가죽을 벗겨서 소금에 절여놓고 평생 괴롭힐 거야.”
“우리 중에 그럴 사람도 없지만, 소금에 절여놓고 괴롭힌다는 표현은 너무 심하네요.”
“그런 일 겪고 싶지 않으면 딴 놈 쳐다보지도 마. 걸리면 죽어.”
“정말 오빠는 양심도 없어요. 눈만 돌리지 않았지 기감으로 파티에 참석한 여자들 몸을 다 더듬으면서 우리가 남자 얼굴만 쳐다봐도 기분 나빠하다니 정말 너무 하네요. 진짜 세계 최강의 밴댕이 속이예요.”
“후회해도 이미 기차 떠났어.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오빠가 제 전부긴 하지만, 이럴 땐 정말 얄미워요.”
“이런 게 진정한 사랑 아닌가? 으하하하하~~~”
제니퍼의 말에 상아와 아영, 마샤, 캐서린, 아만다도 깊이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샐쭉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 입을 맞춰주자 기분이 풀리는지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사랑하는 남편이 입을 맞춰줘 기분이 풀린 것도 있지만, 나를 노리는 젊은 여성들 앞에서 과감한 애정표현을 했다는 게 아내들을 더욱 기쁘게 한 것 같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진 않았지만, 내가 아내들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한민국 법이 바뀌면 바로 합동결혼식을 올린다고 언론에 살짝 흘린 적도 있어 우리가 헤어진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언제든지 넣을 수 있어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는 여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아내들은 여성들이 접근하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고, 이런 과감한 애정표현을 더 바랄 수밖에 없었다.
“파티가 마음에 드십니까?”
“파티는 취향이 아니라서... 그래도 음식은 아주 훌륭합니다.”
“주방장들이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사람들은 별로라도 음식은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다가와 샴페인을 권하며 뼈있는 말을 던졌다. 오늘 참석한 인원 중 절반 이상은 공화당 사람들로 보수 강경파인 매파들이었다.
미국에서 어깨에 힘 좀 주는 정치인은 물론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재계의 거물들도 모두 참석했다.
그중에는 매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 보잉, 록히드마틴, 노스럽 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레이시온, SAIC 등 메이저 군수업체도 모두 참석했다.
매파와 군산복합체는 비둘기파인 클린턴 대통령의 내년 재선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거대 세력들로 이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사람들은 별로라는 말로 꼬집어서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비둘기파든 매파든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조금 더 호의적이고, 조금 더 악의적이란 차이가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되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릴 사람들이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이유도 소연과 한숙, 은하에게 매달려 무기를 팔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였지, 진정한 파트너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건 내 앞에서 매파와 군산복합체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클린턴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서로에게 ‘give and take’하는 관계였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도움이 안 되면 과감하게 등을 돌릴 생각이라 이들을 탓할 마음도 없었다.
“한국은 올해 총선이지요?”
“네, 다음 달 11일입니다.”
“중앙정보국에선 대한당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하더군요. 축하합니다.”
“대한당이 여당이 될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고, 대한당이 여당이 돼도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축하는 대한당 변병석 대표에게 하셔야 할 것 같군요.”
“대한당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면서 상관이 없다? 재미있는 표현이군요.”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지 저 같이 평범한 사람이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국가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은 도움을 준 것뿐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당 변병석 대표와 의원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정치가 뜻만 가지고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돈 없인 할 수 없는 게 정치니까요.”
“그들이 무슨 생각하는지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들이 하는 일에 간섭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건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이었지, 이익을 얻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일파와 사사건건 대립하고, 일본과 중국을 미워하며, 미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도 비판하는 등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자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으로 내가 지금껏 한 행동과 말은 정치적 견해가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진 구폐(舊弊)를 바로 잡자고 한 것뿐이었다.
이건 정치와 별개로 정치란 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고,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과 여러 권력과 집단 사이에 생기는 이해관계의 대립 등을 조정·통합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의 행동이 정치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가 외세에 흔들려 표리부동했기 때문이었다.
위정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른 정치를 했다면, 친일·친중·친미가 정치적 색깔이 될 순 없었다.
이들이 외세에 붙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을 위한 정치를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사실은 도와달라는 말을 하려고 꺼낸 말인데, 말이 이상한 곳으로 흘렀군요. 기분 나빴다면 사과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재선이 내년 11월로 다가왔는데, 공화당과 군산복합체의 공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재선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회장님이 도와주십시오.”
“제가 도움이 되겠습니까?”
“300억 달러를 투자해주십시오. 그리고 상급 레드몬이 출현하면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해주십시오. 그 두 가지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받게 됩니까?”
“회장님이 원하는 무기를 살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미래 레드몬이 원하는 곳에 투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그리고 미국 내 반감과 매파의 공격도 막아드리겠습니다.”
“주는 것에 비하여 받는 게 별로 없는 것 같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러시아보다 미국은 더욱 다양한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줄 수 없는 무기를 미국이 공급하겠습니다. 그리고 알짜배기 기업에 투자하면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20년 이상 장기투자하면 못해도 다섯 배는 벌 수 있습니다.”
“무기는 방어용이면 충분합니다. 전쟁할 것도 아니고 더는 필요 없습니다. 투자도 돈을 벌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과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하는 것뿐입니다.”
“앞에 두 가지는 그렇다 해도 반한감정과 매파의 공격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박지홍 회장을 좋아하는 미국인도 많지만, 싫어하는 미국인도 많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파와 세계포스협회의 입김에 회장님을 싫어하는 미국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2~3년 후엔 반한감정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당과 군산복합체, 금융업계, 유대가문들도 회장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이들은 회장님이 21세기 미국의 패권주의를 약화하는 걸림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런 생각을 합니까?”
“이상한 행동을 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너무 잘난 탓이죠.”
클린턴 대통령의 말은 추호도 거짓이 없었다. 매파와 군산복합체는 미국의 패권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존재로 나를 꼽았다.
아직은 미국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멀리서 바라보고 있지만, 내가 필요 없거나,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언제 발표하면 됩니까?”
“내일 실무회담에선 50억 불 투자만 발표하고, 나머지 250억 달러 투자와 상급 레드몬 사냥은 내년 총선 직전 10월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도와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그만큼 대통령께서 애써주시겠죠. 안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하하하하~”
클린턴 대통령이 내년 재선에 성공해도 5년 후인 2001년이면 백악관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럼 오늘 한 얘기는 물거품처럼 모두 사라지고 다음 대통령과 또다시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다.
문제는 우리에게 호의적인 대통령이 계속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공화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지금과는 180도로 달라질 것이 확실했다.
매파가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악의적이라 심하면 우리를 악의 축으로 꼽고 미국의 적으로 간주할 수도 있었다.
이를 벗어날 방법은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힘을 키우는 것밖에는 없었다. 국빈 초대를 받은 것도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매파 전체를 억누르려면 지금보다 몇 배나 큰 힘이 필요했다.
하람이 우리 편이 되어 전력이 두 배로 커졌지만, 당분간 하람을 드러낼 순 없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최상급 피지컬리스트가 나타나면 전 세계 모든 정보기관이 하람의 뒤를 깰 것이다.
그러나 녀석의 과거가 밝혀지면 내가 일본을 망가지도록 사주했다는 누명을 쓸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녀석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경호원 신분으로 위장해 데려왔다. 먼저 녀석의 신분을 만든 후 공개해야지 뒤탈이 없었다.
그리고 히든카드로 하람을 숨기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하람을 숨겨둔다면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단숨에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힘을 키워야 해. 그래야 남에게 기대지 않고 내 뜻대로 살 수 있어. 내 뜻대로 살 힘이 있어야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아. 방법은 죽으나 사나 훈련밖에 없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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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감기로 인해 글 올리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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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