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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394화 (39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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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국빈초대

1996년 3월 2일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Washington Dulles International Airport)에 미래 레드몬의 상징 삼족오가 선명한 에어버스 A300-300이 미끄러지듯 내려앉자 기자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입국하고 싶었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 방문을 계기로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고 싶었는지 동네방네 소문을 내 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경찰과 기자를 빼고도 환영인파만 30만 명이 운집한 공황 활주로에 내려서자 클린턴 대통령이 다가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정치인들이 인기들 얻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연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일이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어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 들자 기분이 엿 같았다.

마음 같아선 모른 체하고 공항을 빠져나가 망신을 주고 싶었지만, 한숙과 은하의 눈짓에 민망해하는 손을 억지로 잡았다.

그래도 친한 척은 하고 싶지 않아 손에 살짝 힘을 주자 ‘우두득~’ 소리가 나며 클린턴 대통령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윽!”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사악한 미소를 보여준 후 함께 나온 고위 인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보는 눈이 있어 차마 째려보지는 못해도 살기가 풍기는 게 은연중에 느껴졌지만, 모른 척 무시한 채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사진 찍기가 끝나자 대통령이나 탈 것 같은 기다란 검은색 링컨 리무진에 올라 백악관으로 향했다.

“나는 왜 데리고 온 건가?”

“집에 남아 있으면 누가 치료해줄 건데?”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정화수를 남겨두고 가면 시간에 맞춰 마시면 될 것 아닌가.”

“너를 어떻게 믿고?”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나 없을 때 도망가면 치료비를 받을 수가 없잖아.”

“하하하하~ 자넨 정말 재미있는 친구야!”

“친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저하람으로 새롭게 태어난 타타리가미를 미국 국빈 초대에 데려왔다. 6개월은 치료해야 정상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타고난 강골에 상급 레드몬이라 예상보다 경과가 좋아 2달 만에 세포가 완치됐다.

녀석이 도망갈 거란 말은 거짓말로 혼자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게 안쓰럽고 불쌍해 동승하게 됐다.

그리고 사냥에 이용하면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초대박이라 음흉한 마음을 숨긴 채 끌고 왔다.

저하람의 저는 돼지 저(猪)자에 하람은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란 순수 우리말로 상아가 지었다.

성이 돼지라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이름이었고, 실제로 사람도 아닌 돼지라서 이름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죽음을 꿈꾸는 타타리가미에게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라는 의미로 상아가 이름을 지어주자 많이 고마웠는지 눈물을 줄줄 흘렸고, 아내들도 모두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돼지 나부랭이에게 사람 이름을 지어주는 게 못마땅했지만, 타타리가미는 부르기도 너무 길고, 일본 이름이라 한글 이름이 낫겠다는 생각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인상만 썼다.

“쫓아내도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붙어 무참하게 깨졌는데, 어딜 도망치겠나. 걸리면 맞아 죽을 텐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돼지 새끼 속은 모른다고 했어. 너를 어떻게 믿어?”

“약속대로 다시는 멧돼지로 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놈의 돼지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나?”

“돼지를 돼지라고 부르는 게 잘못이야? 소라고 불러야 해?”

“잘못은 아니지만, 과거를 잊고 새 출발 하려는 사람에게 너무 한 거 아닌가?”

“사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가 사람이야?”

“그건 아니지만...”

“오빠! 그만 좀 하세요. 하람 오빠 마음잡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 왜 보기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

“마샤는 언제부터 이놈 편이었어? 둘이 잘 맞네.”

“아니에요. 저는 평생 오빠 편이에요. 제겐 오빠밖에 없는 거 알잖아요.”

“그런데 왜 이놈 편을 들어.”

“편드는 게 아니고 오빠가 보기만 하면 뭐라고 하니까 그렇죠. 그것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괴롭히니까 그만하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얘를 때렸어? 아니면 욕을 했어?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잘못한 게 아니라 조금만 부드럽게 대해주세요. 저에게 해주는 거 십 분의 일만 해줘도 되잖아요.”

“내가 미쳤어? 머리에 총 맞았니? 어떻게 너에게 대하는 그런 느낌으로 산적두목 같은 놈을 대할 수가 있어? 나는 그 짓 죽어도 못해.”

“아이고~ 오빠도 정말 대단하세요. 초지일관하시네요.”

“사람 바뀌면 그날이 제삿날이다.”

“에휴~”

“마샤야! 난 괜찮아. 지홍이 이러는 거 싫지 않아. 그러니 앞으로 뭐라고 하지 마.”

“정말요?”

“응! 정감 있고 좋아. 그리고 지홍이가 말만 그러지 속은 그렇지 않다는 거 알고 있어. 그러니 마샤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웃기고 있네. 속에 있는 얘기 1%도 하지 않은 거야. 속마음 다 드러냈으면 넌 벌써 고사상에 올랐어.”

“역시 넌 정말 특이한 친구야. 하하하하~”

3일 전 하람과 단둘이 맞짱을 떴다. B급 상급 레드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싶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호승심이 일어 놈이 나진시에 나타난 순간부터 붙고 싶었다.

아내들 몰래 둘이서 은덕까지 올라가 먼저 인간의 모습으로 한판 붙고, 멧돼지의 모습으로 한판 붙었다.

결과는 두 번 모두 완승으로 인간으로 변신했을 때 하람은 C급 상급 레드몬의 능력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화염 폭풍과 화염보호막, 화염탄을 사용하는 하람을 바람과 철갑, 뇌전탄, 냉기탄으로 번개같이 다가가 쓰러뜨렸다.

시작한 지 1분 만에 싸움이 끝나자 녀석의 눈에 놀람이 가득했다. 그동안 인간의 모습으로 싸우지 않는 건 미치코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지, 약해서가 아니었다.

인간으로 모습으로 싸워도 진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하람이 순식간에 당하자 열이 받는지 멧돼지로 변하자 시작부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바람과 철갑, 피해 면역, 파멸의 창을 한꺼번에 사용해 또다시 가볍게 꺾었다.

피해 면역을 사용해 화염 폭풍과 화염탄을 순식간에 뚫고 들어가 화염보호막만 깨뜨렸다.

파멸의 창으로 녀석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인간보다 더 신의를 지키는 놈을 두고두고 이용할 목적으로 보호막만 뚫었다.

파멸의 창에 화염보호막이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녀석이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상상도 못 한 거대한 힘에 놀란 하람은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탄복했다.

녀석이 패한 이유는 경험부족이 원인이었다. 하람이 이제껏 상대한 사무라이들은 모두 하급이었고, 레드몬도 엘리트 레드몬이 전부였다.

상급 레드몬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인간을 상대해보지 못한 게 놈의 결정적 패인으로, 내가 녀석보다 전투경험이 수백 배 앞섰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또한, 첫 번째 싸움에서 진 후 경계를 한다곤 했지만, 여전히 얕보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은 것도 패배를 부른 원인이었다.

나 역시 단기전에 끝낼 생각으로 최강의 스킬을 전부 사용하고, 포스도 최대한 끌어내 사용했다.

경험이 미천한 녀석을 상대로 반칙이라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싸움에서 반칙 같은 건 없었다.

그것만 아니면 내가 이겼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이겼다. 이런 말은 무덤에 들어가서 해야 할 핑계로 운도 실력이었고, 작전도 실력이었다.

싸움에 진 하람은 다시는 멧돼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렸지만, 과거를 잊기 위해선 다시는 멧돼지로 돌아가지 않아야 한다면 고집을 꺾지 않았다.

녀석을 이용해 일본을 끝장낼 생각이었지만, 아픈 과거를 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쓰러워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하람이 없어도 일본은 재기불능 상태에 빠진 채 점점 깊은 수렁으로 침몰 중이었다.

방어벽이 무너진 도시는 레드몬이 수시로 출몰해 피해를 더욱 키웠고, 전기와 난방, 통신이 모두 끊어지고, 식량마저 제때 보급이 안 돼 약탈과 방화, 강도, 강간, 살인 등 흉악범죄가 잇따랐다.

해외 자산까지 모두 빼앗은 미국은 일본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 괌과 오키나와, 필리핀 등으로 군대를 철수했다.

요코의 레드몬들이 미군 기지를 공격하지 않아 피해는 없었지만, 전기와 수도 등 기지에 필요한 것들이 모두 끊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더욱 잔혹한건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본을 뜯어먹겠다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땅과 자원, 기술을 요구하며 기름틀에 쥐어짜듯 일본을 비틀었다.

정말 재미있는 건 일본의 추락과 함께 친일기업, 친일언론, 친일단체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살아남기 위해 미국과 중국, 유럽 등에 줄을 댔다

특히, 독보적인 친일 기업 광명, 대유, 현주 그룹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몸집 줄이기에 나섰지만, 일본의 몰락과 함께 세계 경기도 심각한 위기를 맞으며 인수할 회사가 없어 주식이 휴짓조각으로 변했다.

친일 언론인 조일, 대동, 합동 언론사도 일본의 몰락과 함께 강력한 결속을 자랑하던 친일파들이 사분오열되며,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했다.

자유당과 조선애국회, 황국신민회도 이탈자가 속출하며, 4월 11일 제15대 총선에서 이미 패배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뭐가 그렇게 좋아?”

“네 덕분에 워싱턴도 구경하고, 사람들 환영도 받았잖아.”

“진심 아니니까 좋아할 거 없어. 그리고 도시는 워싱턴이나 도쿄나 도시는 다 똑같았다. 번잡하고 시끄럽고 매연만 가득해. 억만금을 줘도 이런 곳에선 못 살아.”

“활기차고 좋은데.”

“내려줄까?”

“아니! 하하하하~”

“웃지 마. 정들어.”

“미안! 히~”

하람은 나와 정반대 성격으로 남의 말을 잘 듣고, 잘 웃고, 잘 믿고, 잘 속아 넘어갔다.

착하고 순수하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무공해 돼지로, 인간과 5년을 함께 살면서 아직도 순수함이 사라지지 않은 게 이해가 안 됐다.

미치코의 영향일 수도 있었고, 멧돼지라고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보다 100배는 나은 놈이었다.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호기심도 많아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했고, 머리까지 영특해 한국어도 금세 배워 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내가 하람을 구박하는 이유가 이 때문으로 성격이면 성격, 머리면 머리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났다.

그런 놈이 아내들 곁에 있는데 어찌 좋아할 수가 있는가? 말은 안 해도 사사건건 나와 놈을 비교하며 내 단점을 찾을 게 확실했다.

못난 놈이면 입가에 웃음이 끊이지 않겠지만, 잘난 놈을 옆에 두고 있는 것만큼 신경 쓰이고 짜증나는 일은 세상에 없었다.

백악관에 들어가기 직전 다시 한 번 멋지게 포즈를 잡아준 후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회의실로 직행했다.

회담은 한숙과 은하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나와 소연, 상아는 상대의 행동과 말에 거짓이 없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먼저 기감을 넓게 펼쳐 우리에게 적대적인 능력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호의적이어도 매파와 나이트들도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방인이자, 적으로 사실상 백악관은 적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음 졸이고 무서워할 건 없었다. 구미호와 현무, 비사, 설표, 딩고, 퓨마만 불러도 나이트 100명은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말 한마디면 백악관과 워싱턴을 지도에서 지울 수 있는 하람이 밖에서 아내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런 전력이 갖고 미국을 무서워한다면 그건 불알 달린 사내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몸살감기로 인해 오타가 많습니다.

미리 양해드립니다.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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