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90 불타는 혼슈 =========================================================================
390. 불타는 혼슈
“헉헉헉헉헉~”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바다를 날아 바닷가 모래사장에 도착한 천족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토해냈다.
레드몬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땀을 비 오듯 흘렸고, 개중에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마른기침을 토해내는 천족도 있었다.
“절반도 못 넘어왔네. 어휴~”
“썩을~ 이게 모두 박지홍 때문이야. 피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총공격으로 놈을 죽였어야 해. 그랬다면 이런 불필요한 희생은 없었을 거야.”
“박지홍을 죽이겠다고 몰려갔으면 이 자리 아무도 없어. 이만큼 건진 걸 다행으로 생각해.”
“놈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과소평가겠지.”
“놈은 내가 근처에 있는 것도 몰랐어.”
“정신 차려. 박지홍은 일본에 더 큰 피해를 주기 위해 우리를 살려준 것뿐이야.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 죽었어. 그리고 네가 있던 것도 알면서 모른 척한 거야. 네가 있던 거리보다 몇 배나 먼 거리에서 우리가 다가가는 걸 정확히 알고 기다렸는데, 겨우 네가 지켜보는 걸 몰랐겠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놈이 알았다고 해도 우리는 천족 따위와는 달라. 호락호락하게 놈에게 당하지 않아.”
“지금 실력으론 절대 박지홍을 이길 수 없어. 정면으로 붙으면 한주먹 거리도 안 돼. 살려줄 때 감사하면서 도망가야지 성질을 돋우면 지구 끝까지 따라올 거야. 그러면 우리는 무조건 죽어.”
“설마 도망도 못 치겠어?”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소리도 못 들어봤어? 설마 설마 하다가 순식간에 목이 떨어지는 거야. 지금은 납작 엎드려 실력을 키울 때지 어설픈 기대감으로 덤빌 때가 아니야. 너처럼 혈기만 믿고 덤벼들면 복수할 기회조차 사라져. 제발 정신 좀 차리자!”
“그래도 이런 모습으로 달아나는 건....”
“쇼타! 작은 호승심으로 소중한 목숨을 함부로 다루지 마.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 네가 있어야 나도 살 수 있어. 우리는 일심동체야. 그걸 잊지 마.”
“미안해. 화가 나서 그만.”
“알았으면 안아줘. 추워!”
“고마워! 내 곁에 있어 줘서.”
“알면 딴 년들이랑 놀지나 마. 말만 고맙다고 하면서 다른 계집이나 품고. 그게 고마워하는 사람의 자세야?”
“에헴~”
캄차카 반도로 출발할 때만 해도 500명이 넘는 천족과 레드몬이 멋진 모습으로 요코와 쇼타를 보필했다.
그러나 이제 남은 건 천족 102명과 엘리트 레드몬 일본원숭이 1마리, 포베로미스 2마리가 전부였다.
전력은 5분의 1로 줄어들었고, 행색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초라한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실망할 단계는 아니었다. 마지막에 날개를 달아준 일본원숭이가 다행히 튼튼한 날개를 달고 나와 알이 든 상자를 책임지며, 2,000개의 알을 무사히 혼슈로 가져왔다.
상자가 없어도 3일에 50개의 알을 낳을 수 있어 시간이 지나면 전력을 복구할 수 있었지만, 한 달에 낳을 수 있는 알은 500개 정도가 최대로 이 숫자로는 단시일 내로 전력을 복구할 수 없었다.
조용한 곳에서 들어가 수도하는 마음으로 부하를 늘리면 6개월이면 예전 성세를 회복할 수 있지만, 지금은 쫓기는 신세라 최대한 빨리 전력을 복구해야 했다.
“일단 가까운 하시카미 산으로 들어가자. 거기서 중급 레드몬 위주로 숙주를 늘린 다음 남쪽으로 내려가며 혼슈에 있는 엘리트 레드몬을 몽땅 부하로 거느리는 거야.”
“혼슈를 차지할 거야?”
“A급 엘리트 레드몬을 숙주로 거느리면 가능하겠지만, C급으론 무리야. 우리 실력에 A급을 부하로 삼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럼 어쩌려고?”
“일단 내려가면서 생각해보자. 지금은 나중 일보다 전력을 늘리는 게 급선무니까.”
미국과 러시아의 도움(?)으로 혼슈에 안착한 요코 일행은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하시카미 산으로 들어가 C급 엘리트 레드몬 1마리와 중급 레드몬 20마리를 숙주로 삼았다.
C급이지만, 변종 모기 레드몬의 영향으로 B급 엘리트 레드몬의 힘을 내는 일본원숭이와 요코, 쇼타가 손을 합치자 어렵지 않게 엘리트 레드몬을 숙주로 삼을 수 있었다.
덩치가 큰 아시아흑곰이라 최소 1~2년은 지나야 제대로 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즉시 전력감이라 출발이 아주 상쾌했다.
3일 만에 엘리트 레드몬 1마리와 중급 레드몬 100마리를 추가로 획득한 요코 일행은 남쪽으로 내려가며 쓸만한 레드몬은 모조리 주워담았다.
아키타 현과 야마가타 현까지 돌자 어느새 엘리트 레드몬 5마리를 부하로 거느리게 됐다.
모두 C급 엘리트 레드몬이라는 게 살짝 아쉬웠지만, 이놈들만 해도 천족 200마리에 해당하는 전력이라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이 상태로 한 달만 지나면 홋카이도 전력보다 최소 3배는 키울 수 있겠다.”
“크기 차이가 있으니 전력도 빠르게 늘어나겠지. 홋카이도가 목욕탕이라면, 혼슈는 풀장이라고 할 만큼 넓고 레드몬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 게 전부야. 좁아터지긴 혼슈도 마찬가지야.”
“혼슈만 차지해도 1억 명을 노예로 거느릴 수 있어.”
“그게 우리 마음대로 돼?”
“절반만 해도 5,000만 명이야. 그 숫자면 제국을 건설하고도 남아.”
“홋카이도에서 있으며 느낀 거 없어?”
“느낀 거? 그게 뭔데?”
“섬! 좁아터진 섬! 도망갈 곳이 없는 섬! 바다와 하늘, 땅에서 공격이 가능한 섬!”
“아아~ 그럼 더 넓은 곳으로 갈 생각이야?”
“그래야지. 우리 꿈을 마음껏 펼치려면 일본으론 안 돼. 우리가 일본을 통치할 수 있다면 모를까 섬에 갇혀 있는 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리고 일본이 전 세계의 공적이 된 이상 일본을 차지해봐야 돌아오는 건 죽음밖에 없어.”
요코와 쇼타가 아오모리 현에 무사히 넘어온 날 아침 뚜껑이 열린 클린턴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했다.
평소 거의 사용하지 않던 거친 단어들을 쏟아내며 일본을 악의 축이자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국가로 지정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곧바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이 유엔이 집결했다.
또한, 유엔 사무총장의 긴급 소집령에 유엔에 가입한 모든 회원국이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칼을 갈며 회의장에 입장했다.
일본이 규슈에 수소폭탄을 떨어뜨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들개처럼 달려들어 뜯어먹자 일본을 동정하는 국가도 있었다.
일부 회원국은 타타리가미를 처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남의 위기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상임이사국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힘을 얻은 호소카와 총리는 규슈에 떨어뜨린 수소폭탄이 3F가 아닌 방사능이 거의 나오지 않는 깨끗한 수폭인 줄 알고 사용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3F 수소폭탄이 사용된 건 달아난 무카이 내각정보조사실 실장과 일당을 뒤에서 사주한 나라가 획책한 일이고, 그들이 진짜 인류를 배반한 범인이라며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미국과 프랑스가 수소폭탄으로 발생한 이익(?)을 몽땅 차지하자 일본의 이런 주장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었다.
동정여론이 혐오여론으로 바뀌는 것까지 막을 힘은 없었지만, 국가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하는 미친놈들이 생기며 일본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주었다.
그러나 써커를 소탕할 수 있음에도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고 남에게 피해를 전가하기 위해 고의로 홋카이도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일본을 지도에서 지우자고 외치는 성난 군중들이 일본 대사관으로 몰려가 화염병과 돌을 던졌다.
이를 막아줄 경찰들도 일본 정부의 행위를 괘씸하게 생각해 뒤로 물러서며 일부 국가에선 대사관이 불에 타는 등 피해가 심각했다.
그렇다고 모든 나라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일본에 매우 우호적인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는 전·의경 수천 명을 동원해 국민 혈세로 일본 대사관을 철통같이 지켜주고, 국내 거주 일본인까지 보호하는 등 열과 성의를 다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유엔 회원국 전체가 만장일치로 결의한 일본 제재안은 다음과 같았다.
1. 자위대 해산
2. 비상계엄령 해제
3. 평화적 정권 교체
4. 인적교류 금지(여행, 이민, 유학 등)
5. 약탈 문화재 반환
6. 영토분쟁 영구 종식
7. 해외 자산 동결
8. 식량과 필수 생필품을 제외한 수·출입 금지
이외에도 방사능 낙진 피해 보상금 3배 상향, 향후 20년간 바다 오염으로 인한 어획량 감소분에 대한 보상, 부라쿠민과 소수민족, 이민자 인권차별 금지 등등 이 기회에 일본을 탈바꿈시킨다는 생각인지 제재안이 100가지가 넘었다.
제재안이 발표 되자 호코카와 총리는 명백한 내정간섭이자 주권 침탈이라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박 기자회견을 발표했다.
타타리가미와 써커들로 인해 나라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유엔 제재안까지 받아들이면 일본은 삼류국가로 추락하게 된다.
특히, 정권 교체와 자위대 해산을 받아들이면 전범으로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수상처럼 자신들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욱일기를 머리에 두르고 미국과 프랑스가 일본을 잡아먹으려 한다고 불을 토했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가 주장한 평화적 정권 교체는 호소카와 총리를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배후인 아베 마사히코와 정신적 지주 일왕을 교체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들을 교체해 친미, 친러, 친프랑스 정권을 일본에 심겠다는 생각으로 아베 마사히코가 실각하면 호소카와 총리도 도조 히테키 수상처럼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전범으로 몰릴 게 확실해 결사반대를 외쳤다.
이 때문에 일본은 매일 삭발과 혈서로 일본제국을 지켜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우익들이 길거리를 점령하며 가뜩이나 살기가 팍팍한 서민들의 더욱 힘들게 했다.
“아프리카로 가려고?”
“마음 같아선 박지홍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아프리카에 가고 싶지. 그러나 너무 멀고 우리보다 강한 레드몬이 많은 곳이라 거긴 안 돼. 정글에 잘못 들어갔다간 한 끼 식사로 전락할 수 있어.”
“그럼 어디로 가게?”
“배를 타고 2~3일이면 도착할 거리에 있는 나라 중 크기도 크고, 먹을 것도 많고, 육지에 연결된 나라면 좋지. 치안이 불안하면 더욱 좋고.”
“그 거리면 중국밖에 없네.”
“중국이면 딱 좋지. 박지홍이 간섭하지 않는 나라 중 하나니까.”
“언제까지 박지홍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거야?”
“놈을 이길 수 있을 때까지.”
“그런 날이 오긴 해?”
“글쎄?”
“그렇게 무섭고 두려우면 동맹을 맺으면 되잖아.”
“박지홍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와 동맹을 맺어? 얻는 건 하나도 없고, 잃는 것만 부지기수로 많은데.”
“일본과 중국을 미워하니까 우리가 손봐주면 동맹을 맺을 수도 있잖아?”
“좋아는 하겠지. 그러나 그뿐 우리와는 절대 손을 잡지 않을 거야. 우리와 손을 잡으면 인간과 적이 돼. 그리고 박지홍은 겁이 많아 제어할 수 없는 상대와는 절대 손을 잡지 않아.”
“박지홍이 겁이 많다고? 레드몬을 썩은 짚단처럼 베는 놈이 겁이 많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놈이 죽인 레드몬이 수십만 마리가 넘어.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도살자에 피에 젖은 광인이 겁이 많아?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그건 직업이잖아. 먹고살자고 택한 직업. 그리고 백정이 소 잡고, 사형집행인이 사람 죽이는 게 죄야?”
“아니.”
“직업에 맞게 행동한 거잖아. 도살자니 광인이니 이런 말은 박지홍을 음해하는 헛소리야. 말도 안 되는 가십거리에 귀 기울이지 마. 너도 멍청한 기자들처럼 바보 된다.”
“알았어.”
”평소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해.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보고 성향을 판단해야 해.“
“박지홍의 행동? 무슨 행동?”
“사람 기피하는 거.”
“아아~ 대인기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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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집에 다녀와 늦잠을 잤습니다.
죄송합니다.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