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8 모기몰이 =========================================================================
388.
강한 바람을 피해 섬 북쪽으로 화산을 끼고 최대한 낮게 날은 요코 일행이 목적지에 도달한 건 해가 중천에 뜬 정오였다.
흐린 날씨와 강한 바람에 최대한 낮게 날면 속도가 크게 떨어졌지만, 모두 날개가 있어 행군속도만 따지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부대였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한 요코가 첨병으로 천족 10명과 레드몬 10마리를 이투루프 섬으로 보냈다.
“오빠! 써커와 레드몬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어요.”
“아리야! 가시덩굴!”
“응.”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가시덩굴을 불러내 반구형으로 둘러싸자 바깥에서 보기엔 숲이 우거진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와서 봐도 이상함을 느낄 수 없었고, 식물학자 아니면 추운 이투루프 섬에 가시덩굴이 있는 것을 의심할 수도 없었다.
10분쯤 기다리자 써커 10마리와 중급 레드몬 10마리가 바다를 가로질러 해안에 도착했다.
강풍을 뚫고 오는 게 많이 버거웠는지 턱까지 찬 숨을 한참이나 몰아쉬었다. 숨을 고른 써커와 레드몬들이 넓게 퍼져 주변에 적이 있는지 수색했다.
가시덩굴 바로 옆까지 다가와 두리번거린 써커가 다섯 마리나 됐지만,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스쳐 지나갔다.
[지능이 심각하게 떨어져 국민학교 3~4학년 수준도 안 되겠어?]
[요코와 쇼타는 지능이 높잖아요. 써커도 시간이 지나면 요코와 쇼타처럼 기억을 되찾고 예전처럼 지능이 높아질 수 있어요. 방심하면 안 돼요.]
[그것도 살아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죽으면 아무것도 못해.]
[혼슈로 들어가면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잖아요. 특히, 번잡한 도심으로 스며들면 숨을 곳이 많아 쉽게 찾지 못할 거예요.]
[그럴 가능성도 크지. 그러나 일본 정부가 그걸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혼슈마저 망가지면 정말 삼류국가로 추락할 수도 있으니까. 피해가 크더라도 모두 잡아 죽이려 발광할 거야.]
1시간가량 주변을 수색한 써커들이 적이 없음을 요코에게 무전을 날려 알려줬다. 임무를 끝내자 바닥에 철퍽 주저앉아 본대가 넘어오기를 기다렸다.
레드몬들도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써커 옆에 엎드려 주인인 요코가 오기를 기다렸다.
날개가 달린 레드몬은 일본원숭이 6마리, 일본담비 2마리, 족제비 1마리, 포베로미스 1마리였다.
10마리 모두 덩치가 작은 동물들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대형 레드몬은 속도와 기민함이 떨어져 날개가 있어도 효과가 보기 힘든지 일부러 가벼운 레드몬을 택한 것 같았다.
[포베로미스를 숙주로 삼다니 대단하네요.]
[묘수네.]
[그러게요. 레드마우스의 왕을 부하로 거느리면 모기 레드몬을 사용하지 않아도 레드마우스 부대를 만들 수 있네요.]
[포베로미스 새끼까지 얻으면 수만에 달하는 레드마우스 부대를 만들 수도 있겠다.]
[요코는 대단한 여자인 것 같아요. 왕국 건설부터 자위대를 상대한 작전까지 모두 요코 머리에서 나왔잖아요. 측천무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아요.]
[권력을 위해 자식과 사람들을 마구 죽인 측천무후라... 알에서 깨어난 변종 모기 레드몬도 엄연히 자식이니 맞는 말이네. 왕국 건설을 위해 자식들을 전쟁터에 마구 동원했으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매우 뛰어나다는 뜻으로 말한 거예요. 측천무후가 잔혹한 여자인 건 사실이지만, 과거를 활성화해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했어요. 그녀가 다스리던 시기는 태종 이세민이 다스리던 시대에 버금갔고, 백성들의 생활도 아주 풍족했어요. 일부 역사가들은 측천무후가 집권한 시기를 '무주의 치(武周之治)'라 부르며 칭송할 만큼 높이 평가해요.]
[상아야! 오빠 무식한 거 만천하에 알리려고 그러는 거지?]
[아니에요. 그럴 생각도 없지만, 오빠가 왜 무식해요? 얼마나 박학다식한데 그래요.]
[박학은 무슨... 나도 알고 있었어. 웃자고 농담한 거야. 하하하하~]
말이 농담이었지 내가 아는 측천무후(測天武后)는 중국 황제 중 유일한 여성이라는 것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낳은 자식도 여러 명 죽였다는 것이 전부였다.
‘아내들은 대학 다닌다고 열심히 공부하는데, 나는 남들 다 아는 기본 상식도 제대로 아는 게 없네. 젠장!’
올 3월 나진시에 미래 종합대학이 문을 연다. 전체 학과의 절반이 레드몬과 관련된 학과로 세계 최고의 레드몬 대학을 만든다는 포부를 안고 막대한 돈을 투자해 최고의 시설, 최고의 교수진을 선발했다.
레드몬 학과를 빼고도 경영, 한의학, 의학, 화학, 생물학, 금속, 기계 등 실생활에 필요한 학과도 함께 문을 열었다.
전원 장학생으로 50%는 나진시에서 뽑았고, 나머지 50%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남쪽 학생들과 아프리카·동남아시아·남미에서 선발했다.
가방끈이 엄청나게 긴 은하와 한숙을 제외한 소연, 은비, 서인, 아리, 제니퍼, 아만다, 캐서린, 상아, 아영, 마샤, 소희까지 전부 대학에 입학했다.
전공은 당연히 레드몬이었고, 부전공은 경영학, 사회학, 아동학, 한의학, 의학, 화학, 기계공학, 금속학 등 자신의 적성에 맞게 다양한 학과를 선택했다.
잦은 해외 원정과 많은 업무로 학업 일수를 채우기 힘들어 리포트와 과제로 학점을 채워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대학에 진학한다는 생각에 아내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나도 대학에 진학하라고 아내들이 성화였다. 그러나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내가 대학에 들어갈 순 없었다.
그건 명백한 반칙으로 최소한의 규칙을 지킨 후 그에 합당한 열정과 노력을 보여줘야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자신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특권의식으로 20년 넘게 특권의식에 절은 놈들에게 당한 내가 그 짓을 할 순 없었다.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남들이 간다고 나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나는 남들이 ‘예’라고 외칠 때 ‘아니요’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런 사람이 성공하기보단 매장당할 확률이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게 문제긴 했지만, 멍청하게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아내들의 성화는 이길 수가 없어 돌을 깨는 심정으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었다.
훈련과 사냥, 사랑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랐는데, 검정고시까지 준비하자 하루 3시간도 잠잘 시간이 없었다.
문제는 잠을 줄이고 열심히 책을 파고들어도 관심 있어 하는 한의학과 의학을 뺀 나머지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보다 소희가 성장해 오니 부대를 조종하는 마에다 요코처럼 써커를 조종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도 강력한 레드몬 부대를 거느릴 수 있잖아.]
[레드몬의 정신을 조작해 부대를 만들게요?]
[핵무기처럼 환경오염을 불러오지만 않으면 뭐든 해야지. 우리가 찬밥 더운밥 따질 수준이야?]
[그렇긴 하죠. 그러나 깊이 생각해볼 문제예요. 한쪽은 가족 같은 존재고, 한쪽은 마음이 없는 빈 깡통 같은 존재라 단기적으론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백호와 풍산개를 길들여 사냥에 이용하나, 레드몬의 정신을 조작해 전투에 활용하나 쓰임새는 비슷했다.
그러나 상아 말처럼 둘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한쪽은 시간이 갈수록 강력한 우군이 됐지만, 한쪽은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였다.
백호와 풍산개를 길들였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백호와 풍산개들은 한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유지하고, 우리가 배신해도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또한, 새끼를 낳으면 새끼들도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한 우군이 됐다.
그와는 반대로 정신을 조작한 레드몬들은 소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거나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면 곧바로 적으로 돌변했다.
비행기로 이동 중 이런 일이 벌어지면 비행기 안에 탄 사람은 모두 죽게 된다. 극단적인 예였고, 둘 다 100% 안심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백호와 풍산개가 믿음이 갔다.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시간이 걸려도 조금씩 늘려가는 게 낫겠다.]
[헤헷~]
30분을 기다리자 선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풍을 뚫고 날아오는 모습이 위태위태해 강한 바람에 약하다는 포로들의 증언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준비! 공격!]
공격명령과 동시에 써커 10마리와 레드몬 10마리를 향해 살기투사를 사용해 전투불능 상태로 만든 후 혈기탄으로 모두 숨통을 끊고 날아오는 놈들을 향해 살기를 투사했다.
“으아악~~~”
강력한 살기에 맞은 써커와 레드몬들이 살충제에 맞은 모기처럼 바다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소연과 은비, 아리도 홀드와 체인 라이트닝, 죽음의 비명을 사용해 선두에 선 놈들을 공격했다.
선두가 추풍낙엽처럼 바다에 떨어지자 강풍을 뚫고 힘겹게 날아오던 써커와 레드몬들이 깜짝 놀라 공중에 멈춰서 자신들을 공격한 적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는 건 흐린 하늘과 거친 바다, 황량한 바닷가 그리고 강풍에 휩쓸린 숲이 전부였다.
놈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100마리가 넘는 써커와 레드몬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생각지도 못한 먹이가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자 근처를 배회하던 어류형 레드몬들이 몰려들어 몸싸움을 벌이며 써커와 레드몬을 잡아먹었다.
처음 접한 육지 고기에 광분한 녀석들이 서로 먹겠다고 싸우자 몸통과 팔다리가 날카로운 이빨에 찢겨 바다가 빨갛게 물들었다.
개중에는 물방울과 가시를 쏘아대는 어류형 레드몬도 있었는지 허둥대는 써커와 레드몬을 공격해 쏠쏠한 이득을 챙겼다.
숲에서 날아오는 스킬도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밑에서 날카로운 가시와 총알 같은 물방울까지 날아들자 당황한 써커들이 피하지 못하고 연이어 바다에 떨어졌다.
날씨가 화창했다면, 바람이 강하지 않았다면 최대 1,000m까지 상승하는 써커들이 이렇듯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습에 선두가 큰 피해를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그 이후엔 하늘 높이 올라가 공격을 무난히 피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날씨와 변수를 이겨내는 것도 실력으로 놈들이 허무하게 죽는 건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살려줘! 살려줘!”
써커로 변해도 살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물에 빠진 써커들이 애타게 동료를 찾았다.
그러나 요코의 후퇴 명령에 살아남은 써커들은 동료의 애타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눈길도 주지 않고 재빨리 물러났다.
썰물이 지듯 달아난 자리엔 붉게 물든 바다와 허우적대는 써커를 잡아먹는 어류형 레드몬만이 남았다.
[그만!]
놈들을 혼슈로 내려보내는 게 목적이라 손을 멈췄지, 소탕이 목적이었다면 뇌전탄과 냉기탄, 혈기탄, 가시창, 파멸의 창까지 모두 날려 씨를 말렸을 것이다.
“출발지점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또다시 넘어올 거야. 잘 감시해.”
“네!”
“요코에게 말은 걸어봤어?”
“아니요. 조심성이 많은지 가장 후미에 있어 거리가 닿지 않았어요.”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은 빠르고 강한 적이 아니라 조심성과 끈기가 강한 적이었다.
강함만을 추구하는 적은 허점이 많고 유인에 잘 걸려들지만, 조심성과 끈기를 동시에 지닌 적은 웬만한 도발엔 걸려들지도 않았고, 적이 강하다고 느끼면 돌아갈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놈을 잡는 건 놈보다 더한 인내심과 오기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키는 것보다 공격하는 것이 몇 배 더 어려워 이런 놈을 만나면 일찍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