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384화 (384/505)

00384  부라쿠민(部落民)  =========================================================================

384.

“나도 날개 있으면 좋겠다.”

“왜?”

“마음껏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먼 곳도 금방 갈 수 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잖아.”

“갖고 싶어?”

“응!”

“은비야! 머리에 모기 레드몬 들어가면 아플까? 안 아플까?”

“우쒸~”

은비 말처럼 날개가 있다면 지금처럼 땅을 박박 기어 다니지 않아도 되고,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머리에 뇌 대신 레드몬을 집어넣는 대가로 날개를 얻고 싶진 않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아가 가진 내가 좋았지, 레드몬의 꼭두각시로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레드주얼 중에 날개가 돋아나는 레드주얼은 없을까?”

“조류나 날개 달린 곤충을 잡으면 나올지도 모르지.”

“그런 거 있으면 좋겠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하더니 은비 너를 두고 한 말이었네. 소환수만 있어도 원이 없겠다고 하지 않았어?”

“원래 사람은 욕심쟁이야. 그런 욕심이 있었기에 세상이 발전할 수 있어요.”

“맞아. 발전했지. 또한, 욕심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억울하게 죽기도 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 발전할 가능성이 수십 배나 컸다. 탐욕이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 이유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생각과 이유가 있어야 새로운 것을 만들고, 제도를 고치며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시계가 발명되기 전까진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기준으로 움직여 1분 1초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시계가 생기자 사람들은 1분 1초에 목숨을 걸었다. 시간은 생명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며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약속은 중요하다. 몇 시에 만나기로 하고, 몇 시까지 일을 끝마치기로 한 것은 꼭 지켜야 할 일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시간에 쫓기며 인간이 주체가 아닌 시간이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시간 때문에 정작 중요한 우리 삶이 허비되는 것이었다. 이렇듯 욕심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새로운 발명품들은 인간에게 매우 이로운 존재임이 틀림없지만, 때로는 인간을 부속품, 자아를 잃어버린 기계로 만들기도 했다.

“또다시 욱일기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내일모레면 21세기인데 대체 왜 저러는 걸까?”

“군국주의의 망령이 떠나질 않아서 그렇죠. 아니면 뼛속까지 파고든 침략 본성 아닐까요?”

“군국주의는 2차 대전 때 끝난 거 아니었어?”

“시간이 지난다고 끝날 일이 아니에요. 역사가 되풀이되듯 철저한 반성이 없는 한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은 계속 살아날 거예요. 특히 어려운 시기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나타나죠. 지금처럼.”

“그렇다고 삭발하고, 머리띠 두르고, 일왕이 준 술 마시고, 혈서까지 쓰고 일왕 만세 부르는 모습을 TV에서 방영해야 해?”

“우리 보라고 한 게 아니에요. 일본 국민의 집단 광기를 끌어내려 저러는 거예요.”

“저런 게 효과가 있겠어? 내가 보기엔 반감만 살 것 같은데.”

“욱일기 들고 뛰어다니는 사람들 안 보이세요? 지홍씨는 아닐지 몰라도 일본에선 효과 만점이에요.”

은하의 말처럼 홋카이도로 출정하는 자위대원들의 모습이 TV에 대대적으로 방영되자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일본 정부 추산 1,000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광적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욱일기를 흔들자 모든 국민이 열광적으로 정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거리로 나와 분위기를 이끈 놈들은 대다수가 우익인사와 놈들의 끄나풀이었고, 일본 정부가 추산한 시위 인파도 최소 10배는 뻥튀기한 것이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들은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일왕을 위해 죽자고 악을 썼다.

일본 정부는 세이칸 터널이 뚫리자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자위대원 1만 명을 동원해 삭발과 혈서, 일왕이 내려준 사케까지 마시고,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거창하게 출정식을 열었다.

홋카이도에 부라쿠민 230만 명을 밀어 넣은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를 모른 채 일본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무찌르러 가는 자위대원을 열렬히 환송했다.

그 모습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 아주 흔한 장면으로 일본이 공식적으로 군국주의(Militarism)로 회귀했음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일본 내 지식층의 목소리는 너무 작았고, 깨어있는 국민은 소수라 이들의 목소리는 거대한 덴노헤이카 반자이의 목소리에 파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우리가 영웅이라 칭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군국주의자로 국민의 피를 대가로 영웅이란 이름을 얻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칭기즈칸, 나폴레옹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사람들로 이들은 제국건설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들 외에도 많은 영웅이 강물처럼 흐르는 피를 바탕으로 제국과 왕국을 건설하며 위대한 지도자란 이름을 얻었다.

당시 시대 상황이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불필요한 점령과 살생까지 용서받을 순 없었다.

근대국가 이후 군국주의가 개화한 나라는 독일과 일본으로 이들은 세계 정복이라는 망상에 빠져 주변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결국엔 자신과 국민까지 죽음으로 내몰았다.

군사력에 의한 발전을 국가 목표로 생각해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을 군사력 강화에 종속하는 군국주의는 단기적으로 큰 발전을 꾀할 수 있다.

그러나 잦은 전쟁으로 인한 생산력 저하와 노동인구 인구 감소, 의욕상실, 불안 등 수많은 악재가 겹치며 독일과 일본처럼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아베 마사히코와 추종자들은 제국주의 향수를 잊지 못해 또다시 망령을 불러내 일본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보는 시각으로 대다수 일본 국민은 여론몰이에 넘어가 홋카이도를 탈환하고 다시 세계에 욱일기가 펄럭이는 꿈에 젖어들었다.

그들의 마음속엔 태평양과 동남아시아, 중국, 대한민국을 발아래 두고 호령하던 욱일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은하야! 네가 보기엔 어때? 성공할 것 같아?”

“어려울 거예요. 써커 숫자도 많고, 레드몬도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요. 여차하면 노예로 삼은 홋카이도 주민 200만 명을 전쟁에 동원할 수 있고요.”

“250만 명이라고 해도 무기가 소총이 전부인데 도움이 되겠어?”

“지홍씨나 소총이 두렵지 않지 자위대원들은 맞으면 죽어요. 총 맞고 멀쩡히 걸어 다니는 사람 봤어요?”

“아니.”

“200만 명이 죽창만 들고 뛰어와도 무서울 판에 총을 쏜다고 상상해보세요. 피해가 크든 적든 자위대도 위축될 수밖에 없죠.”

사흘 전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를 담당하는 미래 5호 정찰위성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민간인들의 모습이 찍혔다.

모두 남루한 차림에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쇼타와 요코에게 잡힌 홋카이도 주민들이었다.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홋카이도 주민을 550만 명으로 계산했을 때 적어도 200만 명은 놈들에게 잡혀 비참한 삶을 사는 것으로 추측했다.

천운으로 살아남아 혼슈로 넘어온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도시로 밀려든 레드몬들은 웬만해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총을 쏘거나 아주 심하게 반항하지 않는 한 겁을 줘 한곳으로 모을 뿐 때리지도 않았고, 잡아먹지도 않았다.

이건 포로로 잡는다는 뜻으로 돈이 필요 없는 쇼타와 요코는 이들을 이용해 왕국을 건설할 속셈이 분명했다.

“사무라이들도 이번에 3,000명을 동원한다고 했으니 성공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성공해도 피해가 워낙 커 후유증이 심각할 거예요.”

“피해가 커도 성공하기만 하면 잃어버린 땅을 모두 되찾는 거잖아. 레드몬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고.”

“되찾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죠. 규슈는 한동안 사용할 수 없고, 홋카이도와 시코쿠는 남은 게 하나도 없잖아요. 경제력이 집중된 혼슈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뜯긴 돈이 천문학적이고, 군대까지 피해가 커 최소 20년은 국민을 쥐어짜야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있어요.”

“우리에겐 반가운 소리네?”

“무조건 반가운 소리는 아니에요. 군국주의가 부활한 이상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설마 우리나라를 침범하겠어?”

“그야 알 수 없죠. 미치면 무슨 행동을 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지금 일본이 딱 미치기 직전이에요. 아주 위험한 상태죠.”

은하의 표현이 극단적이라 가슴에 와 닿진 않았지만,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도 없었다.

전면전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았지만, 국지전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불안감을 조성하면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신용등급이 곤두박질쳐 일본과 동반 추락할 수 있었다.

일본은 혼자 죽지 않으려 할 것이다. 물귀신처럼 우리를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네?”

“당연하죠. 밟을 땐 다시는 못 일어나게 확실하게 밟아야 해요. 어설프게 밟으면 원한만 키우는 꼴이에요.”

“어떻게 하면 확실하게 밟는 걸까?”

“타타리가미가 있잖아요. 최대한 빨리 회복시켜 일본으로 보내야죠.”

“아무리 빨라도 최소 3개월은 걸려.”

“일본이 홋카이도를 수복해도 3개월 이내에 움직일 여력은 없어요. 우리와 싸우든, 중국과 싸우던 싸우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안보리가 정한 한 달 이내론 홋카이도를 점령할 수 없어요. 놈들의 전력을 생각하면 최소 3개월은 걸릴 거예요.”

잡아온 써커 네 마리를 통해 알아내 요코와 쇼타의 전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대단했다.

써커만 2,000마리가 넘었고, 레드몬도 2,500마리 이상이 아직 살아있었다. 써커 중 날개 달린 놈은 무려 500마리로 날개 없는 써커보다 전투력이 거의 2배나 높았다.

날개 달린 써커는 최대 1,000m 상공까지 올라갔고, 속도도 최대 시속 250km로 날 수 있었다.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써커도 문제지만, 이들을 수족으로 부리는 요코와 쇼타의 능력이 상급 피지컬리스트라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상급 피지컬리스트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산성용액과 검은 예기로 쏘아대면 재앙도 그런 재앙이 없었다.

써커보다 능력이 월등한 만큼 최대 고도, 최대 속도, 움직임 등 모든 면에서 훨씬 뛰어날 것이 확실해 잡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알을 낳는 요코가 원하는 만큼 날개 달린 써커를 만들 수 있고, 2,000개가 넘는 알을 냉동으로 보관 중이라 레드몬만 있으면 한꺼번에 2,000마리를 부하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사로잡아 숙주로 삼은 C급 엘리트 레드몬 일본원숭이의 등에도 날개를 돋아나며, 레드몬도 비행 형으로 개조할 수 있어 위험성이 몇 배가 커진 상태였다.

“1월 20일까지 탈환 못하면 홋카이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넘어가잖아?”

“설마 발표한 결의안을 그대로 믿는 건 아니죠?”

“그게 무슨 소리야?”

“분명 이면 합의가 있을 거예요. 시한을 한 달로 발표한 건 일본에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술책이라고 보셔야 해요.”

“옐친 대통령은 그런 말 안 하던데?”

“회의 주체가 미국이잖아요. 러시아는 모를 가능성이 크죠.”

“상임이사 5개국이 합의한 사항이잖아?”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에 이익이 되면 무조건 미국 편을 들 거예요. 러시아와 중국도 다를 게 없고요. 같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도, 미국을 거스를 나라는 없어요. 미국이 오케이하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어요.”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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