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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382화 (38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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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부라쿠민(部落民)

“부라쿠민을 총동원해 하코다테와 도마코마이, 무로란 시에 진지를 건설하는 겁니다. 진지를 건설하면 요코와 쇼타도 혼슈로 눈을 돌릴 수 없을 겁니다.”

“부라쿠민으로 놈들의 시선을 잡자?”

“그렇습니다. 그와 동시에 소총과 기관총, 수류탄, 유탄발사기 등을 지급해 놈들을 공격하는 겁니다. 그럼 동시에 놈들의 숫자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수치인 부라쿠민도 이 기회에 없애버리고, 혼슈의 안전도 도모하고, 놈들의 수도 줄이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겠군?”

“부라쿠민의 짐 속에 폭탄을 설치해뒀다가 놈들이 대규모로 공격하면 폭탄을 터뜨려 수를 한꺼번에 줄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지뢰를 진지 근처에 대량으로 살포해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쓸모가 있다니 그동안 돌봐준 게 헛일은 아니었군.”

“오랫동안 은혜를 베풀었으니 보답을 받을 때가 온 것이죠. 흐흐흐흐~”

오래전 천민계급의 후예란 이유로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극심한 차별대우에 시달리는 부라쿠민(部落民)이란 계급이 있다.

전근대 일본의 최하층 계급이었던 에타와 히닌이 신분제 철폐 이후에도 여전히 차별대상으로 남아 신분이 고착화한 것으로 아이누인,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 류큐인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차별받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누인,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 류큐인들이 다른 민족이란 이유로 차별받는 것과 달리 부라쿠민은 순수 일본인임에도 오늘날까지 극심한 차별에 시달렸다.

이런 신분제도는 에도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과 같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4계급으로 구분했다.

이들은 4계급에도 들지 못한 신분으로 백정, 사형집행인, 피혁 가공 등에 종사하는 사람을 ‘더럽다’는 뜻의 에타(穢多)라 불렀고, 사형집행보조, 걸인, 죄인, 시체매장인, 도로청소부, 사찰의 종자, 예능인 등을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라는 뜻으로 히닌(非人)이라 불렀다.

이들은 영주의 관할 하에서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며, 빈민 지역인 게토에 따로 모여 살았다.

게토(ghetto)는 소수 인종과 소수 민족의 집단 거주지로 사회·경제적으로 압박받는 미국의 흑인 빈민가도 게토에 해당했다.

부라쿠민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해방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지됐지만, 아직도 6,000개 이상의 게토가 존재했고, 300만 명 이상이 결혼과 직업 등 수많은 제약 속에 저임금 비숙련업종에 종사하며 공동체를 형성한 채 살았다.

“인원이 모자라면 아이누인,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 류큐인들까지 동원하면 됩니다.”

“부라쿠민과 징집한 자위대원 100만이면 숫자는 충분하네. 문제는 요코와 쇼타, 써커들을 처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네.”

“놈들을 모두 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땅에서 밀어낸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이면 됩니다.”

“북쪽의 사할린을 말하는 건가?”

“사할린이든, 이투루프 섬이든, 알래스카든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우리 땅에서 쫓아내면 그만입니다.”

“러시아와 미국 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토벌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우기면 그만입니다. 날개 달린 놈들이 날아서 도망치는 것을 무슨 재주로 막겠습니까?”

“하긴 홋카이도를 한 달 안에 탈환한다고 했지, 모두 죽인다고 한 적은 없지.”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홋카이도를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그만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일은 우리와 무관한 일입니다.”

호소카와 총리와 독대하는 인물은 국가방위 정보국 국장 고바야시 스스미로 내각정보조사실 해체와 함께 방위성 산하 정보본부를 통째로 옮겨와 새롭게 정보부를 꾸미며 실권을 맡은 인물이었다.

방위성 산하 정보본부의 수장으로 오랫동안 군정보조직에 몸담은 고바야시는 아베 마사히코 회장의 아홉째 사위로 출세 지향적 인물이지만,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로 일 처리는 기가 막히게 빠르고 정확했다.

그러나 매우 권위적이고, 잔인한 놈으로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부하들의 원망이 대단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부류로 자신과 동등한 지위나 가문이 아니면 도구로 생각해 소모품으로 사용하다 버렸다.

하지만 아베 마사히코의 사위라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일뿐이었다.

“이번 일은 자네가 맡아서 하게. 나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을 견제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겠네.”

“알겠습니다.”

“아베 회장님의 기대가 크네. 기필코 성사해 회장님의 눈에 들어야 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쇼타와 요코를 몰아내고 홋카이도를 되찾겠습니다.”

아베 마사히코는 아들 하나에 딸이 10명으로 아들을 얻기 위해 딸을 무려 10명이나 낳았다.

올해 51살인 아베 회장의 막내아들은 이제 겨우 5살로 딸 10명은 모두 결혼해 아이를 낳은 아줌마였다.

아빠의 후광으로 호의호식하며 살다 빵빵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한 딸들은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커져 아빠의 후계자 자리를 핏덩이 동생이 아닌 자신들이 차지하려 암투를 서슴지 않았다.

서로 헐뜯고 욕하는 건 기본이었고, 언니가 동생을, 동생이 언니를 몰락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등 가족이 아니라 원수처럼 으르렁댔다.

당연히 야심 많은 사위들도 이에 동참해 장인어른의 눈에 들어 후계자가 되기 위해 피 말리는 각축을 벌였다.

고바야시도 그 중 한 명으로 호소카와 총리와는 사돈지간이었다. 호소카와 총리의 셋째 딸과 고바야시 국장의 큰 형이 결혼한 사이로 혈연을 바탕으로 아주 끈끈한 사이였다.

12월 21일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의안이 통과한 다음 날 새벽 고바야시 국장의 아이디어로 부라쿠민 강제 동원령이 발령됐다.

새벽 4시 자다 말고 끌려 나온 부라쿠민 230만 명은 트럭과 기차에 태워져 혼슈 북부 아오모리 현으로 이동했다.

15세 이하 아이들과 65세 이상 노인들을 제외한 부라쿠민 전원을 끌어낸 고바야시 국장은 벼를 추수한 황량한 논바닥에 1~2만 명 단위로 이들을 수용했다.

남녀와 나이로만 구분한 수용소는 20인용 군용 천막의 두 배가 넘는 50명을 수용해 콩나물시루처럼 북적댔다.

호소카와 총리와 고바야시 국장이 날림으로 하루 만에 부라쿠민 동원을 결정하며, 이들을 수용할 군용 막사도 태반이 모자랐다.

덕분에 운이 좋은 절반은 학교 강당과 체육관에 임시 수용됐다. 그러나 이유도 모른 채 잡혀 온 사람들은 두려움과 추위, 배고픔에 온종일 떨어야 했다.

더군다나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 생사마저 알 수 없어 걱정과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부라쿠민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말거나 고뱌야시 국장은 직업과 건강 상태에 따라 다시 레드몬과 싸울 전투병, 진지를 만들고 물건을 나를 노역병, 기타 잡무를 맡을 사무병으로 이들을 나눴다.

단 5일 만에 편성과 함께 훈련까지 마친 부라쿠민들은 자신들처럼 강제 동원된 징집병의 총에 떠밀려 배를 타고 홋카이도로 향했다.

쓰가루 해협을 건너면 살아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입을 열어 불만을 표시하지도, 소리 내어 크게 울지도 못했다.

하코다테와 도마코마이, 무로란 시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들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들을 태운 배에는 언제든 이들을 즉결처분할 수 있는 징집병이 총을 든 채 감시하고 있었다.

부라쿠민이나 강제로 끌려온 징집병이나 죽음이 기다리는 홋카이도로 끌려가는 것은 같았지만, 부라쿠민을 바퀴벌레보다 못하다고 어릴 적부터 배운 징집병들은 부라쿠민을 총알받이로 세우면 자신들을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십보백보로 놓인 처지가 다를 것이 없었지만, 징집병들은 소·돼지만도 못한 부라쿠민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상부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러나 이들이 믿는 상부는 함께 홋카이도로 가지 않았고, 국가방위 정보국에서 써준 내용을 앵무새처럼 읽어준 것에 불과했다.

홋카이도에 안전한 곳은 없었다. 벙커에 머리를 처박고, 건물 지하에 숨어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서로 협력해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곳으로 부라쿠민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징집병들은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부라쿠민이 자신들 대신 죽을 것으로 믿고 또 믿었다.

이런 믿음은 더욱 집요하게 부라쿠민을 감시하고 괴롭히는 원동력으로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나이와 성별을 무시하고 개머리판과 군화로 사정없이 찍고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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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발한 어선 5,000척에 부라쿠민 100명씩을 태워 남동쪽 해안 마을로 보내 써커들의 눈을 돌린 다음 중소형 선박을 이용해 하코다테와 도마코마이, 무로란, 다테 시에 부라쿠민 180만 명과 강제 징집한 자위대원 50만 명을 내려놓았습니다.”

“천민이라고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이젠 총알받이로 쓰다니... 정말 너무하네요.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일본 사람들은 부라쿠민을 같은 민족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벌레로 생각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말도 안 돼요! 사람을 어떻게 벌레 취급을 해요?”

“일본은 이지메가 강한 나라입니다. 이런 현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것으로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집단 따돌림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일본의 국왕 무쓰히토는 국력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헌법을 잔인하고 폭력적인 내용으로 구성하며 우민화 정책을 사용했다.

‘집단 따돌림을 조장하는 가해자들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집단 따돌림을 받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피해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개인에 의한 이익을 접어두고 전체에 의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방침 등을 내세워 집단 따돌림을 묵인했다.

전체 이익을 추구한다는 생각으로 집단 따돌림을 가한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따돌림을 당한 피해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행동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이지메(집단 따돌림)가 사회에 만연했고, 해방법에 의해 법적으로 사라진 부라쿠민 역시 일본 국민 다수가 소수를 향해 집단따돌림을 하는 것이었다.

강승원 국장의 설명에 상아의 눈이 심하게 찡그려졌다.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는 것도 모자라 상륙작전의 미끼로 사용하자 상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 자리에 상아 대신 아영이 있었다면 아마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강승원 국장의 말을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아래 남포, 원산, 신의주, 김책 등 8대 거점도시의 태반이 부라쿠민보다 몇 배는 더한 힘든 삶을 살았다.

이들은 주민등록조차 없어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무관심 속에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다.

소연과 은비, 한숙, 아영이 대한당, 미래사랑 펜클럽, 국제인권위원회와 연계해 개선을 요구했지만, 알았다는 답변만 되돌아올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오비히로 시 남쪽과 구시로 시로 접근한 어선 5,000척은 태반이 해안에 닫기도 전에 침몰했습니다.”

“하코다테와 도마코마이, 무로란, 다테 시는 무사히 안착한 겁니까?”

“워낙 많은 수가 동남부 해안으로 몰려 잠시 시간을 벌긴 했지만, 길어야 하루를 넘기긴 어려울 겁니다.”

“그럼 280만 명만 놈들에게 갖다 바치는 꼴 아닙니까?”

“도착 즉시 콘크리트로 벙커를 만들며, 우리 군에서 대량으로 사들인 발목 지뢰와 대전차지뢰 등 각종 지뢰 100만 개를 살포했습니다.”

“지뢰가 효과는 좋지만, 레드몬을 소탕할 만큼 큰 위력도 없고, 차후 피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눈먼 지뢰를 마구 뿌리는 건 부라쿠민이 모두 죽어도 상관없다는 계획이 아니면 실행할 수 없는 작전이었다.

레듭몬을 상대로 큰 피해를 주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하지 않는 건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었다.

묻어 놓고 표시하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비로 인해 유실되거나 시간이 지나 묻힌 위치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아주 흔했다.

이 때문에 지뢰에 발목이 잘리고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지뢰를 제거하는 나라도 있었지만, 뿌릴 때는 아주 쉬워도 걷어 들이는 일은 수천 배나 어려웠다.

일본도 눈앞에 있는 적을 처리하겠다는 일념에 지뢰를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땅을 치며 후회할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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