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4 흔들리는 일본 =========================================================================
374.
“도망칠까? 아니야. 도망치다 걸리면 그땐 정말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리고 도망쳐봐야 할 줄 아는 것도 없잖아. 요코처럼 수하를 거둘 능력도, 머리가 좋아 왕국을 건설할 능력도 없잖아. 후유~ 그러고 보니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네.”
쇼타는 요코가 무서워 도망갈 생각까지 했지만, 그건 쇼타가 요코의 마음을 몰라서 그런 것이었다.
홋카이도에 들어와 부하를 늘릴 때만 해도 둘은 잉꼬부부라고 할 만큼 최고의 금슬이었다.
그런 둘의 금슬에 금이 간 건 천족과 노예를 잡아들이며 쇼타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먹이를 먹고 나면 지독한 음욕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쇼타와 요코 둘 다 마찬가지였지만, 요코는 한 번도 다른 남자를 찾은 적이 없었다.
오직 쇼타만을 찾았고, 쇼타만을 남자로 인정했다. 요코는 쇼타와 함께한 추억을 잊지 못해 다른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쇼타의 뛰어난 전투력을 높이 평가해 언제나 중책을 맡겼다.
그러나 쇼타는 새로운 여자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에 매일 여자를 바꿔가며 욕심을 채웠다.
이 때문에 요코의 분노가 점점 거세지며 쌀쌀맞게 대했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쇼타는 불안감을 달랜다는 이유로 더 많은 성노를 거느렸고, 그럴수록 요코의 히스테리는 점점 심해졌다.
1995년 12월 6일 새벽 4시
어렵게 구한 두더지 레드몬 3마리가 삿포로 시 서쪽과 남쪽, 북쪽 주택 지구에 땅굴을 뚫자 덩치가 작은 최하급 레드몬 2,000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잠에서 깬 시민들이 놀라 비명을 질러대며 아우성을 쳤지만, 레드몬들은 관심도 없다는 듯 방어벽을 향해 달렸다.
시민들은 모두 노예로 삼을 계획이라 총을 쏘며 반항하지 않는 한 공격할 생각이 없었다.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방어벽으로 달려간 레드몬들이 꾸벅꾸벅 조는 육상자위대 북부 방면대 병력을 공격했다.
방어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74식 자주 고사기관포, 고속 유탄발사기, 야포, 중기관총 등 화기들은 몽땅 방어벽 바깥을 경계해 안쪽에서 쳐들어온 최하급 레드몬을 막아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동이 트기 직전으로 깨어있는 병사가 거의 없어 레드몬이 들이닥친 후에야 비상벨이 울렸다.
놀란 병사들이 허겁지겁 소총을 들고 뛰어나왔지만, 문을 나서기도 전에 막사로 들이닥친 레드몬에 갈가리 찢겨 목숨을 잃었다.
병사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두꺼운 철문이 열렸고, 문을 통해 하급·중급 레드몬과 B급 엘리트 레드몬 일본원숭이가 뛰어들었다.
중급 레드몬과 일본원숭이의 등에 올라탄 천족들이 종소리에 놀라 황급히 뛰쳐나온 능력자들을 공격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에서 고용한 능력자 3,031명 중 항공기 추락으로 1,031명, 아사히카와에서 500명이 죽어 현재 남은 병력은 1,500명이었다.
이 중 500명은 기타히로시마와 지토세, 이와미자와 시에 있었고, 1,000명이 삿포로 시를 지켰다.
숫자가 줄긴 했지만, 능력자 1,000명이면 작은 나라는 순식간에 찜 쪄 먹을 엄청난 화력이었다.
그러나 진형을 갖추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허둥대다 레드몬과 천족들의 손에 하나씩 쓰러졌다.
일본이 고용한 능력자 중 중급 능력자는 10명 미만으로 숫자는 많았지만, 질은 매우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레드몬을 소탕할 계획으로 용병들을 모집했지만, 이들만으로 토벌이 성공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용병들이 제 몫을 다해 레드몬의 수를 줄여 놓으면 그때 사무라이들을 올려 보내 피해를 최소화하며, 토벌전의 공을 가로챈다는 계략이었다.
그러나 쇼타와 요코가 나타나며 핑크빛 청사진이 날아갔고, 타타리가미까지 나타나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다 시간만 낭비하며 집중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
3~4마리씩 짝을 이룬 중급 레드몬과 천족들이 허둥대는 능력자들을 하나씩 기절시켜 제압하자 1,000명이라는 숫자가 무색하게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래도 모두 허수아비는 아닌지 강력한 스킬을 난사하며 중급 레드몬을 몰아붙이는 멘탈리스트와 빠른 몸놀림으로 치고 빠지며 레드몬을 괴롭히는 피지컬리스트도 몇 명 있었다.
그러나 날개 달린 천족들이 달려들자 1분도 못 버티고 쓰러져 피를 게워냈다. 날개가 있고 없고는 매우 큰 차이로 능력치가 비슷해도 기동성에서 앞서 전투력으로 계산하면 날개 없는 천족보다 1.5배 앞섰다.
삿포로 시가 공격받자 기타히로시마와 지토세, 이와미자와 시도 잠에서 깨어나 황급히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쇼타와 요코 둘밖에 없다던 써커가 20여 마리나 하늘을 날아다니며 위협하자 전의를 상실하며, 1시간 만에 문을 열고 투항했다.
북부 방면대와 능력자들을 겁에 질리게 한 날개달린 천족들은 완벽한 속임수로 날개가 생긴 지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안 돼 빠르게 날아다니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놈들은 쇼타와 요코의 장기인 산성침도 없었고, 검은 예기를 쏘아 물체를 파괴할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북부 방면대와 능력자들은 쇼타와 요코의 엄청난 신위를 수차례 목격하며, 하늘을 나는 써커들을 같은 괴물로 오인해 비명을 지르며 겁에 질려 달아났다.
홋카이도가 쇼타와 요코에게 넘어가자 그동안 관망세를 유지하던 각국 대사관과 외국계 기업들이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직원들을 본국으로 소환했다.
또한, 일본을 위험지역으로 분류하며 관광객과 유학생들도 서둘러 귀국시키는 등 발 빠르게 일본을 빠져나갔다.
일본 정부는 동요를 막는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홋카이도 사태의 진실을 숨겨왔지만, 각국 대사관과 외국계 기업, 유학생, 관광객들을 통해 빠르게 입소문이 퍼져나갔다.
미스트 존이 생기며 레드몬이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았던 홋카이도 사태가 변종 모기 레드몬이 사무라이와 레드몬을 숙주로 삼아 생긴 일이란 걸 알게 되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났다.
시코쿠를 박살 낸 타타리가미만으로도 불안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서 쇼타와 요코까지 나타나자 공포가 들불처럼 번지며 일본 전체가 공황에 빠졌다.
회사는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업무가 마비됐고, 공장은 기계를 돌릴 사람이 없어 멈춰 섰다.
식료품과 기름을 사기 위해 마트와 주유소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부자들은 일본을 떠나기 위해 공항과 항구로 몰려들었다.
홋카이도가 쇼타와 요코의 손에 넘어간 지 이틀 만에 나라가 엉망으로 변하자 호소카와 총리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일본은 2차 대전의 폐허도 딛고 일어선 위대한 야마토 민족입니다. 홋카이도와 시코쿠 사태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에도 슬기롭게 어려움을 헤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전진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천왕폐하를 믿고 전처럼 다시 생업에 종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릴 것입니다. 일본은 위대합니다. 절대 이런 일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시 일터로 나가십시오.]
“저게 대국민 담화문 맞아? 협박문 아니야? 아영이 네가 보기엔 어때? 담화문처럼 느껴져?”
“제가 보기엔 일하러 가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문 같은데요?”
“너도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지?”
“네.”
“사태해결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일하러 가라니, 국민이 노예야? 일하는 기계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힘으로 억누르겠다는 생각이겠죠.”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국민을 총알받이로 사용하다 안 되면 도망가겠다는 생각 아닐까?”
“국민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닌 착취하고 부리는 노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은비의 말처럼 대책을 내놓고 국민을 안심시켜도 모자랄 판에 호소카와 총리는 협박성 담화문을 발표한 다음 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비상계엄령 선포와 동시에 자위대원들이 출동해 공항과 항구를 폐쇄했고, 해외로 내빼려던 사람들을 반역행위로 연행했다.
호소카와 총리와 정부의 무능을 비판한 사람들도 마구잡이로 잡아갔고, 평소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인 사람들도 기회가 생기자 몽땅 끌고 갔다.
겁에 질려 집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은 강제로 끌어내 직장에 출근시켰고, 거주 지역을 벗어나는 사람은 이유를 막론하고 반역자로 잡아들였다.
또한, 5명 이상 모이면 불법집회와 내란죄로 방망이를 마구 휘둘렀고, 밤 9시를 통금시간으로 정해 사람들이 모일 수 없게 막았다.
이런 행위는 단기간에 사태를 진정시키기 효과가 탁월할진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 불만이 고조돼 정부 정책을 따르지 않게 된다.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위대와 사무라이의 무력을 이용해 국민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지만,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바닥으로 떨어져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능한 호소카와 총리가 물러나고, 위기를 타개할 현명한 지도자를 선임한 다음 힘을 집중해 홋카이도를 재탈환해야 했다.
사무라이와 자위대를 총동원하면 쇼타와 요코를 무찌르고 홋카이도는 탈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권력에 심취한 아베와 호소카와는 권력을 지킬 생각만 했지, 금쪽 같은 사무라이를 동원해 쇼타와 요코를 처리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권력을 지탱하는 사무라이들이 사라지면 권력을 뺏기고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에 마지막이 될 기회를 날려버렸다.
잇단 전제주의 행보에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국가가 큰 우려를 자아냈고, 국제인권기구들이 잇따라 규탄 성명을 냈다.
그런 것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겠다는 뜻인지 호소카와 총리는 예비군 총동원령과 함께 만 20세 이상의 남녀 100만 명을 강제 징집하며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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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페루즈 해협에 우달로이급I 구축함 3척과 소브레멘니급 구축함 1척, 초계함 7척, 잠수함 3척을 보내 초계활동 중이에요.”
“써커가 20마리나 늘어났는데, 그걸로 막을 수 있나?”
“그 때문에 신기전을 빨리 배치해 달라고 난리예요.”
“내년 초에 시제품이 나와도 테스트를 거쳐 실전 배치하려면 빨라도 내년 후반이나 될 텐데.”
“그게 안 되면 레드몬 탐지 레이더라도 보내달라고 성화예요.”
홋카이도가 쇼타와 요코에게 넘어가자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라페루즈 해협으로 출동했다.
라페루즈 해협(La Perouse Strait)은 러시아 연방 사할린 제도와 일본 홋카이도 사이에 있는 국제 해로로 폭이 좁은 곳은 43㎞로 겨울에는 결빙으로 배를 운항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사할린에 변종 모기 레드몬이 넘어올 것에 대비해 태평양 함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전력을 사할린에 배치했다.
그러나 레드몬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가 없어 써커들이 공중에서 접근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걱정한 옐친 대통령이 한숙에게 전화를 걸어 신기전 또는 레드몬 탐지 레이더를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레이더를 제공하면 복제하려 하겠지?”
“조진호 박사님과 연구팀은 그 부분을 염려해 레이더의 핵심인 프로그램은 레이더 장치에 심지 않고, 우리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할 계획이세요.”
“그렇게 하면 핵심기술을 빼내 갈 수 없는 거야?”
“박사님 말로는 비밀코드를 모르면 프로그램을 빼낼 수 없다고 했어요. 비밀코드는 레이더와 위성이 연결될 때마다 계속 바뀌고, 프로그램 안에 바이러스가 내장돼 있어 임의로 빼내려 하면 해당 레이더와 신기전은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했어요.”
“기술이 유출되지 않는다는 거지?”
“네.”
“그럼 됐어. 몇 대나 필요한 거야?”
“태평양 함대 전체에 배치해야 해 30대는 있어야 해요.”
“보내주고 레이더를 복제하거나 그런 시도가 있으면 나와 다시는 얼굴 볼 생각하지 말라고 전해.”
“알았어요.”
옐친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러시아가 나를 배신할 확률은 매우 낮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조가 변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그러나 사람 일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다. 이해타산(利害打算)에 따라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었다.
조진호 박사가 레드몬 탐지 기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처럼 철저한 준비만이 내 것을 지키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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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추석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