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2 상처받은 영혼 =========================================================================
372.
“시코쿠 섬이 폐허가 된 것과 비교하면 인명 피해가 경미한 편인데, 피해가 크다니 그건 소리는 뭐야?”
“아베 회장과 호소카와 총리가 시코쿠 섬이 석기 시대로 돌아갔다며 공식 석상에서 피해가 매우 크다고 자주 한탄하고 있어.”
“보통 이런 경우 민간인 피해가 군인 피해보다 몇 배나 많잖아. 타타리가미가 온정을 베풀어 인명피해가 확 줄었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돈이야? 사람이 다 죽어도 돈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야?”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잖아.”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나은 거야?”
일본의 인명 경시 풍조는 2차 대전 때 여실히 증명됐다. 탱크를 향해 반자이 돌격 일명 만세 돌격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여긴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소총으로 파괴할 수 없는 탱크를 향해 돌격 명령을 내리는 건 죽창으로 철판을 뚫으라는 것과 같은 말로 모두 죽으라는 얘기였다.
또한, 도망치는 병사를 장교들이 일본도로 죽이고, 조선인 징용자들을 학대하고 좁은 갱도에 가둬 죽이는 등 사람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짓을 무수히 저질렀다.
패망 후 미국 군정으로 이런 현상이 잠시 주춤했지만, 레드문과 함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며, 21세기를 앞둔 지금도 사람을 한낱 도구로 생각했다.
“지옥이 따로 없네요.”
“일본의 숨결과 타타리가미 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이건 인간이 가진 사악한 본성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맞아요. 인간만큼 잔혹하게 상대를 죽이는 동물은 없죠. 또한, 돈 때문에 죽이는 동물도 인간이 유일하죠. 시코쿠 사태로 다시 한 번 인간이 잔인하다는 걸 느끼게 됐네요.“
“인간의 역사가 약탈의 역사잖아. 씁쓸하지만, 이게 인간의 숨겨진 진짜 모습이야.”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상아의 말처럼 시코쿠 섬 전체가 혼란에 빠지자 방화·살인·강간·강도 사건 등 수천 건이 넘는 범죄가 발생했다.
전쟁과 혼란보다 더욱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마음씨 좋은 아저씨, 웃음이 떠나지 않는 착한 총각이 돌변해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는 것이었다.
드러내지 않던 잔인한 본성이 혼란과 함께 표출되며 마음껏 욕망을 채우는 것으로 평소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우리는 흔히 범죄자가 이런 일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범죄자가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누구든 범죄가 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잔인한 본성을 숨기고 살았다. 법이란 이름으로 억눌러 놨을 뿐 기회가 주어지면 누구든 사이코패스로 돌변해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끊어진 다리에 엎드려 있는 게 일상이 돼버렸네.”
“마음이 오죽 답답하면 저러겠어.”
“원수를 갚으려면 인간으로 변신해 혼슈로 넘어가든지, 아니면 깨끗하게 포기하든지 둘 중의 하나는 해야지 허구한 날 저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생각할 일이 많은가 보지.”
아리 말처럼 타타리가미는 고민할 게 많은지 끊어진 구루시마 해협 대교에 엎드려 또다시 바다만 바라봤다.
한 달 만에 해안가 대도시를 깡그리 지워버린 녀석은 내륙의 마을과 도시까지 부술 마음은 없는지 3일째 구루시마 해협 대교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혼슈로 넘어가 일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일 수도 있었고, 아픈 마음을 달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면 우리에게 빨리 범인을 찾아달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미치코를 강간하고 불태워 죽인 용의자만 수십 명이 넘었다.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아무나 골라잡아 범인이라고 해도 될 만큼 한탕을 노린 놈들이 수백 명에 달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이런 짓을 할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한탕을 노리는 사람은 많았다.
타타리가미는 움직일 경로를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느릿느릿 행동했고, 범죄 흔적마저 완벽히 지워줘 배짱만 있다면 타타리가미가 오기 전 빈집을 털고, 달아나면 됐다.
운만 좋으면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감춰두었던 본성이 폭발하며 시코쿠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이런 짓은 일반인, 범죄자만 가담한 게 아니었다. 겁에 질려 도망친 탈영병들도 가세하며 더욱 혼란을 부추겼다.
적게는 2~3명, 많게는 20~30명씩 몰려다니며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을 총으로 위협해 먹을 것과 귀중품을 빼앗았다.
또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끌고 가 집단으로 욕심을 채우며, 국민을 지키는 군대가 아닌 약탈자로 돌변해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타타리가미가 지나간 마을 중 외진 곳에 있어 피해가 없는 마을을 찾아내 사람들을 끌고 가 노예처럼 부렸다.
전시상태에서 탈영하면 종신형 아니면 총살형이라 사는 동안 숨겨왔던 욕망을 마음껏 발산할 생각이었다.
시코쿠 섬에 남겨진 30만 명 중 20만 명 이상이 실종자로 일본 정부는 타타리가미가 죽였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은 약탈자와 강도에게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거나,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찾았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현재 기타큐슈 인근 펜션에 머물고 있습니다.”
“범인이 확실합니까?”
“팔아치운 장물 중 반지와 목걸이에서 타타리가미와 미치코의 이니셜이 나왔습니다. 놈들이 지나온 행적과 범행수법, 위성에 찍힌 사진까지 모두 확인했습니다.”
범인을 찾아내는데 열흘 넘게 걸렸다.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 많았고, 방화로 인해 증거도 사라져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진범을 잡기 위해 심사숙고하며, 5일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던 시간이 두 배나 걸렸다.
아무나 지목해 타타리가미에게 넘겨줘도 될 만큼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 많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고 실의에 빠진 녀석에게 가짜 범인을 인도하는 건 두 번 죽이는 잔인한 짓이었다.
같은 편이 되고자 한다면 신뢰는 기본이었다. 신뢰가 없다면 언제든 녀석과 적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관계는 맺지 않는 게 나았다. 내가 생각하는 같은 편은 언제 돌변해 적이 될지 모르는 관계가 아니라 언제든 등을 맡길 수 있는 오랜 친구 같은 관계였다.
“타타리가미를 규슈로 보낼 방법이 있습니까?”
“잠수정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시코쿠 주변 해안경비가 강화돼 침투 중 발견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미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타타리가미를 규수로 이동시키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놈들을 나진시로 잡아온 다음 기회를 봐서 타타리가미를 불러들이는 게 났겠군요?”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그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상아야! 1시간 후에 출발할 거니까 오안네스에게 도움을 청해.”
“네.”
“소연아! 상아와 시랑이만 데리고 갔다 올게. 빈자리 좀 잘 메워줘.”
“서인 언니와 아리, 아영이도 데려가. 곁에 있으면 도움이 될 거야.”
“일반인 다섯 명 잡는데, 여섯 명이나 가라고?”
“혼자 가도 된다는 거 알아.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이야. 준비가 과하다고 생각해도 모자란 곳이야.”
“그럼 은비도 따라온다고 할 텐데?”
“은비도 데리고 가. 너 없으면 초조해서 잠도 못 자.”
“그럴 바엔 다 같이 가자고 하지 그래?”
“네가 다 같이 가자고 한 거야. 내가 말한 거 아니야. 뒤에 가서 딴소리하기 없기야.”
“헉!”
길이 55m, 수중 최고 속도 30knot(55.56km/h)의 침투용 잠수정은 전투기를 담은 형태로 승조원 15명을 빼고 최대 30명을 태울 수 있었다.
러시아에 들여와 엘리트 레드몬의 가죽으로 방어력을 보강하고, 문스톤을 장착해 생존확률을 높였다.
“나쁜 놈들 덕분에 바다 속 구경을 다하네. 젠장~”
“땅 위에선 펄펄 날아다니면서, 물만 만나면 맥을 못 춰. 그렇게 무서워? 나는 예쁘기만 한데.”
“슈퍼맨 약점이 뭐야?”
“녹색 빛을 내뿜는 크립토나이트(Kryptonite)!”
“슈퍼맨도 약점이 있는데, 약하디약한 인간인 내가 물이 약점인 게 이상해?”
“약한 소리하고 있네. 사람들이 들으면 돌 던져.”
“나는 다 잘해야 하는 거야?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잖아.”
“오빠!”
“응?”
“착각도 유분수라고 싸움 빼고 오빠가 잘하는 게 뭐야? 아 맞다. 섹스 있었네. 싸움하고 섹스는 지구 최강이지. 그것 빼고 잘하는 거 있어? 있으면 말해봐.”
“은비야!”
“왜?”
“잠수정에 탈출 캡슐 있다. 밖으로 내보내 줄까?”
“우씌!”
오안네스와 솔피들의 호위 속에 17시간을 전속력으로 달린 잠수정이 기타큐슈 시 온가 군 바닷가 모래사장에 우리를 내려준 건 새벽 3시였다.
미치코를 살해한 범인들은 해안가에서 3km 떨어진 고급펜션을 통째로 빌려 3일 전부터 머물렀다.
미래 안전보장국 요원들에 따르면 초저녁부터 양주와 맥주로 술파티를 벌인 후 밤 11시경 아가씨들을 데리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1시간 넘게 소란을 떨다가 12시가 조금 넘어 곯아떨어졌다고 했으니 지금은 세상 모르고 잘 시간이었다.
“시랑이랑 같이 들어가서 끌고 나올 테니까 상아하고 아리는 아까 말한 대로 신호보내면 전기 끊어.”
“네!”
“서인이는 침묵 걸고, 제니퍼는 모두 재우고.”
“알았어요.”
“소희는 망 좀 잘 봐줘.”
“이러다가 날 새겠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알았어.”
놈들이 빌린 2층짜리 고급펜션은 기타큐슈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에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곳이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잔인무도한 놈들이지만, 경찰은 겁이 나는지 시내 호텔이 아닌 한적한 펜션을 통째로 빌려 은밀히 장물을 처분 중이었다.
장물을 처분하면 해외로 나갈 계획인지 여권까지 준비했다. 이런 놈들은 해외로 나가면 다시 여권을 위조해 제3국으로 빠져나가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감으로 확인한 놈들은 발가벗은 채 계집을 끌어안고 코를 드르렁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떡이 되도록 술을 처먹었는지 코 고는 소리가 100m 밖에서도 들렸다. 문을 살짝 비틀어 자물쇠를 부수고 현관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술판을 벌였는지 술병과 먹다 남은 안주가 테이블과 소파 위에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시작!]
텔레파시를 보내자 주위가 고요해지며 불이 꺼졌다. 제니퍼의 수면 스킬에 잠든 시랑의 뒤통수를 갈겨 2층으로 올려보내고, 1층 안방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추석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