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70 상처받은 영혼 =========================================================================
370.
“아리는 언제든 보호막 펼 수 있게 준비하고, 소연이는 상아가 녀석에게 말을 걸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지켜봐.”
“알았어.”
“상아야! 텔레파시로 먼저 말을 걸고. 녀석이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그때 다가가 교감 스킬을 사용하자.”
“네!”
“타타리가미의 행동에 이러쿵저러쿵 끼어들어선 안 돼. 우리 기준으로 녀석을 판단하면 싸우자는 것밖에 안 돼. 알았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잘할게요.”
“알았어. 상아 화이팅~”
저 멀리 끊어진 세토 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타타리가미를 만나기 위해 날아오며 본 도쿠시마, 나루토, 다까마쓰 시는 폐허가 아니라 황량한 벌판으로 변해 있었다.
건물 하나,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하나 남아있지 않은 모습으로 며칠 전까지 도시였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만큼 깨끗했다.
“오빠!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 있는 거리에 도달했어요.”
“소연아! 기장에게 헬기 멈추라고 해.”
“알았어.”
“평소 말하는 대로 하면 돼. 알았지?”
“네에~”
벨 사령관의 도움으로 타타리가미를 촬영하던 방송국 헬기, 일본 자위대 감시용 헬기 등 녀석을 촬영하던 헬기는 우리가 오기 전 100km 밖으로 모두 물러났다.
벨 사령관은 새로 개발한 장비로 타타리가미를 조사한다는 짧은 말로 자위대를 모두 물러나게 하는 엄청난 위력을 보였다.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약한 일본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이라면 껌벅 죽는 대한민국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서진 세토 대교 위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는 타타리가미를 향해 상아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손상아라고 해요. 제 말이 들리면 동쪽에 떠 있는 헬기를 바라봐 주세요.]
상아의 텔레파시에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던 타타리가미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난 시에서 사카이데 시까지 오는 동안 말을 걸어온 사람도, 가까이 다가온 사람도 없었다.
레드몬 사냥팀이 다가온 적은 한 번 있었지만, 그들은 살의를 가득 담고 자신을 죽이려 다가온 것이지 대화를 원해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한국이면 일본 위에 있는 나라를 말하는 건가?]
타타리가미가 텔레파시를 사용해 화답하자 아둔한 동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던 상아가 화들짝 놀랐다.
텔레파시를 사용하면 반응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지, 같은 방법으로 화답할 거라곤 생각지는 못했었다.
상대를 깔보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자 상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뭔데 그래?”
“타타리가미가 텔레파시를 사용해 대답했어요.”
“하하하하~ 아둔한 동물로 보면 안 된다고 뭐라 하더니. 상아도 살짝 그런 마음이 있었나 보네?”
“죄송해요.”
[맞아요. 이웃한 나라에요.]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지?]
[죄송하지만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려주세요. 일본에선 재앙신 타타리가미라고 부르지만,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아요.]
[흐음... 이사무라고 부르면 돼.]
이사무는 용감하다는 뜻으로 산에서 내려와 인간 사회에 숨어든 타타리가미는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에 이사무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갖고 계신 것으로 보아 사람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맞다.]
[제 친구 중에 마샤라고 있어요. 자신과 친한 사이인지 아닌지 사진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 친구가 이사무님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알려줘서 이렇게 찾아오게 됐어요.]
[특이한 능력을 갖춘 친구군.]
[네, 착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친구예요.]
상아는 폭넓고 소소한 이야기로 타타리가미의 경각심을 낮출 생각이었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건 불쾌감을 유발하는 일이었고, 다짜고짜 친구가 되자고 하는 것도 경각심만 불러일으켰다.
가벼운 대화를 통해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상대의 경각심을 낮추고,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한국에서 왔다면 미래 레드몬 사냥팀이겠군?]
[네, 맞아요. 제 옆에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홍 오빠와 저를 끔찍이 아끼는 소연 언니 그리고 언제나 저를 살뜰히 챙기는 아리 언니가 있어요. 다른 가족들은 도쿠시마 앞바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요.]
대화의 첫 번째 덕목은 상대를 속이지 않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해 상대에게 적의가 없음을 보여줘야 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악수는 고대 로마인에겐 신뢰를 표시하는 인사법으로 적의가 없음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악수를 거절하는 건 적의를 나타내는 것이자, 싸우자는 의미로 서로 손을 잡는 건 적이 아닌 친구라는 표시였다.
상아는 타타리가미에게 적의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며, 사심 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가족들과 사이가 좋은가 보군?]
[그럼요. 매일 티격태격 싸우지만 서로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해요. 저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제 목숨보다 귀중한 사람들이에요.]
[하아~ 나도 한때 그런 가족이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아.]
타타리가미가 한 명도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할 때 잠시 뜸을 들이자 상아는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알아챘다.
일본 이름을 갖고 사람과 생활했다면 죽은 멧돼지 가족 이외에 가족이 또 있을 수도 있었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지금 함께하는 가족이 있으세요?]
[.......]
[저는 어릴 때 늑대 레드몬에게 가족을 잃었어요. 자상한 아빠, 듬직한 오빠, 상냥한 언니들, 항상 저를 품에 안아주던 엄마까지 모두 잃었죠. 또한, 가족 같은 친구와 마을 사람도 모두 잃었어요. 오빠가 토굴 속에 숨어 살던 저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저도 얼마 못 가 죽었을 거예요. 그 일로 저는 레드몬을 오랫동안 증오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미워하지 않아요. 저를 친구로 생각하는 백호와 풍산개들, 솔피들이 생기며, 그들을 이해하게 돼 미움도 사라졌어요.]
[나보러 인간들을 용서하라는 말이냐?]
[아니요. 용서는 스스로 마음이 풀려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걸 알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이사무님의 고통을 아주 조금이지만 알 것 같아 말씀드린 거예요.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
[흐음...]
평소 아내 마츠시마 미치코와 대화하는 것을 즐긴 타타리가미는 술 한잔 하며 수다 떠는 것을 참 좋아했다.
술과 함께하는 수다는 멧돼지로 살 땐 느낄 수 없었던 정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줘 매일 저녁 빠뜨리지 않는 코스였다.
수다스러울 만큼 대화를 즐기던 타타리가미는 20일 넘게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아무나 붙잡고 말하고 싶을 만큼 대화가 그리웠다.
가족은 잃은 슬픔에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슬픈 감정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에 미칠 것 같았다.
그런 애타는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상아가 말을 걸어오자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가 툭툭 튀어나왔다.
타타리가미는 멧돼지가 분명했다. 그러나 인간을 동경하고, 인간과 5년간 함께 살며, 정신은 이미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이러는 것이지 인간을 싫어하고, 미워해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20일 넘게 지켜본 일본 정부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만이 고조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은 인간 전체를 미워하진 않았다.
[마샤가 그러는데 이사무님이 인간으로 나타났데요.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죠?]
[미래 레드몬 공대엔 다재다능한 사람이 많은가 보군?]
타타리가미가 변신 능력이 있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은 그렇다는 말을 대신한 것이었다.
상아는 타타리가미가 긍정을 표하는 순간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살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네, 각자 개성에 따라 아주 다양한 스킬을 보유했어요. 이 중 태반은 오빠가 도와줘서 이룰 수 있어요.]
[오빠를 많이 좋아하나 보군?]
[많은 정도가 아니에요. 이 세상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해요.]
[정말 부럽군.]
[이사무님도 사랑하는 여자분이 있으시죠?]
[그걸 어떻게 알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니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관심도 없잖아요.]
[그렇지.]
[실례가 안 된다면 이사무님이 사랑하는 그분 이름 물어봐도 될까요?]
[으음... 마츠시마 미치코. 인간으로 변신한 후 처음 만난 여자야. 말도 못하는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 인간으로 살게 해줬어.]
[정말 많이 사랑하시네요.]
[그렇게 보이나?]
[그럼요. 말 속에 애절함이 절절하잖아요.]
[하하하하~]
[그분은 지금 어디 계세요?]
[그건 왜 물어보지?]
[오해하지 마세요. 미치코님을 인질로 잡을 생각도 아니고, 위해를 가할 생각도 아니에요.]
[그럴 생각이 없다면 미치코의 위치를 물어볼 이유가 없잖아?]
부드럽게 이야기를 끌어가던 타타리가미의 목소리에 살기가 묻어났다. 타타리가미에게 이제 남은 가족은 미치코가 전부였다.
멧돼지 가족의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나왔지만, 미치코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슬픔에 빠져 복수의 화신이 될 수도 있었다.
[지금 시코쿠 섬은 치안이 엉망이에요. 겁에 질린 경찰과 공무원들이 달아나며, 살인·방화·강도·강간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어요. 혹시 몰라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해서 물어본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어요. 오해하셨다면 정말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살인? 강도?]
[네, 일본 정부가 시코쿠 섬에 대피령을 발령하며 치안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어요. 군인들이 통제하는 북부는 상황이 조금 덜하지만, 남부는 상황이 아주 심각해요.]
[남부 어디?]
[가미·고난·난코쿠 시가 심하고, 그중에서도 고치 현의 도청소재지인 고치 시는 약탈과 방화가 심해 수백 명이 죽고 다쳤다고 오늘 아침 뉴스에 나왔어요.]
[고,고,고치 시?]
[네.]
상아의 이야기를 들은 타타리가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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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