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0 기이한 상급 레드몬 =========================================================================
360. 기이한 상급 레드몬
1995년 10월 28일
“시코쿠 섬 도쿠시마 현의 아난 시로 호그질라 한 마리가 접근 중입니다.”
“A급 엘리트 레드몬입니까?”
“몸길이 3m로 중급 레드몬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중급 레드몬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매우 중요한 급한 일이라? 흥미롭긴 하군요.”
상아, 아영, 마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소연의 제안으로 평소 함께하지 않던 지영, 연희, 민영, 희은, 은미, 선희, 진숙까지 모두 데리고 3박 4일 일정으로 사할린 섬까지 요트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즉흥적인 결정이라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고 몸매를 한껏 과시할 비키니를 고르는 등 아내들이 부산을 떨어대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요란법석을 떨고 아침 9시 요트를 타러 선착장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강승원 국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뛰어올 사람이 아니라서 홋카이도에서 제대로 한판 붙은 줄 알고 잔뜩 기대했는데, 엉뚱하게 호그질라가 튀어나왔다.
“처음 발견된 즈루기 산에서 아난 시로 다가가며 중간에 있던 마을 일곱 곳이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사라졌습니다.”
“네에?”
레드몬이 마을과 도시에 침입해도 사람을 모두 죽이고, 건물을 다 때려 부수는 건 아니었다.
적당히 난동을 부리다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조용히 물러났지 시코쿠에 나타난 호그질라처럼 행동하진 않았다.
그리고 중급 레드몬이 무슨 힘이 있다고 마을을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한다는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중급 레드몬 맞습니까?”
“크기는 중급에도 못 미치지만, 파워는 A급 엘리트 레드몬을 능가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사진을 보면 이해하실 겁니다.”
강승원 국장이 보여준 사진은 마을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남은 게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나마 부서진 잔해와 검게 그을린 자국, 풀 한 포기 없는 모습에서 얼마 전까지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만 짐작하게 했다.
“혹시 한 방에 이렇게 만든 겁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마을 크기가 얼마나 됩니까?”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반경 500m 정도였습니다.”
“반경 500m를 한 방에 부수기도 쉽지 않지만, 이렇게 균일하게 가루를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데... 놈이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가족에 대한 원한 같습니다.”
“원한이요?”
“네, 어제 일본회의 소속 일본의 숨결 공대원 150명이 C급 엘리트 레드몬 호그질라 두 마리와 중급 레드보어 20마리를 사냥했습니다. 장소가 즈루기 산으로 현재 아난 시로 이동 중인 호그질라의 이동 경로를 역으로 추적한 결과 일본의 숨결 공대가 지나간 길과 일치했습니다.”
“뒤를 따라간다?”
“그렇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받으세요.”
“죄송합니다.”
강승원 국장이 무선전화기를 들고 서재를 잠시 빠져나간 사이 20여 장의 사진을 소연에게도 보여줬다.
“반대로 크기가 줄어들며 능력이 향상한 레드몬이 있다는 소리 들어봤어?”
“아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희한한 놈이네.”
“줄어든 게 아니라 줄인 게 아닐까? 벳푸에서 사냥한 일본원숭이는 거대화 스킬을 갖고 있었잖아. 얘는 반대로 몸을 줄이는 스킬이 갖고 있을 수도 있지.”
“몸을 줄여서 얻는 이익이 있나?”
“눈에 잘 띄지 않고, 몸도 훨씬 빠르고 가볍게 움직일 수 있잖아.”
“하긴 덩치가 너무 크면 움직임도 둔해지고, 맞는 부위도 커지고, 몸을 숨기기도 힘들긴 하지.”
소연의 말처럼 거대화 스킬이 있으면 반대로 몸을 소형화하는 스킬이 있을 수도 있었다.
스킬도 동전의 양면과 같아 얼음계열과 화염계열처럼 정반대 성질의 스킬이 공존했다.
이는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해가 있으면 달이 있고,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듯이 세상 만물은 양과 음이 존재해 상생상극(相生相剋)한다는 음양설(陰陽說)과 일맥상통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염기성과 산성의 화학반응, 환경 변화, 자연법칙이 모두 음양의 법칙에 따라 움직였다.
“스킬이 아니라 몸을 최적화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호그질라가 한계를 뛰어넘었다면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몸을 재구성했을 수도 있지.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며 불필요한 부위를 버리고 전투에 최적화한 모습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했을 수도 있으니까.”
“매머드는 안 그랬잖아.”
“놈은 상급치고 많이 약했어. 등급도 가장 약한 C급이었고. 그 위에 B급, A급, S급은 매머드와는 달리 진정한 상급 레드몬으로 시코쿠에 나타난 놈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다를 수도 있잖아.”
“아난 시를 향해 접근 중인 호그질라를 B급 상급 레드몬으로 생각하는 거야?”
“그거야 직접보기 전엔 알 수 없지. C급이라도 매머드와는 다른 길을 걸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가능성은 크다고 보고 있어.”
“정말 그렇다면 새로운 진화라고 봐야겠네?”
“그렇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변하는 거지. 누가 알아. 인간처럼 잘못된 직립 보행을 선택하게 될지.”
B급 상급 레드몬이 나타났을 수도 있다는 말에 회의에 참석한 한숙과 은하, 상아의 얼굴이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제껏 인류가 사냥한 상급 레드몬은 우리가 잡은 매머드와 미국에서 사냥한 에오히푸스가 전부였다.
에오히푸스를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마샤의 증언을 토대로 유추하면 매머드와 마찬가지로 C급일 가능성이 커 인류가 사냥한 상급 레드몬은 C급이 전부였다.
현재 미스트 존을 제외하고 상급 레드몬이 추가로 발견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매머드를 마지막으로 상급 레드몬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급 레드몬이 미스트 존에만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미스트 존이 상급 레드몬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도 없었고, 깊은 정글과 오지에 있어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내 생각으론 육지에 최소 20마리 이상, 바다에는 그보다 세배는 많은 60마리가 넘는 상급 레드몬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상급 레드몬이 없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스킬을 사용해 우리 주변에 살고 있을 수도 있었고, 이미 도시나 국가를 만들어 왕이 됐을 수도 있다.
레드몬은 숲과 초원, 산, 정글, 바다에만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건 매우 위험한 생각이었다.
“조금 전 시코쿠 도쿠시마 현에서 활동 중인 사쿠라바나 공대원 50명이 아난 시에서 서쪽으로 10km 떨어진 나카 강에서 호그질라를 공격했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사쿠라바나 공대가 눈치채기도 전에 접근한 호그질라가 높은 열을 동반한 강력한 충격파로 사쿠라바나 공대를 한순간에 몰살시켰습니다.”
“이름 그대로 자살 특공대가 됐군요.”
“그렇습니다.”
일본은 참으로 희한한 나라였다. 떳떳하지 못한 이름을 영웅으로 미화해 잘도 갖다 붙였다.
사쿠라바나(Cherry Blossom)는 일본군이 사용한 자살 폭탄 로켓으로 자살공격대인 가미카제 특공대 중 하나였다.
1944년 10월 20일 제1항공함대 사령관 오니시 중장이 제로센 전투기 26대에 250kg짜리 폭탄을 싣고 미군 전함을 몸으로 들이받게 한 것이 가미카제(神風) 자살 특공대의 시초였다.
이후 인간어뢰 가이덴, 자폭용 고속정 신요 등 천황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일본 정부는 어찌 대처하고 있습니까?”
“홋카이도로 인해 아난 시까지 돌볼 겨를이 없어, 도쿠시마 현에서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입니다.”
“상급 레드몬을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단 말입니까?”
“일본 정부는 호그질라를 C급 엘리트 레드몬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크기와 파괴력을 보면 그렇게 보긴 어려울 텐데요?”
“이번에도 역시 무카이 실장이 정보를 조작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호소카와 총리가 그런 결정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놈 소속이 어디입니까?”
“아직 정체를 밝히진 못했지만, 일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강승원 국장의 말이 아니라도 무카이 실장이 홋카이도에서 한 짓을 생각하면 일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아베 마사히코 회장과 호소카와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반대파에서 심은 인물이라고 해도 일본이 망하길 바라진 않았다.
상대를 곤란하게 하고, 정보를 빼내 실각시키는 용도로 사용하지 나라가 망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었다.
무카이 실장이 하는 짓은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거나, 첩자가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일본이 망하길 바라지 않는다면 지휘부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도 적당한 선에서 하는 일이지 지금처럼 바보 멍청이를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호소카와 총리와 일본 정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무카이 실장에게 끌려다녔다.
“우리 빼고 무카이 실장을 의심하는 곳이 또 있습니까?”
“며칠 전 미국과 러시아에 넘겨준 자료는 쇼타와 요코에 관한 게 전부로, 호소카와 총리가 관련 사실을 숨기는 것처럼 딱 잡아떼며 별다른 낌새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확실하게 무카이 실장을 주시할 것입니다.”
“조만간 정체가 밝혀지겠군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아베 마사히코 회장과 호소카와 총리의 신임이 두텁고, 미국과 러시아도 올바른 정보책임자가 있기를 바라지 않아 당분간 자리를 지킬 것이 확실합니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이다. 뭐 이런 얘기군요?”
“그렇습니다.”
“급한 일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하세요.”
“알겠습니다.”
상급 레드몬의 출현이 큰일이긴 했지만, 한반도에 나타난 것도 아니었고, 내가 도와줘야 할 나라도 아니라서, 아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요트에 올라타 바다로 나왔다.
오안네스와 솔피들의 보호 속에 해안선을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사할린 섬 라페루즈 해협 안쪽에 있는 작은 섬 모네론에 도착했다.
홋카이도 최북단 도시 왓카나이에서 북쪽으로 90km 떨어진 면적 30㎢ 모네론 섬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 요트를 정박하고, 산에서 나무를 잘라와 오두막집을 지었다.
구미호가 나무를 자르면 백호와 풍산개들이 끌고 오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기둥을 박고, 칼로 반듯하게 잘라 두꺼운 판자를 만들어 나무못으로 박으면 끝이었다.
2시간 만에 50평짜리 근사한 원목 오두막을 짓자 아내들이 아이처럼 좋아했다. 역시 남자는 일을 잘해야 여자들이 좋아했다.
특히 밖에 나오면 음식과 설거지까지 일이라는 일은 혼자 다 도맡아 해야 멋진 남편, 자상한 남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러려고 여행 가자고 한 거야? 젠장!’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