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1 범종설(Panspermia) =========================================================================
341.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급히 차영철 박사님을 찾아갔다. 레드스톤과 문스톤 분야에선 국내 최고 전문가로 은비가 말한 세 가지 가능성에 관해 물어봤다
“문스톤에선 레드몬을 보호하거나, 이롭게 하는 전파가 발생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문스톤을 레드몬이 먹었다면 전혀 다른 성질로 변해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적이 있었나요?”
“그것까진 저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레드몬이 가진 스킬 때문입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스킬 중에 그런 작용을 하는 스킬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차영철 박사님의 말씀은 일말의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과학적인 접근방법으로 생각하면 그리 적절하진 못했다.
하지만 과학으로 밝힐 수 없는 레드몬과 스킬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범종설은 가능성이 있을까요?”
“흔한 일은 아니지만, 운석에 외계 생명체가 묻어 올 순 있습니다. 1969년 9월 28일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 떨어진 운석에는 유기 물질이 포함되어 있었고, 1984년 남극 대륙 앨런 힐스에서 발견된 화성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하는 1.9kg짜리 운석에서도 생명체의 기원이 될 만한 물질이 발견됐습니다.”
“으음~ 그럼 그럴 가능성이 크겠군요?”
“그렇다고 확실한 순 없습니다. 미생물이 있었다고 해도 34년 만에 그와 같은 괴물로 발전하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대기권을 무사히 살아서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낙하할 때 생기는 마찰열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날아오는 속도, 크기, 진입 각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섭씨 1,000도가 넘어 무사히 지구에 도착하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두 가지가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요?”
“외계 생명체가 들어있는 문스톤을 동물이나 레드몬이 먹었을 때를 가정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생명공학 전문가에게 물어보셔야 할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문스톤과 관련됐다는 생각에 제가 그만 박사님 연구분야와 관련 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다들 그럽니다. 박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면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자기가 연구하는 분야를 빼면 아는 것이 일반인보다 더 없습니다. 평생 한우물만 파다보니 일반적인 상식조차 모르는 게 태반입니다.”
“그거야 누구나 다 마찬가지죠.”
소희가 성년이 되면 내게 시집올 것을 알고 있는 차영철 박사는 편하게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해도 결혼 전까지는 안 된다며 한사코 거부했다.
이 때문에도 나도 장인어른이라 존칭 대신 박사님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남녀 사이는 호적에 잉크를 칠하기 전엔 누구도 모르는 것으로 차영철 박사의 행동이 사리에 맞았다.
또한, 소희가 엄마 없이 자라 부족한 게 많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를 대하는 태도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으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레드문이 떠오른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과학자들도 모른다는 겁니다. 일부 과학자들이 이렇다저렇다 말이 많지만, 입증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창피한 건 레드문 이전에도 진실이라 말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진실이 아닌 거짓임이 밝혀졌습니다. 과학은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이지 정답이 아닙니다.”
결국, 차영철 박사님의 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온 것이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말엔 솔직히 허탈했다.
“소희를 생각하면 모른다고 말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겠지. 사위가 될 사람 앞에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만큼 창피한 일도 없으니까.”
“거짓말을 하거나,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말했다면 혼란만 가중됐을 거예요. 그러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죠.”
“정말 그러네.”
상아 말을 듣고 나자 허탈한 마음 대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한 차영철 박사님께 감사했다.
자기 분야가 아니라서 전혀 모르는 내용도 권위적인 과학자와 교수는 아는 척 주워들은 얘기를 맞는 것처럼 주절주절 읊어댔다.
그래야 체면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도 양심에 거리낌도 없이 말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교수와 과학자가 그런 짓을 했다. 박학다식한 석학들도 있지만, 일부는 차영철 박사님 말처럼 자기 연구 분야를 빼면 나만큼도 몰랐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고, 잘못 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돈이 없으면 없다고 말해야 하는데, 예절·법식 등을 겉만 꾸며대는 일에 빠져 사는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당연한 걸 잊고 살았다.
“물어볼 사람이 없겠지?”
“없죠.”
“상아야! 우리 둘이 머리 맞대고 생각해 볼까?”
“그것보다 더 급한 게 있어요.”
“뭔데?”
“언제 안아줄 거예요?”
“헉!”
“오빠! 저 만으로 20살이에요. 아영이도 그렇고, 마샤도 그래요. 언제까지 입과 손으로만 해주실 거예요. 저도 오빠를 몸으로 직접 느끼고 싶어요.”
“그렇게 마음이 급했어?”
“당연하죠. 오빠와 매일 사랑을 나누는 게 제 꿈인 걸요.”
“알았어. 원정 갔다 와서 찐하게 안아줄게.”
“정말이죠?”
“응!”
“아영이와 마샤는요?”
“셋 다 한꺼번에 안아줄게.”
“역시 오빠답네요.”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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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5일
하반기 원정이 시작됐다. 첫 번째 사냥은 인도 펀자브(Punjab) 지방의 B급 엘리트 레드몬 인도물소였다.
몸길이 7.5m, 무게 7.5ton의 탄탄한 몸과 3.0m의 기다란 뿔을 무기로 걸리는 건 뭐든지 다 때려 부수며, 전차처럼 저돌적으로 돌격하는 파이팅 넘치는 놈이었다.
하지만 파이팅만 넘칠 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놈으로 서인과 은비, 소인의 합동공격에 맥없이 무너졌다.
도살을 금지하는 ‘소 보호법’이 제정된 인도는 5,000만 마리가 넘는 물소와 2억 마리가 넘는 재래종 소가 살아가는 소들의 낙원이었다.
시바 신전의 입구에는 흰 수소 난디(Nandi)를 타고 하늘을 나는 파괴의 신 시바(Siva)의 초상이 걸려 있었고, 인도인이 가장 사랑하는 자비의 여신 크리슈나(Krishna)는 암소의 보호자로 그려져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암소가 크리슈나 여신과 같은 신성한 힘을 지닌 존재로 생각해 암소를 보기만 해도 행운이 찾아오고, 악귀를 쫓는다고 믿었다.
“그렇게 소를 신성시하는 국가가 세계적인 소고기 수출 국가야?”
“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더니 정말이었네. 자기 손으로 잡지 않고, 먹지 않으면 그만이란 뜻인가?”
“그러게요. 저도 이번에 오면서 알게 됐는데, 좀 기분이 그래요.”
“소를 신성시하는 것부터 이상했어.”
“그거야 국가마다 있는 관습과 종교니까 문제 삼을 건 없죠. 하지만 앞에서 신처럼 떠받들며 뒤에선 죽여 수출한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두 번째 사냥은 중앙아시아 서남부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 공화국 가라빌 고원의 A급 엘리트 레드몬 눈표범(Snow leopard)이었다.
설표 또는 회색 표범으로 불리는 눈표범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바이칼 호, 티베트 동부의 해발 3,350~6,700m 사이의 추운 고원지대에 서식하는 포식자로 몸길이 100~130cm, 무게 30kg으로 표범보다 훨씬 작았다.
A급 엘리트 레드몬 설표
전투력 : 9350
지 능 : 104
상 태 : 적대감 최대치 상승
효 과 : 순발력·민첩성·전투력 0% 하락
에너지 : 55,664
스 킬 : 알 수 없음
몸길이 6.12m, 몸무게 653kg의 눈처럼 하얀 설표는 눈과 동화돼 모습을 감춘 채 은밀하게 우리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상아의 진실의 눈에 걸려 힘 한 번 못써보고 뇌전탄에 맞아 몸을 부르르 떨다가 죽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축하해!”
“아영이 좋겠다.”
“모두 오빠와 언니들 덕분이에요.”
설표를 잡고 얻은 3cm 크기의 레드주얼은 하얀 눈밭을 설표가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아영이 양손에 꼭 쥐고 포스를 불어넣자 구슬 속에 있던 눈처럼 하얀 설표가 튀어나왔다.
크기는 30cm로 날지 못하는 대신 매우 빨랐고, 정찰 거리는 최대 3km였다. 공격 형태는 수정 모양의 얼음을 입에서 발사해 반경 10m를 얼렸다.
데미지는 C급 엘리트 레드몬을 상대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고, B급은 데미지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긴 했지만, 이동속도 감소 효과와 동상 데미지로 자기 몫은 충분히 했다.
고현정, 이승연, 하희라가 호미질 한다는 미녀의 나라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에선 유수트르트 고원의 폭군 B급 엘리트 레드몬 호그질라와 놈의 가족 15마리를 가볍게 처리했다
네 번째 사냥터는 터키로 아나톨리아 지방 코니아 시 인근에서 난동을 부리던 B급 엘리트 레드몬 늑대 우두머리와 중급 늑대 68마리를 한 마리도 빠짐없이 일망타진했다.
덤으로 농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니던 앙고라염소(Angora goat) 158마리도 잡아 헐벗고 가난한 코니아 시민에게 고루 나눠주자 우리를 칭송하는 소리가 터키 전역에 끊이지 않았다.
“터키만 오면 기분이 좋아요.”
“사람들이 호의적이라 그렇겠지.”
“맞아요. 이곳 사람들은 순수해서 그런지 마음으로 우리를 좋아해요.”
“도와줘서 그런 거 아닐까?”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호의적인 마음이 몇 배 강해요.”
상아의 말이 아니더라도 유독 터키 국민이 우리에게 호의적이란 건 알고 있었다. 터키 외에도 브라질, 인도 등이 우리에게 가장 호의적이었다.
정치인과 부자, 지식인이 아닌 가난한 서민 기준으로 순박함이 그 원인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순박함을 맹신해서도 안 된다. 순박함은 무식함이 될 수도 있어 단 한 마디에 우리를 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었다.
알바니아(Albania)에선 오슬 강 인근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1,000여 명 넘게 해친 A급 엘리트 레드몬 붉은여우를 사냥했다.
A급 엘리트 레드몬 붉은여우
전투력 : 9085
지 능 : 128
상 태 : 적대감 최대치 상승
효 과 : 순발력·민첩성·전투력 0% 하락
에너지 : 51,558
스 킬 : 알 수 없음
몸길이 4.3m, 꼬리 길이 2.9m, 몸무게 180kg의 영국에서 잡은 붉은여우 미치광이 잭보다 크기와 전투력이 조금 낮은 놈으로 꼬리도 한 개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미치광이 잭보다 약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다. 놈은 A급 엘리트 레드몬이란 이름에 걸맞게 빠르게 움직이며, 마비 스킬과 붉은 털을 폭우처럼 발사해 견제하러 다가간 딩고와 현무를 한 방에 역소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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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