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330화 (330/505)

00330  앙숙(怏宿)  =========================================================================

330. 앙숙(怏宿)

“알았으니 그만해. 데리고 갈게.”

“정말이죠? 뒤에 가서 딴소리하기 없기에요.”

“그런 일 없어. 그러니 그만 옷 입어.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래?”

“그럼 약속의 증표로 키스해주세요.”

“키스?”

“증표라는 말이 거슬리면, 인사라고 하죠.”

“키스가 인사야?”

“미국은 인사에요. 이렇게~”

얼굴이 가까이 들이밀고 말하던 제니퍼가 기습적으로 입을 맞춰왔다. 촉촉한 입술이 닿고, 달콤한 혀가 들어오자 강렬한 욕망에 제니퍼의 허리를 끌어당겨 꼭 끌어안았다.

강하게 밀착하며 서로의 입술과 혀를 탐닉하자 욕망을 참을 수 없었다. 얇은 티셔츠 속에 손을 넣어 브래지어 위에서 가슴을 더듬자 제니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브래지어를 뚫고 들어간 손이 도저히 감싸질 수 없는 75D컵의 위대함에 놀라 부르르 떨어댔다.

“으응~”

커다란 가슴에 어울리지 않게 작디작은 유두를 비틀자 제니퍼의 입에서 비음이 흘러나왔다.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올리자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커다란 가슴이 눈앞에 나타났다. 세쌍둥이보다 거대한 가슴을 양손으로 음미한 후 입을 가져갔다.

핑크빛 작은 유두를 입에 물고 혀를 살살 굴리는 순간 서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똑똑~”

“누.누.누구세요?”

“저 로라에요.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자.자.잠시만.”

아쉬움을 달래며 제니퍼의 티셔츠와 브래지어를 내려주고, 침 범벅이 된 입술을 손으로 닦아줬다.

내가 허둥대면서도 자신을 챙기자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제니퍼가 볼을 잡고 입을 맞췄다.

“쪽!”

아쉬운 뽀뽀를 끝으로 로라에게 들어오라고 하자 민소매에 짧은 반바지 차림의 로라가 시원한 주스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제니퍼가 본관으로 들어가는 걸 별관에서 본 로라가 둘만 있는 게 싫어 일부러 주스를 가져온 것이었다.

“이런! 손님이 계셨네요.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들어와.”

“감사합니다.”

“제니퍼! 로라! 둘 다 초면이지?”

“네.”

“네.”

“서로 인사해.”

“안녕하세요. 로라 김이에요.”

“제니퍼 록펄러에요.”

“아~ 홍염의 기사단 단장이신 바로 그분이군요. 신문에서 많이 봤어요. 반가워요.”

로라가 오빠와 단둘이 있는 걸 방해하러 일부러 주스를 가져왔다는 걸 눈치 챈 제니퍼는 로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여왕이 꽂아 넣은 로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바라고 바라던 결정적인 순간까지 방해받자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밀려왔다.

“저도 얼마 전 신문에서 봤어요. 여왕께서 직~접 소개해준 바로 그분이군요.”

로라 역시 새로운 사람이 늘어나면 자신의 자리가 줄어든다는 생각에 제니퍼가 내게 접근하는 걸 방해하러 주스를 들고 온 것이었다.

“사냥하느라 많이 바쁘다고 하던데... 아닌가 보네요. 서재에서 오빠랑 노닥거릴 시간도 있고.”

“이제 곧 런던으로 돌아간다고 하던데... 내일 가나요?”

“저는 오빠랑 같은 집에서 사는데... 동료들이랑 숙소에서 지내시죠?”

“본관과 별관이 같은 집이라? 그럼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은 모두 가족이겠네요. 호호호호~”

인사를 나누는 것인지 싸우려는 것인지 제니퍼와 로라는 손을 으스러지게 잡은 채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드디어 집안에 앙숙이 생겼네. 하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1995년 6월 5일

하바롭스크 사냥은 백호와 풍산개 그리고 시랑이 주축으로 나와 아내들은 여행 온 신혼부부처럼 경치를 구경하며 도시락을 까먹는 게 일이었다.

지난달 엘리트 레드몬으로 성장한 백호는 전투력 2111, 지능 120, 몸길이 5.1m, 꼬리 길이 2.48m, 몸무게 613kg으로 어미 쉬어 칸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였지만, 자기 몫은 충분히 했다.

아직 C급이라 발톱에서 붉은 예기를 뿜어내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중·하급 레드몬들은 벌벌 떨며 맥을 못 췄다.

풍연·풍비·풍인은 전투력 1700, 지능 105, 몸길이 3.8m, 무게 300kg으로 자랐고, 지능이 130, 148로 성장한 풍영과 풍아는 매우 영리해 무엇이든 한 번만 알려주면 일을 알아서 척척 수행하는 대신 전투력은 1600, 1550으로 언니들보다 많이 낮았다.

풍희와 풍리는 전투력 1350, 지능 105, 몸길이 3.6m, 몸무게 235kg으로 언니들을 바짝 뒤쫓아 갔지만, 유일한 수놈인 풍산은 전투력 1250, 몸길이 3.4m로 가장 뒤처져 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3개월간 상아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인간사회를 공부한 시랑은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손으로 음식을 먹지 않았다.

특히, 날고기를 먹던 습관을 서서히 고치며, 채소도 조금씩 먹는 등 제법 인간답게 행동했다.

아직 말은 못했지만, 간단한 말은 알아들었고, 머리도 제법 잘 돌아가 상아가 없어도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풍산개는 같은 갯과 동물이니까 시랑의 하울링 영향을 받는 게 지극히 당연하지만, 백호는 고양잇과 동물인데 영향을 받는 게 말이 돼?”

“자기가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엿장수 마음인 거 몰라?”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규칙이라 게 있잖아.”

“규칙 있잖아. 사람에겐 아무런 효과도 없는 거.”

“규칙 정말 확실하네.”

시간당 10분간 전투력을 2배 올려주는 시랑의 하울링은 같은 갯과 동물인 풍산개에겐 100% 효과가 적용됐다.

심지어 고양잇과 동물인 백호도 전투력이 30%나 향상돼 펄펄 날아다녔다. 하지만 시랑과 같은 인간인 우리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기 때부터 늑대 무리에서 자라 늑대를 가족이라 생각해 그런 현상이 일어난 건 이해하지만, 시랑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양심이 있다면 10%라도 혜택을 줘야 할 것 아닌가?

“그래도 우리 애들에게 효과가 있는 게 어디야. 저거 봐. 펄펄 날아다니잖아.”

“으음... 은비야?”

“응?”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혈랑 새끼들을 잡아다가 왕창 키우는 거야. 시랑의 하울링의 효과를 받으면 일시적이라도 엘리트 레드몬과 같은 전투력을 발휘하잖아. 그럼 우리가 힘들게 레드몬을 잡으러 다닐 필요도 없지.”

“오~ 좋은 생각인데.”

“괜찮지?”

“응. 그런데 혈랑 새끼는 어디서 구하려고?”

“레무스 무리 있잖아.”

레무스(Remus) 무리는 3월에 처리한 로물루스와 전력이 비슷한 혈랑 무리로 회색늑대 2,000여 마리와 230여 마리의 중급 레드울프로 이루어졌다.

하바롭스크 인근을 5일에 걸쳐 청소한 후 옐친 대통령에게 레무스 무리까지 정리해준다고 하자 입이 귀에 걸려 사랑하는 동생이란 말을 100번도 넘게 했다.

내가 직접 들은 얘기는 아니지만, 한숙을 통해 듣는 것만으로도 몸에 닭살이 오돌토돌 일어나 대패로 밀어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할 지경이었다.

“오빠! 저녁 먹고 산책하고 가요.”

“산책?”

“네. 아무르 강가에 나가면 경치가 끝내줘요.”

“알았어.”

“오빠!”

“응?”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그래.”

제니퍼의 산책 제안에 흔쾌히 응한 것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로라가 따라가도 되냐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한 말 한마디로 인해 3시간 동안 가시방석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먼 산만 바라봐야 했다.

제니퍼의 육탄공세에 넘어가 하바롭스크 동행을 허락하자, 로라도 따라오겠다며 품에 매달려 앙탈을 부려 함께 하바롭스크로 오게 됐다.

제니퍼만 가는 줄 알았는데, 아만다와 캐서린까지 동행하며 생각지도 못한 혹이 4명으로 늘었다.

은비와 소희의 싸늘한 시선을 하늘로 시선을 돌려 간신히 피하며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가는 곳마다 티격태격 싸우는 통에 골머리를 썩였다.

초반 기세는 아만다와 캐서린을 등에 업은 제니퍼의 절대적 우세였다. 하지만 영악한 로라가 약자인척 행동해 아내들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켜 둘은 팽팽한 대립 속에 온종일 치고받고 싸웠다.

“예쁘죠?”

“응. 좋다.”

“제가 오빠 구경시켜드리려고 하바롭스크 시내를 열 바퀴나 돌아 찾아낸 장소에요.”

“고마워.”

“헤헤헤헤~”

제니퍼가 혀를 빼물고 귀엽게 웃자 아만다와 캐서린도 유창한 한국말로 제니퍼가 나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설레발을 치며 로라가 접근하지 못하게 좌우에 달라붙었다.

팔에 달라붙어 웃을 때마다 커다란 젖가슴이 느껴져 옷을 뚫고 나오려는 고추를 팔로 억지로 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세 마녀는 더욱 몸을 기대며 나를 유혹했다. 하바롭스크로 출발하기 전 셋이 모여 작당 모의라도 했는지, 제니퍼 혼자만 매달리던 모습에서 탈피해 이젠 셋이 함께 매달리며 세쌍둥이를 흉내를 냈다.

“오빠, 저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산이 정말 멋있어요.”

“그래?”

“올라가 보실래요?”

“가보자.”

내가 세 마녀의 유혹에 넘어가려 하자 로라가 재빨리 화제를 돌리며 나를 잡아끌었다.

반쯤 넘어온 상태에서 로라가 딴죽을 걸어 작업(?)을 망쳐놓자 제니퍼와 아만다, 캐서린의 얼굴에 싸늘한 한기가 일었다.

으슬으슬한 기운에 슬며시 뒤로 빠지자 아름다운 미녀 4명이 허공에 불꽃을 튀기며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그렇게 시작된 아무르 강가의 혈투는 3시간 동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상대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갈려고 했는데, 오빠가 잡았어요.”

“내가 알기엔 누군가 울며불며 매달렸다고 하던데.”

“울며불며 매달린 사람이 아마도 하바롭스크에 오고 싶어 했던 그분 아닐까요?”

“맞네. 누가 간다고 하니까 억지로 따라온 그 사람.”

“뭐라고요?”

“기사만 그럴싸하게 났지 오빠는 네게 관심도 없어.”

“누가 할 소린지 모르겠네요? 세기의 결혼이라고 떠든 게 언제인데, 아직도 오빠·동생으로 아주 가~끔 얼굴 본다면서요?”

“잘 모르나 본데 오빠와 나는 매일 통화하는 사이야.”

“대단하시네요. 아내들은 매일 살 맞대고 사는데, 고작 전화 통화요? 하하하하~”

“말 다 했어요?”

“아직 다 못 했어요.”

“오늘 아무르 강가에서 피 터지게 얻어맞은 날로 영원히 기억하고 싶지?”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오빠가 호~ 해줄 테니까요. 호호호호~”

밤 10시가 넘도록 숙소로 돌아오지 않자 걱정된 아내들이 모두 출동하며 아무르 강가의 혈투는 승패 없이 상처가 남긴 채 끝이 났다.

‘앙숙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거였어. 초면부터 눈에서 불꽃이 일더니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없네. 에휴~’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