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3 로라 김 =========================================================================
323.
“어디로 가는 겁니까?”
“뉴 포레스트 국립공원까지 갔다 올 거예요.”
“런던 시내 한 바퀴 도는 거 아니었습니까?”
“시원하게 달리려면 외곽으로 나가야 해요. 시내에선 신호등에 때문에 달릴 수가 없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아내들이 금방 돌아올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로열 앤이 저녁까지 런던에 있는 명품관을 모두 돌아볼 계획이라, 빨라도 밤 10시는 넘어야 들어올 거예요.”
로라 김의 말을 유추해보면 차 안에서 거사(?)를 치르게 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좁은(?) 차 안에 젊은 남녀 단둘이 장시간 붙어 있으면 당연히 음흉한 생각을 하게 된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그건 고자이거나, 게이일 가능성이 100%였다.
그냥 여자도 아니고 아름답고, 완벽한 몸매의 젊은 여성이 짧은 미니스커트에 젖꼭지가 도드라진 블라우스를 입고 유혹하는데, 넘어가지 않을 남자는 없었다.
유치하지만 고전적이고 치명적인 유혹이라 백이면 백 다 넘어갈 방법이었지만, 나이 26살에 성접대를 받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지금까지 이용할 목적으로 여자를 취한 적은 많았다. 그러나 여자에게 넘어가 이용당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섹스에 미쳤어도 남에게 이용당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지금쯤 칼 맞고 야산에 버려져 짐승의 밥이 되었거나, 실험실 유리관에 담겨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아~ 이런다고 여왕과의 관계가 좋아질 거라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반대입니다. 사람을 속물로 보는데, 그걸 좋게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그런 거 몰라요.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에요.”
“싫다고 거부하면 되잖습니까? 멘탈리스트라서 원하면 유럽 어느 나라든 갈 수 있잖습니까?”
“아빠 사업이 큰 곤경에 처해 여왕이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에요. 그러니 거부할 수 없어요.”
“그런 일이 있어도 딸을 이런 일에 이용하는 건 아닌 것 같군요.”
“아빠는 몰라요.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에요.”
“딸의 애끓는 효심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 나이에 성접대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저도 성접대나 하는 그런 여자 아니에요.”
“그럼 이게 뭐하는 겁니까?”
“아빠 문제도 있지만, 제가 정말 좋아서 한다고 했어요. 아까 보여준 펜던트 제가 직접 한국 가서 미래사랑 팬클럽에 가입하고 받아온 거예요.”
눈물을 글썽이며 아까 보여줬던 펜던트를 목에서 풀어 다시 보여줬다. 여왕을 따라온 순간부터 심장박동, 체온, 표정 등을 한시도 놓치지 않고 확인해 팬클럽이란 것이 사실이란 것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사실이란 걸 알았다.
“좋아해 주는 건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팬이라 몸까지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제가 지홍씨를 어떻게 만나요? 생각해보세요. 항상 아내들과 함께 다니고, 집 밖으로 외출하는 건 사냥 때뿐이잖아요. 전화해도 연결도 안 되고, 편지 써도 답장도 없었어요.”
“전화와 편지는 죄송합니다. 제가 모르는 사람과 접촉하는 걸 워낙 싫어해서...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닙니다. 남녀가 사귀려면 얼굴 익힐 시간도 필요하고, 서로 마음이 맞는지도 천천히 알아봐야 합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고 가까워지는 게 아닙니다. 이런 행동은 로라씨만 상처받게 됩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저도 그런 사랑을 원하진 않았어요. 지홍씨 아내들처럼 같이 사냥하고, 밥 먹고, 사랑하는 그런 달콤한 사랑을 원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주어진 여건이 이것 밖에 안 되는데요.”
말을 마친 로라가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단추를 풀자 작지만 탄탄한 가슴이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봉긋한 가슴 중앙에 자리 잡은 핑크빛 유두에 시선이 갔다. 순간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로라 김의 눈을 바라보자 음욕이 사라지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딴에는 도발적인 눈빛과 분위기를 연출하려 애썼지만,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쳤다.
방에 들어오는 순간 기감으로 몸을 샅샅이 훑으며 로라가 청백지신(淸白之身)이란 걸 알았다.
남자 경험이 많고 적음은 알 수 없어도, 처녀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남자 경험도 없는 로라가 자기 딴에는 능수능란한 것처럼 연기하는 모습이 한편으로 불쌍했고, 한편으론 보호본능을 강하게 자극했다.
로라의 떨리는 손을 잡고 잠시 눈을 맞춘 후 블라우스에 손을 가져가자 이제 시작이라 생각했는지 눈을 꼭 감았다.
블라우스를 잡아 풀어진 단추를 하나씩 다시 채우자 황당한 눈으로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요?”
“우리는 오늘 차 안에서 미치도록 사랑을 나눈 겁니다.”
“그렇게 말해놓고 여왕을 만나면 다르게 말할 수도 있잖아요.”
“하하하하~ 생각보다 영리한 아가씨네.”
“저 이래 봬도 아이큐 140이에요.”
“140이면 뭐해? 상대가 진심으로 하는 말도 못 알아듣는데.”
“어? 왜 말을 놓으세요?”
“난 마음에 들면 말을 놔.”
“그 말씀은... 제가 마음에 든다는 뜻인가요?”
“알아서 생각해.”
마음에 든다는 말이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졌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관능적인 척 행동하는 건 자신의 장점을 버리고 단점으로 승부하는 것으로, 로라는 서인처럼 밝게 웃을 때 가장 예뻤다.
그 모습을 남자에게 보여주는 게 어울리지도 않는 어설픈 관능미를 발산하는 것보다 수십 배 잘 먹혔다.
“차 안에서 찐하게 놀았다고 말할 테니 넌 가만있으면 돼. 그리고 네 아버지 회사도 내가 도와줄게. 돌아가는 즉시 팍팍 밀어줄 테니까 그것도 걱정하지 마. 이러면 여왕도 깜빡 속아 넘어갈 거야.”
“갑자기 왜 이러세요?”
“하는 짓이 맹랑하고 귀여워서.”
“정말 제가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든다고 같이 산다는 뜻은 아니야. 원래 남자는 예쁜 여자는 다 마음에 들어 해.”
“기분을 하늘 높이 띄워 놓고 그렇게 매몰차게 떨어뜨리는 건 매너가 아니에요.”
“나 매너 같은 거 없어. 성격도 개차반이고. 신문에도 많이 났잖아. 성격 더럽다고.”
“세상에 다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기 가족,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자기가 챙겨야 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면 좋은 사람이죠.”
“그건 나랑 생각이 같네.”
“공통점 하나 발견했네요. 호호호호~”
내가 편하게 말하자 로라도 마음을 열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러자 딱딱했던 분위기가 사라지며 유쾌한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웃고 떠들기만 하면 안 될 텐데?”
“그럼 다시 옷을 벗을까요?”
“남자 앞에서 옷 벗는 게 그렇게 좋아?”
“아니요. 저도 싫어요. 지금 모습이 이래서 그렇지 사실 지조 있는 한국 여자예요.”
“예전에나 한국 여자가 지조 있었지, 지금은 코 큰 남자, 눈 큰 남자만 보면 환장하고 달려들어.”
“하긴 요즘 유학생 애들 중에 문란한 애들이 좀 많긴 하죠. 외국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다리를 벌려대니 정말 큰일이에요.”
“그만 말하고 좀 뛰어봐.”
“네?”
“네가 뛰어야 차가 흔들리잖아. 그래야 운전사가 우리가 신나게 노는 줄 알고 여왕에게 말할 거 아니야.”
“아~ 끝내주는 아이디어네요.”
“알았으면 뛰어.”
“지홍씨는 안 뛰어요?”
“내가 뛰면 흔들리는 게 아니라 차가 서져.”
“호호호호~ 상급 능력자가 뛰면 정말 그렇겠네요.”
허리를 구부리고 일어난 로라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자 짧은 미니스커트 속에 입은 하얀 팬티가 살짝살짝 비췄다.
그 모습을 엉큼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로라가 울상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육탄공세를 가하던 여자가 겨우 팬티 보인다고 저런 표정을 짓다니... 이래서 여자는 요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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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손만 한 번 잡고 드라이브만 하다가 돌아왔다고? 그걸 지금 나보러 믿으라는 거야?”
“진짜야. 뽀뽀도 한 번 안 했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는 거 봤어?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네.”
“정말이야. 의심되며 상아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그냥 좋게 말할 때 했다고 해. 그럼 아무 일 없이 넘어가 줄 테니까.”
“하아~ 가슴이라도 열어서 보여줘야 해? 왜 이렇게 사람 말을 못 믿어?”
“웃기고 있네. 우리가 잠든 사이에 스텔라, 셀리나, 루나 언니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괴롭혀 놓고 믿어 달라는 말이 나와?”
“커험...”
“은비 언니! 그만하세요. 오빠 말 진짜예요.”
“정말?”
“네.”
“너 오빠 난처할까봐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진짜 아니에요.”
“상아가 아니라고 하니까 이번 한 번만 믿어주겠어. 다음부터 조심해!”
“알았어.”
상아의 구원에 힘입어 간신히 은비의 살벌한 취조에서 벗어났다. 이래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갈잎을 먹으면 안 된다.
평소 하던 대로 행동했다면 가벼운 핀잔 한 마디로 끝날 일을 착하게 살아보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다가 오해와 함께 욕만 먹었다.
“으음... 잘됐네.”
“뭐가 잘돼?”
“여왕 옆에 우리 사람 하나 심어두면 좋잖아.”
“로라를 스파이로 이용하자고?”
“스파이까진 아니고,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 정도라고 봐야지. 100% 믿을 수도 없는데, 스파이로 활용할 순 없지.”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
“없는 것보단 낫겠지.”
얼마나 도움이 알 순 없지만, 소연의 생각처럼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백번 나았다. 영국 돌아가는 사정과 여왕의 일거수일투족만 알려줘도 가치는 충분했다.
“그러려면 정말 네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 지금처럼 어정쩡한 관계는 득보다 실이 많아.”
“한숙에게 로라 아버지 사업 최대한 도와주라고 했어.”
“금전적인 것만으로 모자라. 진짜 우리 편으로 만들려면 소속감을 심어줘야 해. 그래야 자기가 누구 편인지 확실하게 알고 행동하지. 그리고 내가 로라에게 빠졌다는 것을 여왕에게 보여주려면 드라이브 한 번으론 어림도 없어. 오래된 생강이 매운 건 그만큼 연륜이 쌓였기 때문이야.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아.”
“내일 캐나다로 갈 때 데리고 가자고?”
“그래야지. 미국, 브라질 들렀다가 집까지 데려가서 한 달 정도 있다가 보내면 확실하게 믿을 거야.”
“하아~ 언론에서 또 난리 치겠네. 새 여자 생겼다고.”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뭘 그래.”
“지난번 기사 못 봤어?”
“무슨 기사?”
“내가 종마래. 씨 뿌리고 다니는 종마.”
“씨만 뿌리면 뭐해? 씨가 싹이 안 트는데. 뿌려봐야 말짱 도루묵이지. 안 그래?”
“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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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