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322화 (322/505)

00322  로라 김  =========================================================================

322. 로라 김

“지난번 일은 정말 미안하게 됐어요.”

“아닙니다. 제가 참았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버릇없고, 예의 없는 아이들을 양손녀로 삼은 내 불찰이에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체장 7.3m, 꼬리 길이 2.5m, 몸무게 995kg, 전투력 9531, 지능 123의 A급 엘리트 레드몬 오소리를 상대로 1시간 넘게 야단법석을 피운 다음에야 간신히 숨통을 끊었다.

스코틀랜드 인버네스 인근에서 만난 오소리는 회양에서 만난 오소리처럼 보호막을 사용하는 종류로 크기, 등급, 전투력 모두 몇 단계 위로 보호막을 깨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놈의 보호막은 충격을 땅으로 흘려보는 아주 특이한 형태로 30분 동안 구미호와 현무, 딩고의 파상 공격에도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황당함에 가시창과 여우채찍, 뇌전탄을 쏟아 부었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라 이상한 마음에 기감을 최대한 집중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워낙 은밀하게 충격을 흘려보내 겉으로 표가 나지 않아 아까운 포스와 시간만 잔뜩 소비했다.

살짝 열이 받아 파멸의 창을 던졌지만, 이마저도 충격을 땅으로 흘려보내는 황당한 모습을 보였다.

뚜껑이 제대로 열려 피해 면역을 쓰고 달라붙어 흡기로 에너지를 마구 뽑아내자 그제야 보호막이 사라졌다.

보호막이 사라지자 예기를 가득 담은 주먹으로 턱주가리를 날렸다. 이빨을 다 털어낼 때까지 아구창을 날리자 숨이 끊겼다.

레드몬을 상대로 이렇게 화가 나긴 처음이었다. 놈은 투명한 보호막 안에서 내 공격을 흘리며 연신 비웃음을 흘렸다.

레드몬이 인간처럼 히죽거리며 비웃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이성을 잃고 레드몬을 두들겨 패는 패악을 저질렀다.

곤죽이 된 오소리의 심장에서 보호막 스킬이 내장된 레드주얼을 구해 아리에게 넘기며 꿀꿀했던 마음이 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버킹엄 궁전에 들러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마음이 다시 불편해졌다.

트래펄가 광장 서남쪽에 있는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관저로, 1703년 버킹엄 공작 존 셰필드가 만든 저택으로, 1761년에 조지 3세에게 양도한 후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식 때 궁전으로 격상했다.

영국 군주의 공식적인 사무실 및 주거지로 쓰이는 버킹엄 궁전은 20,000m²의 호수를 포함해 약 170,000m²에 이르는 대정원, 무도회장, 음악당, 미술관, 접견실, 도서관 등 아주 다양한 시설로 이루어졌다.

스위트 룸 19개, 손님용 침실 52개, 스태프용 침실 188개, 사무실 92개, 욕실 78개 등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궁전엔 근무하는 사람 수만 450명에, 왕족들을 보필하는 시종도 무려 50명에 이르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대로 팔자에도 없는 궁전 스위트룸에 묵게 된 첫날부터 만찬에 초대됐다.

20일간 쉬지 않고 달려와 캐나다에서 이틀 정도 쉬려고 계획해 시간은 넉넉했지만, 이건 쉬는 게 아니라 고역이었다.

아무도 없는 외딴 곳에서 늘어지게 자고, 진탕 먹고, 찐하게 사랑을 나누고 또 늘어지게 자야 피로가 풀리는 것이지, 이렇게 불편한 자리에 앉아 맛없는 영국 음식을 먹는 것은 반대로 피로가 쌓이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내들은 화려한 궁전과 여왕이 선물한 보석이 마음에 드는지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나는 말도 통하지 않는 시커먼 남자들 틈바구니에 앉아 넋 놓고 술만 홀짝거려 쉬지도 못하고, 재미도 없었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윈저(Charles Philip Arthur George Windsor)로 여왕의 장남이자 제1 왕위 계승자였다.

여왕은 찰스 윈저, 앤드루 윈저, 에드워드 앤서니 리처드 루이스, 앤 엘리자베스 엘리스 루이스 이렇게 3남 1녀를 둔 어머니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시커먼 남자들 틈에서 3시간 동안 술만 마셨어. 너무 한 거 아니야?”

“미안해.”

“보석이 그렇게 좋으면 사달라고 하면 되잖아.”

“여왕이 선물한 보석은 시중에선 구할 수 없는 영국 왕실 보물이야. 그래서 그만 정신이 팔려서...”

“반짝이는 것 빼곤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돌멩이가 보물이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침착하고, 꼼꼼하고, 바다 같은 이해심과 포용력 등 현모양처의 모든 것을 갖춘 소연도 여자라 그런지 보석 앞에선 정신을 못 차렸다.

“오빠! 죄송해요.”

“상아! 실망이야.”

“다신 안 그럴게요.”

“지홍아! 미안해!”

“아리! 믿었던 너 마저... 하아~”

나와 떨어져 1초도 살 수 없다던 상아도, 오직 나만 바라보는 아영도, 나를 목숨보다 더 끔찍하게 여기는 은비, 아리, 서인, 한숙도, 심지어 어린 소희까지 보석에 눈이 멀어, 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다는 걸 까맣게 잊었다.

신파극 검사와 여선생의 이수일이 심순애에게 헤어지자 말한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도 탐이 났단 말이더냐?’ 라는 대사가 왜 생겼는지 오늘 밤 절절히 깨닫게 됐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내일부터 관광이나 다녀요.”

“밖에 나가면 백호하고, 풍산개 본다고 사람이 미어터질 텐데, 걸어 다닐 수나 있겠어?”

“그건 여왕이 알아서 할 거예요. 우리는 재미있게 관광만 하면 돼요.”

“그렇다면 구경 한 번 해야지.”

다음 날 아침 한숙이 런던 시내를 관광할 수 있냐고 넌지시 물어보자 여왕이 바로 전화를 걸어 경찰 천명을 준비했다.

여왕의 호의 속에 영국의 명소 빅벤(Big Ben), 웨스트민스터사원(Westminster Abbey), 트래펄가 광장(Trafalgar Square), 하이드 파크(Hyde park), 국립미술관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그리고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까지 둘러봤다.

세계 3대 박물관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du Louvre Museums), 바티칸의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으로,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술품을 소장한 박물관이었고, 작품의 규모 면에서 대영박물관이 우세했다.

두 박물관의 공통점은 전시한 미술품 대부분이 약탈 문화재라는 것이었다. 루브르박물관은 연중 관람 인원이 무려 850만 명으로 이집트, 로마,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약탈한 작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Mona Lisa)를 비롯해 이집트의 고대 유물, 대한민국 취경원 원소도감의궤, 외규장각 도서 등 다른 나라 국보급 문화재를 약탈해 버젓이 전시하고, 반환 요청도 깡그리 뭉개버린 채 돈을 받아 처먹는 아주 파렴치한 장소였다.

대영박물관은 그나마 입장료는 받지 않았지만, 그리스의 엘진 마블스(Elgin Marbles), 로제타스톤(Rosetta Stone), 이란의 키루스 실린더(Cyrus Cylinder) 등 미술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아주 중요한 유물들을 약탈해 전시했다.

이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제국주의 서구열강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수탈의 결과물들로 자신들이 약탈민족임을 세계에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물들이었다.

“안녕하세요. 로라 김이에요.”

“아.아.안녕하세요.”

“정말 만나 뵙고 싶었어요. 저 미래사랑 팬클럽 회원이에요. 이것 보세요. 미래사랑 팬클럽 정식회원을 입증하는 펜던트에요.”

“그.그.그렇군요. 근데 한국말을 참 잘하시네요?”

“아빠가 한국 사람이에요. 엄마는 영국인이고요.”

“아~ 그렇군요.”

다음 날 점심 프린세스 로열 앤이 아내들을 모두 데리고 쇼핑을 나가자 여왕이 방으로 찾아왔다.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아가씨를 대동한 채 방에 들어온 여왕은 재빨리 로라 김을 소개하고 사라졌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로라 김을 왜 데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스텔라, 셀리나, 루나가 한 달 넘게 우리와 붙어 다니자 제니퍼에 이어 염문설이 신문지면을 가득 메웠다.

아내들 이외엔 사냥팀에 끼워주지 않는 내가 브라질을 갈 때마다 데리고 다니고, 호주까지 데리고 다니자 그렇고 그런 관계를 넘어 마누라로 들여앉힐 거란 소문이 파다했다.

악의적인 신문은 일은 안 하고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닌다고 욕했고, 호의적인 신문은 일과 여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부러워했다.

재미있는 건 스텔라, 셀리나, 루나는 물론 브라질 정부, 브라질 국민도 은근히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당사자들은 나와 화끈한 밤을 보내며 만족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브라질 정부와 국민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뛰어난 능력자 세 명을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는 아주 심각한 일이라 화를 내야 하는데, 오히려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은하의 설명을 빌리면 브라질은 세쌍둥이를 잃는 대신 강력한 능력자를 사위로 얻어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했다. 내가 평소 처갓집에 잘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제발 데려가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왕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결혼만큼 확실한 동맹은 없었다.

여자만 홀랑 먹고 뒤통수를 치는 일도 비일비재했지만, 그나마 결혼동맹이 가장 잘 먹히는 방법으로 지금도 대기업, 정치인들은 얽히고 얽혀 사돈에 사돈에 사돈을 맺었다.

“집에만 있기 답답하지 않으세요?”

“아닙니다. 정원도 보고, TV도 보고 아주 좋습니다.”

“그러지 말고 저랑 드라이브가요. 시원한 바람도 쐬고, 신나게 달리면 기분이 훨씬 좋아질 거예요.”

“괜찮습니다. 전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회장님은 괜찮을지 몰라도 전 안 괜찮아요.”

“왜요?”

“드라이브 못 가면 많이 혼나거든요.”

로라 김은 아빠를 닮았는지 동양적 외모에 168cm의 늘씬한 몸매, 75A컵의 크지 않은 가슴을 가졌다.

살짝 빈약하긴 했지만, 아내 중 절반이 살짝 빈약한 몸매라 예쁘게 보였지, 밉게 보이진 않았다.

이목구비도 서양 여성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서인처럼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스타일로 여왕이 내 취향에 맞게 신경을 많이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래 걸립니까?”

“아니요. 멀리 가진 않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혼난다는 말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자 로라 김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화사하게 번졌다.

신나게 달리는 드라이브라고 해서 스포츠카를 타고 시내 한 바퀴 휙 돌아오는 줄 알았는데, 현관을 나서자 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 리무진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가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 싫다고 할 수도 없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차에 올라타자 기다란 리무진이 미끄러지듯 버킹엄 궁전을 빠져 나아갔다.

차에 타기 전 기감으로 운전사와 차량을 꼼꼼히 살폈다. 나와 아내들의 은밀한 생활을 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도청기, 몰래카메라 등 각종 첩보 장비가 있는지 기감으로 훑는 게 생활이었다.

다행히 운전자는 평범한 일반인이었고, 롤스로이스 팬텀 리무진엔 도청기, 녹음기, 몰래카메라 같은 장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장치가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 장치를 설치했다 걸리면 지금까지 쌓은 신뢰가 한방에 와르르 무너지는 걸 알면서 그런 짓을 할 순 없었다.

더구나 길들인 웰시 코기를 원정 전 인계하며 내 가치를 다시 한 번 입증했는데, 야한 장면 몇 장 찍어 협박하는 짓을 할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