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13 땅따먹기 =========================================================================
313.
3일간 꿀 같은 휴식이 끝나자 다시 지옥이 시작됐다. 쉰 걸 보상받기라도 하듯 난 아내들을 더욱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은비가 애걸해도, 아리가 몸으로 설득해도, 상아가 애교로 녹여도 굴하지 않고 녹초가 되어 쓰러질 때까지 쉬지 않고 사냥했다.
덕분에 레드주얼을 두 개나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레드주얼은 A급 엘리트 레드몬인 인랜드 타이판에서 얻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독을 지닌 인랜드 타이판(Inland Taipan)은 호주 내륙지역에 서식하는 뱀으로 어찌된 영문인지 서부까지 진출했다.
길이 2.5~4m 정도의 인랜드 타이판의 독은 반수치사량(Lethal Dose For 50% Kill, LD50)이 0.0025mg/kg으로 코브라의 200배에 달하는 독성을 지녔다.
0.0025mg/kg을 치사량으로 환산하면 성인 남성 100명, 쥐 250,000마리를 죽일 수 있는 엄청난 양으로 치사율도 100%에 이르러 인랜드 타이판에 물리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유순한 뱀으로 생명을 위협받기 전엔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 성질 더럽기로 1등인 블랙맘바보다 위험성은 현저히 낮았다.
인랜드 타이판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호주 사람도 많을 만큼 사람에겐 크게 해가 되지 않는 독사였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인랜드 타이판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놈으로 매우 예민해 우리를 발견하자 곧바로 달려들었다.
A급 엘리트 레드몬 인랜드 타이판
전투력 : 8389
지능 : 86
상태 : 적대감 최대치 상승
효과 : 순발력·민첩성·전투력 0% 하락
에너지양 : 42,916
스킬 : 알 수 없음
길이 19.7m, 무게 635kg의 인랜드 타이판은 한 번에 열 방향으로 치명적인 독을 쏘아내고, 날카로운 비늘까지 발사하며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
새끼를 지키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우리 목숨이 더 소중해 가시창과 뇌전탄(雷電彈)으로 숨통을 끊었다.
태어난 지 열흘도 안 된 새끼 25마리는 죽이는 것보다 최정준 박사에게 보내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소연의 의견에 따라 특수 유리병에 담아 즉시 미래 연구소로 보냈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인랜드 타이판의 머리에서 레드주얼을 적출해 애도하는 마음으로 기능을 알아보려는 순간 은비의 비사가 번개같이 날아와 레드주얼을 날름 삼켰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녀석의 뒤통수를 쥐어박자 은비가 쌍심지를 켜고 바라봤다.
마음 같아선 지근지근 밟고 싶었지만, 은비의 살벌한 눈을 의식해 뒤통수를 한 대 더 때리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레드주얼을 삼킨 비사는 크기가 30cm에서 50cm로 커지며, 몸 색깔도 검은색에서 밝은 은색으로 바뀌었다.
꼴에 성장했다고 은비 주위를 50m까지 벗어났고, 독 레이저의 사거리도 1km로 늘어났다.
데미지도 크게 향상해 B급 엘리트 레드몬에게 상처를 입혔고, 신경독 덴드로톡신(dendrotoxins)의 독성도 더욱 강해져 강철도 물처럼 줄줄 녹아내렸다.
인랜드 타이판을 잡고 이틀 후 B급 엘리트 레드몬인 날지 못하는 새 에뮤(Emu)를 사냥했다.
에뮤는 타조와 형태가 비슷한 새로 목이 짧고 털이 많았다. 몸길이 2m, 몸무게 36~54kg으로 과일, 나뭇잎, 풀뿌리, 종자를 먹지만 곤충도 잡아먹는 등 살짝 잡식성이었다.
B급 엘리트 레드몬 에뮤
전투력 : 7446
지능 : 114
상태 : 적대감 최대치 상승
효과 : 순발력·민첩성·전투력 0% 하락
에너지양 : 35,333
스킬 : 알 수 없음
신장 6.2m, 몸길이 8.3m, 무게 2.75ton의 에뮤는 딩고보다 더 빨라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날지 못하는 대신 한 줄기 바람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녀 눈으론 도저히 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무와 딩고, 비사는 물론 구미호도 에뮤를 맞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 혈기탄과 뇌전탄으로 놈을 잡았다.
하반기 원정부터 B급 엘리트 레드몬은 아내들이 사냥했다. 아내들과 소환수가 힘을 합치면 B급 엘리트 레드몬은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나는 경계만 할 뿐 웬만해선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B급 중에서도 특별한 놈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잡았다. 에뮤처럼 강력한 공격력은 없지만, 빠른 레드몬은 맞추질 못해 부득불(不得不) 내가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에뮤의 다리에서 뽑은 지름 2cm의 레드주얼은 에뮤가 초원을 질주하는 모습으로 잔뜩 소환수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이 역시 딩고가 홀랑 먹어치우며 뒷목을 잡게 했다. 더구나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상아 때문에 녀석을 두들겨 팰 수도 없어 솟구치는 울화를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에뮤주얼을 먹어치운 딩고는 크기가 30cm 커지며, 정찰 능력도 3km에서 5km로 늘어났다.
속도 또한 에뮤주얼의 영향으로 1.5배 향상해 내가 바람 스킬을 사용해 움직이는 것만큼 빨라졌다.
또한, 속도의 영향으로 차징 스킬의 일종인 돌파 스킬을 습득하며 상대를 그로기 상태에 빠뜨렸다.
중력장 외엔 이렇다 할 공격 스킬이 없던 딩고는 에뮤주얼을 흡수해 공격력과 이동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오빠 죄송해요.”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괜찮지 않아요. 소환수를 얻을 수도 있었잖아요.”
“반대로 없을 수도 있었어.”
“그렇긴 하지만...”
“딩고가 먹고 강해졌으면 된 거야. 딩고가 강해지는 건 우리 모두의 힘이 강해지는 거잖아. 안 그래?”
“그래도 많이 미안해요. 서인 언니도, 아리 언니도, 아영이도, 마샤도, 소희도 모두 소환수를 갖고 싶어 해요. 제가 그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내가 더 좋은 놈으로 구해줄게. 그러니 마음 풀어.”
“그럼 딩고보다 더 좋은 아이로 구해주세요. 제발요.”
“알았어. 약속할게.”
울상이 된 상아를 달래주고 얼굴이 잔뜩 찡그려진 소연에게 다가갔다. 고민이 많은지 옆에 다가가도 반응이 없었다.
“뭘 그렇게 고민해?”
“아!”
“많이 놀랐어?”
“아니, 괜찮아.”
“무슨 생각했어?”
“기감력!”
소연은 눈으론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스킬을 사용하지도 못한 채 우두커니 바라만 봤던 에뮤를 생각하고 있었다.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가도 안개처럼 뿌옇게 변해 도통 뭐가 뭔지 모르겠어.”
“으음...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려 노력해봐.”
“마음으로?”
“물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색깔은 무슨 색인지 이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안 돼. 물체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체가 내게 무슨 말을 하는지 마음으로 느끼려 노력해야 해.”
“생각처럼 쉽지 않아.”
“계속 생각하니까 그렇지. 생각을 버리고 오직 느끼려고 노력해야 해. 지금처럼 계속 생각하고, 집착하면 기감력을 절대 얻을 수 없어.”
“휴우~”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는 소연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체력 훈련과 대련 등 외적인 훈련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만, 기감력을 터득하는 내적인 훈련은 조언 빼곤 해줄 게 없었다.
4년째 기감력 수련 중인 소연과 은비, 3년이 다 돼가는 서인은 방향을 잃은 채 답보 상태였다.
무언가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다음 날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와 잡았던 실마리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연과 은비, 서인이 기감력을 터득하지 못하는 건 생각이 너무 깊기 때문이었다.
기감력을 터득한 상아와 아영은 단순명료하게 사물을 파악하는데 반해, 소연과 은비, 서인은 사물에 대한 이해력은 높을지 몰라도 본질 이외의 것까지 생각하며 머리가 복잡했다.
그 때문인지 명상도 깊이 들어가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꼭 집어 잘못을 지적할 수도 없었다.
이건 타고난 본성으로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었고, 단점이라 꼬집어 말할 수도 없어 기운을 북돋아주며 끈기 있게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20일간 엘리트 레드몬 22마리, 중급 레드몬 2,132마리, 하급 레드몬 7,381마리, 최하급 레드몬 114,958마리를 사냥했다.
“중급은 1조 660억 원, 하급은 3,690억 원, 최하급은 1조 1,496억 원으로 총 금액은 2조 5,846억 원이요. 엘리트 레드몬과 레드스톤을 제외한 금액이라 실제 금액은 이보다 훨씬 많아요.”
“땅은 어떻게 됐어?”
“변종 토끼 사냥 대가로 5만 에이커를 무료로 받고, 레드몬 사체를 넘기는 대가로 1만5천 에이커를 추가로 받았어요. 그리고 엘리트 레드몬 22마리 사냥에 대한 대가로 2만2천 에이커도 챙겼고요. 그래서 총 8만 2천 에이커를 추가로 확보했어요.”
“8만2천 에이커면 얼마나 되는 거야?”
“331.8제곱킬로미터니까 싱가포르의 절반이 조금 넘네요.”
“생각보다 많지 않네.”
“지난번 것까지 합치면 9만2천 에이커에요. 그럼 372.3제곱킬로미터로 제주도 면적의 20%에 해당해요. 그것도 황무지가 아니라 밀과 쌀을 심을 수 있을 옥토라고요.”
“숫자라 그런지 영~ 감이 안 오는데.”
“헬기로 한번 돌아보실래요? 그럼 느낌이 다를 거예요.”
“그럴까?”
한숙의 말처럼 헬기를 타고 돌아본 땅은 파란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였다. 한창 밀이 자라는 평야는 바다라고 할 만큼 파란 밀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이란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어때요? 멋있죠?”
“끝내준다.”
“히히히히~ 마음에 들 거라 생각했어요.”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야. 정말 환상적이야.”
“이번에 번 돈으로 땅을 더 사려고 했는데, 호주 정부도 한 번에 많은 곡창 지대를 파는 게 부담스러운지 난색을 표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황무지를 사는 건 어떨까요?”
“황무지는 뭐하게?”
“농지로 사용하게요.”
“황무지에 농작물을 심어? 그게 말이 돼?”
“개간하면 되죠.”
“어느 세월에?”
“아이티 주민을 대규모로 고용하면 되죠. 남아도는 게 인력이라 임금도 싸고, 일자리도 줄 수 있어 일거양득이에요.”
“안전은 누가 책임지고?”
“아~ 그게 문제네요.”
“우리 땅 근처에 있는 황무지를 사들여. 멀리 떨어져 있는 땅은 관리도 안 되고, 레드몬으로부터 안전하지도 않으니까 공짜로 줘도 절대 받지 마. 그리고 개간은 일단 보류해.”
“그냥 사두기만 해요?”
“응.”
“생각해 놓은 방법이 있으세요?”
“치유의 토템과 정화 스킬을 활용하면 일일이 사람 손을 쓰지 않고도 옥토로 만들 수 있어. 당장은 힘들지만.”
마샤가 소환한 치유의 토템에 아영이 4단계 정화 스킬을 사용하면 치유 효과에 정화 효과가 더해져 죽어가던 나무에서도 꽃이 피어났다.
일명 ‘생명의 나무’로 마샤와 아영의 스킬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결과였다.
생명의 나무를 활용하면 1시간 안에 반경 300m의 황무지를 초원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 파멸의 창을 사용해 지하수를 뚫거나, 근처 호수나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오면 황무지를 옥토로 바꿀 수 있었다.
문제는 마샤와 상아가 막대한 포스 소모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과 다시 황무지로 돌아가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당장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몇 년 후에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 미리 땅을 확보하고 상황을 봐가며 개조하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