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309화 (30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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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땅따먹기

레드몬 탐지 레이더 50대가 설치된 다음 날 변종 토끼를 잡기 위해 호주 퍼스를 다시 찾았다.

조진호 박사를 만난 후 신기전이 상용화하면 레드몬 사냥에 일대 변화가 일어날 것을 확신해 호주 정부의 뮤턴트래빗 사냥 의뢰를 받아들였다.

박사가 원하는 수준까지 성능이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절반 이하의 성능이라도 레드몬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신기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게 확실했다.

신기전 1개 분대(3대)가 최하급 레드몬 30마리만 잡아도 9대 1개 중대면 100마리를 상대할 수 있었다.

또한, 신기전은 얼마든지 숫자를 늘릴 수 있어 20년 동안 꾸준히 노력해야 최하급 레드몬을 사냥하는 하급 능력자와는 생산력 차이가 하늘과 땅이라 레드몬을 상대론 더욱 큰 위력을 발휘했다.

신기전이 상용화하면 우리가 사용할 것과 국내에서 사용할 양을 충분히 확보한 이후 수출할 생각이었다.

신기전이 능력자를 죽이는 무기로 변형될 소지가 컸지만, 레드몬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무기를 우리만 사용할 순 없었다.

정화수 역시 신기전처럼 레드몬을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지만, 신기전이 무기의 용도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것과 달리 정화수는 아주 다양한 용도로 악용될 수 있어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판단할 순 없었다.

“지난번 사들인 윗 벨트 근처의 옥토를 주는 대신 중급과 엘리트 레드몬도 가리지 않고 사냥해 달라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그거야 당연한 거지. 놈들이 담쌓고 지내는 것도 아니고 잡다 보면 이놈 저놈 다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가려서 사냥해? 깡그리 잡아야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도 호주 정부는 그렇게 생각 못 해요.”

“생각은 알아서 하라고 해. 계약만 유리하면 그만이야.”

“알았어요. 중급은 두 배, 엘리트 레드몬은 등급에 따라 다섯 배에서 최소 열 배를 쳐달라고 할게요.”

“그렇다고 호주 땅 다 뺏겠다고 달려들진 마. 관리하기 힘들어.”

“큭큭큭큭~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폴 존 키팅 연방총리가 만찬에 초대했어요. 여왕의 양손녀인 안나 프릴과 오펠리아 오몬드, 올리비아 바튼도 기다리고 있고요. 어떻게 하실래요?”

“여왕도 오는 거야?”

“아니요. 대신 전화 왔어요. 꼭 좀 참석해달라고요.”

“참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여왕이 크게 실망하겠죠.”

“하아~ 별개 다 속 썩이네. 알았어. 참석한다고 연락해.”

“네!”

만찬 따윈 코딱지만큼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탁과 은하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 참석하기로 했다.

은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존 록펠러,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 향후 타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든든한 우군이자 방어막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를 위해 이들에게 가장 먼저 레드독을 길들여 호신용(?)으로 선물하고, 정화수와 은행 열매를 건강용으로 소량 나눠주고, 신기전도 가장 먼저 공급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레드몬 사냥과 투자, 결혼 등을 통해 확실한 우군으로 만든다는 게 은하의 복안이었다.

우리 뜻대로 움직여준다는 보장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조강지처가 된 은하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 하기 싫어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낮에 정한숙 단장님과 협의한 대로 회장님이 소유한 땅 인근을 모두 사들여 넘겨드리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회장님 손에 호주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알겠습니다.”

레드문 이후 대자연의 기운이 활성화하며 단위면적당 곡물 생산량이 최대 8배까지 늘어난 풍요의 시대가 찾아왔다.

낱알이 달리는 개수 2배, 성장 속도 2배, 크기 2배로 같은 땅, 같은 노동력으로 쌀 한 가마니를 산출하던 땅이 산술적으로 여덟 가마니를 생산하는 노다지 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레드문 이후로도 가뭄·태풍·홍수·병충해 등은 여전했고, 지진·해일·화산폭발의 천재지변과 레드몬의 등장으로 경작지가 3분의 1로 줄어들며 실제 생산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은 여전했고, 곡물을 무기로 돈을 버는 곡물메이저, 속칭 곡물카르텔의 횡포도 바뀌지 않았다.

곡물메이저는 석유의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단계를 총괄하는 스탠다드오일, 셸 등의 기업을 일컫는 석유메이저를 빗댄 이름으로, 전 세계 곡물 교역량의 85% 이상을 움직이는 카길(Cargill), 얼스미들랜드(ADM), 벙기(Bunge), 루이 드레퓌스(Louis Dreyfus) 등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들은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호주, 캐나다 등 세계 주요 곡창지대를 장악하고, 각 지역 농가의 수확물 매입, 수송, 저장, 가공, 선적, 수출, 해운 등 전 유통과정을 점유해 국제 곡물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식량을 무기화한 곡물메이저들은 자기들 멋대로 곡물가격을 조정해 엄청난 부당이득을 챙겼다.

곡물메이저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해 유엔식량농업기구(Food Agriculture Organization)에서 매년 대책을 마련했지만, 실질적 권한이 없어 언제나 책상만 두드리다 끝났다.

우리나라도 식량 자급률이 50%대로 곡물 자급률은 이보다 훨씬 낮은 30%를 밑돌아 곡물메이저가 장난치면 큰 피해를 당하였다.

우리가 호주 곡창지대를 뮤턴트래빗 사냥 대가로 확보하려는 이유가 바로 낮은 식량 자급률 때문이었다.

나진시만 해도 옛 선봉군에 주택과 산업시설, 관광·체육 시설이 모두 갖춰지는 내년 상반기엔 인구가 30만 명으로 늘어난다.

경작지를 최대한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워낙 험난한 산지라 늘어나는 인구수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이를 해결하고자 눈을 돌린 곳이 호주로 A급 엘리트 레드몬 딩고를 잡아주고 곡창 지대인 윗 벨트(Wheat Belt)에 1만 에이커를 확보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온 김에 최대한 많이 잡아서 땅을 왕창 받아내자. 그래야 곡물메이저가 장난쳐도 아이들 밥 굶는 일이 없지. 다른 건 몰라도 가난하다고 아이들 밥까지 굶기는 건 도저히 못 보겠다.”

“국내는 미래 아이 사랑재단에서 신경 쓰고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문제는 해외지.”

“해외? 아프리카?”

“아프리카도 문제고, 동남아시아도 문제고, 동유럽도 문제고, 남미도 문제고, 아이티도 문제야.”

“단위 생산량이 여덟 배나 올랐는데, 밥 굶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

“경작지가 줄었잖아. 그리고 곡물메이저가 곡창지대와 곡물을 모두 움켜쥐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대풍년이 들어도 굶주리는 곳은 여전히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어.”

곡물 메이저가 식량 가격을 올리면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가난한 국가의 가난한 국민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아이들이었다.

아이티엔 가난으로 빚어진 빵 ‘진흙 쿠키’라는 아주 특별한 음식이 있다. 중남미 서인도제도에 있는 아이티공화국은 아름다운 휴양지 카리브 해 연안의 섬나라로 흑인국가론 가장 먼저 주권을 찾은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이었다.

그러나 오랜 내전은 자부심 넘치던 풍요의 땅 아이티를 송두리째 바꿔 국민의 7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세계 최고빈국으로 전락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시테솔레이의 빈민 지역에는 진흙 쿠키 공장이 7개나 있다.

쿠키 공장에선 흙과 물, 소금, 마가린을 반죽해 채로 거른 후 5시간 동안 강한 햇볕에 말려 진흙 쿠키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돈 40원이면 살 수 있는 진흙 쿠키 3개를 빈민가 사람들은 쌀과 밀가루를 살 돈이 없어 밥 대신 먹었다.

진흙 쿠키에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됐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들도 있지만, 필수 영양소가 전혀 없는 진흙 쿠키는 약간의 소금이 전부로 흙 맛 이외엔 아무 맛도 없었다.

영양분 대신 진흙 속에 살던 기생충이 몸에 들어가 배는 산처럼 불렀고, 영양실조로 아이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죽어갔다.

이런 진흙 쿠키를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입안 가득 흙을 씹으며 웃는 모습은 충격 그 이상이었다.

원시림이었던 땅은 무분별한 개발로 현재 국토의 10분의 1도 숲이 남지 않은 황폐한 나라가 됐고, 매년 주기적인 가뭄과 허리케인으로 막대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해 기근이 끊이지 않았다.

산이 많고, 광물자원마저 거의 없는 세계 최고 빈국 아이티에선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어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채 하루하루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숲이 황폐화해 동물과 레드몬도 찾아보기 힘든 아이티에선 산과 들을 뒤져도 식량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아이티의 부모들이 일하기 싫고 가난해지고 싶어 아이들에게 진흙 쿠키를 먹이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피폐해 일자리가 없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배움의 기회조차 잃어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이티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원흉 중 하나가 바로 곡물메이저였다.

놈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악성 거머리이자, 흡혈충으로 놈들이 식량 가격을 올리면 사료조차 살 수 없는 가난한 나라에선 아사자가 속출했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라고 했다. 정승같이 쓰진 못할망정 남의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어선 안 된다.

그것도 아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짓은 어른이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짓이었다.

내가 지하 단칸방에서 엄마와 함께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먹는 거로 장난치고, 없는 사람 등쳐먹는 놈들은 정말 꼴 보기가 싫었다.

“개새끼들! 전쟁 일으켜서 돈 벌고, 마약팔아 돈 벌고, 나라 팔아 돈 벌고, 가지가지 한다.”

“이번에 호주에서 사냥해 벌어들인 돈 중 일부를 아이티 어린이를 위해 쓰는 건 어떨까?”

“퍼주기만 하면 해결돼? 일자리를 줘야 해결되지.”

“그럼 농장에도 취업시킬게.”

“아이티에 공장이라도 하나 세워봐. 농장 가지곤 턱도 없잖아.”

“알았어. 생필품 공장과 의류·신발 공장을 알아볼게.”

내 사람이 아니면 십 원짜리 하나 쓰는 것도 아까워했지만, 진흙을 밥 대신 먹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도 모른 체할 순 없었다.

소연과 한창 떠들고 있자 여왕의 양손녀인 안나와 오펠리아, 올리비아가 곁에 다가왔다.

은비와 서인, 아리가 놀아주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는지, 아니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인지 가식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다가와 바싹 달라붙었다.

“뭘 그렇게 재미나게 얘기하세요?”

“내일 있을 사냥에 대해 잠시 토론했습니다.”

“오늘 도착했는데 내일 바로 사냥하게요?”

“네.”

“으음... 그럼 저희도 끼워주세요.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스텔라, 셀리나, 루나도 함께 하잖아요. 저희도 끼워주세요.”

“그분들만큼 믿을 수 있는 신뢰를 쌓으면 생각해보겠습니다.”

대화는 상아가 텔레파시로 통역해주면 나는 우리말로 지껄이고, 그걸 다시 상아가 안나에게 말해주는 방식이었다.

남녀 사이에 이만큼 불편한 일도 없어 먀사는 합류한지 5개월 만에 유창하진 않아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제니퍼도 한글 공부에 열중하며 나와 단둘이 대화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난 죽어도 외국어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 아니, 배우고 싶어도 배울 능력이 없었다. 머리가 돌인지 남의 말은 죽어도 늘지 않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다.

상대가 한국어를 배우든, 지금처럼 불편해도 상아의 통역을 이용하든 둘 중의 하나밖엔 방법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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