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01 하반기 원정 =========================================================================
301.
“마샤야!”
“네, 오빠!”
“변신주얼 쓸만해?”
“네, 완벽해요. 이제 이것만 있으면 신분 탄로 날 염려가 없어요.”
“상아는 단번에 알아봤잖아.”
“아! 맞다. 진실의 눈은 속일 수가 없네요.”
변신주얼은 외모와 골격만 바꿀 수 있을 뿐 동물이나 사물로는 변할 수 없고, 한 시간당 500포스가 들어 오랫동안 사용할 수도 없었다.
또한, 상아의 진실의 눈엔 가짜라는 게 바로 들통 나 상아와 같은 계열의 스킬을 가진 능력자를 만난다면 꼼짝없이 걸렸다.
“귀찮아도 머리 염색하고, 선글라스 꼭 쓰고 다녀. 그래야 걸려도 표가 덜 나지.”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상아와 아영, 서인, 마샤를 데리고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야경을 바라봤다.
미국에서 25번째로 큰 도시답게 크기도 컸고, 높은 건물들과 바다, 항구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나진시는 이곳에 비하면 정말 어촌 수준이네.”
“이곳도 처음엔 바다와 풀밖에 없었어요. 140년이나 걸려 이만큼 발전한 것이지 하루아침에 거대 도시가 된 거 아니에요.”
“아영이 말이 맞아요. 1853년 백인들이 처음 시애틀에 왔을 땐 두와미시 족과 수쿼미시 족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수렵과 물고기를 잡고 있었어요. 그들의 땅을 빼앗아 지금과 같은 도시가 됐지만, 어쨌든 나진시와 비교하면 엄청난 게 느린 속도로 발전한 거예요.”
“나진시도 늦어도 10년 안에 시애틀만큼 큰 도시가 될 거에요. 실망하지 마세요. 오빠!”
“맞아요. 나진시는 시애틀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도시가 될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
야경이 아름다워 한마디 하자 상아와 아영이 나진시가 훨씬 큰 도시가 될 거라며 침을 튀기며 위로했다.
나진시가 거대 도시가 되길 바란 적은 없었다. 3대 미항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되길 원했지, 콘크리트 벽에 갇힌 답답한 도시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길도 크게 내고, 건물 간격도 최대한 벌리고, 공원을 잔뜩 만드는 등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려 노력했다.
“근데... 계산은 누가 하는 거야? 서인아! 지갑 가져왔어?”
“아니요.”
“상아는?”
“전 지갑이 없는데요.”
“저도요.”
“죄송하지만 저도 없어요.”
“이런 젠장!”
산미치광이 또는 포큐파인이라 불리는 호저는 몸과 꼬리의 윗면이 가시처럼 변화된 가시털이 촘촘히 덮인 야행성 동물로 몸길이 70~90㎝, 꼬리 길이는 7.5~10㎝였다.
호저 중에는 가시 끝에 갈고리처럼 생긴 작은 돌기가 있어 근육에 박힐 경우 뽑기가 몹시 어려운 종류도 있었고, 가시엔 균이 있어 찔릴 경우 감염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나무 열매, 나무껍질, 풀뿌리 등 초식성인 호저는 한방에서 대장병, 황달, 수종, 하복부의 통증 등 약재로도 사용했다.
시애틀에서 남동쪽으로 90km 떨어진 마운트 레니에 국립공원(Mount Rainier National Park)에서 만난 호저는 몸길이 4.48m, 무게 1.05ton에 강철 같은 가시가 얼굴을 빼고 빼곡히 돋아나 있었다.
A급 엘리트 레드몬 호저
전투력 : 9633
지능 : 103
상태 : 적대감 최대치 상승
효과 : 전투력 0% 하락
에너지양 : 56,007
스킬 : 알 수 없음
“파파파파파팍~~~”
딩고가 호저에게 강력한 중력장을 사용하기 위해 바람처럼 다가서자 순간 수천 개의 화살이 일시에 발사되는 것처럼 호저의 몸에서 기다란 가시털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멋모르고 달려들던 딩고가 가시에 꿰뚫려 허무하게 죽자, 현무가 재빨리 단단한 껍데기 속에 몸을 숨겨 겨우 목숨을 구했다.
녀석들보다 한참 윗줄인 구미호는 신속하게 뒤로 물러나며 레이저로 날아드는 가시를 모두 제거해 무사했다.
다행히 호저의 가시 공격 거리는 100m 정도로 보호막인 가시덩굴엔 큰 타격을 주진 못했다.
그러나 사거리 안에 있던 나무와 돌은 처참할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리며 가시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딩고의 복수를 갚기 위해 껍질에 몸을 숨긴 현무가 빠르게 회전하며 총알처럼 다가서자 이번엔 꼬리에 박힌 장대 같은 긴 가시털이 날아왔다.
“퍼버버벅~~”
“피용피용~ 피용피용~”
단단한 귀갑이 뚫리며 현무가 단 방에 죽자 화가 난 구미호가 독 오른 독사처럼 꼬리를 바짝 치켜세운 채 놈의 사거리 밖에서 레이저를 기관총처럼 쏘아댔다.
호저는 강력한 가시 공격 스킬을 가진 대신 발걸음이 매우 느려 구미호의 레이저를 몸으로 버틸 뿐 피해내지 못했다.
“우우우우웅~~~”
대기를 떨어 울리는 진동음과 함께 은행나무창과 똑같은 모양의 파멸의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파랗게 빛나는 파멸의 창은 맹렬히 돌아가던 300개의 고리도 없었고, 모양도 매우 평범해 위력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손을 떠나자 한 줄기 빛이 되어 호저에게 날아갔다.
“쒸우웅~~~”
호저가 위험을 알고 몸을 뒤덮은 가시를 모두 발사하며 급히 몸을 피했지만, 다가오는 가시를 모두 가루로 만든 파멸의 창이 번개처럼 휘어져 들어가 호저의 등을 꿰뚫었다.
“지지지지지징~~~”
호저의 등을 뚫고 땅으로 30m나 파고든 파멸의 창이 울어대자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부르르 떨렸다.
진도 7, 8의 지진처럼 땅이 들썩이지도 않았고, 흔들리지도 않았지만, 솜털이 일어서는 싸늘한 느낌이었다.
파멸의 창이 뚫고 지나간 A급 엘리트 레드몬 호저는 내장과 세포가 모두 파괴된 채 목숨을 잃었고, 파고든 땅 30m는 지름 10m가 고운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며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이 정도 위력이면 상급 레드몬도 못 버티겠다.”
“글쎄?”
“글쎄가 아니라 확실해. A급 엘리트 레드몬이 한 방에 죽이는 위력인데, 상급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어? 거기다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여 피할 수도 없잖아.”
“직접 상대해보기 전엔 알 수 없어. 상급 레드몬은 엘리트 레드몬과 한 단계 차이가 아니라 최소 서너 배 차이는 나니까.”
“지금은 조금 부족해도 몇 달 후 최상급 피지컬리스트가 되면 위력이 한층 강해져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다행이고.”
최상급 피지컬리스트로 승급하면 늦어도 내년 안에 상급 레드몬에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가장 약체인 C급을 상대로 사냥이 가능한지 비밀리에 타진해본 후 확신이 서면 의뢰가 없을 땐 상급 레드몬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한 단계 높은 레드주얼을 노린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급 중 가장 약체인 C급도 상대하기 버겁다면 A급 엘리트 레드몬을 집중적으로 노려 레드주얼과 소환수를 업그레이드하며 실력을 키울 생각이었다.
호저에서 나온 지름 3cm 크기의 구슬은 호저가 하늘을 향해 가시털을 발사하는 모습으로 꼬리에서 발사했던 장대 같은 긴 가시털을 소환하는 레드주얼이었다.
호저처럼 쏘아내는 형태가 아닌 가시만 소환하는 형태로 은행나무창보다 조금 긴 1.8m지만, 무기와 굵기가 비슷해 앞으론 은행나무창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됐다.
날카로운 가시털은 은행나무창보다 관통력이 뛰어났고, 매우 강력한 마비독을 품고 있어 C급 엘리트 레드몬도 1분 안에 몸이 마비되는 등 전류주얼, 냉기주얼만큼 아주 강력한 무기였다.
단, 소환한지 3분이 지나면 연기처럼 사라져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거나, 투창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긴 조금 부족했다.
“어? 스텔라 언니! 셀리나 언니! 루나 언니! 여긴 웬일이세요?”
“상아 보고 싶어서 왔지.”
“며칠 있으면 만날 텐데 뭐하러 힘들게 왔어요.”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히히히히~ 저도 많이 보고 싶었어요.”
전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Ushuaia)에 도착하자 브라질의 세쌍둥이 아마조네스 스텔라, 셀리나, 루나 자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못 본 사이 더욱 아름다워진 세쌍둥이가 아내들과 일일이 다정하게 포옹으로 인사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게 야릇한 눈빛을 보낸 스텔라와 셀리나, 루나는 아내들과 가볍게 포옹하는 것과 달리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품에 안기듯 나를 꼭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댔다.
풍만한 가슴에 안기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하지만 새로운 암컷의 등장에 아랫도리에 힘이 팍 들어가며 옷을 뚫고 나오려고 해 엉덩이를 뒤로 빼며 모양새가 아주 이상했다.
‘오오~ 75C의 위대함이여!’
비글 해협 연안에 있는 우수아이아는 남아메리카 대륙 남쪽 끝에 있는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에서 가장 큰 섬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가 5만 명이 되지 않는 작은 항구도시였다.
어업과 목양이 주 수입원으로 스텔라 바다사자(Steller's sea lion) 무리가 레드몬으로 진화하며 어획량 감소와 사고로 큰 곤란을 겪었다.
최근 급격히 불어난 스텔라 바다사자 무리가 비글해협을 통행하는 선박을 들이받는 일이 잦아지며 올해만 벌써 300명이 넘는 선원과 어부가 목숨을 잃었다.
물갯과에서 가장 큰 동물인 바다사자는 암컷은 몸길이가 2.7m, 몸무게 350㎏에 달하고, 수컷은 3.5m에 1,100㎏이나 나갔다.
물고기를 비롯해 오징어도 잡아먹는 바다사자는 잠수의 달인으로 110~150m까지 내려가며 때론 180m까지 잠수했다.
아르헨티나가 스텔라 바다사자를 사냥 의뢰한 건 우수아이아를 잃으면 남쪽의 광대한 영토를 관리할 도시를 세울만한 땅이 없기 때문이었다.
항구와 공항까지 완비한 우수아이아는 규모는 작아도 남극대륙에 화물을 실어 나르고 칠레와 국경분쟁을 담당하는 등 상징성이 대단한 도시였다.
“오빠! TV에서만 보던 만년설이야. 정말 아름답지 않아?”
“내가 보기엔 우리 집에서 보던 눈하고 전혀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 만년설이 아니잖아.”
“겨우내 내리는 눈 지겹다면서 만년설은 좋아?”
“느낌이 다르잖아.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은 쓰레기고, 수천 년 동안 녹지 않는 만년설은 자연의 신비야.”
“여기가 마음에 들어?”
“응. 마음에 쏙 들어.”
“그럼 평생 여기서 살아. 한숙아!”
“네?”
“은비 오늘부터 여기서 산단다. 집 하나 얻어줘. 얻는 김에 다시는 나올 수 없게 튼튼한 강철 집으로 구해. 평생 그 안에 갇혀 지내며 만년설만 보다 죽게.”
“우쒸!”
비글해협(Beagle Channel)을 따라 배를 타고 동쪽의 50km를 이동하자 지름 8km의 커다란 바위섬이 나왔다.
이곳이 스텔라 바다사자의 집으로 수만 마리가 바위섬을 빼곡히 채운 채 몸을 부대끼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100마리가 아니라 1,000마리도 넘겠는데요.”
“그래도 레드몬만 한곳에 몰려 있으니 잡긴 어렵지 않네.”
스텔라 바다사자 무리는 레드몬으로 진화한 놈들과 그렇지 못한 놈들로 따로 분리해 모여 있었다.
레드몬으로 진화한 바다사자 무리는 바닥이 평평하고,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을 차지한 채 거만한 모습으로 누워있었고, 진화의 법칙에 적응하지 못한 녀석들은 울퉁불퉁한 바위에 누워 녀석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계급은 존재했고, 그건 인간이나 동물이나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