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2 솔피(率皮) =========================================================================
292.
나날이 위험은 늘어만 가는데 도움을 주고받을 상대를 찾지 못해 걱정이 커져만 가던 오안네스는 상아가 말을 걸어온 순간 결단을 내릴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오안네스는 상아가 말을 거는 순간 우리가 무슨 이유로 접근했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정글보다 위험한 바다에서 80년을 살아남은 오안네스는 인간으로 치면 수백 년을 산 것이나 진배없었다.
수많은 난관을 헤쳐 온 경험과 교활함이 없었다면 오안네스의 솔피 무리는 레드문의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앙상한 뼈다귀만 남긴 채 차가운 심해에 몸을 누였을 것이다.
한눈에 나와 아내들의 능력을 알아본 오안네스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우리와 손을 잡기로 결심했다.
상아의 진심도 통했지만, 우리가 위협을 가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자신과 가족을 죽여 돈을 벌 생각이었다면 열흘간 정성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다른 레드몬을 잡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음을 현명한 오안네스는 우리를 처음 본 순간 알아봤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위해 정성을 쏟을 수도 있어 100% 안심할 순 없지만, 바다와 육지라는 지리적 차이를 생각하면 달아나는 건 큰 문제가 없었다.
또한, 배신할 경우 인간들이 입게 될 피해가 엄청나다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배신하진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동맹을 맺어도 얻을 이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상아가 제시한 조건은 나진시 인근에 크고 넓은 안전한 휴식처 제공, 싱싱한 먹이 무제한 제공, 북해의 지배자 범고래 무리처럼 대한민국을 지키는 레드몬으로 광고해 한반도 근해에서만큼은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대신 해양 레드몬을 처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배를 보호해야 하는 등 상대적으로 해야 할 일도 많고, 위험한 일도 많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자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상아의 말이 사실이라면 잃는 건 거의 없고, 얻는 것만 있었다.
해양 레드몬 처리는 우리 요청이 없어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동해는 자신들의 터전으로 목숨을 걸고 지키고 보존해 후대에 넘겨야 할 유산이었다.
끊임없이 동해를 도는 것도 이 때문으로 초음파만으론 동해의 넓은 바다를 속속들이 알 수 없어 최소 일 년에 두 번을 돌며 레드몬을 처리했다.
상선과 군함 보호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요청하지 않는다고 했고, 항로 보호는 해양 레드몬을 처리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하는 것이라 평소 하던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 비교해 안전한 휴식처와 먹이 제공은 자신들의 미래와 직결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동해를 지배하는 최강의 레드몬이 범고래라 원하는 만큼 먹이를 마음껏 먹고, 왕처럼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예전과 달라진 환경 탓에 사냥도 함부로 할 수 없어 굶을 때도 잦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만큼 안전하지도 않았다.
경험이 미천한 젊은 솔피와 어린 새끼들이 멋모르고 먹이에 달려들다 목숨을 잃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드몬으로 진화한 어류와 갑각류, 두족류 등 수많은 레드몬의 날카로운 이빨과 독침, 빨판에 잃은 가족이 30년간 30마리가 넘었다.
이 때문에 오안네스의 솔피 무리는 수가 불어나기는커녕 30년째 30마리 초반을 간신히 유지했다.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받을 수 있다면 생존율을 크게 높일 수 있어 10년 안에 규모를 두 배로 키울 수 있었다.
또한, 원해보다 안전한 근해에서 활동하면 새끼들도 마음껏 뛰놀 수 있어 빠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 슈퍼요트를 몰고 나가 두만강 하구에서 솔피 무리와 합류해 나진항으로 돌아왔다.
해달을 좋아하는 녀석들이라 비파도에 건설 중인 해상공원에 침입해 해달을 잡아먹을 수도 있었고, 갑자기 나진항에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도 있었다.
또한, 우리와 함께 다정한 모습으로 나진항에 들어가는 것이 더욱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어 의도적으로 그런 모습을 연출했다.
“반응이 끝내줘요.”
“그래?”
“네, 솔피 사진을 찍으려는 기자들과 시민들이 항구에 몰려 들어 하역 작업을 못 할 지경이에요.”
“기자회견이 잘 먹혔나 보네?”
“기자회견보다 상아가 오안네스를 타고 항구를 질주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며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좀 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새끼 등에 탈 수 있는지 상아가 오안네스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의도를 파악한 오안네스가 새끼가 아닌 자신의 등에 상아를 태우고 멋지게 바다를 질주했다.
솔피 무리가 나진항에 나타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길이 33m, 무게 50ton의 A급 엘리트 레드몬을 타고 상아가 항구를 돌자 방송마다 ‘미래 레드몬 공대, 레드독에 이어 레드씨울프를 길들이다’라는 자막과 함께 흥분한 뉴스앵커가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방송이 나가고 솔피를 보기 위해 나진시 방문을 요청하는 국내외 귀빈들이 줄을 잇고 있어.”
“누구누구?”
“국내는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전화를 걸어왔고, 해외에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존 록펠러 회장, 회장의 딸인 제니퍼 록펠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명인사 천여 명이 솔피를 보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했어. 이외에도 일반인의 문의전화가 끝없이 걸려와 나진 시청과 미래 레드몬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야.”
“자유당 놈들도 오고 싶다고?”
“응.”
“정말 웃기는 놈들이네. 내 욕을 온종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솔피와 함께 있는 사진은 찍고 싶나 보지?”
“자기 사무실에 걸어놓고 자랑할 생각이겠지.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그렇게 뻔뻔하긴 힘들 거야. 인두겁을 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어. 자유당 의원들을 말하는 거란 걸.”
“그놈들 빼고 다 허가해줘. 그래야 배가 아파 쓰러지지.”
“알았어.”
“해달 해상공원은 언제 완공돼?”
“물막이 공사와 전망대 공사는 끝났고, 해달 호텔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오픈 일정은 10월 이후로 잡았어.”
“미래 호텔 말고 관광객 수용할 시설 있지?”
“신해동에 지은 전원주택 1,000동이 있어. 미래 레드몬과 미래 레드포스 대원들의 가족을 위해 지은 건데, 아직 초동에도 500채가 남아 있어 숙박시설로 사용해도 모자라진 않아.”
“그것까지 하면 몇 명이나 수용할 수 있어?”
“만 명은 수용할 수 있어.”
“광고 준비했지?”
“편집까지 끝냈어.”
“그럼 해달 해상공원 다음 주 월요일에 개장해. 오늘부터 광고 내보내고, 다음 주 솔피와 함께 귀빈들부터 보여줘.”
“알았어.”
애초 해달 해상공원과 풍산개를 이용해 나진시를 레드몬과 함께하는 도시, 안심하고 관광할 수 있는 도시로 선전할 계획이었다.
그 계획에 솔피가 들어가며 볼거리가 더욱 다양해졌다. 여기에 백호까지 가세하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레드몬이 지키는 도시, 언제든 레드몬을 구경하고 만질 수 있는 꿈과 환상의 도시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박용규 대장은 언제 온대?”
“모레 저녁에 도착할 거야.”
“혼자 오는 거야?”
“아니, 청사자 공대원 전체가 함께 오기로 해 김포공항에 비행기를 보내기로 했어.”
“운은 띄웠어?”
“응.”
“뭐래?”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했어.”
“나머지는?”
“흑사자 공대 김태형 공대장은 청사자 공대와 함께 오기로 했고, 조의선인 공대 김덕용 대장은 뭉그적거리는 게 안 올 것 같아.”
잠능자 모집 실패와 해외원정 타개책으로 머리를 쥐어짜낸 게 상위권 레드몬 사냥팀 흡수였다.
포스협회와 여당, 친일파, 재벌이 짜고 잠능자 영입을 막자 방향을 급선회해 국내 레드몬 사냥팀에 눈을 돌렸다.
법으로 해결하려면 재판만 최소 3~4년은 걸렸고, 물증이 없어 재판에 이기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올해만 놈들이 방해하고 내년부터는 잠능자를 얼마든지 뽑아가도 좋다고 할 것도 아니라서 놈들이 손을 쓸 수 없는 레드몬 사냥팀을 생각하게 됐다.
상위권 사냥팀을 흡수하면 단시간에 세력을 키울 수 있고, 나진시 방어에도 활용할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흡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첫째 우리와 같은 길을 걸을지 알 수 없고, 둘째 흡수한다 해도 전임 공대장을 따를 수 있어 파벌을 형성할 수 있고, 셋째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유치였다. 국내 랭킹 1위 청사자 공대, 5위 흑사자 공대, 9위 조의선인 공대를 나진시에 유치해 레드몬 사냥과 방어에 활용한다는 게 복안이었다.
이를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소연과 상아가 박용규와 김태현, 김덕용을 만나고 돌아왔다.
“사람은 어떤 것 같아?”
“박용규와 김태현은 소문처럼 거짓이 없고 심지가 굳어 믿음이 갔지만, 김덕용은 담대하다는 소문과 달리 겁이 많고 눈치를 많이 살펴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오기로 한 사람들은 쓸만하니 다행이네.,”
“네.”
박용규 대장과 김태현 대장은 1964년 동갑으로 같은 포스학교를 나온 죽마고우이자 의형제였다.
공대는 따로 운영해도 연합해 사냥하는 일이 잦았고, 사냥터도 바로 옆에 붙어 있어 하루가 멀다고 만나 어울려 다니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래 레드몬 사냥팀을 맡은 박지홍입니다.”
“반갑습니다. 청사자 공대를 맡은 박용규입니다.”
“흑사자 공대를 맡은 김태현입니다.
청사자 공대는 박용규 대장을 포함한 중급 피지컬리스트 2명과 중급 멘탈리스트 2명, 하급 멘탈리스트 8명, 하급 피지컬리스트 17명으로 총 29명이었다.
흑사자 공대는 김태현을 포함해 중급 피지컬리스트 2명, 하급 멘탈리스트 11명, 하급 피지컬리스트 13명으로 청사자 공대보다 적은 26명이었다.
박용규 : 힘-259 민첩-209 체력-220 총합-688 멘탈포스-29
김태현 : 힘-203 민첩-209 체력-251 총합-663 멘탈포스-27
박용규는 힘, 김태현은 체력에 특화한 중급 피지컬리스트로 박용규는 환두대도(環頭大刀)를, 김태현은 합성궁인 각궁(角弓)을 사용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그래도 회장님께 직접 듣고 판단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십시오. 허심탄회하게 답변하겠습니다.”
“저희에게 바라는 게 정확히 뭡니까?”
“제가 없는 동안 괴한의 침입으로부터 나진시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다른 건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습니다.”
“한해 300억 원을 집 지켜주는 대가로 지급한다. 일에 비해 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박용규 대장님도 아시겠지만, 괴한들의 침입으로 나진시를 지키던 미래 레드포스 대원 37명이 죽었습니다. 제가 좀 더 일찍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들을 잃지 않았을 겁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300억 원보다 더 많은 돈을 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의도가 없다는 말이군요?”
“두 분 대장님과 공대원들을 다른 일에 동원하거나, 제 부하로 영입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남자대 남자로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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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