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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291화 (291/505)

00291  솔피(率皮)  =========================================================================

291.

매우 복잡하고 연대 깊은 가족 관계를 형성하는 비이주성 범고래 무리는 그 어떤 포유류 사회보다도 안정적인 형태로 수컷 새끼들이 평생 어미와 함께 살아가는 모계사회였다.

암컷의 수명이 최대 90년으로 4대에서 5대까지 대가족을 형성하며, 친척이 모여 무리를 이루기도 했다.

반드시 다른 무리와 짝짓기를 할 만큼 영리한 녀석들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먹이를 찾거나 짝짓기를 하는 때를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카르카로클레스 메갈로돈(Carcharocles Megalodon)이라고 들어봤어?”

“아니요.”

“올리고세 후기부터 플라이스토세 초기(2,800만 년 전부터 150만 년 전)까지 서식했던 거대 상어로 현생 백상아리의 조상이자, 지구 역사상 가장 강한 바다 포식자 중 하나야. 길이가 30m란 말도 있고, 14~18m라는 말도 있어. 무게는 대략 10ton 이상 나가고.”

“우와! 백상아리가 그렇게 컸어요?”

“응.”

“중생대 생물은 기본이 레드몬만 하네요?”

“트라이아이스기와 쥐라기, 백악기의 공룡과 어류는 레드몬이라고 해도 될 만큼 크고 힘이 셌어. 특히 거대 육식 공룡은 엘리트 레드몬과 자웅을 겨룰 만큼 대단했으니까. 스킬이 없어 싸우면 얼마 못가 잡아먹히겠지만, 피지컬 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지.”

“지금 태어난 게 정말 다행이네요. 그때 태어났으면 공룡한테 잡아먹혔을 거 아니에요?”

“소희야!”

“네.”

“설마 중생대에 인간이 살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영화나 만화 보면 공룡한테 쫓겨 도망치는 원주민들 자주 나오잖아요. 아니었어요?”

“중생대는 2억 4,500만 년 전부터 6,600만 년 전까지로 현생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나타난 건 겨우 10만 전이고, 두 발로 걷는 원숭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도 500만 년 전에 나타났어. 네가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않는 한 인간이 중생대에 살 방법은 없어.”

“전 몰랐어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해 그때도 당연히 있을 줄 알았죠.”

“정말 다행이다. 나보다 더 무식한 사람이 있었어. 하하하하~”

“우쒸!”

“레드몬만큼 강한 메갈로돈이 왜 멸종했는지 알아?”

“아니요. 무식해서 몰라요.”

“삐졌어?”

“네.”

“하하하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소희를 품에 안고 시원하게 웃어젖히자 가슴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잠시 사라졌다.

아내들도, 미래 레드포스 대원들도, 나진시 시민들도, 대한민국 국민도,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악의적인 사람들도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대한 척 행동했지만, 사실은 심적 부담이 상당했다.

내가 흔들리면 미래 레드몬과 나진시 전체가 흔들리는 것으로 속은 타들어 가도 겉모습만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의연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동안 별다른 사고 없이 나진시가 빠르게 성장하며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한시도 준비를 게을리하진 않았지만, 내 위명과 무력에 함부로 나진시를 공격할 곳이 없을 것이라 자만했었다.

행운이자 천운이었다는 것도 모른 체 기고만장하다가 제대로 어퍼컷을 맞고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걱정하는 아내들을 생각해 잠든 척 침대에 누워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화를 삭였지만, 스트레스로 보름 넘게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며 웃음도 차츰 사라졌다.

아내들은 내 기분을 맞추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언제나 톡톡 쏘아대는 은비마저 말대꾸도 없이 주변을 돌며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원래대로 돌아가라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 행동이 모두 나를 위한 일이란 걸 알면서 아내들에게 짜증을 낼 순 없었다.

그런 무거운 마음이 소희의 뽀로통한 모습에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았다. 내가 오랜만에 크게 웃자 아내들도 오랜만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빙하기의 도래로 바닷물 온도가 낮아져 먹잇감인 고래가 사라졌다는 의견과 범고래가 나타나 메갈로돈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멸종했다는 두 가지 학설이 있었어. 최근 범고래 연구가 활발해지며 범고래가 메갈로돈을 멸종시켰다는 학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고.”

“범고래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였어요?”

“무려 500만 년 동안 바다의 지배자로 군림했어. 영리하고, 빠르고, 민첩하고, 의사소통 능력도 뛰어나고, 수명도 길고, 무리 사냥 능력도 아주 탁월해. 인간처럼 문명사회를 이룩하지 못한 게 의외긴 하지만, 개개의 능력은 훨씬 우월하지.”

“대왕오징어가 레드몬으로 진화하면 범고래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열두 개의 기다란 다리를 휘두르며 빨판으로 잡아채면 서너 마리가 달려들어도 당해낼 수 없을 거예요.”

소희가 말한 대왕오징어(Giant squid)는 크기 20m, 몸무게 500~1,000kg, 600~1,500m의 심해에 서식하는 두족류(頭足類)로 레드몬으로 진화하면 가장 끔찍한 괴물이 될 거로 추측하는 동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대왕오징어는 지능이 형편없이 낮고, 속도도 현저히 떨어져 범고래의 상대론 한없이 초라했다.

“크기도 중요하지만, 민첩하고 머리가 좋아야 해. 덩치만 크고 느려터진 멍청이는 잡아먹기 딱 좋은 먹잇감밖엔 안 되니까. 그런 면에서 오징어는 범고래의 상대론 수준 미달이야.”

“크라켄은요? 신화 속 괴물 크라켄은 범고래도 당할 수 없잖아요.”

“정말 크라켄이 있다면 사정이 많이 달라지겠지. 하지만 그건 신화 속 이야기일 뿐이야.”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한 대왕오징어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상급이면 신화처럼 거대하진 않아도 범고래는 우습게 상대할 수 있을 거예요.”

“지능이 높을수록 강력한 레드몬으로 진화할 확률이 높다는 건 알고 있지?”

“네.”

“엘리트 레드몬까진 운 좋게 진화해도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는 건 운과 노력만으로 안 돼. 뛰어난 오성(悟性)과 남다른 능력이 필요해. 또한, 그때까지 살아남을 현명함도 필요하고.”

크라켄(Kraken)은 천지창조 때 태어난 두 마리의 괴어 중 하나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산다고 전해지는 괴물이었다.

등 둘레가 2.5km로 섬으로 착각해 걸어 다닐 만큼 커다란 괴물로 영화나 소설처럼 난폭하지 않아 사람과 배를 공격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소희에게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지만, 그건 며느리도 모르는 일이었다. 은행나무가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한 걸 생각하면 대왕오징어도 상급 레드몬이 될 수 있었다.

수명이나 살아온 세월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지만, 은행나무나 대왕오징어나 지능은 차이날 것이 없었다.

‘크라켄? 이러다 신화 속 괴물이 몽땅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첫날 30분의 짧은 만남 후 우린 절벽에 텐트를 치고 솔피 무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틀간 녀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만남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체념할 찰나 녀석들이 돌아왔다.

그렇게 일주일간 상아와 솔피 무리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 우리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 시간을 늘려갔다.

상아는 우두머리인 암컷부터 새끼까지 한 마리도 빼놓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더욱 빠르게 신뢰를 쌓아갔다.

“내일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는 게 좋겠어요.”

“고작 일주일로 우리를 받아줄까?”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면 1년이 지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일주일간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어요.”

“알았어.”

다음날 오안네스(Oannes)라 이름 붙인 우두머리 암컷에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설명했다.

또한, 사는 곳도 틀리고 종(種)도 다르지만, 평생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친한 친구로 지내길 원한다고 말했다.

“오안네스는 뭐야?”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신 에아의 사자로 인간에게 문자·예술·과학을 가르쳐줬어요. 인간에게 지혜를 가르쳤듯 우리와 친구가 되어 많은 것을 알려달라는 의미에서 오안네스라고 이름 붙였어요.”

“마음에 들어 해?”

“네, 신화와 함께 제 생각을 말하고 이름을 붙여주자 전보다 더 친하게 대했어요.”

“다행이네.”

“친구가 되면 나머지 솔피들의 이름도 지어줘야겠어요.”

“서른한 마리 몽땅?”

“네.”

“그 많은 이름을 어떻게 다 기억하려고?”

“오빠는 우리 이름 기억하는 게 힘드세요?”

“아니.”

“중국하고 일본 언니들은요? 일곱 명이나 돼 힘들지 않으세요?”

“.......”

1시간쯤 지나자 상아를 향해 휘파람소리 같은 작은 울림이 날아갔다. 오안네스가 초음파를 사용해 상아의 동맹요청에 회답을 보낸 것이었다.

범고래의 초음파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최대 한계 범위를 넘어서는 주파수로 청각으론 거의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초음파도 기의 일종으로 기감을 사용하면 파동을 잡아낼 수 있다. 어떤 내용인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상대를 공격하는지, 대화하는지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오안네스는 모스부호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초음파를 쏘아 상아에게 자기 뜻을 전달했다.

고차원적인 대화를 나눌 순 없어도 좋다, 싫다, 즐겁다, 재미있다, 고맙다, 화난다, 슬프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 다양한 감정 표현을 초음파로 표현해 자연스럽게 대화가 진행됐다.

진실의 눈을 가진 상아는 동물, 레드몬과 많은 대화를 통해 몸짓, 표정만으로도 상대의 기분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읽어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솔피 무리와 교신한지 하루 만에 솔피들이 자기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아냈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오안네스는 우리와 동맹을 맺는 것이 무리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반대로 해가 될지 깊이 고민했다.

올해로 80년을 산 오안네스는 급격히 늘어나는 레드몬으로 인해 나날이 고민이 깊어갔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도 인간을 비롯해 상어, 고래 등 위험은 항상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위험수위가 높아져 먹이인 청어, 삼치, 고등어에게도 수시로 목숨을 위협당했다.

가족이 늘어나면 위험수위를 낮출 수 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누군가와 동맹을 맺고 위험에 대처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믿을 수 없었다. 언제 돌변해 작살을 던질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존재가 인간이었다.

인간은 자신들만 지성을 지닌 위대한 존재로 생각했지, 지능이 높아도 다른 생명체는 지성을 가졌다고 믿지 않고 열등한 고등어나 오징어쯤으로 생각했다.

하늘 아래 유아독존인 인간은 자신들만 존귀해 나머지 생명체는 죽이고, 잡아먹어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그런 인간과 동맹을 맺는 건 향유고래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범고래 무리와 동맹을 맺는 것도 안전한 건 아니었다.

머리가 좋은 범고래는 거짓말, 동맹, 이중배신, 참견 등 인간만큼 다양한 정치행위를 하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였다.

심지어 새끼 딸린 암컷을 강간하고 재미로 바다사자와 펭귄을 죽이고,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위협이 되는 혹등고래, 향유고래 새끼를 죽여 개체 수를 조절하는 등 잔인하기로 따지면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를 고려하면 다른 범고래 무리는 인간보다 더욱 위험한 존재로 상대보다 세력이 약할 경우 잔인하게 살육당하거나, 흡수되어 평생 노예처럼 살 수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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