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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289화 (289/505)

00289  조상 바꿔치기  =========================================================================

289.

“은비야!”

“응?”

“강승원 국장에게 전화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자료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라고 해.”

“알았어.”

집 나간 아버지를 찾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조사하며 할아버지, 할머니, 백부님, 고모 두 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등 돌아가신 분들과 살아있는 친척들까지 모두 조사하게 했다.

점점 적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가족을 인질로 나를 협박할 수도 있어 미리미리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샅샅이 훑은 결과 우스갯소리로 사돈의 팔촌쯤 되는 멀고도 먼 이웃 사촌을 빼곤 친척이라곤 단 한 명도 없었다.

주위에 돌보아줄 핏줄 하나 없는 아이인 천애고아(天涯孤兒)가 나를 두고 만든 말이란 생각이 들 만큼 눈 씻고 찾아봐도 친척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신경 쓸 친척이 없다는 건 그만큼 약점이 줄어든단 뜻으로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게 없었다.

하지만 영화 ‘라스트 모히칸’처럼 자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들이 옆에 있어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다만 모두 잠든 새벽에 일어나 우두커니 창밖을 보고 있으면 내가 어디에서 온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조일 일보와 대동 일보, 합동 일보는 산케이 신문 지부도 아니고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실었네. 그것도 1면부터 5면까지.”

“얘들은 원래 일본과 미국 신문 그대로 베끼는 걸 좋아해요. 발로 뛰는 기자가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울 만큼 남의 기사를 조금씩 손봐서 지면을 채우죠. 그러고도 구독료와 광고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참 황당해요.”

“이놈들 회사를 사서 없애 버려야 하는데.”

“겁이 얼마나 많은지 뺏길까봐 주식 51%는 손에 꽉 쥐고 있어 사들일 방법이 없어요.”

“확 불 싸질러 버릴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네요. 오늘 밤에 갈까요?”

“가자. 휘발유 챙겨.”

화를 참지 못한 은비와 아영이 조일 일보와 대동 일보, 합동 일보 건물을 불태울 궁리까지 했다.

놈들의 건물이 눈앞에 있다면 정말 불을 지를 만큼 아내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산케이 신문이 단순히 내 조부모님이 일본인인지 의문을 제기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보수 우익의 대변자인 산케이 신문은 일본 정부와 우익의 지배자 아베 마사히코 회장의 지령을 받고 나를 흠집 내고, 조롱하고, 모욕하기 위해 이 같은 억지 기사를 실었다.

그냥 악의적인 게 아니라 조상의 무덤을 파헤쳐 욕보이는 짓으로 유교문화인 대한민국에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죽은 조상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욕은 부모를 욕하는 것과 조상을 욕하는 것이었다.

이건 철천지원수가 되자는 것으로 놈들의 의도가 나와 아내들, 대한민국을 갈라놓으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남은 건 활활 타오르는 분노밖에 없었다.

“맞대응은 놈들이 노리는 수야. 우리가 화를 내고 싸우려 들수록 놈들의 페이스에 말릴 수도 있어. 기분 나빠도 모른 체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기분 나쁠 거 없어. 나를 까는 기사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잖아.”

“그래도 이건 차원이 다르잖아.”

“좀 더 고단수이긴 하지. 하지만 원하는 것은 같은 거라 그런지 무덤덤해.”

“그럼 다행이고.”

소연이 말하지 않았어도 반박할 생각도 없었다. 은비에게 다시 확인하라고 한 건 만약을 위한 것이었지, 놈들과 싸우자고 한 뜻이 아니었다.

말도 말 같아야 대꾸를 하는 것이지 말 같지 않은 말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었다. 우기는 놈하곤 말로 싸워서 절대 이길 수가 없다.

아무리 1을 1이라고 해도 2라고 우기면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사람은 이치에 맞는 얘길 해도 귀를 닫고 들으려 하지 않아 떠들어봐야 내 입만 아팠다.

벽창호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자기만 똑똑해 남의 말은 죽어도 듣지 않아서 생긴 말이었다.

일본도 확실한 저의를 갖고 시작한 만큼 아무리 정확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아니라고 할 게 뻔했다.

이럴 땐 뉘 집 개가 짖나 하는 생각으로 넌 짖어라, 난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이렇게 나가야 했다.

우리가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예상대로 점점 수위가 높아졌다. 뼈대 위에 그럴싸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색깔을 칠하며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켰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홀딱 넘어갈 만큼 이야기가 완벽해 내가 읽어봐도 고개가 끄떡여지는 내용이었다.

“이토 가문과 스즈키 가문이 철천지원수였지만, 한눈에 반한 둘이 사랑을 꽃피워 아이가 생기자 부모의 눈을 피해 조선으로 밀항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내용 아니야?”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했네요.”

“맞네. 그거네. 내용은 조금 달라도 풍기는 뉘앙스는 판박이네.”

“조선에 살아가며 아이들을 낳은 것도 그렇고, 조선에 남게 된 이유도 그렇고, 뻔한 신파극 소설에서 보던 내용과 아주 흡사해요. 이건 표절 수준인데요.”

“그게 전부가 아니야. 가짜 출생 서류까지 버젓이 신문에 실었어.”

“그건 공문서위조네요.”

“일본 정부가 나섰는데 공문서위조를 무슨 재주로 밝혀? 못 밝히지.”

“모두 한 통속이면 밝힐 수가 없죠.”

“일본 놈들은 100% 믿을 거고, 일본을 사랑하는 친일파 놈들도 믿겠네.”

“그럼 친일파가 오빠를 좋아하게 되는 건가요?”

“헉!”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고 조일 일보와 대동 일보, 합동 일보는 일본 신문을 옮겨 적는 것에 끝나지 않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며 일본의 주구가 되어 열심히 나를 일본사람으로 만들었다.

참다못한 대한당과 국내 언론사들이 이들의 기사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비난을 퍼붓고, 미래사랑 팬클럽 회원 100만 명이 시청광장에서 규탄집회를 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채 소설을 기사처럼 마구 휘갈겨 댔다.

재미있는 건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 대한민국 국민 중에 많은 수가 이들의 기사를 보고 나를 의심했다.

주로 나이 지긋한 노인들로 일본 놈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잘됐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래서 펜은 총알보다 무섭다고 하는 것이었다.

1994년 8월 3일

일본 가미카제 공대가 B급 엘리트 레드몬 일본담비(Martes melampus coreensis)를 사냥했다.

우리말로 '누른돈' 혹은 '노란담비'로 불리는 일본담비는 몸길이 44∼49cm, 꼬리 길이 17∼20cm로 크기는 산달인 검은담비와 비슷하지만, 꼬리가 훨씬 더 길고 발바닥이 털로 덮이지 않는 점이 달랐다.

머리털은 황백색, 목에서 어깨까지는 황색, 뺨과 귓바퀴는 흰색, 이마는 붉은색, 꼬리와 다리는 황백색, 발톱은 회백색으로 1,800m 높이의 산림지대에 서식했다.

혼슈 시즈오카 현 시오미 산에 나타난 몸길이 3.6m, 꼬리 길이 1.5m, 무게 150kg의 일본담비를 가미카제 공대가 3시간의 혈투 끝에 사냥에 성공했다.

죽은 일본담비에서 나온 레드스톤은 에너지 23,123몬으로 B급 엘리트 레드몬이 확실했다.

자신들 손으로 처음 잡은 B급 엘리트 레드몬에 일본 우익들은 전쟁에서 이긴 것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와 욱일승천기를 흔들며 반자이를 외쳐댔다.

세계 253개국 중 B급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한 국가가 10여 개국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이들 대부분도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간신히 잡았다는 걸 생각하면 일본이 기뻐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하지만 얼마 전 벳푸에 나타난 A급 엘리트 레드몬 일본원숭이를 처리하지 못해 손을 벌렸다는 점과 A급 엘리트 레드몬을 쥐 잡듯 잡아대는 레드몬 사냥팀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렇듯 요란을 떠는 건 우습다 못해 창피한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요란을 떨 수도 있는 것으로 일제의 대표적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흔드는 극우주의자들의 모습은 다분히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래도 효과는 만점이었는지 일본 국민 80% 이상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는 여론 조사가 나왔다.

“우리와 벳푸 조약을 파기한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썼네.”

“여기엔 우리를 불쌍히 여겨 벳푸 조약을 맺어 준건데, 그것도 모르고 까불었다고 썼는데요.”

“에너지 23,123몬이면 전투력 5,000을 간신히 넘긴 B급이란 말인데, 그거 한 마리 잡아놓고 기고만장하기는. 우습다 못해 콧방귀가 나오네.”

“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고 하잖아요.”

강승원 국장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일본은 B급 엘리트 레드몬 일본담비를 잡기 위해 가미카제 공대 외에 모기 레드몬으로 강화한 하급 피지컬리스트 다섯 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이들이 일본담비를 방패와 갈고리로 묶는 동안 가미카제 공대가 사정없이 두들겨 패 잡아냈다.

“그러고도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렇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대략 2~3명이 죽고 1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추정 중입니다.”

“어찌됐든 B급을 잡았으니 일본에선 한시름 놓았겠군요?”

“그렇습니다. 상당히 고무돼 일왕이 가미카제 공대에 훈장을 수여하고 장군 칭호도 내렸습니다.”

“알겠습니다. 아까 말한 솔피가 어디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오늘 중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일본이 난리 친다고 손 놓고 놀고만 있을 순 없어 시간 있을 때 솔피 무리와 대화를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바다 한가운데는 위험해 솔피 무리가 해안가로 접근했을 때 상아의 텔레파시로 친구가 될지 아니면 지금처럼 소 닭 쳐다보는 상대로 남을지 알아보기로 했다.

“얘들 너무하네. 오빠가 일본 사람이니 일본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했어.”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일본 사람이 왜 일본을 위태롭게 한 소연 언니와 은비 언니를 데리고 사냐고도 썼어.”

“오빠와 언니들의 사이를 벌려 놓으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손 가는대로 마구 써놨네.”

“정말 점입가경이야. 눈뜨고는 못 보겠다.”

강승원 국장과 회의를 마치고 서재를 나와 침실로 들어가 상아과 아영이 신문을 보며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내용은 별로지만 둘이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 신문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아와 아영이 급히 신문을 덮고 딴청을 피웠다.

아내들은 내가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걸 막았다. 자기들이 봐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데, 내가 보면 일본으로 뛰어가 아베 마사히코와 호소카와 모리히로의 멱살을 잡고 패대기를 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아야! 이르면 내일, 늦어도 일주일 후엔 솔피 무리 만나러 갈 거니까 무슨 말 할지 생각 좀 해놔.”

“네, 오빠!”

“아영아, 방 안에 있으면 답답하지 않아?”

“좀 그래요.”

“풍산개들 데리고 바람 쐬러 나갈까?”

“좋아요.”

“오빠! 마샤도 함께 데려가요.”

“그래. 불러와.”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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