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8 조상 바꿔치기 =========================================================================
288. 조상 바꿔치기
“젠장 이번에도 꽝이네. 정말 더럽게 안 나오네.”
“지금까지 잡은 통계로 보면 C급 엘리트 레드몬에선 100% 안 나오고, B급은 그나마 20~30% 수준으로 나왔어. A급은 아직 잡아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순 없지만, 거긴 최소 50%는 넘을 것 같아.”
“어느 세월에 A급 잡아?”
“당장은 힘들어도 4~5년이면 되지 않겠어?”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것도 모르겠다.”
“그렇게.”
“박지홍, 지금까지 A급 엘리트 레드몬 몇 마리나 잡았어?”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7~8마리는 되겠지?”
“B급까지 하면 적어도 7~8개의 크리스털 볼은 가지고 있겠네?”
“그렇다고 봐야지. B급도 여러 마리 잡았으니까.”
“박지홍은 크리스털 볼을 구하면 자기들이 쓰기나 하지, 우린 구경만 하고 갖다 바쳐야 하잖아. 죽 쒀서 개 준다고 고생은 우리가 다하고 쓰지도 못하는 놈이 챙기고 이게 말이 나 돼?”
“어제 오늘 일도 아니잖아. 너무 열 내지 마!”
“놈하고 놀아난다고 편드는 거야?”
“설마? 회장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도 알잖아. 나는 회장의 노리개이자 정보를 물어다 바치는 창녀야. 그런데 내가 회장을 좋아하겠어?”
“제기랄! 돌아가면 못 구해왔다고 또 지랄을 떨어대겠지?”
“당연하지. 언제나 그랬잖아.”
“고생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이 종처럼 부려 먹기만 하는 X새끼! 다이아몬드 숟가락 물고 나와서 고생이 뭔지도 모르는 게 졸라 아는 것처럼 설교만 해대는 병신새끼! 마음 같아선 그냥...”
엘리자베스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작이 누군가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뜨거운 사하라 사막에서 죽도록 고생하다 돌아가도 욕만 먹을 걸 생각하자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작이 화를 내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벤저민 회장이 뺏어간 크리스털 볼 4개면 자신의 능력을 지금보다 30% 이상 끌어올려 하워드보다 더한 강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 보물을 쓸 수도 없는 벤저민 회장이 관상용으로 사무실에 진열해 놓고 있는 걸 생각하면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더욱 화가 나는 건 놈을 위해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며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해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고생하고도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는 노예 같은 자신의 처지였다.
“말을 가려서 해.”
“내가 틀린 말했어? 없는 말했냐고?”
“그분은 우리를 먹여주고, 키워주신 은인이자 마스터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우리를 키워주고 먹여줬다고? 아직도 그걸 믿고 있어?”
“.......”
“그렇지 않아. 사육한 후 도구로 마음껏 쓰고 있는 거야. 사람도 죽이고, 레드몬도 죽이고, 여자도 납치하고, 돈도 벌어들이는 그런 노예로. 안 그래?”
“우리끼리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하자. 공대원들이 들을 수도 있어.”
“이젠 내 입 갖고 말도 못해? 벙어리처럼 입 닥치고 살라는 말이야~”
“하아~ 그만하자.”
화가 난 아이작이 시비를 걸자 하워드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싸움을 피했다. 일주일간 뜨겁게 내리쬐는 열사의 땅 사하라 사막을 헤맨 끝에 간신히 오릭스 무리를 찾아내 소탕했다.
그러나 원하던 크리스털 볼은 구할 수 없었다. 아이작의 말처럼 뼈 빠지게 고생하고 돌아가면 욕먹을 일만 남았다.
꾸중을 들어도 하워드는 주인을 원망할 생각이 없었다.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었지, 그걸 나무라는 주인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베자스! 빨리 정리하고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하워드가 부관인 디디에 베자스(Didier Bezace)에게 명령하자 베자스가 다윗 공대의 궂은일을 맡아 하는 사냥 보조원들을 재촉해 부상자와 사망자를 차에 태우고, 레드몬 사체도 화물차에 재빨리 실었다.
3월 다윗 공대의 규모가 두 배로 커졌다. 무리하게 엘리트 레드몬 사냥에 나서자 예전 규모로는 피해를 감당할 수 없어 공대 규모를 늘렸다.
전력 보강에 나선 다윗 공대는 중급 능력자를 30명에서 50명으로, 하급 능력자는 70명에서 200명으로 확장해 더욱 강력한 힘을 갖췄다.
규모가 커진 만큼 사냥은 전보다 수월했다. 하지만 반가워할 수 없는 일로 규모가 커지자 더 많은 크리스털 볼을 원했다.
규모를 키워준 건 더 많은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해 크리스털 볼을 구해오라는 벤저민 회장의 배려(?)로 사냥 일수가 2배로 늘어나며 피해도 덩달아 커졌다.
이 때문에 다윗 공대의 불만은 나날이 고조됐고, 공대 분위기는 냉랭하다 못해 싸늘했다.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여자와 술, 도박 등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제공했지만, 불안한 미래 탓에 침체된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왜?”
“돌아가면 한 달 만 쉬자.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해.”
“한 달을 쉬든, 두 달을 쉬든 알아서 해.”
“그게 아니고...”
“지금 나보러 말해달라는 거야?”
“응.”
“그건 네가 말해야지. 네가 다윗 공대 공대장이잖아.”
“그렇긴 하지만... 회장님이 내 말을 들어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
“나보러 몸 팔아서 로비하라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면 뭐야? 돌아가자마자 벤저민 회장에게 마음에도 없는 애교를 떨며 다리 벌려야 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네가,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
“공대원은 중요하고 내 기분 따윈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야.”
“그럼 뭐야? 나 무안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미안해. 생각이 짧았어.”
“흥! 내가 너보다 아이작을 더 좋아하게 된 이유가 뭔지 알아? 바로 너의 그런 성격 때문이야. 부하도 배려하고, 주인도 배려하고, 다른 사람만 배려하는 성격. 그렇게 남만 배려하고 나는 배려하지 않는 너의 이기적 성격. 난 너의 그런 성격에 진절머리가 났어.”
“흐음...”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지키려 노력도 안 하는 비겁자! 넌 비겁자야!”
“난... 난...”
“됐어. 말하고 싶지 않아.”
엘리자베스의 비겁자란 말이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하워드의 심장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워드는 엘리자베스가 벤저민 회장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부탁한 것이지, 몸을 팔아 자기 얘기를 관철해달라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하워드의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엘리자베스는 모욕을 넘어 치욕스럽기만 했다.
크리스털 볼에 눈이 먼 벤저민 회장이 하루를 쉬는 것도 아까워하는 판에 한 달을 쉬게 해 달라?
물론 이유야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워드 개인 생각으로 마음 급한 벤저민 회장이 보기엔 꾀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자베스가 하워드의 말을 들어주려면 원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온종일 웃음과 몸을 팔아야 했다.
그런 것조차 모르고 말했다면 하워드는 정말 바보였고, 알면서도 ‘매일 하던 거 한 번 더하면 어때!’라고 생각했다면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부부끼리도 원하지 않는 성관계는 성폭행이나 다름없는데, 어린나이부터 무참하게 짓밟힌 엘리자베스에게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라고 한다면 그건 치욕에 몸부림치다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난 왜 이러지? 하는 말마다 바보 같은 말만해 엘리자베스의 마음만 아프게 하고. 평생 곁에서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데... 후유~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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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무슨 소리야?”
“왜요?”
“신문 봐봐. 오빠 조부모님이 일본인이라고 쓰여 있어.”
“어! 정말이네.”
“와!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이것들 진짜 막가자고 하네요? 어떻게 오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일본사람으로 둔갑시킬 수 있죠?”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이 X놈의 자식! 내 손에 걸리기만 해봐. 믹서로 갈아 마셔 버린다.”
“정말 가만 놔둬선 안 될 사람이네요. 철천지원수라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데, 이건 기본 상식조차 없는 행동이잖아요.”
장례식이 끝난 지 3일 후 산케이 신문이 내 조부모님인 박자 무자 중자 할아버지와 임자 인자 자자 할머니를 일본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도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본 사람이라고?”
“네, 할아버지는 이토 히로시, 할머니는 스즈키 미요코로 1939년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와 아버님 박대환을 낳고 6·25 전쟁 때 돌아가셨대요.”
“일본에서 건너와? 무슨 이유로?”
“집안의 반대로 조선으로 건너와 살다 일제 패망 때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남았다가 전쟁으로 죽었다고 했어요.”
“일본에 돌아가질 못해? 왜?”
“그것까진 안 나왔어요. 그냥 못 갔다고만 쓰여 있어요.”
“꾸며도 그럴싸하게 꾸며야지... 하는 일 하곤. 쯔쯔쯔쯔~”
아영이 산케이 신문의 보도 내용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옮겨놓은 조일 일보 기사를 읽어줬다.
할아버지는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셨고, 할머니는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때 만나 혼인하셨다.
두 분 모두 집안이 찢어지게 빈한해 물 한 그릇 떠 놓고 맞절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했다.
아버지 위로 백부님과 고모님 두 분이 계셨지만, 한국전쟁 때 포탄에 맞아 모두 돌아가시고 12살인 아버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런 내용은 고지식한 옛날 사람인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떠들어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외우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지만, 만 번 이상 듣자 나도 모르게 세뇌당한 것처럼 머릿속에 각인되어 잊히지도 않았다.
“오빠! 이게 끝이 아니에요. 시작이에요.”
“알고 있어.”
“점점 심해질 거예요. 그리고 잊힐만하면 또다시 끌어내 우려먹으며 끝도 없이 오빠를 괴롭힐 거예요.”
“걱정하지 마. 괜찮아.”
처음엔 그럴 수도 있다고 뉘앙스를 풍기고, 다음엔 그럴 것으로 추측하고, 마지막엔 그렇다고 확신하는 게 찌라시들의 특징이었다.
가짜 기사를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수법으로 있지도 않은 증인과 정보 제공자까지 동원해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것이 놈들의 주특기였다.
이번엔 그런 찌라시 기자들 위에 일본 정부와 우익이 있었다. 아영의 말처럼 일본이 사라질 때까지 지겹도록 우려먹을 게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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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