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6 침탈(侵奪) =========================================================================
286.
“일본이라면 모기 레드몬을 사용하는 게 일을 더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 이번 사건에선 제외하는 게 낫겠군요?”
“강력한 힘을 발휘할 도구를 버려둔 채 희생을 각오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 역시 단정할 순 없습니다.”
죽은 괴인들의 가슴을 갈라 눈으로 확인까지 했지만, 모기 레드몬을 찾을 수 없었다.
이빨에서 나온 독약도 지난번 지리산 테러범들이 사용한 자살 독약과는 성분이 크게 달랐다.
“이번에도 배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겠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마음 쓰지 마세요.”
고개를 푹 숙이고 서재를 나서는 김도형 대장과 강승원 국장의 어깨를 두드려 기운을 북돋워 주고 아정이네 옆집에 머무는 막심을 찾아 고마움을 표했다.
막심이 없었다면 저택에서도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마샤를 도와준 게 계기가 되어 엄청난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래서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고 하는 것 같다. 마샤를 도와줄 때만 해도 득보다 실이 많은 게 아닌지 걱정했는데, 옆에 딸려온 막심이 수백 명의 목숨을 살리며 엄청난 득이 됐다.
비상대기 중인 조은영과 미래2공대 대원들을 찾아 일일이 손을 잡아주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들도 5년은 기다려야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1년도 안 돼 큰 공을 세웠다.
이들 역시 막심처럼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도움 정도가 아니라 자기 몫의 수십 배를 해내며 무고한 생명 수천 명을 구했다.
“조금 후 아리와 아영이가 올 겁니다. 그때까지 미리 보낸 정화수로 대원들을 치료하며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요.”
“정말 다행입니다.”
“다 벙커 덕분이에요.”
“아닙니다. 은영씨와 2공대원들이 있었기에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진시와 시민을 지키기 위해 저희가 있는 거예요. 감사하다는 말은 너무 지나치세요.”
“그럼 고생했다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괜찮은 것 같네요.”
2공대원들의 환호를 뒤로 한 채 아정이네 뒷집에 사는 김지영(스기모토 유미), 이연희(이시하라 사토미), 황민영(타베 미카코)과 아정이네 앞집에 사는 이희은(슝다이린), 박은미(아이샹젠), 김선희(주위동), 최진숙(하탁언)을 만나 깊은 포옹과 찐한 키스로 마음을 대신했다.
“지영이는 다친 팔 괜찮아?”
“네, 조금 전 아영이랑 아리가 치료해줘서 이제 괜찮아요.”
“희은이는 다리 심하게 부었잖아?”
“저도 치료받아서 많이 좋아진 거예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당분간 하루에 한 차례씩 빼먹지 말고 계속 치료받아. 내버려두면 후유증이 오래갈 수 있어.”
“알았어요. 흐응~”
애교가 넘치는 지영을 품에 안고 등을 쓰다듬자 기분이 좋은지 야릇한 콧소리를 냈다.
집에 괴한이 침입하자 김지영·이연희·황민영·이희은·박은미·김선희·최진숙 7명 모두 쏜살같이 달려나가 침입자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저택에 침입한 다섯 명의 괴한 중 적어도 2명은 중급 능력자로 같은 중급 피지컬리스트 막심이 있었지만, 7명 모두 하급 능력자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물러서지 않고 악착같이 달려들어 침입자를 쫓아내고 금고를 지켜냈다.
“언제 이렇게 친해졌어? 만나기만 하면 싸웠잖아.”
“지영이가 절 구하려고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들다 팔을 심하게 다쳤어요.”
“희은이도 연희 구하려다 다리 다쳤어요. 선희도 그렇고, 은미도 그렇고 모두 서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어요.”
피가 튀는 참혹한 전장에서 우정이 피어난다고 일본과 중국으로 나뉘어 만나기만 하면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대더니 전투 한 번에 친구가 되어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제 돌아갈 조국도 없고, 이곳이 우리 집이자 미래인데, 도우며 친하게 지내야죠.”
“맞아요. 앞으로 우리 일곱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데, 우리끼리 싸울 이유가 없잖아요.”
“적당한 때가 되면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 그게 내 곁에 있는 것보다 백배는 행복해.”
“싫어요. 전 지홍씨 옆에 평생 있을 거예요.”
“저도요. 가라고 등 떠밀고 욕해도 절대 안 갈 거예요.”
“설마 재미 다 봤다고 쫓아내는 거 아니죠?”
“우리 지홍씨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해? 자기 여자는 평생 지켜주는 남자가 우리 지홍씨야.”
“내 보낸다고 하니까 그렇지.”
“평생 손 붙잡고 살자고 말한 게 1분도 안 지났다. 그만 좀 싸워!”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하지. 집 지키는 거 보면 버리긴 정말 아깝고, 그렇다고 평생 데리고 있기엔 눈치가 너무 보이고...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아침이 밝아오자 나진시 습격 소식이 대한민국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 등 세계로 퍼져나가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했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미래 레드포스 대원 37명이 죽고, 198명이 다친 내용과 2단계 정화수가 도난당한 일까지 자세하게 보도하며 세계의 모든 이목이 나진시로 집결됐다.
“클린턴 대통령과 옐친 대통령,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비롯해 각국 정상들이 심심한 위로의 말과 함께 범인 색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연락했어요.”
“어떻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거야? 범인이라도 잡아준대?”
“사냥 계획을 전면 취소하고, 정화수 병원을 닫을까봐 그게 걱정돼서 그러는 거겠죠.”
“이 상황에 레드몬을 잡아달라고? 사람들이 양심도 없는 거 아니야?”
“원래 남 팔 잘린 것보다 자기 손톱 밑에 낀 가시가 더 아픈 법이에요.”
“그거야 우리도 마찬가지긴 하지.”
“좋게 생각하세요. 그래도 바로 전화한 게 어디에요.”
“흐음...”
각국 정상들의 전화와 함께 이번 사태를 규탄하는 성명이 줄을 이었다. 클린턴 대통령과 옐친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나진시를 침입해 사람을 죽이고 정화수를 훔친 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자, 미국과 러시아에 정면 도전하는 일이라면 언성을 높였다.
이례적이라 할 만큼 강한 어조와 격한 단어를 써가며 두 정상이 성명을 발표하자, 하루 만에 223개국 정상이 모두 마이크를 들고 나진시를 침입한 괴한을 잡는데 협조하겠다면 목소리를 높였다.
사흘 후 죽은 미래 레드포스 대원 37명의 합동 영결식이 치러졌다. 조문객으로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앨 고어 미국 부통령 등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나진시를 찾은 가운데 영결식은 엄숙하게 치러졌다.
바닷가 바로 앞 신혜동에 급히 마련된 나진시 특별 묘지에 안장된 37명의 대원을 묻고 수백 대의 카메라가 바라보는 가운데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나진시와 나진 시민을 위해 끝까지 싸우다 목숨을 잃은 미래 레드포스 대원 37명이 이곳에 묻혔습니다. 제가 돌아가신 대원들과 가족들께 드릴 수 있는 말은 두 가지뿐입니다.”
“팍팍팍팍팍~~~”
밤하늘의 별처럼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ENG 카메라 100대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말을 이어갔다.
“첫 번째는 더욱 열심히 노력해 오늘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같은 피해가 다시는 없을 거라고 장담하진 못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시기와 모함, 외부의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는 도태되어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전 살아남기 위해, 여러분과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겁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끝까지 싸울 생각이라면 이곳에 남아 우리 것을 빼앗으려는 자들과 싸워주십시오.”
“팍팍팍팍팍~~~”
“두 번째는 꼭 지킬 수 있는 약속입니다. 이곳에 묻힌 서른일곱 명 전우를 죽인 범인을 기필코 찾아내 갈가리 찢어 죽이겠습니다. 그게 내일이 될지, 10년 후가 될지, 100년 후가 될지 알 순 없지만, 숨이 붙어 있는 한 끝까지 추적해 제 손으로 죽이겠습니다. 또한, 배후를 밝혀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이 무엇인지 죽을 때까지 느끼게 해주겠습니다. 이에 이 눈에 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고통의 백 배, 천 배로 갚아주겠습니다.”
살기를 풀풀 풍기며 피의 복수를 다짐하자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기자들도 겁에 질려 셔터를 누르지 못했고, 나진시 시민들도 처음 접한 으스스한 살기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만 명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으로 장례식이 끝났다. 태어나 카메라 앞에서 가장 긴 시간, 가장 긴 말을 한 오늘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고, 지독한 두려움을 느낀 참석자들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었다.
“제목 끝내주네.”
“왜?”
“피의 절규, 죽음의 맹세, 살인 예고, 피맺힌 복수 선언 등 신문들이 아주 자극적인 제목들로 도배했어.”
“내 목소리가 그렇게 컸어?”
“아니. 아주 조용히 얘기했어.”
“죽은 부하들의 복수를 다짐한 게 그렇게 자극적이었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미국도, 러시아도, 아랍도 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럼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으음... 오빠의 살벌한 모습에 뜨악해서 그런가?”
“내가 그렇게 살벌했어?”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 화난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이 참았으니까.”
“그렇지?”
“당연하지. 고상한 사람들은 조용히 처리해도 될 일을 난리를 쳤다고 말하겠지만, 우리가 고상한 사람도 아니고, 격식에 얽매이는 사람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사람이 화가 나면 화를 내야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하는 게 정상이야? 그거야말로 비정상이지. 그게 바로 겉과 속이 다른 거잖아.”
내가 은비를 죽도록 사랑하는 건 나를 죽도록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꾸미지 않고 자기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대체로 자신과 닮은 성격을 싫어했다. 특히 나처럼 소심하고 뒤끝이 강하며, 음흉한 사람은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인지 아내들은 나와는 반대 성격으로 밝고 건강하고 대범했다. 남자와 여자 성격이 정반대라 보기에 안 좋을 수도 있지만, 남자가 꼭 대범할 필요는 없었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규정하는 것도 결국 남녀불평등이자 여자들이 남자들을 자기들 입맛대로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부렁이었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오빠 생각대로 쭉 밀고 나가. 우리가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줄 테니까. 알았지?”
“알았어.”
“누구든 우리 오빠에게 이래라 저래라만 해봐.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내 손에 다 죽을 줄 알아~”
‘누가 뭐라 하든 너희만 좋으면 돼. 남들 시선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어. 언제부터 그들이 날 걱정했다고.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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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