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1 조약파기(條約破棄) =========================================================================
281. 조약파기(條約破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정부는 뮤턴트래빗을 처리해주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토지를 제공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정확히 조건이 뭔데?”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레드몬을 잡아주면 사체가격의 절반에 해당하는 땅을 무료로 주겠다고 했어요.”
뮤턴트래빗은 신장 1.2m, 무게 80kg, 전투력 400대 초반으로 일반적인 레드래빗보다 크기와 무게, 전투력 모두 월등히 앞섰다.
레드래빗은 20~30마리씩 모여 사는데 반해 뮤턴트래빗은 번식력이 우수해 평균 100마리, 많을 경우 500마리 이상도 무리를 지었다.
또한, 공격 성향도 매우 커 레드래빗이 사람과 레드몬을 최대한 피하는 것과 달리 뮤턴트래빗은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온 생명체는 무조건 적으로 인식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크기가 큰 만큼 가죽과 사체 가격도 마리당 600만 원 선인 레드래빗(멧토끼)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1,000만 원 정도에 거래돼, 10만 마리면 1조 원으로 이를 달러로 환산하면 12억 3,500만 불(810원/1달러)이었다.
“10만 마리 잡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100억 마리나 되는데, 겨우 10만 마리 잡아봐야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어? 커다란 쌀독에서 한 숟가락 퍼내는 것과 같을 텐데.”
“100억 마리는 변종 토끼 전체를 말한 숫자고, 레드몬으로 변이한 뮤턴트래빗은 1%대인 1억 마리 정도에요.”
“지금 1억 마리라도 새끼 까면 1년 안에 열 배로 불어나잖아.”
“뮤턴트래빗의 천적인 딩고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독충·독사·캥거루·왈라비 등 다른 레드몬과도 영역 다툼이 수시로 벌어져 급격한 증가는 없을 거예요. 특히 먹이 문제로 수가 무작정 늘어나지 않아 현재 1억 마리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한계로 보고 있어요.”
“그렇다 해도 10만 마리는 도움이 안 되지. 1,000만 마리씩 잡으면 모를까.”
“호주의 능력자는 총 2,009명으로 2,000만 명도 안 되는 인구수에 비하면 적은 수는 아니지만, 면적이 769만 2,208㎢로 세계에서 6번째 큰 나라라는 것을 생각하면 형편없이 적은 숫자에요. 이 숫자론 도시만 방어하기도 힘에 부치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농가에 피해를 많이 주는 뮤턴트래빗을 골라잡아 피해를 최대한 줄이며, 그동안 능력자를 양성하고, 뮤턴트래빗을 사냥할 효율적인 무기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에요.”
“어떻게 생각해?”
“농경지 확보 차원에선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단, 그럴만한 시간이 있느냐가 문제죠.”
“일정 조정은 네 몫이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최소 열흘에서 최대 한 달을 호주에서 지내야 하니까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담당자가 왜 담당자야? 알아서 판단하라고 담당자잖아. 그거 판단하라고 단장자리에 앉혀 놨는데, 일일이 물어보면 어떻게 해?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일 물어보면 평생 집에서 밥하고 빨래만 시킨다. 알았어?”
“알았어요.”
사냥 일정을 잡는 건 미래 레드몬 사냥팀 총괄지원단장인 한숙의 몫이었다. 나는 한숙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미래 레드몬 사냥팀 대장이었지, 어떤 레드몬을 사냥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도저히 혼자 판단할 수 없는 일은 내가 결정했다. 레드몬의 등급과 종류, 이해 당사국 간의 관계는 공대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 한숙 혼자서 판단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정이 좀 빡빡하다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물어보는 건 결정권자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오빠! 나도 예쁜 딩고 구해줘. 빨리~”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아.”
“빨리 구해줘~”
“아기처럼 왜 이래?”
“나도 갖고 싶단 말이야! 제발~”
목에 매달려 아기처럼 투정을 부리는 은비를 달래느라 온종일 진을 뺐다. A급 엘리트 레드몬 딩고를 잡고 나온 레드주얼은 구미호, 현무에 이어 세 번째 레드몬 소환주얼로 죽은 녀석을 그대로 빼닮은 황색 딩고였다.
3cm 크기의 레드주얼 속 모습은 딩고가 즐겁게 초원을 뛰어다니는 모습이라 한껏 기대를 품고 포스를 주입하자 강한 반발력이 생겼다.
탐욕에 젖어 눈을 빛내는 은비에게 재빨리 넘겨주자 손을 부들부들 떨며 포스를 주입했다.
하지만 은비도 주인이 아니었는지, 딩고의 레드주얼은 돌고 돌아 상아의 품으로 들어갔다.
은비의 실망하는 모습에 상아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이건 양보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상아가 은비에게 양보해도 딩고를 소환할 수 없어 은비와 상성이 맞는 소환주얼을 구하는 길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손바닥만 한 20cm 크기의 딩고는 구미호, 현무와 같은 사용자의 분신으로 구미호처럼 날순 없지만, 매우 빠르게 이동하며 최대 3km까지 정찰할 수 있었다.
공격 형태는 근접형으로 레드몬 딩고가 쓰던 중력을 이용한 압사 스킬을 사용해 반경 10m 이내의 적을 한꺼번에 공격했다.
공격력도 상당히 우수해 중급 레드몬은 중력 반경 안에 들어오면 한 방에 목숨을 빼앗았고, C급 엘리트 레드몬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줬다.
“은비 언니에게 정말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딩고, 언니가 정말 갖고 싶어 했어요.”
“이제 괜찮아졌어. 기분 풀어졌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요.”
“줄 수도 없지만, 준다고 해도 은비가 안 받아. 가끔 내게 어리광을 부려서 그렇지 동생들에게 심통을 부리거나 그런 적 없잖아.”
“저도 알고 있어요. 언니가 정말 좋은 사람이란 거. 우리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주고, 동생들도 잘 보살피고, 정도 많다는 거. 그래서 더욱 미안해요.”
“선후만 있을 뿐 결국 한 마리씩 다 가지게 돼. 그러니 마음 쓸 거 없어.”
“후유~ 알았어요.”
은비처럼 풀이 죽은 상아를 품에 안고 한참을 달랬다. 풍산개를 길들여 한 마리씩 나눠준 것처럼 소환주얼도 언젠가는 한 마리씩 갖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빠진 아내들은 먼저 가진 사람은 죄를 짓는 기분이라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 했고, 못 가진 사람은 가진 언니와 동생이 신경 쓸까봐 또 조심하느라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만석꾼에겐 만 가지 걱정이 있다고, 너무 착해도 걱정이 끝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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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1일
[올 2월 5일 체결한 벳푸 조약은 수십 년간 지속한 일본과 한국의 마찰을 종식하기 위해 우리 일본이 큰 결단을 내린 조치로, 우리 땅 다케시마를 아무런 조건 없이 한국에 내주고,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사들인 문화재를 반환하고, 수천 년간 일본해로 표기된 지명을 동해와 함께 공동 표기하고, 한국이 원하던 배타적 경제수역까지 인정하는 등 온 힘을 다해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발전하고자 노력한 증거이자 결정체였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또 저러지?”
“뭔가 중대한 발표를 하려나 본대요.”
“중대 발표?”
“네,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가 벳푸 문제로 기자회견을 하는 건 처음이잖아요.”
“정말 그러네.”
[하지만 한국의 미래 레드몬 사냥팀은 자신들을 위해 일한 자랑스러운 일본 병사들을 욕보이고, 공격해 살해하는 등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도 미안하다는 단 한 마디의 사과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일본은 국제사회를 통해 대화로써 이 문제를 풀고 벳푸 조약을 성실히 이행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입술에 침은 바르고 거짓말이라도 하든지? 양심도 없는 새끼!”
“반들반들한데요.”
“아영이 누구 편?”
“저야 언제나 은비 언니 편이죠. 헤헤헤헤~”
[피나는 노력에도 박지홍과 미래 레드몬은 일본이 자신을 공격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일관하며, 세계를 이끌어가는 정직한 일본을 수도 없이 기만하고 욕보였습니다. 이제 세계를 선도하는 바른 일본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에 따라 7월 1일 10:00시부로 벳푸 조약을 파기하며, 살인자 박지홍과 레드몬 사냥팀 전원을 일본 정부에 넘길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우리 땅 다케시마에서 즉시 철수할 것, 강탈해간 일본 문화재를 다시 돌려줄 것 역시 강력히 요구합니다.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피해는 그 책임이 한국 정부와 미래 레드몬에 있음을 명확히 밝히는 바입니다.]
“생각보다 오래 끌었네.”
“그러게요. 전 사건 터지고 바로 조약 파기할 거라 생각했어요.”
”나도.“
[... 이는 일본만이 아닌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의 요구임을 한국 정부와 미래 레드몬 박지홍은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한 채 도망치듯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벳푸 조약 파기는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파기한 것이나 다름없어 뉴스거리가 될 것도 없었다.
일본 정부가 하루가 멀다고 언론 플레이로 지랄을 떨어대는 통에 코흘리개 동네 꼬맹이들도 협약이 이미 파기됐다고 생각할 만큼 싫증 난 소재였다.
일본이 벳푸 조약을 파기하자 우리 정부가 유감이라는 짧고 굵은 대단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것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국민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지 미온적인 정부 태도에 단단히 화가 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비난을 퍼부었다.
종전처럼 일본이 우리만 비난했다면 할배들까지 화를 내진 않았을 텐데,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우기며 당장 돌려달라고 하자 팥으로 메주를 써도 정부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던 할배들도 뿔이 나 오랜만에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과 러시아, 영국, 인도, 브라질, 독일, 터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필리핀 등이 일본을 아주 강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모두 우리 도움을 받은 국가들로 내게 잘 보이려는 속셈도 있었지만, 베푼 게 생각보다 많았는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우리 도움을 받은 시민들이 일장기를 태우며 거리로 몰려나와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일본이 모기 레드몬의 활용방법을 찾은 게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아니면 상급 능력자가 나왔거나.”
“상급 능력자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 최정준 박사님도 생명력의 소모를 줄이는 선에서 모기 레드몬을 활용하는 방법과 레드몬에 모기 레드몬을 투입해 사용하는 방법의 중 하나라고 생각하셔.”
“나도 최정준 박사님의 생각과 같아. 그렇다고 일말의 가능성마저 배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로스차일드도 여덟 명이나 되는 상급 능력자를 보유했는데, 일본은 없다고 단정 지을 순 없잖아.”
“중급 능력자가 승급해 상급 능력자가 나왔을 수도 있고, 새로 생겨날 수도 있지. 그러나 상급 능력자는 아니라고 생각해. 일본이 가장 억울해하고 배 아파하는 게 지홍이 네가 한국에 태어난 거야. 발에 낀 때만도 못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에 상급 능력자가 있다는 걸 일본은 큰 치욕으로 여겨. 그래서 상급 직전의 능력자가 있다고 틈만 나면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는 거야. 그런 일본이 상급 능력자를 얻고도 입을 다문다고? 절대 그러진 않을 거야.”
“소연이 네 생각이 맞는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래도 100%라고 단정 짓진 말자. 그러다 뒤통수 맞으면 대책이 없으니까.”
“알았어. 유념할게.”
6월 25일 호주를 떠나 거의 40일 만에 집에 돌아와 산더미처럼 밀린 일을 간신히 처리하고, 즐거운 주말을 보내려 하자 일본이 휴식을 방해했다.
벳푸 조약을 파기한 건 신경 쓸 것도 없지만, 일본이 자신 있게 조약을 파기한 게 문제였다. 그건 엘리트 레드몬이 나타나도 충분히 잡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언제 A급 엘리트 레드몬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B급 엘리트 레드몬도 벌벌 떨던 일본이 아무런 대안도 없이 우리와 완전히 결별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조약이 파기된 것이나 다름없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끝나지 않은 것처럼 우리에게 이익만 된다면 다시 도와줄 수도 있었다.
엄청난 큰 이익이 아니면 도와줄 가능성이 제로 가깝지만, 그래도 일말의 여지가 남은 사실이었다.
일본도 그걸 알기에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면서도 벳푸조약을 파기하지 않은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