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1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들 =========================================================================
271.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서초구 강남역 사거리에 자리 잡은 오성 빌딩은 45층으로 1985년 완공한 여의도 63빌딩보다 조금 낮지만, 완공한 지 이제 겨우 2년밖에 안 된 최신식 건물로 오성 그룹 본사였다.
건물만 최고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인재들도 모두 해외 명문대, 국내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뛰어난 인재였다.
최근 미래 레드몬에 밀려 위상이 많이 하락했지만, 5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대한민국 기업 순위 1위에, 세계기업 순위도 20위 안에 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오성빌딩의 최상층 회의실에 재계 1위 오성 그룹 이병석 회장을 필두로 2위 기영 김유종 회장, 4위 광명 이완영 회장, 5위 대유 문일권 회장, 6위 현주 정성수 회장, 7위 JJ 김점백 회장, 8위 한해 최동만 회장, 9위 조한 박과경 회장, 10위 아삼 천교삼 회장까지 재계를 주무르는 10대 재벌 중 9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맞은편엔 자유당 총재 김정무 의원, 금송무 회장이 식물인간이 된 후 황국신민회를 맡은 자유당 라운경 의원, 최문석 한국포스협회 협회장 그리고 조선애국회 이지웅 회장이 앉아 있었다.
“여동생이 놈의 마누라인데 오겠습니까? 우리끼리 시작하죠.”
“이완영 회장 말이 맞습니다. 동생을 노리개로 바치고 나진시 공사를 모두 따냈는데, 창피해서 얼굴을 내밀 수나 있겠습니까?”
“박지홍이 사냥한 레드몬의 절반 이상이 KM 레드몬으로 넘어간다고 하더군요. 레드몬으로 벌고, 앞으로 미래 레드몬이 발주하는 공사도 모두 KM 건설이 도맡아 하게 됐으니 여동생은 제대로 팔아먹은 거죠.”
“미련 곰탱이 같은 정근욱 회장이 그런 비상한 머리를 가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크하하하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제대로 한 건 한 거죠. 하하하하~”
“맞습니다. 크하하하하~”
광명 그룹 이완영 회장과 현주 그룹 정성수 회장이 주거니 받거니 정근욱과 정한숙, 박지홍을 씹어대자 여기저기서 통쾌한 웃음이 쏟아졌다.
평소 근엄한 척, 고상한 척, 있는 척은 다 하던 재벌 총수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아이처럼 깔깔대는 모습은 귀엽기보단 추잡하고 역겹기만 했다.
“오늘 모인 이유는 미래 레드몬 박지홍 회장의 공격적인 기업 인수에 공동대응하기 위해서입니다. 불필요한 사담은 최대한 자제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모임의 주체인 오성 그룹 이병석 회장이 자리를 마련한 취지를 이야기하자 신명나게 씹어대던 회장들의 이마에 깊은 골이 팼다.
“현재 주가 총액이 141조 원이 조금 넘어요. 이 중 80조 원을 미래 박지홍 회장이 갖고 있어요.”
“고아 놈이 돈 독이 제대로 올랐군.”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싹 쓸어 담을 기세입니다.”
“소·돼지나 때려잡는 백정 놈이 돈 좀 벌었다고 나대는 꼴 하고는...”
“경영권 방어용으로 기업이 가진 주식과 정부가 가진 주식을 빼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미래 레드몬이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어요. 지지난달부터 100대 기업을 뺀 나머지 주식을 시장에 풀고 있지만, 100대 기업 주식은 계속 사들이고 있어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요.”
“나 의원님! 몇 개나 넘어갔습니까?”
“5월 1일부로 10대 기업을 뺀 100대 기업 중 47개가 넘어갔고, 19개도 경영권이 넘어가기 직전이에요.”
“허허허~ 남은 게 별로 없군요.”
“이러다 대한민국이 박지홍의 개인 기업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기업이 넘어간 것도 문제지만, 전문 경영인으로 회사 경영주가 바뀌며 회계감사를 시행해 47개 사주일가 전원이 검찰 고발됐고, 절반은 이미 구속돼 재판 중이에요. 이보다 더 심각한 건 10대 기업 중 세 곳의 지분도 40% 가까이 확보했고, 나머지 일곱 곳도 20~30%의 주식을 갖고 있어요. 40%면 박지홍 회장에게 회사가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지만, 다행히 정부와 해외 펀드가 기업 손을 들어줘 간신히 버티고 있어요.”
“흐음~”
라운경 의원이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 재벌 총수 9명의 얼굴이 붉다 못해 검게 썩어들어갔다.
10대 재벌 중 미래 레드몬이 40% 가까이 지분을 확보한 곳은 8위 한해 그룹과 9위 조한 그룹, 10위 아삼 그룹으로 우호 지분 중 단 한 곳만 넘어가도 회사를 잃게 될 처지였다.
회사를 잃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그동안 빼돌린 회사자금이 들통 날 경우 쇠고랑을 찬 채 콩밥을 먹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스위스 은행과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많은 돈을 국외에 은닉해 놓아 법망만 잘 피하면 죽을 때까지 사는 건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졸지에 막강한 그룹 회장 자리에서 쫓겨나 힘없는 늙은이로 살다 죽을 걸 생각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회사가 넘어가는 건 막아야 했다.
“언론과 검찰, 공정거래위원회를 이용하면 놈을 거꾸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언론은 그쪽도 만만치가 않아 승산이 거의 없고, 지난번 주가를 왕창 떨어뜨렸다가 다시 사들인 적이 있으니 자금력을 이용한 주가 조작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것도 어려울 전망이에요. 공정거래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주식을 자주 사고팔아 시세차액을 얻은 게 아니고, 루머를 이용해 주가를 조작한 것도 아니라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보긴 어렵다는 견해였어요.”
“어렵든 쉽든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무조건 고발해 박지홍이 나쁜 놈이라는 걸 국민에게 알려 분위기를 바꿔야 합니다.”
“맞습니다. 죄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놈에게 덮어씌워야 합니다. 그렇게라도 놈을 잡아야 우리가 삽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닙니다.”
“암요. 잘 것 못 자고, 먹을 것 못 먹고, 피땀 흘려 일군 회사입니다. 레드몬 몇 마리 잡아 벼락부자가 된 놈에게 금쪽같은 내 회사를 넘길 순 없습니다.”
회사가 넘어가기 직전인 한해 그룹 최동만 회장과 조한 그룹 박과경 회장, 아삼 그룹 천교삼 회장이 침을 튀기며 박지홍을 잡아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자유당은 회장님들의 그런 고충을 알고 박지홍 회장의 독주를 막기 위해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부당함을 연일 성토하고 있지만, 정부는 박지홍 회장의 위상을 두려워해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이에요.”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인데, 어찌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만 특혜를 준단 말입니까? 김XX 대통령은 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걸 정녕 모른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우리처럼 평생 법을 지키고 산 사람들 덕분에 이 나라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라도 먹고 사는 겁니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인지도 모를 놈 하나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있습니다. 이런 놈을 그냥 둬서 되겠습니까?”
“근본도 모르는 놈에게 나라를 빼앗길 순 없습니다. 모두가 단결해 놈의 야욕을 막아야 합니다.”
“대책을 마련하자고 모인 자리지 박지홍 회장을 성토하자고 모인 자리가 아닙니다. 자제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면목없습니다. 회장님!”
10대 재벌 안에도 위아래는 확실해 이병석 회장이 조용히 한마디 하자 한해 최동만 회장과 조한 박과경 회장, 아삼 천교삼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한 자세로 사과했다.
기업 순위 1위 오성 그룹은 대한민국에서 독보적인 회사로 2위 기영 그룹과도 시가총액이 2배 이상 차이 났다.
3위 KM 그룹과는 5배 이상 차이가 났고, 10위 아삼 그룹은 10배 이상 차이 났다. 계열사까지 합치면 아삼과는 100배 차이로 오성 그룹이 기침만 해도 아삼 그룹은 몸살로 쓰려져 죽을 수도 있었다.
“법으로도, 펜으로도 안 되면 결국 돈밖에 남은 게 없군요.”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지난번 일로 부동산도 별로 남아있지 않고요.”
“은행 역시 대출에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더는 자금을 구할 곳이 없습니다.”
“돈을 은닉하는 건 이럴 때를 대비해 은닉하는 겁니다. 감춰둔 재산을 꺼내세요. 그런 노력도 없이 어찌 기업을 지키려 하십니까?”
“어험!”
“여러분이 살을 베고 뼈를 자르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자세로 재산을 내놓으면 조선애국회와 황국신민회도 여러분을 끝까지 돕겠습니다.”
“정말 그렇게만 하면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럼요. 돕는 정도가 아니라 박지홍의 마수에서 영원히 구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조용히 듣고 있던 조선애국회 이지웅 회장이 자금을 지원한다고 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해, 조한, 아삼 그룹은 구원의 빛을 본 것처럼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형편이 나은 나머지 그룹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특히 기영 그룹 김유종 회장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기영 그룹은 친미적 성향이 강했지만, 그래도 공정한 편에 속하는 기업으로 KM 그룹과 함께 협력업체와 가장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업 정신도 공평과 올바름을 뜻하는 공정(公正)이었고, 경영방식도 미국의 합리주의를 고수해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조선애국회와 황국신민회 자금이면 모두 일본 자금 아닙니까?”
“돈이 다 같은 돈이지 일본이 어디 있고? 미국이 어디 있습니까?”
“돈은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값어치도, 쓰임새도 달라집니다.”
“기영 그룹도 미국에서 꽤 많은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아는데요. 아닙니까?”
“투자와 돈을 빌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투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같은 곳을 바라보며 동지적 입장에서 나아가는 것이고, 돈을 빌리는 것은 빚을 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중 은행 돈 안 빌리신 분이 있습니까? 다들 은행 돈 빌려서 사업하고 있잖습니까? 돈 빌리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십니까?”
“은행은 국가가 정한 이율에 따라 돈을 빌려주고 법률에 따라 회수합니다. 하지만 조선애국회와 황국신민회에서 운영하는 제3금융권 다시 말해 대부업체는 엄청난 고금리 이자에,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폭력도 행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말이 틀렸습니까?”
조선애국회의 전신은 송병준과 독립협회 출신 윤시병, 유학주, 동학교 이용구 등이 조직한 대표적 친일 단체 일진회(一進會)였다.
일제 군부와 통감부 명령에 따라 대한제국 침략과 병탄을 위한 앞잡이 노릇을 열성적으로 한 단체로 대한제국 병탄과 함께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에 의해 해산됐다.
그렇게 사라졌던 일진회를 1975년 이지웅 회장이 일본에서 자금을 받아 다시 조직했고, 1980년 조선애국회로 개칭했다.
황국신민회와 함께 대표적인 친일단체로 일본을 위해 일할 똑똑한(?) 젊은이들을 포섭하고, 교육하는 일부터 일본에서 들여온 자금을 대부업체를 통해 불리며 서민을 쥐어짜는 일까지 대한민국을 망치는 일이라면 빼놓지 않고 앞장서는 매국 단체였다.
그런 단체의 수장이 10대 재벌 총수와 나란 앉아 있다는 건 그만큼 큰돈을 주무른다는 것으로 옆에 앉은 자유당 총재 김정무를 5선 의원이자 총재로 만든 사람이 이지웅 회장이었다.
“이지웅 회장님이 이렇듯 조국을 위해 나서는데 저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돕겠습니다.”
“협회장님도 고생하시는 회장님들을 위한 쌈짓돈을 내놓으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무엇으로 돕겠다는 것입니까?”
“박지홍 회장이 더 큰 힘을 가질 수 없게 능력자와 잠능자들을 단속하겠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박지홍 회장도 아폴로, 링컨, 페가수스 같은 세계적 공대를 만들고 싶은지 작년 10월 미래 2공대를 창설했습니다. 능력이 형편없어 거들떠보지도 않는 저급한 놈들이지만, 30명을 뽑았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작년보다 더 많은 수를 뽑는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지원자 수준이 작년하고 크게 다를 게 없겠지만, 그래도 모이면 세력이 불어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올해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단 한 명도 뽑을 수 없게 철저히 단속할 계획입니다.”
“박지홍의 세력이 커질수록 여기 계신 회장님들이 곤란을 겪게 되니 협회장님의 책임이 아주 막중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그마한 힘을 믿고 까불다가 제 명에 못살고 죽는 놈들을 백사장 모래알만큼 많이 봤습니다. 놈도 다른 놈들처럼 까불다 얼마 못 가 사라질 겁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당연히 그렇게 되겠죠.”
“박지홍을 견제하는 동시에 회장님들에겐 최고의 인재를 왕창 몰아드리겠습니다. 이번 위기만 넘기시면 앞으로 탄탄대로가 열리는 겁니다. 하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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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