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6 코디악 베어(Kodiak Bear) =========================================================================
266. 코디악 베어(Kodiak Bear)
시내에서 10km 떨어진 하바롭스크 공항에 알렉산드르 니콜라에비치 소콜로프 하바롭스크 시장과 이고르 푸쉬카료프 블라디보스토크 시장, 세르게이 쇼이구 콤소몰스크나아무레 시장, 유리 니콜라예비치 야쿠보프(Yuri N. Yakubov) 러시아 극동군관구 사령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특사 등 100여 명이 넘는 극동 러시아의 주요 인사가 마중 나왔다.
이중 유리 니콜라예비치 야쿠보프 러시아 극동군관구 사령관은 옆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고 자상한 외모지만, 수십만 장병을 손가락 하나로 지휘하는 극동지방의 최고 실세이자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수족 중 하나였다.
극동 군관구는 지상군만 2개 군단으로 전차 3,900대, 장갑차 6,400대, 야포와 다연장로켓 발사기·박격포 3,000문, 공격헬기 120대, 스커드·SS-21 스카랩 지대지미사일 54기를 보유했다.
또한, 키로프 미사일 순양함 1척, 슬라바급 미사일 순양함 1척, 소브레메누이급 4척, 우달로이급 4척, 미사일함 14척, 소형대잠함 5척, 정찰함 6척, 대형양륙함 5척, 핵잠수함 20척, 디젤 잠수함 4척 등을 보유해 대한민국쯤은 순식간에 찜 쪄 먹을 화력을 보유했다.
“러시아의 영원한 동지이자 옐친 각하의 친구이신 박지홍 회장님과 사모님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들과 가볍게 인사를 끝내고 유리 니콜라예비치 야쿠보프 사령관을 숙소로 불렀다.
야쿠보프 사령관은 나진시를 지킬 병사들을 교육하는 중요한 사람으로 시장들처럼 소홀하게 대할 순 없었다.
키로프급 미사일 순양함과 우달로이급 구축함 승무원 교육, KA-50 호컴 헬기 조종사 교육, S-300P 지대공 방공미사일과 방공레이더 교육까지 모두 야쿠보프 사령관의 관할 하에 있었다.
또한, 무기 전달도 극동군관구를 통해 들어오고 있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서 좋을 게 없었다.
“앞으로도 사령관님의 도움이 절실해요. 아시죠?”
“도움이라니요. 그런 말씀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편하게 명령만 내리시면 됩니다.”
“그 말 진짜죠?”
“그럼요. 어느 안전이라고 농담을 하겠습니까? 언제든 전화만 주십시오. 원하는 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야쿠보프 사령관님은 역시 멋진 남자라 그런지 말이 잘 통해요.”
“저도 한숙님과는 손발이 잘 맞아 일하기가 좋습니다. 하하하하~”
“이거 선물이니까 빨리 드세요. 알약 30알도 다른 사람 주지 말고 하루에 한 알씩 혼자만 드세요. 혈액 순환에 도움을 줘 몸이 편안해질 거예요.”
“혹시... 터키에서 나눠주신 정화수와 은행나무 알약입니까?”
“맞아요.”
“이런 귀한 걸... 감사합니다.”
“터키 참전용사들에게 준건 2단계 정화수고, 이건 야쿠보프 사령관님만 특별히 드리는 3단계 정화수에요. 죽은 세포도 되살리고 웬만한 질병은 이거 한 병이면 끝이에요.”
“헉! 사.사.삼단계요?”
“3단계 정화수는 아직 아는 사람이 없어요. 절대 소문내면 안 돼요. 아셨죠?”
“그럼요. 옐친 각하도 구경하지 못한 귀한 걸 제가 먹었다고 소문났다간 제 목이 성하겠습니까? 당장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야쿠보프 사령관님이 물러난다고 해도 저희가 놓아드리지 않을 거니까요.”
“가.가.감사합니다.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회장님과 사모님들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은 됐고, 지금처럼만 해주시면 돼요. 아셨죠?”
“그럼요. 알다마다요.”
한숙이 끝까지 신분을 보장한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야쿠보프 사령관의 입이 하마만큼 커졌다.
극동군관구 사령관이 대단한 위치이긴 하지만, 공산국가인 러시아에선 하루아침에 반역자로 몰려 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
숙청이란 용어가 민주주의 국가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지만, 독재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에선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피바람을 일으키는 소름 끼치는 말이었다.
물러나지 않게 해준다는 말은 그런 숙청을 막아준다는 것으로 목숨을 여벌로 하나 챙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하러 그렇게 공을 들여? 맘에 안 들면 바꾸면 되지.”
“사람 바뀌면 귀찮은 일만 생겨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가?”
“그럼요. 현장에서 뛰는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게 담당자 바뀌는 거예요. 좋은 사람으로 바뀌면 모를까 이상한 놈으로 바뀌면 미치고 팔짝 뛰어요. 환장한다고요.”
“야쿠보프 사령관은 어때?”
“항상 깍듯하게 예의를 다하고, 일 처리도 아주 빨라 부패가 만연한 러시아에서 이런 뛰어난 인재를 구하는 거 쉽지 않아요.”
“뒷돈이 든다고 했잖아.”
“러시아 사정이 워낙 안 좋아 사령관도 월급을 제때 못 받는 실정이에요. 적당히 찔러주고 중요한 정보도 빼내고, 필요한 무기도 바로바로 조달하고, 돈값은 열 배 이상해요.”
야쿠보프 사령관을 바꾸는 일은 전화 한 통이면 된다. 옐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에 안 드니 바꿔달라고 하면 야쿠보프 사령관은 그걸로 끝이었다.
러시아의 어려운 경제를 해결하기 위해 옐친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고 전화를 걸어 더 많은 무기를 구매해 달라고 부탁하고, 레드몬 사냥과 무역 그리고 직접 투자까지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성 하나 쳐내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여반장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코디악 베어는 현재 하바롭스크에서 동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아무르 강변 나나이족 마을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사진은 어제 항공기에서 촬영한 코디악 베어의 모습입니다.”
“나나이족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됐나요?”
“39명이 죽고 마을을 탈출한 121명은 하바롭스크에 머물고 있습니다.”
“코디악 베어가 언제부터 나타났죠?”
“5년 전 사하 공화국 북동부에 있는 스레드네콜림스크 근방에서 처음 발견됐습니다. 먹이를 따라 차츰 남하해 4년 전 야쿠츠크까지 진출했고, 3년 전 콤소몰스크나아무레 근방까지 내려와 한바탕 소란이 일었습니다.”
“도시에 들어오려 했나요?”
“다행히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 진입하기 직전 블러디 나이트들이 놈을 몰아냈습니다. 당시 극동지역에 상주한 블러디 나이트 1,000명 중 절반이 동원돼 코디악 베어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3명이 사망하고 52명이 다치는 사투 끝에 코디악 베어를 사지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C급 엘리트 레드몬 시베리아호랑이가 뛰어드는 바람에 아깝게 놓치고 말았습니다.”
“억세게 운이 좋은 녀석이네요.”
“도망친 코디악 베어가 다시 나타난 건 작년 4월 경 입니다. 크게 다쳐 도망쳤던 때보다 크기가 1.5배나 커진 상태로, 불그스름하던 털도 피처럼 붉게 변했습니다. 크기와 상태를 봤을 때 전투 후 C급에서 B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성장한 것으로 예측합니다.”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사람을 잡아먹었나요?”
“다치기 전까진 물고기를 주로 잡아먹는 평범한 레드몬이었습니다. 전투 후 인간에 대한 분노가 놈을 바꿔 놓으며 사람을 잡아먹게 했습니다.”
“B급으로 성장한 후 토벌이 중단됐나요?”
“아닙니다. 그 후에도 여덟 차례나 블러디 나이트를 동원해 놈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냄새를 맡고 북쪽으로 도망쳤다가 블러디 나이트들이 돌아가면 다시 돌아와 마을과 농장을 급습했습니다.”
“아주 지능적인 녀석이네요.”
“영악하게 싸움을 피하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야쿠보프 사령관의 부관 예브게니 치가노프 대령을 통해 코디악 베어의 과거 이력을 알게 됐다.
사연 없는 죽음이 없다고 살인곰 코디악 베어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긴 사연이 있었다.
무슨 이유로 도시에 접근했는지 알 순 없지만, 놈은 그 일로 죽음 직전까지 몰리며 인간과 깊은 원한을 맺었다.
죽음을 뛰어넘고 B급으로 진화한 코디악 베어가 인간을 잡아먹는 건 나름대로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쉬어 칸처럼 인간의 처지에선 용서받을 수 없었다.
착하든 착하지 않던, 이롭든 이롭지 않던, 레드몬에겐 딱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풍산개처럼 내 부하가 되든가 아니면 죽든가 길은 딱 두 개였다.
“북쪽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요. 속도는 대략 100km 정도에요.”
“거리가 10km나 되는데, 헬기 소리를 들어?”
“먹이를 먹다가 갑자기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헬기 소리를 들은 게 확실해요.”
“오늘 뜀박질 좀 해야겠네. 주변에 신경 써야 할 레드몬 있어?”
“중급 시베리아호랑이가 10km 남쪽에 한 마리, 서쪽 8km 지점에 한 마리 있어요. 9km 동북쪽으로 레드울프가 30마리가 있고, 14km 떨어진 서쪽 아무르 강가에 하급 순록 무리가 있어요. 그 중엔 C급 엘리트 레드몬도 한 마리 있고요.”
4월 하바롭스크의 아침 기온은 쌀쌀한 영상 4~5도 정도로 후 불면 하얀 입김이 나왔고, 낮 기온은 15~17도로 활동하기에 아주 적당했다.
다른 말로하면 뜀박질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날씨로 오늘은 원 없이 뛴 날로 기억될 것 같았다.
“아리와 소희는 소연, 은비하고 같이 타. 풍연과 풍비가 힘이 좋아 둘이 타도 달리는데 별문제 없을 거야.”
“네.”
“알았어.”
“동쪽으로 우회한 다음 바람을 맞으며 서쪽으로 다가갈 거야. 쉬지 않고 빠르게 달릴 거니까 꽉 붙잡고 있어. 떨어지면 버리고 간다.”
“호호호호~”
풍산개들이 경주마처럼 울퉁불퉁한 숲을 질주하자 매달리기도 힘겨운지 아내들의 모습이 위태위태했다.
출발할 때 호호거리던 웃음기가 싹 빠진 모습으로 힘이 약한 서인과 소희가 가장 힘들어했다.
특급 안장도 있고, 타는 연습도 많이 했고, 산에서도 종종 타고 다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장시간 전력으로 달리는 것과 상황이 많이 다른지 모두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천천히 달려가기엔 달아나는 코디악 베어의 속도가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놈이 비스듬히 동쪽으로 움직여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속도를 늦추면 거리가 벌어져 놈을 놓칠 수도 있어 힘들어도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면 풍산개 타는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어. 너무 편하게만 탄 것 같아. 엉덩이에 굳은살이 박일 만큼 돌려야지 이대론 안 되겠어. 이런! 엉덩이에 굳은살 박이면 나만 손해네. 젠장!’
쉬지 않고 3시간을 달리자 놈과의 거리가 3km로 줄어들었다. 강대한 육체를 지닌 B급 엘리트 레드몬도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건 쉽지 않은지 1시간이 지나며 속도가 조금씩 떨어져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다.
힘들긴 풍산개들도 마찬가지로 혀를 길게 빼물고 헉헉대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험난한 숲과 산을 등에 사람과 짐까지 싣고 달렸으니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나 역시 온 힘을 다해 달려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연리지주얼과 정화수 덕분에 피로해소 속도가 빨라 헉헉대는 건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삭신이 쑤시는 것까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
230km를 달린 코디악 베어가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했는지 커다란 순록 한 마리를 사냥했다.
먹이를 먹다 도망쳐 허기가 심했는지 3m에 달하는 순록을 게 눈 감추듯 뜯어 먹었다.
머리부터 다리까지 남김없이 씹어 먹는 놈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500m까지 접근해 식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식사가 끝나길 기다려주는 게 내가 놈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1,000여 명이 넘는 사람을 잡아먹었지만, 놈도 피해자였다.
죽은 가족들이 들으면 기겁할 일이었지만, 야생의 자연에서 힘겹게 살던 놈도 인간의 공격에 죽을 뻔한 피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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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