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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263화 (263/505)

00263  터키(Turkey)  =========================================================================

263.

낡은 군복을 입은 노병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역전의 용사들로 거동이 가능한 생존자 57명이 전원 참석했다.

어깨를 쭉 펴고 혼자 서 있는 노병부터 목발을 짚은 노병,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서 있는 노병, 그것조차 힘들어 휠체어에 앉은 노병까지 다양한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를 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고 오인해 감격할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터키 정부가 노병들을 모두 불러 모은 건 추억팔이로 우리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행동으로 그걸 모른다면 바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노병들의 뜨거운 눈물과 거친 손에서 느껴지는 진심 어린 마음은 얼어붙은 내 가슴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형제의 나라를 잊지 않고 찾아주신 박지홍 회장님과 미래 레드몬 사냥팀을 튀르크 전사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환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표로 나선 늙은 노병 툰젤 쿠르티즈(Tuncel Kurtiz) 중위 말엔 진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터키 정부에서 이들을 동원한 것은 맞지만, 이 자리에 선 노병들의 마음은 쿠르티즈 중위의 말처럼 그날의 일을 잊지 않고 터키를 찾아준 우리에 대해 무한한 고마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엘리트 레드몬 사냥협정 8개국에 터키를 포함하자 조일·대동·합동 일보에서 우리는 물론 터키까지 싸잡아 욕했던 기사가 기억났다.

도움도 안 되는 이슬람 국가에 퍼주기를 한다고. 터키는 대한민국 국익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찌라시들은 썩은 펜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댔다.

그렇게 국익을 따지는 놈들이 고철이 다된 미국 무기를 최신 무기라고 거짓 기사를 써 국민 여론을 조작하고, 미국 물건이라면 무조건 최고라고 구라를 치며, 값비싼 양주만 처먹었다.

참전 이유야 어찌됐든 수많은 젊은 터키 용사가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리려 싸우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잃은 건 역사 증명하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것을 부정하는 건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쪽발이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를 분단국가로 만들고, 고철을 무기라 팔아먹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미국을 미워하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해 싸운 미국인들을 미워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적어도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싸운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은 갖고 살아야 했다. 그걸 모르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아영아! 준비한 거 가져와.”

“네.”

아영이 정화수가 담긴 석영용기 57개와 은행나무 잎으로 만든 환약 171알이 든 상자에 가지고 나왔다.

“이거 몸에 좋은 거니까 지금 드세요.”

“이게 뭡니까?”

“정화수에요.”

“정화수가 뭔가요?”

“보약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드시면 몸에 활력이 붙고 피로가 가실 거예요. 드실 때 여기 알약도 같이 드세요. 나머지 두 알은 가지고 계시다가 손발이 저리고 혈액 순환이 안 될 때 드세요.”

“이렇게 마시면 되는 겁니까?”

“네, 한 번에 쭉 들이키세요.”

“꿀꺽꿀꺽~ 헉!”

“어떠세요?”

“향긋한 향기와 함께 몸이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지고, 손발이 힘이 들어갑니다. 이런 느낌은 20년 만에 처음이에요.”

“제가 말했잖아. 드시면 좋을 거라고. 호호호호~”

아내들이 모두 흩어져 할아버지들을 상대로 약을 팔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얼굴이 안 보였지만, 완벽한 몸매에 반들거리는 피부 덕에 약이 아주 잘 팔렸다.

남자는 미인이 주면 독약도 보약처럼 받아 마신다고 했다. 노병들도 남자라 아내들이 나눠준 2단계 정화수와 환약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노병들에게 정화수와 은행나무 환약을 나눠주자 나미크 케말(Namlk Kemal) 특사가 한숙에게 다가왔다.

올 1월 새로 나진시 특사로 파견된 젊은 외교관으로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 문화에도 두루 밝은 사람이었다.

“단장님!”

“네?”

“지금 나눠주신 게 제가 아는 그 정화수가 맞습니까?”

“네, 맞아요.”

“아!”

“회장님이 고마운 분들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에요. 많이 나눠드리고 싶지만 외부로 유출할 수 없어 2단계 정화수를 한 병과 A급 엘리트 레드몬 은행나무의 잎으로 만든 환약 세 알씩을 준비했어요.”

“감사합니다.”

“젊은 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께 드리는 선물치곤 많이 약소해요. 이해해주세요.”

“아닙니다. 회장님이 터키에 베풀어주신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어찌 약소하다 하십니까?”

“세상에 목숨만큼 중요한 게 있겠어요. 이분들의 희생과 비교하면 창피하고, 초라한 선물이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날 우리 행동은 터키 신문과 방송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뉴스거리를 만들어 냈다.

대통령과 총리의 마중보다 참전용사들의 환대를 더욱 고마워한 것도 큰 이슈였지만, 노병들에게 한 병당 1억 원짜리 2단계 정화수와 듣도 보도 못한 A급 엘리트 레드몬 은행나무의 잎으로 만든 환약을 선물로 나눠준 것이 더 큰 화제를 낳았다.

그 일로 터키 언론은 내가 터키에 매우 우호적인 인사로 40년 전 한국전쟁을 잊지 않는 형제로 묘사했고, 나를 싫어하는 일본과 중국, 유럽 언론들은 나를 국수주의라 매도했다.

중립적인 언론들은 내가 정에 많이 치우치고 은원(恩怨)에 집착하는 인물이라 평했다.

또한, 나를 상대할 때 추억팔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꽤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은혜와 원수를 구분하는 게 잘못이야?”

“우리가 좀 편파적인 건 사실이에요.”

“뭐가 편파적이야?”

“현대를 살아가면서 과거에 너무 집착하잖아요.”

“그거야 놈들이 과거를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하지 않으니까 그렇지.”

“그럴수록 힘을 키워 상대가 사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보단 일단 배척하고 봤잖아요.”

“상대가 좋게 나와야 우리도 좋게 나가지.”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까칠하고 편파적인데, 그쪽이라고 좋아하겠어요.”

“벳푸협약을 이행하지 않는 건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야.”

“일본만 놓고 이야기한다면 오빠 말이 전적으로 맞죠.”

“그것 봐. 내 말이 맞잖아.”

“일본만이죠. 다른 나라는 일본처럼 행동하지 않잖아요.”

“그거야 앞에서만 그렇지 뒤에선 똑같잖아.”

“그건 그들만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도 그렇고, 우리도 그래요. 그 부분은 오빠가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잖아요. 아닌가요?”

“에헴!”

은원에 집착한다는 기사가 마음에 안 들어 억지를 쓰다가 상아에게 톡톡히 망신만 당했다.

나이 많은 걸 대단한 벼슬인 양 행동하는 사람을 가장 혐오하던 내가 사랑하는 상아를 상대로 그 짓을 하고 말았다.

유학에선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를 오륜(五倫)이라 했고, 그중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엄격한 차례와 질서가 있다고 했다.

나보다 세상을 오래 산 어른을 공경하라는 것으로 자리를 양보하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말을 귀담아들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장유유서는 윗사람의 권리만 규정한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의 권리도 규정한 것으로 상호호혜적인 노력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을 말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유학의 변질과 함께 삼강오륜(三綱五倫)은 계급화를 부추기는 규칙으로 정착해 힘없는 자를 짓밟고 구속하는 장치가 됐다.

이는 21세기 코앞인 현대에도 그대로 답습되어 무슨 말만 하면 ‘나이가 몇이냐?’라는 말로 상대를 찍어 누르려 했다.

어른도 어른다워야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좋은 모습을 보이며 희생할 줄 알아야 대접을 받는 것이지 주민등록번호가 빠르다고 대접받는 게 아니었다.

나이는 장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건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살자는 뜻도 있지만, 나이가 많다고 연륜도 높은 것이 아니라는 뜻도 포함돼 있었다.

‘25살에 벌써 노친네가 됐나? 망신 망신 이런 개망신이 어디 있어? 젠장!’

다음날 오후 남쪽으로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 40km를 달렸다. 도로 좌우로 파란 밀과 푸른 잔디위에 양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레드몬을 사냥하려 가는 게 아니라 소풍을 가는 느낌이었다.

“돗자리 깔고 잔디밭에 뒹굴면 끝내주겠다. 그렇지 아영아?”

“응, 도시락 싸서 소풍 나오면 정말 재미있겠다.”

“정신 차려! 놀러가는 거 아니다. 일하러 가는 거다.”

“기분이라도 내면 좋잖아요.”

“맞아요. 마음만이라도 밝게 살아야죠.”

창밖에 얼굴을 내민 상아와 아영이 지평선까지 이어진 푸른 초원에 매료돼 감상에 빠져들었다.

선선한 날씨 탓인지 아리와 소희, 서인과 은비도 창밖의 푸른 초원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빠른 속도로 40km를 내려온 험비가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 10km를 달린 후 멈춰 섰다. 언덕 너머 5km 동쪽에 오늘의 사냥감 쌍봉낙타 무리가 있었다.

환영 파티를 준비한 할릴 투르구트 외잘 대통령의 호의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헬기로 놈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원래 파티를 싫어했고, 사냥감을 앞에 두고 술 먹고 노는 짓은 더더욱 싫어해 일국의 대통령을 무안하게 했다.

“이곳부터 사람들 출입을 통제해 주세요. 허락 없이 접근하면 우리를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도 전파하세요.”

“알겠습니다.”

김가은 경호팀장에게 명령을 내리고 장비를 풍산개 등에 옮겨 싣고 있자 나미크 케말 특사가 다가왔다.

“예니체리(Yeniceri)를 데려가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작년 쌍봉낙타 퇴치 작전에 참여한 정예 대원들입니다.”

“예니체리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저희보다 사냥감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 같이 가면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래 레드몬 사냥팀은 언제나 단독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터키는 남녀 구분 없이 능력자를 모두 예니체리라고 불렀다. 예니체리는 오스만제국 시절 근위보병을 뜻하는 용어로 15, 16세기에 높은 무용을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 내에서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1826년 서구화된 새로운 부대의 편성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다 황제 마무드 2세에게 모두 죽임을 당한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이번에도 무식한 대형 방패를 써야 하는 거야?”

“가래 침 맞고 싶어?”

“우엑!”

“싫으면 잔말 말고 들어. 찰싹!”

“아얏!”

은비의 볼기짝을 차지게 때려준 후 쌍봉낙타 무리를 향해 움직였다. 아내들이 방패와 가시덩굴을 사용해 침 공격을 막아내며 중급 쌍봉낙타를 때려잡는 동안 나는 구미호와 함께 B급 수놈과 C급 암놈을 잡기로 했다.

며칠 전 C급 엘리트 레드몬을 잡아 사기가 충천한 상태라 맡겨두고 뒤에서 구경이나 할까 생각했지만, 새끼 포함 45마리라 작은 실수만 있어도 목숨이 위험했다.

일대일 전투와 다대다 전투는 전투형태가 완전히 달라 개인의 능력만 믿고 까불다간 황천으로 직행했다.

전체를 아우를 능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아내들에겐 아직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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