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9 야쿠마마 : 죽음의 통곡 =========================================================================
259.
“오 일 후에 출발할 거니까 그때까진 푹 쉬어.”
“이틀을 꼬박 잤는데, 또 쉬라고?”
“최소 일주일은 쉬어야 해. 그래야 백호 쉬어 칸 사냥할 때 힘들지 않지.”
“이제 괜찮은데.”
“48시간을 잤는데도 얼굴이 푸석푸석하잖아. 기운도 없고. 앞으로 닷새 동안 하루 다섯 차례씩 아리와 아영이 치료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알았어.”
아리의 몽실몽실한 가슴을 만지며 내리 스물네 시간을 더 잤다. 자는 내내 가슴을 놓지 않아 아리도 꼼짝없이 붙잡혀 서른여섯 시간을 자야 했다.
서른여섯 시간 동안 가슴만 주무른 게 아니었다. 엉덩이도 쓰다듬고, 꽃잎과 클리토리스도 애무하고, 항문에도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평소 아내들에게 하던 짓을 아리한테 그대로 한 것이다. 아리 처지에선 서른여섯 시간 동안 고문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라 고문이라기보단 애무였고, 사랑의 확인이라 나쁜 기억이 없을 뿐이었다.
“야쿠마마 사체는 어디 있어?”
“안토노프 An-225에 실어놨어.”
“가자.”
“천천히 해도 되잖아.”
“계속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조금씩 움직이는 게 건강에 좋아. 그리고 내 상태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생각해줘야지. 건재함을 보여줘야 배가 아플 거 아니야.”
“알았어.”
소연과 아리의 손을 잡고 1층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에 모여 TV를 보던 아내들이 잠에서 깨어난 내 모습에 반색하며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아내들을 품에 안고 입술을 맞춰줬다. TV는 온통 야쿠마마 얘기로 죽은 놈의 모습과 초토화된 마카파 모습을 생생히 보여줬다.
“집들이 많이 부서졌네.”
“마지막 죽음의 비명 때문에 그래. 다행히 멀찍이 떨어져 있어 사망자는 없었지만, 1,000채 넘는 집이 부서졌어.”
“이런...”
“우리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자선사업가야?”
“하지 말까?”
“알아서 해.”
“그럼 사냥 의뢰비 3,000만 달러로 집과 죽은 가축들 다시 장만해 준다. 그래도 되지?”
“마음대로 하세요.”
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내자 룰라 특사와 스텔라, 셀리나, 루나 자매가 뛰어와 반갑게 맞아줬다.
괜찮으냐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을 100만 번쯤 들은 다음에야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 내 신변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룰라 특사와 스텔라, 셀리나, 루나 자매는 내가 다친 걸 알고 있었다.
수시로 만나는 사람들을 속일 수도 없었고, 4명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 처음부터 속이지 않았다.
신뢰의 시작이 상대를 속이지 않는 것이라면, 신뢰의 연속도 상대를 속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주 쉽고도 어려운 일로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마누라와 자식도 속여야할 때가 있어 평생 남을 속이지 않고 산다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안토노프 An-225가 있는 공항에 도착하자 우리를 알아보는 공항관계자들과 마카파 시민들이 반갑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받아주자 손에 키스하는 사람부터 기도하는 사람까지 각자 자기만의 방법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악수를 청하는 사람에게 모두 악수해주고 돌아서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집이 무너지고 많은 가축이 죽었지만, 마카파 주민에게 나는 삶을 이어갈 기회를 준 은인이었다.
개중에는 신을 죽였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 때문에 야쿠마마가 나타나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사회나 있기 마련이라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일치했다면 세상엔 미움도 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시크하게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 수송기로 들어가 야쿠마마의 머리에서 레드주얼을 뽑아냈다.
지름 3cm 레드주얼 속엔 작은 소녀가 브라질의 전통악기 카바키뇨(Cavaquinho)를 치고 있었다. 카바키뇨는 하와이의 민속 악기인 우쿨렐레(Ukulele)와 비슷한 형태였다.
우쿨렐레는 길이 50cm 정도의 소형 악기로 19세기 말 포르투갈 이민자들이 하와이로 이주하면서 가져간 악기가 변형된 것이었다.
일설에는 브라질의 카바키뇨가 원형이라는 말도 있을 만큼 형태가 아주 비슷한 악기로 까만 피부의 원주민 소녀가 싱그러운 풀밭에 앉아 한가로이 카바키뇨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글쎄?”
“형태로 봐선 음악인데.”
“그렇지.”
“비명도 음악이라 할 수 있겠죠?”
“소리와 관련된 건 모두 음악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야쿠마마가 사용한 죽음의 비명도 음악이겠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죽음의 비명이 나오면 어쩌죠?”
“팀원들에게 영향을 주면 아주 골치 아파지는 거지.”
아영의 걱정이 사실이 아니길 기원하며 레드주얼을 양손에 꼭 쥐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포스를 흘려보내자 반발력이 생겨 포스가 튕겨 나왔다.
이건 복권으로 치면 꽝이라는 뜻으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레드주얼이 아니었다. 고개를 가로젓고 소연에게 레드주얼을 넘겼다.
소연도 주인이 아닌지 1분 만에 아리에게 넘겨줬고, 아리도 주인이 아닌지 은비, 상아, 아영을 거쳐 서인에게 넘어갔다.
“언니도 아니면 큰일인데. 우리 중에 악사가 없어서 그럴까요?”
“포효도 소리로 상대를 공격하는 거잖아. 그럼 나라도 맞아야지.”
“정말 그러네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만약 공대원 중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야쿠마마의 레드주얼은 금고에서 썩어야 했다.
레드주얼이 구멍가게에서 파는 눈깔사탕도 아니고 어쩌다 하나 어렵게 구하는데,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을 줄 수도, 팔 수도 없었다. 레드주얼이 세상에 공개되면 엘리트 레드몬을 잡겠다고 달려들 사냥팀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건 우리에게 돌아올 몫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강력한 스킬을 보유한 위협적인 존재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무리한 사냥으로 수많은 능력자와 보조사냥꾼이 죽게 될 수도 있었다. 레드주얼은 최소 B급 엘리트 레드몬부터 구할 수 있어 욕심과 용기만으론 거머쥘 수 없었다.
포베로미스 같은 보스 레드몬을 잡고 구할 확률도 있지만, 이 역시 레드마우스 수천 마리를 잡아야 가능한 일이라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용할 사람이 없으면 구미호나 현무에게 먹이면 되잖아요.”
“그러면 다행인데, 입맛이 까다로운 녀석들이라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면 안 먹어. 지금도 관심을 안 보이는 것으로 봐선 줘도 안 먹을 것 같고.”
긴장한 서인이 레드주얼을 손에 꼭 쥐고 포스를 밀어 넣었다. 서인도 주인이 아닌지 1분간 전력을 다해 포스를 밀어 넣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실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자 한 번 더해보라고 주문했다. 포스를 밀어내는 것은 상극이란 뜻으로 무슨 짓을 해도 사용할 수 없지만, 반응이 없는 것은 간혹 친화력이 떨어져 그럴 수도 있어 계속 포스를 밀어 넣으면 성공할 가능성도 있었다.
친화력 문제였는지 3시간 넘게 비지땀을 흘린 끝에 서인의 손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왔다.
서인도 실패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일순간 기쁨으로 바뀌었다. 아내들이 쓰면 누가 쓰던 상관없었다.
“고생했어.”
“몸도 안 좋은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은데 뭐가 죄송해? 완벽한 몸매, 예쁜 얼굴, 상큼한 레몬향, 군침이 살살 도는 게 덮치고 싶어 참느라 혼났어.”
“피이~”
“흐흐흐흐~ 어떤 스킬이 내장돼 있어?”
“소리로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고, 소리를 없앨 수도 있어요.”
“침묵 스킬하고 똑같네.”
“침묵 스킬은 소리만 없애지만, 이건 소리나 음파를 사용하는 스킬도 무력화할 수 있어요.”
“오~ 멋진데.”
서인이 차지한 소리주얼은 야쿠마마처럼 한꺼번에 많은 상대를 공격할 능력은 없었다.
최대 다섯 명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고, 일정 지역 또는 특정 상대를 침묵 상태로 만들어 스킬 사용을 강제할 수 있었다.
공격은 지정한 상대에 엄청난 고음을 발사해 뇌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삐~’하는 소리를 10초만 들어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것을 상기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수 있었다.
방어는 반경 500m를 침묵 상태로 만들고, 포효·비명·하울링 등 소리와 관련된 스킬은 모두 차단할 수 있었다.
지금은 서인의 능력이 낮아 C급 엘리트 레드몬이 한계였지만, 중급 멘탈리스트로 승급하면 B급 엘리트 레드몬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공격도 마음에 들지만, 방어가 더욱 마음에 드네.”
“레드몬 중엔 소리를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는 종류도 있고, 자신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향상하는 종류도 있잖아요. 그런 레드몬을 상대로 소리주얼이 큰 위력을 발휘할 것 같아요.”
풍산개를 포함한 개와 늑대형 레드몬은 주로 하울링 스킬을 사용했다. 하울링은 의사소통도 수단이기도 하지만, 스킬로 사용하면 자신들의 공격력을 향상하거나, 상대의 공격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또한, 무리의 전투 의지를 고취하고, 상대의 전투 의지를 약화하는 등 아주 다양한 효과가 있었다.
“이거 중국에서 알면 갖고 싶어 난리 치겠다. 혈랑을 상대로 최고의 무기잖아. 판다고 하면 백지수표라도 주겠는데.”
”억만금을 줘도 안 팔아요.“
“밤에 몰래 훔쳐내서 팔아야지. 흐흐흐흐~”
“히잉~”
자신에게 맞는 레드주얼을 얻자 서인의 얼굴이 화사한 복사꽃처럼 피어났다. 장수가 좋은 무기와 말을 갖고 싶은 것처럼 아내들도 자신에게 맞는 레드주얼을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보물은 하늘이 점지해 준다고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소연은 현무를 얻어 만족한 상태였고, 치유주얼을 갖은 아영과 까치주얼을 갖은 상아도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에 반해 마비주얼을 갖은 은비는 살짝 불만이었다. 뇌우와 벼락이 기본적으로 마비 효과를 동반한 스킬이라 있으면 도움은 되지만, 다른 아내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레드주얼이 있다는 걸 모르는 수많은 능력자를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였지만, 부자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더 좋은 레드주얼을 갖고 싶어 했다.
“가시덩굴주얼은 아리에게 넘겨.”
“네.”
“아리야! 서인이가 주는 거 받아.”
“이.이.이거 나 주는 거야?”
“응.”
“지홍아! 고마워! 쪽쪽쪽~”
가시덩굴을 넘겨주자 아리가 품에 안겨 키스를 퍼부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크게 감동했는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앞으로 네가 공대 방어를 책임져야 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서인에게 많이 물어보고 배워.”
“알았어.”
“아영이 필요할 때 빌려줘야 하는 것도 알고 있지?”
“그럼.”
가시덩굴주얼을 받아든 아리의 얼굴도 서인의 얼굴처럼 화사한 분홍 복사꽃이 피었다.
그러나 뜻은 전혀 달라 서인이 마음에 드는 주얼을 얻어 기뻐하는 거라면, 아리는 내가 자신을 100% 신뢰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에 행복과 흥분을 느끼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