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0 물의 여신 야쿠마마(Yacumama) =========================================================================
250.
“늦었지만, 무사히 레드터틀 사냥하신 일 축하드립니다.”
“야쿠마마도 레드터틀처럼 별 탈 없이 사냥해야 하는데, 워낙 크기가 큰 놈이라 걱정입니다.”
“실패해도 회장님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야쿠마마가 A급 엘리트 레드몬인지, 상급 레드몬인지, 마카다 근처가 놈의 서식지인지 무엇 하나 정확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알면서도 의뢰를 받아주신 회장님께 저흰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최대한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
“저희는 그렇게 말해도 되지만, 직접 사냥에 임하는 회장님과 사모님들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상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싸워도 위험한데,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싸운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앞으로 하실 일이 끝도 없이 많습니다.”
누가 의뢰자고 누가 사냥꾼인지 모를 만큼 룰라 특사는 우리 처지에서 현재 상황을 말했다.
브라질을 사랑하고, 브라질 국민을 사랑하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룰라 특사의 마음이 없었다면 브라질을 사냥 국가에 넣어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야쿠마마 사냥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브라질은 오직 룰라 다 실바 특사의 마음에 감동해 계약해준 나라로, 만약 룰라 특사가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브라질과의 관계도 그날로 끝이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브라질연방공화국(Federative Republic of Brazil)은 국토의 60% 이상이 정글 또는 산림으로 임산자원이 무한하고, 철광석, 보크사이트, 망간, 석면 등 30여 종에 이르는 막대한 양의 지하자원을 보유했다.
커피와 대두, 사탕수수 등의 농산물 생산도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어 경제적 잠재력이 매우 큰 국가였다.
그러나 1970년대의 무리한 고도성장정책과 석유의 과도한 대외의존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외채가 누증(累增)되는 등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해 현재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계약금 1억 달러와 사냥 의뢰비용 3,000만 달러도 아직 지급하지 못한 채 사냥경비만 간신히 대고 있었다.
열대우림지역인 아마파(Amapa) 주는 면적이 142,815㎢로 한반도 면적 64%에 해당하는 엄청난 넓이지만, 인구는 고작 30만 명 수준이었다.
이 중 2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마카파는 아마파 주의 상업, 제조업, 운송의 중심도시로, 유일한 항구인 포르투순타나를 통해 순도가 높은 망간과 금, 철, 주석, 목재, 고무, 모피, 생선 등을 벨렝과 리우데자네이루 등으로 수출했다.
브라질 정부가 마카파에 관심 기울이는 이유는 마카파가 야쿠마마로 인해 사라질 경우 아마파 주 전체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마존 강 지류를 타고 야쿠마마가 도시를 공격하면 북부의 광활한 영토를 영구히 상실할 수 있어 인구가 밀집된 남부가 아닌 북부 외딴 도시에 우리를 초대하게 됐다.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로 이동하며 바라본 마카파는 아름답진 않지만, 정감이 가는 도시였다.
저녁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까만 피부의 원주민들, 마당을 뛰어다니는 닭과 개, 신발도 없이 공을 차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릴 적 우리 시골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사는 모습도 그렇고 사람들도 순박해서 그런지 라스베이거스보다 이곳이 더 마음에 들어요.”
“상아가 살던 예전 마을과 비슷한 모습이라 정감이 가서 그럴 거야. 하지만 치안이 불안하고 레드몬 습격이 잦은 곳으로 눈에 보이는 것처럼 평화로운 도시는 아니야.”
“위험한데 왜 사람들이 떠나지 않는 거죠?”
“갈 곳이 없잖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일자리는 없고. 안전한 남쪽 대도시로 가도 살길은 막막하고. 그렇다고 위험한 정글로 들어갈 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지.”
마카파의 젊은이들에게 고층빌딩이 즐비한 대도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화려한 도시는 젊음을 앗아가는 악마의 소굴이었다.
TV와 잡지의 화려한 모습에 현혹돼 부나방처럼 꿈을 찾아 대도시로 갔지만, 현실은 한 평 남짓한 작은 방과 딱딱한 빵, 묽은 수프가 전부였다.
도시의 최하층민이 되어 온종일 짐을 나르고 바닥을 닦아도 TV에서 보던 화려하고 멋진 삶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도시의 소모품이 되어 젊은 날을 소비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다시 돌아온 곳이 마카파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귀농이 아닌 현실의 벽에 부닥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 것뿐이었다.
도시를 벗어나자 낡은 건물들로 가득한 도시와는 다르게 큰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고급 주택들이 나타났다.
3m가 넘는 담장과 CCTV, 총을 든 경비원들까지 대통령이 사는 별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경비가 삼엄했다.
조금 더 달린 차가 멈춘 곳은 지금까지 지나오며 본 저택 중 규모가 가장 큰 저택으로 문 넓이만 10m에 이르렀다.
이곳이 당분간 우리가 머물 숙소로 대리석으로 지은 2층 건물 두 채와 수영장, 아름다운 정원, 분수, 조각 등 사치의 극을 보여주는 호화로운 저택이었다.
“전 대통령이 부정축재로 소유했던 저택입니다. 최대한 조용한 곳으로 모시려다 보니 이곳으로 모시게 됐습니다. 불편한 게 많겠지만, 널리 이해해주십시오.”
“불편하긴요. 집이 아주 크고 좋습니다.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과 사모님들은 정면 건물을 쓰시면 됩니다. 경호원과 직원들은 옆 건물을 쓰시면 되고요. 저와 스텔라, 셀리나, 루나님은 입구 건물을 쓸 겁니다. 불편한 일이 있으시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고풍스러운 현관을 지나 나선형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전직 대통령은 고미술품 수집에도 열을 올렸는지, 아름다운 초상화와 그림이 벽에 가득 걸려있었다.
2,000%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에 굶어 죽는 국민이 속출하는데, 이따위 그림이나 모으며 화려한 별장에서 미녀들을 데리고 초호화 파티를 즐겼을 것을 생각하자 씁쓸하다 못해 기분이 엿 같았다.
2층 침실과 서재, 응접실에도 눈이 돌아갈 만큼 비싼 가구들이 가득했다. 실체를 알고 나자 베란다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정원과 수영장, 분수, 조각상들이 브라질 국민의 처절한 고통으로 보였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이거 하나면 수백 명은 먹고 살겠네.”
“우리나라도 부정부패는 빠지지 않는 나라야. 순위로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걸.”
“설마?”
“최주욱이 비밀 금고에서 나온 돈과 보석, 미술품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최주욱이 그 정도면 권력을 잡은 놈들은 어떻겠어? 아방궁도 지을 수 있을걸.”
“아방궁을 짓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짓든 정당하게 벌어서 쓰면 누가 뭐라 그래. 외국에선 100원에 파는 물건을 국민을 호구로 알고 1,000원, 10,000원에 팔아먹고, 온갖 명목으로 국민 혈세를 빼돌려 부정 축재하니까 문제지.”
“우리가 화낸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 그만 열 내고 저녁이나 먹자. 나 배고파.”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밥이나 실컷 먹자.”
“오케이~”
배가 터지게 저녁을 먹은 다름 풍산개를 데리고 아내들과 함께 여유롭게 정원을 거닐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선 파파라치와 구경꾼들이 워낙 많아 호텔 밖으론 한걸음도 나설 수 없었다.
야쿠마마 원정은 룰라 특사와 고위층 인사 몇 명만 아는 일로 정부에서 허락한 기자 10명만 우리를 취재했다.
정보력이 뛰어난 미국과 유럽 언론사들도 냄새를 맡았겠지만, 브라질 정부가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이렇듯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여기가 대도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쫓아와 카메라를 들이밀겠지만, 마카다는 공항 하나와 항구 하나를 폐쇄하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오빠! 벌레 안 잡을 거야?”
“잡고 있잖아.”
은비의 잔소리에 반경 50m 내에 있는 벌레를 살기로 몽땅 잡았다. 살충제가 된 기분이었지만, 벌레가 달려들지 않아 아내들과 즐겁게 산책을 즐길 수 있어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올 1월 마카파에 난입했을 때 찍은 사진과 처음 발견됐을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면 5년 만에 무려 1.5배나 커진 상태예요.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야쿠마마는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할게 분명해요.”
“빠르기는 어느 정도 되나요?”
“물에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지만, 육지에선 저희보다 조금 느린 정도에요.”
“5년간 1.5배로 커졌다면 속도도 더 빨라졌겠네요?”
“덩치가 커지며 다행히 속도는 조금 느려진 상태예요. 하지만 피부는 더욱 단단해져 작년 7월에 상대했을 땐 상처를 내기도 쉽지 않았어요.”
“생활은 주로 어디서 하나요?”
“야쿠마마도 근본은 아나콘다라 낮엔 얕은 물가나 늪에서 보내요.”
암놈이 수놈보다 큰 아나콘다는 구애와 교미도 물속에서 했고, 한배에 새끼를 4∼8마리를 낳았다.
“레드몬으로 진화한 아나콘다가 자주 발견되나요?”
“지금까지 총 세 마리가 잡혔어요. 그중 한 마리는 C급 엘리트 레드몬이었고요.”
“그럼 야쿠마마가 새끼를 낳았을 수도 있겠네요?”
“다행히 아직까진 발견되진 않았지만, 야쿠마마가 활동한지 오 년이 넘어 새끼를 낳았을 가능성은 아주 큰 편이에요.”
산책 후 야쿠마마를 상대해본 세쌍둥이의 설명을 듣기 위해 응접실에 모였다. 첫째 셀리나의 설명으로 알아낸 야쿠마마는 길이가 130m에 두께 8.5m, 무게는 50ton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크기보다 더 컸다.
“여기 자료를 보면 물적 피해는 막대하지만, 죽은 주민은 거의 없네요.”
“야쿠마마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만 죽일 뿐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요. 마을을 습격한 것도 가축을 잡아먹기 위한 것이지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건 아니에요.”
“가축이 없다면 도시가 공격받을 확률도 현저히 줄어든다는 뜻이네요?”
“그렇죠.”
“혹시... 사람들이 야쿠마마를 신으로 숭배하나요?”
“.......”
소연의 질문에 당황한 스텔라가 우물거리며 대답을 못했다. 스텔라가 건네준 자료를 받아보고 야쿠마마가 수차례 도시를 습격하고도 멀쩡한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중·하급 레드몬이 도시에 난입해도 엉망이 되는 게 현실인데, 130m에 이르는 초거대 레드몬이 수차례 나타나고도 도시가 멀쩡하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주민들이 불안해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은 채 평화롭게 사는 모습에서 강한 의구심을 느꼈었다.
“스텔라님도 야쿠마마를 인간에게 해롭지 않은 레드몬으로 생각하나요?”
“후유~ 브라질 전사들은 야쿠마마를 매우 두려워해요. 그걸 감추기 위해 야쿠마마가 유해하지 않은 레드몬이라고 말하죠. 일부 국민도 야쿠마마와 같은 레드몬들을 신이 보낸 사자라고 생각하며 우상화하죠.”
“능력자들 때문에 사람들이 레드몬을 신이라고 생각한다는 건가요?”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에요. 브라질은 국토의 60% 이상이 정글이에요. 매년 레드몬으로 죽는 사람이 백만 명에 이를 만큼 많은 레드몬이 서식하고 있죠. 문맹률도 매우 높고 외딴곳에 따로 떨어져 사는 소수부족도 많아요. 이러다 보니 미신이 팽배해 레드몬을 신으로 섬기고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하는 부족도 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고요?”
“부끄럽지만, 그런 부족 상당수 있어요. 어떻게든 레드몬을 처리해 국민을 구하고 싶지만, 힘이 약해 그냥 보고만 있는 실정이에요.”
“하아~ 스텔라님과 셀리나님, 루나님이 있어 브라질도 조만간 좋아질 거예요.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인신공희(人身供犧)는 제사 때 산 사람을 신에게 희생물로 바치는 것으로 신을 빙자한 끔찍한 만행이었다.
인당수에 심청이를 제물로 바친 심청전도, 아기를 제물로 바친 에밀레종 전설도, 히브리 신화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짐승을 통째로 구워 제물로 바치는 제사)로 바치라는 여호와의 명에 따르는 대목도 모두 인신공희였다.
제물을 신에게 바치는 종교적 행위가 기원인 인신공희는 근대 이후 문명사회에선 자취를 감췄지만, 레드몬과 함께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남미의 오지에선 아직도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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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