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5 마샤 타이엘나(Masha Tyelna) =========================================================================
245.
“10살 되던 해 봄에 우크라이나를 떠나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갔어. 꼬박 한 달이 걸려서.”
“한 달이나?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
“나는 막심 삼촌 등에 업혀 다녀 아주 편했어. 엄마가 많이 힘들었지. 돈이 얼마 없어 굶기도 많이 굶고, 걷기도 많이 걸었거든.”
“고생 엄청나게 많이 했네.”
“아니야. 난 어리다고 밥도 꼬박꼬박 챙겨주고, 잠자리도 돌봐줘서 힘들지 않았어. 여행 다니는 기분이라 아주 신났어.”
한 달 동안 도망 다니며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힘들지 않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하루만 밖을 돌아다녀도 파김치가 되는 게 사람이었다. 하물며 10살짜리 아이가 한 달을 이리저리 끌려 다녔는데, 힘들지 않다는 걸 믿으면 대가리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거였다.
“우크라이나는 왜 떠난 거야?”
“소련의 수탈이 워낙 심해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었어. 막심 삼촌도 나이트라 이리 저리 끌려다니다 언제 죽을지 몰랐고. 그래서 아빠가 결심한 거야.”
마샤의 조국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밀 생산 국가였지만, 소련의 수탈로 배를 곪는 사람이 있을 만큼 생활이 궁핍했다.
마샤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크라이나에선 꽤 유명한 과학자였지만, 먹고 살기 힘든 건 농부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마샤와 막냇동생 막심의 미래를 위해 마샤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망명할 것을 결심했다.
1984년 3월 봄, 마샤가 잠능자로 각성하기 전 아버지의 결단에 따라 마샤의 가족은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렇게 한 달간의 힘든 여정 끝에 도착한 미국은 동경해 마지않던 아메리칸 드림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국가였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미국적인 이상 사회를 이룩하려는 꿈으로 무계급 사회와 경제적 번영의 재현, 압제가 없는 자유로운 정치 체제가 영속하는 것을 뜻했다.
이는 미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해당하는 말로 미국에 이민 가면 누구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아메리칸 드림이란 이름으로 세계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미국에서 하층민이 사회적으로 조금 더 평등해지거나, 영향력이 커진 사례는 이제껏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부는 항상 상류계층에만 이익이 돌아가도록 구조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값싼 노동력을 원했던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울 좋은 거짓으로 이민자들을 대거 끌어모았고, 그렇게 희망을 품고 모여든 이민자들의 피와 땀을 이용해 지금의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리곤 아랍, 히스패닉, 흑인, 아시아, 러시아 등으로 이민자들을 나눠 분열시키고, 억압하고. 차별하고, 착취했다.
마샤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크라이나에선 매우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미국에선 공산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로 실력조차 의심받았다.
막심이 능력자라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졌지, 삼촌마저 없었다면 망명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우크라이나의 과학자에서 식료품 가게 점원과 식당 종업원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나이트인 삼촌 덕에 살림이 궁핍하진 않았다. 그러나 막심도 상황이 그리 좋진 않았다.
당시 세계는 미소 냉전시대로 소련(당시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영토였음)에서 망명한 막심은 사상을 의심받아 감시의 눈길이 항상 따라붙었다.
이 때문에 어디를 가나 소련 사람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어 환영받지 못했고, 언어 문제와 텃세 탓에 힘겹게 레드몬 사냥팀에 들어가도 오래 버티질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마샤의 유년 시절이 유쾌하길 기대할 순 없었다. 미국에 망명하고 한 해 동안 마샤는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 삼촌이 당했던 차별과 멸시를 마샤도 받아야 했고, 말조차 통하지 않아 친구조차 사귈 수 없었다.
“다음 해 1월 학교에서 실시한 잠능자 검사에 합격했어. 그땐 너무 기뻐 온 가족이 얼싸안고 울었어. 특히 엄마가 가장 많이 기뻐하셨어. 잠능자가 되면 미국 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지.”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 하나뿐인 딸이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프셨겠어.”
“하지만 달라진 건 없어요.”
“잠능자가 됐는데도 달라진 게 없었어?”
“학교에선 달라졌지.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으니까. 하지만 3월에 포스전문학교에 들어가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어. 여전히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소련 출신 아이에 놀림거리로.”
“자기들은 다를 게 뭔데? 미국은 이민자가 세운 나라잖아. 아메리카 토착민 수억 명을 죽이고 피로 세운 나라가 미국이야. 자신들도 그런 이민자의 후손이면서 같은 이민자에게 텃세를 부려?”
“어디나 먼저 온 사람이 임자인 척 행동하잖아. 처지가 바뀌었다면 나라도 그랬을 거야.”
화가 난 상아와 달리 마샤는 자기 얘기가 아닌 다른 사람 얘기를 대신하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달관한 마샤의 모습에 소연, 은비, 한숙, 서인, 아리, 아영, 소희 모두 화가 나는지 얼굴이 붉다 못해 빨갛게 상기돼 있었다.
친구 한 명 없이 힘겹게 기숙사 생활을 버텨낸 마샤가 힐러란 사실을 알게 된 건 13살 겨울 무렵이었다.
“왜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어? 힐러란 걸 알게 되면 훨씬 편했을 텐데.”
“내가 힐러란 사실을 밝혔다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겠지, 하지만 마음까지 바뀌진 않았을 거야.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나를 이용하려 들었겠지. 그들에게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니까.”
“그래서 학교를 그만둔 거야?”
“내일은 달라지겠지, 내일 달라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사 년을 버텼어.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어. 괴롭힘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갔어. 그래서 포기했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학교를 그만둔 마샤는 엄마, 아빠가 기다리는 그리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마음의 안정을 찾은 마샤는 상상을 초월하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15살에 중급 멘탈리스트가 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16살에 에오히푸스 사냥에 나섰지?”
“응.”
“잠능자는 사냥에 나서면 안 되잖아. 미국은 18살부터 나이트로 활동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어?”
“맞아.”
“그런데 어떻게 에오히푸스 사냥에 나섰어?”
“1989년 10년 미만 이민자에 한해 정밀포스측정기 강제사용 법안이 통과됐어. 그래서 나이트 사무국에서 내가 힐러란 사실을 알게 됐지.”
“그렇다고 16살 어린 소녀를 사냥에 집어넣어?”
“강제는 아니었어. 동참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거란 협박은 있었지만.”
“아우~ 정말 나쁜 사람들이네.”
마샤가 에오히푸스 사냥에 지대한 공을 세우자 명성이 급격히 높아졌고, 아름다운 외모까지 한몫하며 미국인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미운 오리 새끼가 한순간에 백조로 탈바꿈하듯 그렇게 마샤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치유의 대천사 라파엘이 됐다.
“한꺼번에 많은 관심을 받자 내가 우크라이나 사람이란 걸 깜빡 잊어버렸어. 수많은 기자, 열렬히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나를 대해주는 나이트들... 그때는 정말 내가 백조가 된 기분이었어.”
“나도 그랬을 거야.”
“아니야. 상아는 나보다 어른스러워 속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않아. 누군가 우리를 속이려 한다면 절대 피할 수 없어. 그들은 우리를 속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을 테니까.”
“하아~ 정신을 차린 건 다음 해 아빠,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이었어. 인기를 얻자 오라는 곳이 많아 제법 많은 돈을 벌게 됐어. 덕분에 엄마, 아빠도 점원과 식당 종업원 일을 그만두고 작은 꽃가게를 낼 수 있었어. 1991년 12월 23일.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가게 문을 닫으려는 순간 복면을 쓴 괴한이 가게에 들어왔어. 그리곤 다짜고짜 총을 난사해 엄마와 아빠를 죽였어.”
“헉!”
“육 개월 수사 끝에 잡힌 범인은 20대의 백인 마약중독자였어. 범행 동기는 돈이었고. 하지만 수상한 점이 너무 많았어. 그래서 몰래 사립탐정을 고용해 알아본 결과 범인은 인종차별주의자로 내가 소련에서 보낸 첩자라고 생각했어. 돈이 아니라 내가 싫어 아빠와 엄마를 죽인 거야.”
“경찰이 고의적으로 사건을 은폐한 거네?”
“백악관에서 압력을 행사했어. 단순 강도로 사건을 처리하라고.”
“왜?”
“내가 미국을 떠날까봐 그랬겠지.”
“그럴수록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우리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아. 그냥 소모품으로 사용하다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나봐.”
마샤가 사립탐정을 고용해 진실을 알아내자 백악관과 나이트 사무국이 24시간 마샤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통령은 공화당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로 연방 하원의원, CIA 국장 등을 거친 후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제43대 부통령을 지낸 후, 1989년부터 1993년 41대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걸프전을 주도했고, 베를린 장벽 붕괴, 소련 해체 시기의 대통령으로 한때 지지율이 90%까지 치솟았지만,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1992년 빌 클린턴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에 말려서 재선에 실패했다.
네오콘의 일원이자 CIA 국장을 지낸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마샤의 망명을 막기 위해 24시간 감시는 물론 아주 악독한 방법을 생각했다.
“그때부터 아폴로 윌리엄스가 치근대기 시작했어."
“전부터 널 좋아했어?”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긴 했지만, 정부와 나이트 사무국에서 제재를 가해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어. 워낙 전적이 화려해 사고 친 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네가 부모님의 죽음을 알아내자 미연방정부가 아폴로 윌리엄스를 내세워 널 가두려 했다는 거지?”
“응. 나와 윌리엄스를 강제로 결혼시켜 아이를 낳게 해 미국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었어.”
“이런 찢어 죽일 놈들! 개잡종 후레자식들!”
열이 뻗칠 대로 뻗친 은비가 욕을 쏟아냈다. 욕을 하는 건 잘못이지만, 구미호를 통해 듣고 있는 나도 욕이 나오는데, 같은 여자인 아내들은 더욱 화가 나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국의 속셈을 알게 된 후 윌리엄스를 피해 삼촌과 이곳저곳 떠돌며 지냈어. 오늘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내일은 일리노이, 모레는 네브래스카.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어.”
“91년부터 지금까지 쭉?”
“응”
“흑~”
상아와 아영이 울음을 터뜨리자 마음 약한 아내들이 마샤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모진 고초를 겪고, 그것도 모자라 인종차별주의자에게 부모를 잃고, 이젠 노예이자 볼모로 잡힐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고 연달아 온다지만, 19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시련이었다.
‘그래서 능력치가 답보 상태였구나.’
“울지 마세요. 저에겐 막심 삼촌이 있어요. 아빠, 엄마 몫까지 삼촌이 사랑해줘서 전 슬프지 않아요.”
슬프지 않다고 말하는 마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한없이 여리게만 보이던 마샤가 굳건한 심지의 소유자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상아의 품을 벗어난 구미호가 마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줬다.
‘기특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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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