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1 원정(遠征) =========================================================================
241.
등껍질에서 머리가 쑥 빠져나온 사막거북이 고개를 좌우로 돌려 근처에 누가 있는지 세심하게 살폈다.
A급 엘리트 레드몬이면 사발 수백km에선 최강의 포식자일 텐데, 초식성이라 그런지 놈은 지나치리만큼 안전을 신경 썼다.
우리는 3km 떨어진 높은 언덕에 숨어 있어 얕은 계곡 아래에선 우리가 보이지 않았고, 맞바람을 맞아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10분 정도 좌우를 살피던 놈이 천천히 땅굴을 빠져나와 싱싱한 채소를 쌓아둔 곳으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저런 병신새끼! A급 엘리트 레드몬이 고작 채소에 끌려 함정인지도 모르고 나타나. 바보! 말미잘! 똥개 같은 새끼! 멍청한 새끼 때문에 은비에게 열라 들볶이겠네. 젠장!’
속으로 욕을 실컷 퍼부으며 놈이 애피타이저를 즐기도록 내버려뒀다. 개도 밥 먹을 땐 건들지 않는다고 맛나게 음식을 먹는 순간 살기투사로 놈의 꼭지를 돌아버리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야 분노에 휩싸인 놈이 땅굴로 달아나지 않고 미쳐 날뛰며 나를 공격할 것이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하는 건 놈의 공격력이 아니라 놈이 땅속으로 달아나는 것과 고고도 정찰기나 인공위성으로 미국이 전투장면을 찍는 것이었다.
내가 레드몬과 싸우는 전투장면을 구하고 싶어 안달 난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가깝게는 나를 적대시하는 일본부터 나를 친동생처럼 대하는 러시아도 예외 없이 동영상(?)을 구하고 싶어 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길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부지피부지기 매전필패(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라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으나, 적을 알고 나를 모르면 승과 패를 각각 주고받을 것이며, 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조차 모르면 싸움에서 반드시 패한다는 뜻이었다.
이들이 내 스킬과 전투능력을 알고자 하는 것은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를 나에 대한 대처법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나 역시 미국 TTC 방송에서 최고 능력자로 분류한 마샤 타이엘나, 아폴로 윌리엄스, 벤자민 링컨, 장 뒤야르댕, 로크 에번스 등 강한 능력자의 스킬과 전투능력을 알고 싶은 건 마찬가지였다.
같은 국가, 같은 민족도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데, 하물며 나라가 틀린 강자와는 내일 당장 적이 될 수도 있어 전력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미래 안전보장국을 설립하고 규모를 키우는 건 우리의 안전 때문이었다. 그 안전에는 적이 될 수 있는 능력자의 전력 파악도 포함돼 있어 인공위성과 정찰기를 도입하면 주요 능력자를 선정해 감시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우리도 그런 생각이라 누가 우릴 촬영한다고 욕할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 능력을 보여줄 마음도 없어 평소 어두운 밤이나 나무가 많은 곳 등 위성으로 찍기 어려운 곳을 찾아다니며 사냥했다.
하지만 레드터틀은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서 훤한 대낮에, 그것도 민둥산이나 다른 없는 황량한 계곡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싸우면 아주 선명한 고화질로 찍히겠는데.”
“전투가 시작되면 놈과 상관없이 주변에 뇌우를 계속 뿌려. 그럼 돌풍 때문에 안 보일 거야.”
“오~ 좋은 생각인데.”
“시작한다. 모두 준비해!”
싱그러운 채소를 씹어대는 사막거북을 향해 살기를 투사했다. 실로 오랜만에 맞보는 채소 맛에 푹 빠져 행복한 표정을 짓던 사막거북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눈에서 불이 일었다.
A급 엘리트 레드몬 사막거북
전투력 : 9658
지능 : 108
에너지양 : 58,366
스킬 : 알 수 없음
“쒸우웅~”
“꽝!”
거친 바람 소리와 함께 날아온 날카로운 창을 피해 잽싸게 머리와 팔다리를 집어넣자 등껍질에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렸다.
“휘이잉~”
은비의 뇌우가 사막거북 앞에 떨어지자 거센 돌풍이 일어나 주변이 부연 먼지에 휩싸였다.
워낙 입자가 고운 흙이라 돌개바람에 빨려 올라가 퍼지자 반경 100m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뿌옇게 변했다.
가방에 한 뼘 길이의 두툼한 금속 막대기를 잔뜩 채워 넣고 놈을 향해 달렸다. 달리며 연속으로 살기를 투사해 놈의 화를 더욱 돋웠다.
“타타타타타~”
“꽝꽝꽝꽝꽝~”
부연 먼지 속에서 콩 볶는 소리가 들리자 붉은 탄환이 기관포탄처럼 줄줄이 날아왔다.
블링크를 사용해 좌우로 빠르게 이동하자 목표를 잃은 불꽃 탄환이 바닥에 떨어지며 굉음과 함께 화염을 토해냈다.
사막거북의 불꽃 탄환은 백린 소이탄과 효과가 비슷한지 꺼지지 않고 바위와 땅에 붙어 활활 타올랐다.
백린(White Phosphorus)을 사용한 소이탄은 옷이나 연료, 탄약 등 가연성 물질에 옮겨 붙으면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아주 잔혹한 무기로 피부에 온몸이 탈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운 좋게 불을 꺼도 화상 부위를 통해 흡수된 백린이 간·심장·신장 손상, 다발성 장기 부전 등을 일으켜 사망하게 됐다.
또한, 극렬하게 타오르며 순간적으로 다량의 연기를 뿜어내 산소결핍으로 죽거나, 눈·콧속의 점막·기도를 자극해 죽음에 이르렀다.
사막거북의 불꽃 탄환도 연기를 짙게 뿜어내는 것으로 보아 강한 유독성을 지닌 게 분명했고, 위력은 백린 소이탄보다 더욱 강력한지 돌과 흙도 활활 타올랐다.
[불꽃 조심해. 붙는 순간 끝장이야.]
[알았어.]
모자에 달리 무선통신기로 소연에게 위험을 알리고, 구미호에게 불꽃 탄환을 막도록 했다.
“펑펑펑~”
구미호의 꼬리에서 황금빛 레이저가 날아가 불꽃 탄환을 요격하자 공중에서 화려한 폭죽이 터졌다.
공중에서 폭발한 불꽃 탄환이 땅에 떨어지자 황량한 사막이 불바다로 변하며 매캐한 연기를 뿜어냈다.
연기는 숨을 참으면 되지만, 신발이나 방어구에 불이 옮겨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아 큰 낭패를 볼 수 있었다.
불꽃 탄환을 발사하지 못하게 등껍질에 숨어 불꽃 탄환을 쏘아내는 사막거북 정면으로 구미호를 이동시켰다.
“펑펑펑!”
입에서 발사한 불꽃 탄환이 바로 코앞에서 터지자 사막거북의 등껍질과 얼굴에 불이 붙었다.
“킥~”
자기가 쏜 스킬에 불이 붙자 당황한 사막거북이 비명과 함께 얼굴을 땅속에 처박고 비벼댔다.
“체앵~”
가방에서 꺼낸 짧은 금속 막대기를 손에 쥐고 버튼을 누르자 1.5m짜리 투창으로 변했다.
그동안 긴 창을 가지고 다니는 게 불편해 어떻게 하면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영화에서 나온 신기한 창을 떠올려 버튼을 누르면 위아래로 튀어나오는 투창을 만들었다.
창끝은 은행나무를 촉으로 사용하고, 창대는 본스틸과 초경합금 탄화텅스텐을 섞어 무게와 강도를 더했다.
“쒸우웅~ 쒸우웅~”
연달아 날아간 두 발의 창이 빠르게 회전하며 소닉붐을 일으켰다. 맹렬하게 날아가는 창의 접근을 숨기기 위해 구미호가 사막거북의 머리에 레이저를 쉴 새 없이 쏘아댔다.
“피용피용~ 피용피용~”
앞서간 창이 사막거북의 머리에 접근한 순간 위험을 감지한 놈이 황급히 코끼리 허리만큼 굵은 다리를 들어 창을 쳐냈다.
“팅~”
창을 쳐내자 강력한 전류가 피부에 스며들어 몸을 마비시켰다. 몸이 마비된 순간 바로 뒤를 따라온 또 다른 창이 다리를 뚫고 지나갔다.
“퍽!”
“킥~킥~킥~”
회전이 걸린 투창이 1m가 넘는 두꺼운 다리를 뚫고 지나가자 농구공만 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폭포수 같은 피가 쏟아져 내리자 겁에 질린 사막거북이 허겁지겁 땅속으로 숨으려다.
구미호가 상처 난 다리에 레이저를 마구 쏘아대며 놈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사이 냉기탄을 연속으로 쏘았다.
“꽝꽝!
냉기탄이 날아오자 엉금엉금 기는 거북이가 맞나 싶을 만큼 재빠르게 움직인 놈이 뒷걸음으로 물러나 불꽃 탄환을 쏘았다.
그러나 구미호가 놈을 따라붙으며 레이저로 탄환을 맞추자 또다시 얼굴에 불이 붙었다.
놈이 불을 끄기 위해 땅에 얼굴을 처박는 순간 또다시 날아온 두 자루 창이 반대편 앞발마저 꿰뚫자 쏟아져 내린 피가 황색 바위를 붉게 물들였다.
땅을 팔 앞발이 모두 크게 다치자 땅속으로 도망가는 걸 포기했는지 머리와 다리, 꼬리를 등딱지 속에 숨긴 채 가만히 있었다.
“쾅!”
포스를 잔뜩 머금은 투창에 사막거북의 회색 등딱지를 정확히 때렸지만, 살짝 상처만 낸 채 튕겨 나왔다.
지금까지 상대한 엘리트 레드몬 중 창과 칼을 정면으로 받고 무사한 놈은 사막거북이 유일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생각에 창을 연달아 열 자루를 던졌다. 밸리 오브 파이어가 들썩거릴 만큼 커다란 굉음과 진동이 일어났지만, 사막거북은 미동도 않은 채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등딱지가 단단해 창 공격을 막아낼 순 있어도 충격과 진동까지 완벽히 흡수할 수 없었다.
전차가 강력한 포탄에 피격당하면 겉은 멀쩡해도 충격과 진동에 승무원이 죽어 기동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놈도 그와 같이 겉은 멀쩡해도 충격은 받고 피를 토해야 하는데, 기감으로 살펴본 놈의 상태는 충격을 받긴 했지만 못 버팅 정도는 아니었다.
‘충격을 땅으로 흘려보내. 참 별의별 놈이 다 있네. 뒤집어서 배를 공격해야 하나? 아니면 강력한 내려치기?’
창을 들고 놈에게 살살 접근했다. 구미호는 갑작스러운 탄환 공격을 경계해 놈의 얼굴에 앞에 머물며 레이저로 계속 얼굴을 공격했다.
머리와 다리가 들어간 구멍을 공격할까 생각하다 기감으로 확인하곤 포기했다. 머리와 다리가 들어가자 등딱지와 같은 단단한 껍질이 자동문처럼 닫혀 외부공격을 완벽히 막아냈다.
재빨리 옆으로 다가가 창을 지렛대로 사용해 놈을 뒤집었다. 기우뚱하며 넘어가려는 순간 팽이처럼 몸이 빙그르르 돌아가기 시작했다.
놈의 몸이 점점 빠르게 회전하자 소용돌이가 생기며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이게 한숙이 말한 모래 폭풍인 게 분명했다.
모래 폭풍을 피해 뒤로 물러나자 불꽃 탄환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놈이 회전하며 탄환을 쏘아내자 360도 전 방위에 불꽃 탄환이 쏟아지며 반경 500m가 불바다로 변했다.
구미호도 사막거북의 고속 회전을 따라잡을 수 없는지 내 머리 위에 둥둥 뜬 채 정면 90도 방위에 날아온 불꽃 탄환만 요격했다.
회전하며 날아와 공격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앞다리를 모두 다쳐 방향 전환을 할 수 없자 제자리에서만 계속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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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