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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232화 (232/505)

00232  불타는 벳푸... 일본원숭이  =========================================================================

232.

“미국과 영국, 러시아에 공증을 서달라고 하면 되겠네요. 그럼 서로 뒤에 가서 딴말할 수 없잖아요.”

“오! 그게 좋겠네.”

은비의 의견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미국과 영국, 러시아엔 꼼짝 못 하는 일본이 그들 앞에서 한 협상을 아니라고 하진 못할 것이었다.

“양국 문제에 삼국을 끌어들이는 일은 온당치 못합니다.”

“원래 이런 일은 믿을 수 있는 공증인이 필요요. 그래야 아까 말한 불신을 털어낼 수 있잖아요. 안 그런가요?”

“커험~ 정 안 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확 구겨진 이승구 비서실장의 표정으로 보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 거래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항상 뒷구멍으로 뭘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놈들이라 뭔가 숨기는 게 있을 거란 건 예상했던 일이었다.

독도 문제를 해결하면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치적이긴 하지만, 당장 손에 떨어지는 것은 없었다.

정치적 실리도 올라갈 곳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대한민국 대통령은 내려올 자리는 있어도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어 치적 쌓기로 끝내기엔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공은 이제 우리에게 넘어와 이승구 비서실장이 인상을 쓰거나 말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결정한 이상 내일부터 일본을 닦달해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낸 뒤 계약을 마무리하면 끝이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많을수록 대통령에게 떨어질 콩고물은 줄어들게 분명했다. 이승구 비서실장의 인상이 펴지지 않는 것도 그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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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2월 5일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과 동해 지명표기, 배타적 경제수역에 합의했습니다. 벳푸협정 체결은 대한민국 외무부, 일본 외무성, 미래 레드몬 외에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브라질, 인도, 터키 등 25개국 외무부가 공증에 동참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한숙이 카메라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또한, 오구라 컬렉션 외에 추가로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 2,000점을 반환하기로 일본 정부와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래 레드몬 사냥팀은 규슈 오이타 현 벳푸 시에 출몰한 A급 엘리트 레드몬 레드마카크를 퇴치하기 위해 내일 규슈로 출발합니다.”

이승구 비서실장이 돌아간 다음 날 아침 우리와 일본이 레드마카크 퇴치 사냥계약에 합의 직전이란 조일, 대일, 합동 일보 등 찌라시 신문들의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찌라시 신문들은 독도 문제로 애국심을 부각해 독도를 영구히 조국의 품에 안아야 한다면 계약을 빨리 맺어야 한다며 국민을 선동했다.

일본 정부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레드몬 사냥팀에 보낸 공문을 근거로 이들이 원숭이 사냥에 나서면 독도는커녕 문화재도 찾아올 수 없다며 계약을 서둘러야 한다면 우리를 압박했다.

독도 문제와 문화재 반환 건, 의뢰비용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승구 비서실장이 정보를 언론에 흘린 게 분명했다.

국민의 애국심을 이용해 추가협상 없이 계약을 마무리해 콩고물을 남기겠다는 속셈이 뚜렷했다.

놈들이 그럴수록 우리는 시간을 질질 끌며 일본의 피해를 키워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갔다.

그렇게 놈들의 자승자박(自繩自縛) 덕분에 동해 표기와 배타적 경제수역이란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대한민국에 선사했다.

배타적 경제 수역(Exclusive Economic Zone)은 국제 연합 협약(UNCLOS)에 근거해 설정하는 경제적 주권이 미치는 수역을 말했다.

자국의 연안으로부터 200해리(약 370km)의 범위의 수산자원 및 광물자원 등의 비생물자원의 탐사와 개발에 관한 권리를 얻을 수 있는 대신 자원의 관리나 해양 오염 방지의 의무를 진다.

하지만 영해와 달리 영유권이 인정되지 않아 경제 활동의 목적이 없으면 타국의 선박 항해와 통신 및 수송을 위한 케이블이나 파이프의 설치가 가능했다.

“CNN 조지 마이클 기자입니다. 이번 사태가 일본 정부의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처음 듣는 얘기네요.”

“일본 정부가 레드마카크를 실험용으로 새끼들을 잡아들이며 비극이 촉발됐다는 중앙정보국 비밀문서를 CNN이 입수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군요. 좀 더 알려주실 수 있나요?”

“입수된 문서에 따르면 731부대에서 레드마카크 새끼를 세뇌해 병기로 사용하기 위해 새끼 포획에 나섰습니다. 동원된 레드몬 사냥팀은 흑룡회와 겐요사, 일본회의 소속 중급 나이트 20명과 하급 멘탈리스트 30명이었습니다. 이들은 1월 20일 새벽 레드마카크의 서식지인 유후산에 접근해 어린 새끼 두 마리를 포획하고 임신한 암놈 열 마리와 하급으로 성장 중인 새끼 스무 마리를 죽인 후 달아났습니다. 이에 분노한 A급 엘리트 레드몬이 이들의 냄새를 따라 벳푸 시로 무리를 끌고 내려오며 이번 사태가 촉발됐다고 문서에 쓰여 있습니다.”

“조지 마이클 기자님의 말씀은 이번 사태가 우발적인 게 아니라 일본 정부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태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레드마카크 새끼를 포획하고 달아나려면 냄새를 완벽히 지우거나 무리 전체를 죽여 이후 일어날 피해를 미연에 방지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만 달성하고 벳푸 시를 통해 혼슈로 달아나 A급 엘리트 레드몬과 100여 마리가 넘는 중급 레드마카크를 불러들였습니다.”

“뒷마무리를 확실하게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죠.”

“세계포스협회는 이 부분에 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레드몬 사냥으로 인해 촉발된 모든 피해는 레드몬 사냥팀에 있다.’ 세부적인 내용까지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것입니다. 뒷마무리를 못해 레드몬을 도시를 끌어들이면 그 책임이 레드몬 사냥팀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번 사태는 뒷마무리를 못해 벳푸 시로 레드마카크 무리를 끌어들인 일본 정부에 명백한 책임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 잘못이 있는 만큼 억울하게 죽은 벳푸 시민들과 해외 여행객들의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CNN 조지 마이클 기자는 영악하게 CIA 문서를 이용해 일본 정부의 잘못을 폭로하며 자신의 이름과 주가를 단번에 끌어올렸다.

한숙도 조지 마이클 기자가 마음 놓고 말할 기회를 제공해 일본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는 일에 동참했다.

물론 일본의 원망은 우리가 아닌 CNN과 조지 마이클 기자에게 쏟아질 테고, 미국이란 든든한 배경을 지닌 이들은 일본의 원성쯤은 가볍게 무시할 것이었다.

조지 마이클 기자의 폭로로 벳푸협정 체결 발표를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은 일본 정부의 만행을 규탄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이름을 지어도 731부대가 뭐야? 생체실험으로 사람들을 죽인 게 부끄럽지도 않나?”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지 일본 정부는 자랑스럽게 생각할걸. 생체실험으로 엄청난 이득을 취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살아 있는 사람을 상대로 각종 세균과 인체 실험을 했는데,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

“소수의 범죄자들을 이용해 질병을 없애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겠지. 인류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소연의 말에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위정자들이 가장 쉽게, 가장 자주 내뱉는 말이 인류를, 민족을, 국가를, 대의를 위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자기 이익을 위해 국민을 희생하겠다는 것이었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온갖 명분을 만들어 국민을 쥐어짜겠다는 것이 바로 인류를, 민족을, 국가를, 대의를 위한다는 말이었다.

“말도 안 돼!”

“731부대의 책임자 의사 이시이 시로(石井四郞)를 포함해 관련자 중 전쟁 범죄자로 기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뭐라고?”

“미국이 인체실험 자료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관련자 전원을 석방했어. 미국과의 거래로 731부대의 만행이 영원히 묻힐 뻔했어.”

“뻔뻔한 새끼들. 진정한 악의 축들이네.”

“1981년 일본인 작가 모리무라 세이치가 다큐멘터리 '악마의 포식'을 발표해 731부대의 만행이 밝혀진 거야. 그러나 일본 정부는 731부대의 실체를 부인했어.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부대의 존재를 인정했지. 하지만 아직도 자료는 찾지 못하겠다, 확인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일왕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설립한 유일한 부대 731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 관동군 소속의 세균전 연구·개발 기관으로 일제가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에 주둔시킨 비밀부대였다.

1936년 일제의 만주 침공 때 설립됐고, 1945년까지 생체 해부 실험과 냉동 실험 등 치명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하며 생물·화학 무기 개발에 주력했다.

'통나무'란 뜻으로 생체실험 대상자를 가리키는 말인 '마루타'는 한국인, 중국인, 만주인, 몽골인, 러시아인 등 전쟁포로와 그 외 구속된 사람들로 최소 3,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살아있는 사람을 총칼로 찌르고, 매독 주사를 놓고, 한겨울에 팔에 찬물을 계속 부어 팔을 얼게 만든 후 뜨거운 물에 팔을 넣어 동상실험을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를 줄이고 압력을 높여 사람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실험했고, 가스를 주입해 아이와 엄마가 얼마나 버티는지도 실험했다.

일부 수용자는 위가 절제돼 식도와 장이 연결되는 실험을 당하고, 뇌·폐·간 일부가 제거되기도 했다.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피부가 산 채로 벗겨졌고, 의식은 살아있는 반 시체 상태의 실험자가 불태워졌으며,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절단해 각각 상대방의 국부에 이식하는 성전환수술을 실험했다.

“이런 놈들을 도와줘야 하는 거야? 악마 새끼들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번 일은 마지막이 아닌 시작일 뿐이니까. 우린 엘리트 레드몬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가 빼앗긴 것들을 찾아오면 되는 거야. 찾아올 것이 없으면 그때부턴 일본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빼앗으면 돼. 세상은 넓고 레드몬도 끝없이 생겨나니까.”

소연의 말이 맞았다. A급 엘리트 레드몬 레드마카크의 출현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지난 10년간 엘리트 레드몬의 수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20년간 최하급과 하급이 레드몬의 주류였다면 이젠 중급과 엘리트 레드몬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시대가 바뀌며 엘리트 레드몬을 잡을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다면 최악에는 나라가 멸망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능력자의 수를 늘리기 위해 인권을 무시하고, 생체병기를 만드는 등 살아남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하나씩 하나씩 뺏어오는 거야. 일본이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그렇게 빼앗기다 보면 놈들도 우리가 느낀 상실감이 얼마나 컸는지 느끼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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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후 삼족오 그림이 선명하게 보이는 A300-300 항공기가 오이타 공항에 안착했다.

검은색 방어구로 전신을 감싼 미래 레드몬 사냥팀과 하얀 순백의 풍산개들이 비행기를 빠져나오자 내외신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밤하늘의 별빛처럼 빤짝였다.

기자들을 위해 잠시 자세를 취해준 후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야? 오이타 공항이라고 해서 오이타 시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긴 한참 북쪽이잖아. 벳푸 시와도 직선으로 30km나 떨어져 있네.”

“대도시에 공항 붙어 있는 거 봤어?”

“나진 공항은 바로 앞이잖아.”

“집에서 공항까지 직선거리로 10km야. 바다라 시야가 탁 트여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지.”

“그런가?”

“기감력을 운용하는 사람이 나보다 거리 감각이 없어?”

“그거하고 기감력하고 무슨 상관이야?”

“평소에 거리를 잘 맞혀야 엉뚱한 곳에 정액을 안 쏘지. 걸핏하면 얼굴이나 이불에 쏴서 청소하는데 애먹잖아.”

“컥!”

“한 번만 더 눈에 쏴봐. 그땐 고추 물어뜯을 줄 알아. 알았어?”

“.......”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은비에게 한소리 들었다. 어젯밤 입에 정액을 쏜다는 게 흥분한 나머지 얼굴을 범벅으로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눈에도 정액이 들어갔다.

다행히 따갑지는 않았지만 끈적끈적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지 온종일 눈을 비비며 신경질을 냈다.

‘변기에 그려진 파리는 잘 맞추는데 정액은 왜 마음처럼 안 맞지.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가?’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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