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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231화 (231/505)

00231  불타는 벳푸... 일본원숭이  =========================================================================

231.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우리가 왜 일본을 돕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해줬으니 우리도 일본의 어려움을 도와야 한다고 쓰여 있네요. 은혜를 갚으라는 말도 함께요.”

“지랄 쌈 싸먹기 하네. 개 같은 놈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해줬다니... 너무 어의가 없네요. 일본 경찰과 군인들 손에 목이 잘린 독립투사와 무고한 양민이 얼마나 많은지, 전쟁에 끌려가 죽거나 다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수탈은 또 얼마나 극심했는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런 글을 쓸 순 없을 텐데. 에휴~”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어도 이럴 순 없는 거 아니야?”

“세뇌라고 밖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요.”

상아가 들고 온 조일, 대일, 합동 신문엔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문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조일 일보의 변호재 사장, 대일 일본의 고용호 사장, 합동 일보의 민병섬 사장이 쓴 기고문은 단어 배열만 조금 다를 뿐 내용은 똑같았다.

기고문 황당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내용으로 일본 때문에 정신을 차려 애국 계몽 운동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배울 기회를 가졌고, 애국심을 고취해 3·1 운동을 일어나 민족의식을 일깨웠다고 쓰여 있었다.

또한,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이김으로써 러시아 합병을 막아 우리나라를 지키는 건 물론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했기 때문에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다고 썼다.

심지어 한강의 기적도 일본의 근면성과 성실함을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로 게으른 조선인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적어 놨다.

신문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기고문엔 일본을 찬양하는 글과 모든 것이 일본의 영향으로 받아 발전했다는 억지 논리만 가득했다.

변호재와 고용호, 민병섬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이 발전할 수 있도록 근대화했기 때문에 이만큼이나 먹고사는 것이라고 역설한 후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으려면 온 힘을 다해 일본을 도와야 한다고 기고문을 끝맺었다.

“대단한 애국자 나셨네. 이런 애국자들이 왜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지? 조국인 일본에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발가락에 때보다 못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에 왜 사는 거야. 이민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기고문을 쓴 변호재와 고용호, 민병섬도 문제지만 이런 기고문을 보고도 뒷짐만 지고 있는 우리 정부가 더 문제인 것 같아요. 반민족 행위를 떠나서 이건 엄연한 허위사실 공표잖아요.”

“이 나라 정부도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서 그런가?”

“지금 하는 꼴 보면 어느 나라 정부인지 정말 모르겠네요.”

아영의 말처럼 조일 일보의 변호재와 대일 일본의 고용호, 합동 일보의 민병섬이 쓴 기고문은 반민족적 행위로 받듯이 처벌받아야 마땅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라도 이건 엄연히 거짓된 말로 국민을 속인 명백한 범죄행위였다.

하지만 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과 법을 집행해야 할 사법부, 경찰은 마치 다른 나라 일처럼 무관심하기만 했다.

“상아야! 당장 서정재 변호사에게 전화 걸어 이놈들 고소하라고 해. 단순히 벌금 정도가 아니라 이 기회에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말도 잊지 마.”

“알았어요.”

“아영이는 한숙에게 전화 걸어 주식이건, 건물이건, 땅이건 놈들을 압박할 수단을 강구하라고 해.”

“네.”

“서인은 강승원 국장에게 전화해 놈들 비리 캐보라고 해. 아주 작은 것도 상관없으니 찾아낼 수 있는 건 모조리 찾아내라고 해.”

“그럴게요.”

“이것들은 언론이 아니라 해충이야. 이번 기회에 기필코 박멸해야 해.”

조일, 대일, 합동 일보의 기사에 맞서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에서 반박 기사를 내보내자, 미래사랑 팬클럽을 중심으로 규탄 집회가 이어졌다.

단국 방송에선 통렬한 비판과 함께 무엇이 잘못됐는지 5부작 특집으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생생하게 방송했다.

또한, 일제가 조작한 우리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하는 등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비틀어진 우리 문화를 바로 잡아 한민족의 자긍심을 세우기 위한 노력에 돌입했다.

그동안 정권의 나팔수 노릇만 하던 공영방송은 편파적인 내용으로 일관해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썼다.

단국 방송은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사실에 근거한 비판적인 뉴스, 책임지는 뉴스를 내보내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덕분에 방송심의위원회의 경고·해명·정정·취소·사과 등 제재가 끊이지 않아 전정우 단국 방송국 사장이 톱스타보다 더 자주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쳤다.

그래도 짭짤한 출연료와 투명하고 공정한 방송제작, 차별화된 시설 등 월등한 장점으로 연예인은 물론 유능한 기자와 PD, 작가 등이 몰려들어 양질의 방송을 내보내며 시청자들을 뺏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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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불이요?”

“그렇습니다.”

“관심 없다고 전해주십시오.”

첫날 1억 불이던 퇴치비용이 일주일 만에 열 배인 10억 불로 치솟았다. 10억 불이면 8,000억 원으로 지금까지 나온 레드몬 퇴치비용 중 가장 높은 금액이었다.

8,000억 원이면 몇 대에 걸쳐 호의호식할 금액으로 일반인은 꿈도 꿀 수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살아있을 때 얘기지 죽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짓조각이라 퇴치요청에 응한 레드몬 사냥팀은 한 곳도 없었다.

일본 정부는 피해가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코쿠와 홋카이도에 100명의 능력자만 남겨둔 채 400명을 오이타 시로 집결시켰다.

또한, 해상자위대 구레 제4호위대군을 벳푸 앞바다로 이동시켜 일본원숭이들이 벳푸를 빠져나갈 경우 함포 공격으로 막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오구라 컬렉션도 모두 회장님께 양도하기로 했습니다.”

“오구라 컬렉션은 약탈문화재로 양도가 아니라 국제법상 당연히 반환해야 하는 겁니다.”

“그들은 약탈이 아닌 정당한 대가를 주고 샀다고 말합니다.”

“놈들이 우리나라 고분과 묘를 죄다 파헤쳐 문화재를 훔쳤다는 걸 세계도 아는데, 비서실장님은 정말 모르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1905년 대한제국과 강제로 보호조약을 체결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1906년 3월 조선 통감 자리를 꿰차자 일확천금을 꿈꾸던 일제의 골동품상 패거리가 부산과 인천을 거쳐 서울로 몰려들었다.

이들에게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 통감부임은 임진왜란에 버금가는 문화재 약탈의 기회가 되었다.

임진왜란의 주역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의 선진문물 약탈을 위해 사무라이와 승려까지 출병하는 왜군 틈새에 끼워 넣었다.

이들은 조선의 사찰과 관아의 책과 활자는 물론 불화와 불상을 약탈하고, 도공과 장인(匠人)을 닥치는 대로 끌고 갔다.

1895년 대한제국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한 이토 히로부미에게 문화재 약탈은 양심에 거리끼지도 않는 일이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보호 속에 통감부 관리들은 일본인 골동품상과 이른바 호리라 불리는 도굴꾼들을 끌어들였다.

1905년부터 경기도 개성 일대의 왕릉과 무덤을 파헤쳐 부장품(副葬品)으로 묻힌 고려자기를 쓸어 담아 골동품 중개상인 이유가이(鮎貝房之雄)와 아가와(阿川童郞)를 통해 일본에 무더기로 팔아넘겼다.

이토 히로부미도 이들을 통해 일본 천황과 귀족들에게 선물할 고려청자 수천 점을 손에 넣었다.

이 가운데 일품(逸品) 103점을 골라 일왕에게 진상하고, 나머지는 귀족들에게 돌렸다.

이렇듯 고려청자가 불티나게 팔리자 도굴은 개성으로부터 강화도와 황해도 해주 쪽으로 확대되었고, 결국엔 조선 팔도의 묘란 묘는 모조리 파헤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증명할 방법이 없다니요? 양심 있는 일본 사학자들이 훔쳤다는 걸 책과 글로 남기고 이렇듯 사진과 당시 약탈당한 정황증거들이 무수 남아있는데 그게 지금 정부 관리가 할 소리입니까?”

“그 물건이 같은 물건인지 알 수 없고, 훔치고 도굴했다고 증언해줄 증인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겨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

“에헴... 그리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다시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도 함께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독도 때문에 대통령께서 오성 공대와 청사자 공대에 연락을 취하셨군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행동이셨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어련하시겠습니까.”

일본원숭이가 벳푸 시를 장악한지 열흘 만에 청와대 이승구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진시를 은밀히 찾아왔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일본의 도움을 거부하고, 김필수 외무부 장관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자, 나랑 가장 친하다고(?) 알려진 이승구 비서실장이 찾아와 일본의 요구조건을 말하며 도움을 구했다.

“오구라 컬렉션이면 거의 국보급이라 가치로 따지면 10억 불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습니다. 거기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본이 독도와 문화재를 내놓는 건 성의를 다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회장님도 충분한 이득을 취하셨고, 국민도 이해할만한 수준이니 이제 그만 일본을 도와주십시오.”

“엄연한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지 않겠다는 게 국민이 이해할만한 조건입니까?”

“저도 말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력이 딸리니 어쩌겠습니까? 억울하지만, 이 기회에 도독 문제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양국 관계가 더욱 발전할 수 있습니다.”

“도통 무슨 말이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국제관계란 게 다 그렇습니다. 때론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하지만, 약하면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움을 바라는 건 우리가 아니라 일본입니다.”

“지금은 아베 마사히코 회장과 호소카와 모리히 총리가 서로 반목하며 틈이 생겨 그렇지 일본의 막강한 힘을 생각하면 언제든 레드마카크를 처단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라고 하십시오.”

“틈이 생겼을 때 이득을 취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문화재를 돌려받는 것도, 독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요원한 일입니다.”

이승구 비서실장의 말도 안 되는 말에 넘어가 일본을 돕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오구라 컬렉션과 독도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오구라 컬렉션은 공식 확인된 것만 2,200여 점으로 이 중 39점은 일본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수준이 매우 높았다.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의 고고유물은 422건으로 견갑형동기, 다뉴세문경, 금제관, 금동관모 등은 일본 문화재로 지정된 국보급이었다.

강희맹의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진 독조도를 비롯해 정선, 강세황, 김홍도 등의 작품도 다수 있었고, 용봉문두정투구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효종이 금·은을 박아 넣은 어갑주를 하사한 귀중한 자료였다.

문제는 오구라 컬렉션이 환수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는 한·일 협정으로 약탈 문화재 반환문제는 해결되었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 약탈당한 6만 점이 넘는 우리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의 문화재로 둔갑하여 도쿄국립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의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국가 간의 약속입니다.”

“워낙 말 바꾸기를 좋아하는 놈들이라 저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문화재를 먼저 보내고, 독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기 전까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재를 보내고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공식 발표했는데, 회장님이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비서실장님! 일본 대변인으로 오셨습니까? 너무 노골적이군요.”

“오해하지 마십시오. 전 중립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린 겁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놈이 뻔뻔하게 일본 편을 들며 나불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

마음 같아선 이쑤시개로 대가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릴 때까지 후벼 파고 싶었다.

판 곳을 또 파고 또 파고...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놈에게 안겨주고 싶었다.

============================ 작품 후기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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