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9 불타는 벳푸... 일본원숭이 =========================================================================
229.
“일본은 원숭이 때문에 난리고, 중국은 늑대들 때문에 난리네.”
“둘 다 피해가 만만치 않겠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방어벽이 뚫리고 도시 안까지 들어갔으면 최소 수만 명은 죽는다고 봐야지.”
“중국과 일본을 싫어하지만, 죄 없는 사람들까지 죽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래서 나라를 책임진 정치인이 잘해야 하는 거야. 국가를 개판으로 운영하면 죄 없는 국민만 죽어 나가니까.”
“그런 사람을 뽑은 국민이 더 문제가 많지 않을까요?”
“네 말이 맞다. 얼마나 무지하면 자기 죽일 사람을 대통령, 국회의원으로 뽑겠냐.”
품에 안겨 안타까워하는 상아, 등에 매달려 얼굴이 굳어진 아영, 가슴을 허락한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서인까지 모두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레드몬이 도시를 습격하는 일은 아주 흔해 TV에서 떠들 만큼 대단한 뉴스도 아니었다.
단, 중국과 일본의 혈랑과 원숭이처럼 100마리 이상이 무리 지어 공격하는 일은 매우 드물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최하급 레드몬인 레드마우스는 서식지를 공격받으면 1,000마리 이상 떼 지어 덤벼드는 일도 간혹 있지만, 이 경우는 자기 본거지를 공격받아 방어 차원에서 공격하는 것이라 도시에 몰려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프리카와 호주,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도 혈랑떼처럼 무리 지어 다니는 레드몬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대다수는 비선공형인 초식 레드몬이라 알아서 사람과 도시를 피해다녔고, 지역이 넓고 먹이가 풍부해 도시까지 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그동안 마을 단위나 작은 소도시가 혈랑 무리에 공격받은 일은 아주 흔했지만, 이춘 시처럼 큰 도시가 공격받은 일은 없는 거로 아는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지속적인 피해로 농가와 작은 마을이 사라지며 사람들이 도시로 몰렸잖아. 혈랑들도 먹이를 찾아 도시까지 갔다고 봐야지.”
“결국, 서식지 파괴가 문제네요.”
“그렇지.”
쑹화 강의 북쪽에 있는 이춘 시는 하얼빈에서 북동쪽으로 260km 떨어진 도시로 한족과 만족, 조선족, 후이족, 오로촌족 등이 거주했다.
만주 동쪽에서 활약 중인 청풍단이 주로 활동하는 곳으로 주변 중소도시를 합치면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는 중요 도시로 3만 명이 넘는 군대가 주둔했다.
“중국은 혈랑의 서식지 파괴로 대도시 공격이 예견된 일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조용하던 일본은 갑자기 왜 저런 걸까요?”
서인의 질문에 뭐라 답해줄 말이 없었다. 벳푸 시 주변은 온통 산지로 일본원숭이가 많이 사는 곳이었다.
긴꼬리원숭잇과에 속하는 일본원숭이는 일본 고유종으로 사람을 제외하면 가장 북쪽에서 서식하는 영장류였다.
북으로는 시모키타 반도에서 남으로는 야쿠 섬까지, 혼슈, 규슈, 시코쿠 각지에 분포하는 일본원숭이는 군집생활을 하며 평지부터 해발 1,500m의 높은 지대까지 골고루 흩어져 살았다.
몸길이 50~70㎝, 꼬리 길이는 5.5~9㎝로 온몸이 다갈색의 털로 덮여 있고 얼굴과 엉덩이는 선명한 다홍색이다.
집단 내에서는 한 마리의 지도자가 전권을 휘두르는 형태로 건장한 수컷이 평균 2~5년간 집권했다.
밤·감·귤·복숭아 등의 과일을 즐겨 먹고, 나뭇잎의 어린 싹·나무껍질·곤충·조개 등도 잘 먹었다.
작년 12월 10일 개국한 단국 방송국의 여자 아나운서가 전해주는 뉴스 특보에는 헬기에서 촬영한 벳푸 시의 모습이 보였다.
중심가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 곳곳이 불타오르며 검은 연기가 까맣게 치솟았고, 일본원숭이의 날카로운 비명과 요란한 총소리, 포탄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벳푸 시의 모습은 지난해 4월 강릉에서 호그질라를 막던 모습과는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살벌했다.
강릉은 방어벽을 끝까지 지키며 호그질라가 시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숫자도 달랑 한 마리라 한곳에서 전투가 치러졌지만, 벳푸 시는 100마리가 넘는 일본원숭이가 사방에 흩어져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춘 시를 탈출한 수십만 명의 피난민이 서쪽의 허강 시와 남쪽의 쑤이화 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춘 시는 레드울프들이 80% 이상 장악한 상태로 살아남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건물 곳곳에 숨어 저항하고 있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군이 가진 무기로 레드울프를 잡을 수 있나요?”
“개인화기론 어림없는 소리지. 기껏해야 소총과 수류탄이 전부인데 그거론 털끝도 못 태워.”
“혈랑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던데, 숨어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중국군도 맡은 임무가 있고, 상부 지시 사항이 있어 그냥 숨어 있을 순 없을 거야. 그리고 레드울프도 피를 본 상태라 잡아먹진 않아도 닥치는 대로 죽일 가능성도 크고.”
“저러다 피난민까지 공격받는 거 아닌지 걱정이네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레드몬도 흥분하면 약탈자와 다를 게 없으니까.”
“아! 전투기와 헬기도 출동했네요.”
상아의 외침에 서인의 가슴을 혀로 희롱하다 급히 TV로 시선을 돌렸다. 옆집과 아랫집에 도둑이 들어 난리가 났지만, 불똥이 우리에게 튀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서인, 아영, 상아는 걱정이 큰지 정신없이 TV를 바라보고 있지만, 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간간이 바라보며 아내들의 아름다운 몸을 더듬는데 더 많은 정신을 쏟았다.
중국과 일본이 미워도 중국인과 일본인까지 미워하지 말자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전체가 범죄에 가담한 건 아니니 그 말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일부 양심적인 학자와 기자들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다수가 아닌 소수의 의견으로 다수는 우리를 여전히 무시하고 그날의 일을 영광으로 기억하며, 다시 그날이 재현되기를 원했다.
난 그래서 그들이 싫었다. 대놓고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을 뿐 마음속엔 못마땅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런 뉴스가 나와도 측은하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잘됐다는 마음까지 갖고 싶진 않았지만, 그들을 위해 흘려줄 눈물 따윈 없었다.
간헐적인 전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국 관영통신인 신화통신 기자들이 용케 옥상에 숨어 이춘 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옥상에서 찍은 영상은 레드울프의 모습도 일부 담겨있었고, 화염과 연기에 휩싸인 건물도 군데군데 보였다.
그리고 조금 전 나타난 전투기와 공격헬기들이 레드울프를 공격하는지 귀청을 찢을 듯한 폭음과 건물을 뒤흔드는 폭발 여파까지 벳푸 시의 전쟁터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기자들 저러다 죽는 거 아니에요?”
“알아서 하겠지. 그만 보고 밥 먹으러 가자. 오늘내일 끝날 일도 아니고 이따 밤에 봐도 충분해.”
“네!”
나날이 커지는 미래 레드몬과 나진시의 규모로 소연, 은비, 한숙은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아내들이 모두 모이고 아리와 소희, 홍은하 소장, 아정, 아솔, 아림까지 둘러앉자 대가족이 따로 없었다.
아정, 아솔, 아림은 잠만 따로 잘 뿐 하루에 반은 우리 집에서 지내며, 공부도 하고, 밥도 먹고, 뛰어놀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얼굴을 맞댔다.
나이도 둘째 아정이 16살, 아솔이 14살, 아림이 13살로 둘째 아정은 제법 처녀티가 나며 하루하루 성숙미를 더해갔고, 언제나 나를 당황하게 하던 막내 아림도 제법 철이 들어 요조숙녀인 척 행동했다.
“오노 사토시 특사와 주득해 특사가 찾아왔어요.”
“레드몬 때문이야?”
“네.”
“상황이 심각한가 보네?”
“언론엔 보도되지 않았지만, 능력자와 방어부대가 큰 피해를 봤나 봐요.”
“얼마나?”
“피해규모를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는 거로 봐선 상당한 것 같아요.”
“일본에서 A급 엘리트 레드몬을 잡은 기록 있어?”
“B급은 두 번 있는데, A급은 한 번도 없어요.”
“A급을 잡을 능력이 없으면 앞으로도 피해가 엄청나겠네.”
“언론에 보도된 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원숭이들이 도시를 들쑤시고 다녀 물적 피해도 엄청나고, 죽은 사람도 보도된 것보다 최소 세 배는 많다고 했어요. 특히, 온천 여행 온 외국 관광객들 피해가 커 일본 정부가 곤혹스러워하고 있어요.”
저녁 훈련을 마치고 서재로 모두 모이자 강승원 국장이 일본과 중국의 현재 상태를 브리핑했다.
“화면에서 보시는 것처럼 이춘 시를 습격한 청풍단의 보스 청풍은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몸길이 8.5m, 꼬리길이 2.7m, 무게는 대략 1ton에서 1.5ton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엘리트 레드몬은 청풍 한 마리가 전부인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부보스 급으로 B급과 C급 엘리트 레드몬이 각각 한 마리씩 있습니다. 청풍과 함께하는 것으로 보아 새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000마리에 엘리트 레드몬이 세 마리면 전력이 엄청나네요.”
“만주를 지배하는 혈풍단, 흑풍단, 청풍단, 백풍단, 황풍단의 규모는 최하가 3,000마리 정도로 가장 강력한 혈풍단은 5,000마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엘리트 레드몬도 혈풍단은 A급인 혈풍을 제외하고 B급만 세 마리를 보유했고, 흑풍단과 백풍단, 황풍단도 엘리트 레드몬을 두 마리 보유했습니다.”
“우와~ 중국 정부가 걱정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아영의 말처럼 레드울프 무리는 두려움을 느낄 만큼 엄청난 규모로 중국 정부가 화이 공대를 투입하지 못하고 공중 폭격에 의지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능력자 1,000~2,000명을 투입해 토벌에 나서면 레드울프를 토벌하는 게 아니라 화이 공대가 토벌당할 수도 있을 만큼 전력이 막강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초창기 레드울프 무리가 40~50씩 몰려다닐 때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화이 공대를 투입했다면 지금쯤 이와 같은 규모로 성장하진 못했을 것이다.
“일본 오이타 현 벳푸 시에 침입한 중급 레드마카크는 신장 2.2m, 꼬리 길이 0.5m, 무게는 대략 140~160kg 사이입니다. 숫자는 일본 정부에서 밝힌 것처럼 100~130마리 사이로 무리의 지도자인 A급 엘리트 레드몬은 밝은 황금색 털로 뒤덮인 수놈으로 신장 4m에 꼬리 길이 1.5m, 무게는 500~600kg 정도로 예측합니다. A급만큼은 아니지만, C급 역시 노란 황금색 털로 전신이 덮인 형태로 신장 2.6m, 꼬리 길이 0.7m, 무게 250~300kg 정도입니다. 크기나 털 색깔로 봤을 때 최근에 엘리트 레드몬으로 진화한 것 같습니다.”
“C급이 암놈이란 소리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얼굴 생김새와 가슴의 형태로 보아 암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수놈과 암놈이 만나면 엘리트 레드몬이 계속 태어나겠네요?”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상아의 질문은 인류가 가장 우려하던 일로 놈들이 교미에 들어가면 수년 안에 규슈지방은 황금색 털로 반짝이는 일본원숭이의 세상이 될 것이다.
일본원숭이는 사람처럼 월경 주기가 28일로 연중 짝짓기가 가능했다. 다행히 한배에 한 마리밖에 낳지 못했고, 근친혼이라 수년 안에 엘리트 레드몬으로 바뀔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길게 잡고 20~30년이면 100마리가 넘는 엘리트 레드몬이 온천욕을 즐기며 털을 골라주는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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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