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4 최동주 =========================================================================
224.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우리 할아버지와 대유 그룹에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병신 같은 놈!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가만두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할아버지와 대유 그룹의 정보력이면 네가 범인인 걸 밝혀내는 건 시간문제야.”
“답답한 소리하고 있네. 내가 여기 다녀간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혼자 온 걸 보면 모르겠어?”
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최동주가 위기를 탈출할 방법을 찾는지 눈동자를 사정없이 굴렸다.
“내게 원하는 게 뭐냐?”
“뭐겠어? 당연히 목숨이지.”
“어릴 적 유치한 장난 때문에 이러는 거면 내가 사과하마. 그땐 철이 없어 장난이 좀 심했던 것뿐이야. 너도 알잖아. 그 나이 때 다 그렇게 장난치며 놀았어.”
“매일 죽을 만큼 때리고, 창피란 창피는 다 준 게 장난이라고?”
“말했잖아. 장난이 심했다고.”
“화장실에 빠뜨려 나오지도 못하게 온종일 가둬놓고, 옷을 다 벗긴 채 알몸으로 끌고 다니며 온갖 모욕을 다 주고, 선생들과 짜고 날 나쁜 놈으로 만든 게 고작 장난이었다고?”
“그건... 난 어떤 장난을 쳤는지 기억도 나질 않아. 기억을 못할 정도면 심한 장난은 아니잖아.”
“난 네 덕분에 매일 죽음을 생각했어. 그런데 넌 기억조차 못해?”
“친구끼리 장난친 걸 가지고 이러는 놈이 어디 있어?”
“친구?”
친구란 말에 눈에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살기가 끓어올랐다. 아무리 때린 놈은 기억 못하고 맞은 놈만 기억하는 세상이라 해도 몇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진 폭행과 악행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개, 돼지만도 못하게 여기며 죽이지 못해 안달 내던 나를 어찌 친구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놈이 내게 친구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단언컨대 사전에 명시한 가깝게 오래 사귄 벗은 잘못된 해석이 분명했다.
눈에 핏발이 곤두서며 살기를 풀풀 풍기자 겁을 집어먹은 최동주가 비굴하게 웃으며 용서를 빌었다.
“사.사.사과할게. 저.저.정말 미안해. 한 번만 용서해줘.”
“사과? 이제 와서?”
“그.그.그럼 돈을 줄게. 사과의 의미로 돈을 줄게. 얼마면 돼?”
“돈? 돈으로 해결하겠다고?”
“해결하겠다는 뜻이 아니야.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담겠다는 뜻이야.”
“흐흐흐~ 그래 얼마나 줄 수 있는데?”
“10억. 10억 원을 줄게.”
“겨우 10억? 네 목숨이 그렇게 싸구려였어?”
“그럼 20억을 줄게.”
“하하하~ 아직도 나를 거지로 보내. 그냥 깔끔하게 죽이고 끝내는 게 났겠다.”
“자.자.잠깐! 100억 줄게. 100억 원이면 충분하잖아.”
“100억? 네가 그럴 돈이 있어? 도박 빚까지 진 놈이.”
“할아버지에게 달라고 하면 돼.”
“이곳에 처박혀 불쌍한 사람들을 죽이느라 집안 소식도 못 들었나 보군.”
“그게 무슨 말이야?”
“네 할아버지 집에 강도가 들었어. 그 때문에 네 잘난 할아버지는 화병에 걸려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고.”
“거짓말이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해? 난 돈만 받으면 되는데.”
“지하 금고에 많은 돈이 있긴 하지만 할아버지가 가진 재산에 비하며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백화점과 대부업체, 명품 수입업체, 부동산까지 최소 2조 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할아버지가 고작 금고 하나 털렸다고 쓰러지실 리가 없어.”
“신문기사에 보도된 대로 말해준 거니까 내게 따지지 말고, 살아남으면 기사를 쓴 기자 놈을 족쳐.”
“어떤 놈인지 아가리를 찢어 놓고 말겠어.”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돈을 줄 수 있어? 없어? 그것만 말해.”
“성북동에 금고 말고 그것보다 훨씬 큰 금고가 두 개나 더 있어. 거기서 빼주면 돼.”
“금고가 어디 있는데?”
“그건 말해줄 수 없어.”
“너란 놈과 이런 말을 한 내가 바보지.”
“자.자.잠깐! 마.마.말할게. 말하면 되잖아.”
살기를 풀풀 풍기며 파란 예기에 물든 칼을 얼굴에 들이밀자 깜짝 놀란 최동주가 소리를 질러댔다.
“어디야?”
“금고엔 최소 1,0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있어. 금고 위치를 알려주면 그걸 다 가져갈 거 아니야. 그럼 애초 약속과 다르잖아.”
“내가 언제 100억 원에 살려준다고 했어?”
“아까...”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 살고 싶으면 어서 금고 위치를 불러. 그래야 살 수 있어.”
“흐음...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원산리 2XX번지 동주빌딩 지하 3층.”
“나머지도 불러야지.”
“하나면 충분하잖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퍽!”
“으악~”
칼로 허벅지를 긋자 살이 쩍 벌어지며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뼈가 보일 만큼 깊은 상처에 최동주가 악을 써대며 고통을 호소했다.
1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고 그 보다 수십 배나 많은 여성을 욕보인 놈이 고작 칼에 베인 상처 하나에 계집애처럼 찔찔거리는 모습은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안겨줬다.
“빨리 불러.”
“파주군 파평면 두포리 3XX-1 동주빌딩 5층.”
“확실한 거야?”
“그.그.그럼.”
기감으로 확인한 최동주의 상태는 불안함에 심장이 사정없이 요동치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퍽! 퍽!”
“으악~ 사..사.살려줘. 살려줘~”
“살고 싶은 놈이 거짓을 말해? 마지막 기회야. 이번에도 수작을 부리면 살짝 베는 게 아니라 발목과 손목을 모두 잘라버릴 거야. 알았어?”
“경기도 김포시 월성면 지산리 5XX번지 동수빌딩 지하 2층, 파주군 평파면 율포리 1XX-3 주동빌딩 7층.”
“이번엔 확실한 거지. 틀리면 바로 손모가지 자른다.”
“이.이번에 진짜야.”
기감으로 확인한 결과 심장 박동수와 체온변화가 거의 없어 이번엔 속이는 것 같진 않았다.
“이제 놓아주는 거지?”
“당연하지. 난 약속은 확실하게 지키는 사람이야.”
“고.고마워.”
“일어나. 이제 나가야지.”
놈을 일으켜 세우며 준비해간 복면을 뒤집어쓰고 방어복이 보이지 않게 군용 판초우의를 입었다.
“어디로?”
“아까 네놈이 능욕하던 여자아이 집으로.”
“거긴 왜?”
“그 아이도 네가 살기를 바라는지 물어봐야지.”
“그게 무슨 소리야?”
“네놈에게 엄마와 오빠가 죽었잖아. 그러니 복수하고 싶은지 물어봐야지.”
“살려준다고 약속했잖아.”
“난 약속대로 널 살려줄 거야. 약속은 확실하게 지키니까. 그러나 이곳 주민들도 나와 생각이 같은지 알 수 없잖아. 그러니 살려줘도 되는지 물어봐야지.”
“이놈들에게 왜 그걸 물어보는데?”
“네놈이 이들의 가족과 친지를 죽였잖아.”
“이놈들은 가축과 같은 노예야. 이런 놈들을 죽인다고 뭐라 할 사람은 원산에 아무도 없어.”
“이들이 왜 노예야? 대한민국에 노예제도가 있어?”
“이곳을 비롯해 북쪽에 거주하는 놈들은 처음부터 모두 노예였어. 우리는 처음부터 이곳을 지배하기 위해 온 것이고, 이놈들은 우리 지배를 받고 사는 가축 같은 존재야. 우리는 이놈들에게 온정을 베풀어 먹을 것을 주고, 쉴 수 있는 집까지 주었어. 가축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었으면 내게 봉사하다 죽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야?”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든 순간 가축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원산 주민에게 생사를 맡기겠다고 말하자 흥분한 최동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최종주가 더욱 흥분하도록 귀에 대고 계속 속삭이자 악에 받친 놈의 저주가 판자촌에 울려 퍼졌다.
“가축이란 말에 이들도 동의할까?”
“동의? 언제부터 사람이 가축에게 동의를 받았지?”
“네가 사람이듯 이들도 사람이니까.”
“나 같이 고귀한 능력자가 이런 더럽고 미천한 노예들과 같다고? 제정신이야?”
“넌 이곳에 와서 이들의 가족을 강간하고 죽인 일 밖에 한 게 없어. 불쌍한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풀진 못해도 피해는 주지 말았어야지? 그게 사람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잖아.”
“하하하하~ 돼지와 개를 죽이면서 측은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거야? 나처럼 고귀한 능력자가 이런 개·돼지만도 못한 노예들에게 온정을 베풀어야 할 이유가 뭐야?”
“삐걱~”
하체가 피범벅인 어린 소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죽은 엄마와 오빠 옆에서 강간을 당하던 어린 소녀는 최동주의 악다구니에 정신을 차리고 놈을 죽이기 위해 녹슨 칼을 쥐고 나타났다.
“악마! 엄마와 오빠를 살려내!”
분노에 젖은 어린 소녀가 최동주를 향해 돌진했다. 비칠거리며 다가서는 어린 소녀를 최동주가 손을 들어 후려치려 했다.
양쪽 허벅지가 칼에 배어 피를 철철 흘렸지만, 연약한 어린 소녀가 건장한 최동주를 당할 순 없었다.
“컥!”
살기투사에 가슴을 얻어맞은 최동주가 비틀거리자 어린 소녀의 손에 쥐여진 녹슨 칼이 놈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난 개·돼지가 아니야. 난 노예도 아니야. 이 개새끼야!”
“개만도 못한 새끼야. 내 남편 살려내!”
가축과 노예라 악을 질러대는 소리에 모여든 주민들이 피투성이가 된 최동주에게 달려들었다.
최동주를 처단할 힘이 없던 주민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고 싶었지만, 겁이 나 다가갈 수 없었다.
그때 어린 소녀가 최동주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 넣자 용기를 얻은 소년과 아줌마가 달려들어 돌멩이와 녹슨 호미로 사정없이 내려쳤다.
최동주가 쓰러지자 울분을 참고 있던 주민들이 몰려들어 발로 밟고 몽둥이로 내려쳤다.
100명도 넘는 주민이 몰려들어 몽둥이가 부서질 때까지 내려치자 최동주의 머리가 깨져 뇌수가 흘러내렸고, 뱃가죽이 터져 창자가 삐져나왔다.
“은지 엄마! 은지야! 내가 놈을 죽였어. 내가 죽였어.”
“엄마! 아빠! 제가 원수를 갚았어요. 흑흑흑~”
“철수 아빠! 철수야! 철식아! 흑흑흑~”
넝마가 된 최동주의 시신 주위로 사람들이 목 놓아 울며 놈에게 죽임을 당한 가족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댔다.
최동주가 죽자 마을을 감쌌던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며 차갑고 냉랭한 기운이 잦아들었다.
난 귀신은 믿지 않아도 사람의 영혼은 믿었다. 그게 같은 뜻인지 다른 뜻인지 알 순 없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나를 사랑했던 사람의 영혼이 함께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날 끔찍이 사랑했던 엄마의 영혼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죽은 가족의 영혼이 함께하기를 빌었다. 그 영혼이 이들을 지켜줘 밝은 미래를 열어주길 간절히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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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