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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223화 (223/505)

00223  최동주  =========================================================================

223.

“갔다 올 테니까 오늘은 언니들하고 있어.”

“네.”

침울한 소희를 품에 안고 잠시 등을 토닥여 주었다. 자기 손으로 복수하고 싶은 소희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러기엔 상대가 너무 간악한 놈이었다.

나쁜 놈은 나쁜 놈으로 상대해야 했다. 바로 나처럼 천살성의 기운을 타고난 나쁜 놈이 최동주처럼 나쁜 놈을 처단해야 했다.

해안선을 타고 걸어 내려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어 화물선을 타고 원산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오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빨리 와야 해! 나 오빠 없으면 잠 못 자.”

“지홍아! 아무리 끔찍한 일을 보아도 절대 화내선 안 돼. 알았지?”

“응!”

아내들의 찐한 키스와 포옹을 받고 담을 넘어 항구로 스며들었다. 제2부두에서 KM 해운 소속 3,000ton급 쾌속 화물선 은하호에 은밀히 올라타 화물을 덮어 놓은 천막 안으로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기자 내가 타기를 기다렸다는 듯 쾌속 화물선 은하호가 천천히 부두를 빠져나갔다.

나진항에서 원산항까진 서울에서 부산만큼 먼 거리로 배를 이용해도 400km가 넘어 속도가 빠른 쾌속 화물선을 고르게 됐다.

평균 40knot(시속 74km)로 운항하는 은하호는 나진시와 강릉을 정기 운항하는 쾌속 화물선으로 5시간 30분 후 새벽 1시 원산항에 잠시 들러 화물을 내려놓고 강릉으로 내려간다.

그때 원산으로 잠입해 놈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좁고 어두컴컴한 천막에서 5시간 30분을 버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나마 여우불이 있어 장난도 치고 녀석을 밖으로 내보내 밤바다도 구경하며 지루한 시간을 버텨냈다.

여우불은 소환수와 같은 개념으로 상대의 강력한 공격에 파괴돼도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여우불이 파괴되면 극심한 두통을 유발하는 정신적 타격이 수반됐다. 이 때문에 녀석이 죽지(?)않게 포스를 몰아주거나 재빨리 역소환하는 등 컨트롤이 필요했다.

여우불은 소환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도, 인격을 지닌 존재도 아니었다. 실체를 가졌지만 내 포스와 레드주얼로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그렇지만 내 인격이 가미돼서 그런지 자아를 가진 생명체처럼 행동했다. 애교도 부리고, 장난도 치고, 토라지기도 하는 등 사람이 하는 행동은 그대도 따라했다.

소연은 그런 녀석의 행동을 내 인격 중 하나가 여우불에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달리 말해 내가 다중인격자란 뜻으로 많은 인격 중 하나가 여우불이 되어 나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해리성 정체감 장애자는 뜻은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숨겨둔 인격을 갖고 있었다.

다만 표현하지 못한 뿐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자신만의 성을 짓고 살았다. 그 안에서 부수고, 짖고, 욕하고, 파괴하며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런 인격체 중 하나가 여우불의 탈을 쓰고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하고 많은 인격체 중에 애교, 장난, 토라짐은 대체 뭐야? 젠장!’

밤 10시가 넘어서자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바람이 거세지며 파도가 일며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배를 타본 적이 거의 없어 파도에 속이 울렁거렸다. 능력자라고 멀미를 안 하는 건 아니었다.

평행감각이 뛰어나 조금 덜할 뿐 속이 울렁거리는 건 같았다. 멀미는 참으려 하면 더 심해지는지 속이 매스껍다 못해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웩~”

“소연 언니 ! 밖에 비 와요. 바람까지 심하게 불고 있어요. 이를 어쩌면 좋아요?”

“멀미약은 먹고 갔어?”

“아니요.”

“배 멀리 많이 하는데, 엄청나게 고생하겠다. 더구나 빨리 갔다 온다고 쾌속선 타고 갔는데.”

“오빠 오면 이제 투정부리지 말아야겠어요. 걱정이 태산인데 저까지 괴롭히면 안 될 것 같아요.”

“상아야! 지홍이는 네가 투정부린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너도 알잖아.”

“그래도 귀찮게 한 건 사실이잖아요.”

“지홍이가 언제 널 귀찮다고 했어?”

“아니요.”

“그것 봐. 지홍이는 정에 굶주려 우리가 장난치고 짓궂게 구는 걸 좋아해. 며칠 전 일은 기강을 세운다고 장난을 좀 심하게 친 것뿐이야. 그러니 마음에 두지 마. 알았지?”

“네.”

원산항에 배가 도착한 건 새벽 3시 30분이었다. 비바람이 거세 예상보다 2시간 30분이나 지연됐다.

놈을 처리하고 4시 배로 돌아가려던 계획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내일까진 김책이나 청진으로 올라가는 배도 없어 해안선을 따라 500km 넘는 거리를 뛰어가게 생겼다.

‘얼마나 토했는지 뱃속에 남은 게 없네. 돌아갈 배도 없고 집까지 뛰어가려면 최소 5~6시간은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가야겠네. 젠장!’

지난달 회양기지를 몰래 빠져나온 최동주는 한 달 넘게 원산에 머물며 호텔과 술집을 전전하다 지난주부턴 빈민가에 숨어들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놈은 북촌과 서촌의 빈민가를 오가며 피의 광기에 젖어있었다. 불쌍한 원산주민들의 집을 빼앗고, 아내와 딸을 욕보이고, 남편과 아들을 죽이며 쾌락에 빠져 살았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서쪽 빈민가를 모두 돌았다. 십여 개가 넘는 빈민가를 모두 돌았지만, 놈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영이 살던 북쪽의 빈민가를 시작으로 기감력을 사용해 미로처럼 좁은 골목길을 이 잡듯이 뒤졌다.

수도시설은 물론 전기시설조차 없는 빈민가는 지독한 악취만 진동할 뿐 작은 빛조차 없었다.

아침 6시 넝마를 걸친 사람들이 퀭한 모습으로 일터로 출근했다. 아침도 못 먹었는지 휘청휘청 걷는 모습이 불안하기만 했다.

10만 명이 넘는 주민을 기감하자 욕지기가 올라왔다. 아프리카 난민촌보다 더한 원산 판자촌은 사람이 살아가는 게 신기할 만큼 열악했다.

대다수 주민은 호흡기 질환과 피부병, 안질에 시달렸고, 빈대와 모기, 쥐까지 들끓어 사람이 사는 곳인지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나나 2~3달에 한 번 하는 방역작업마저 없었다면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을 것이다.

쏟아지는 욕설을 억지로 참고 북쪽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빈민가로 들어갔다. 이곳은 출근하는 사람도 없는지 밖을 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판자촌 외곽을 기감한 후 판잣집이 따닥따닥 붙은 안쪽을 기감하자 슬픔과 분노, 원망, 체념의 암울한 그림자가 느껴졌다.

안으로 다가갈수록 고통과 죽음의 향기는 더욱 짙어졌고, 곳곳에 싸늘히 식은 주검이 느껴졌다.

죽은 시신을 징검다리처럼 따라가자 피바다 속에 놈이 있었다. 광기에 젖은 놈이 10살도 안 된 여아를 올라탄 채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크하하하~”

밑에 깔린 가녀린 소녀는 고통의 비명과 함께 살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놈은 그 위에서 잔인하게 웃으며 욕심을 채우고 있었다.

3~4식구가 간신히 누울 좁디좁은 방밖엔 아이의 엄마와 오빠로 보이는 시신이 핏속에 잠겨있었다.

아직 피가 식지 않은 것으로 보아 죽은 지 1시간도 넘지 않았다. 놈은 아이의 엄마와 오빠를 죽이고 그 앞에서 아이를 강간했다.

놈의 잔인한 모습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칼을 뽑아들고 놈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죽이기 위해 다가갔다.

격렬한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 소연의 말이 떠올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내지 말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이 차분해지자 놈을 어떻게 하면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원래 계획은 살기투사로 서서히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놈의 잔인한 짓을 보자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놈에게 받은 고통은 지나간 어린 시절의 작은 아픔에 지나지 않았다.

놈에게 자식과 부모 그리고 아내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과 비교하면 그건 고통이 아니라 장난에 불과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 자신의 눈알을 뺄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렸다면 그의 이도 부러뜨릴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뼈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뼈도 부러뜨릴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에 따라 최동주를 빈민가 사람들의 손으로 직접 처단할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다.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어대는 최동주의 심장에 살기를 투사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충격이 놈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컥!”

비명과 함께 가녀린 여아에게서 굴러떨어진 최동주는 몸을 벌벌 떨어대며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며 꿈틀댔다.

피투성이가 된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정화수를 입에 살살 흘려 넣으며 포스로 가슴을 마사지했다.

불규칙하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충격이 컸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이불을 덮어준 후 최동주를 끌고 빈집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코를 처박고 있는 최동주의 모습을 보자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만감이 교차했다.

급히 고개를 흔들어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흡기를 사용해 최동주의 몸에서 포스를 뽑아냈다. 가슴에 손을 얻어 생명력을 갈취하자 학질에 걸린 병자처럼 바들바들 떨어대며 땀을 비 오듯이 흘려댔다.

흡기 전 : 힘-61 민첩-63 체력-43 총합-167 멘탈포스-7

흡기 후 : 힘-12 민첩-10 체력-5 총합-27 멘탈포스-7

흡기로 포스를 갈취하자 능력치가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졌다. 흡기를 사용해 포스를 갈취하면 능력치가 떨어지지만, 회복력이 빠른 능력자는 1~2일이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는 건 최동주의 심판을 주민들에게 맡기기 위해서였다. 최동주가 멀쩡한 상태에선 빈민가 주민이 모두 달려들어도 놈을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행동은 더 많은 희생자를 양산할 수 있었다. 문정수가 폐인이 된 상황이라 최동주의 죽음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노예나 다름없는 원산 주민이 고귀한(?) 능력자를 죽인 건 대유 그룹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과 같아 묵과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난 주민들의 손으로 최동주를 처단하려 했다, 그게 이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일이었다.

놈에게 억울하게 죽은 가족과 친지의 손으로 최동주를 죽여야 주위에 가득 찬 원혼을 달랠 수 있었다.

손발을 레드보어의 심줄을 묶은 후 입에 정화수를 흘려 넣어주며 가슴을 마사지하자 놈이 정신을 차렸다.

“최동주!”

“하아~ 하아~ 하아. 여긴 어디야?”

“네가 있던 옆집. 원산 빈민가.”

“누구야?”

“몇 년간 얼굴을 맞대며 지냈는데, 그사이 내 얼굴을 까먹은 거야?”

“너 같은 개새끼를 내가 어떻게 알아. 이거 당장 풀지 못해. 내가 누군지 알고 이따위 개수작이야.”

“당연히 알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름을 불렀겠어.”

“알면 당장 풀어. 그럼 지금까지 일은 용서해주마.”

“어이 최동주!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나 본데, 내가 지금 장난으로 이러는 것 같아? 난 널 죽이러 온 사람이야.”

“나랑 무슨 원한이 있다고 죽인다는 거냐? 우린 처음 본사이잖아.”

“정말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

“우린 같은 국민학교를 나온 동창이야. 그래도 기억이 않나?”

“박지홍?”

“빙고! 이제야 기억했네. 하하하~”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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