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8 여우불 =========================================================================
218. 여우불
회령 근처에 도착한 MI-26 헤일로 헬기가 30m 상공에서 제자리 비행하는 사이 풍산개들이 사뿐히 뛰어내려 주변에 위험이 있는지 확인했다.
“왈왈~ 왈왈~”
녀석들이 안전하다고 짖어대자 아내들이 헬기에서 뛰어내려 연속으로 구르며 충격을 흡수한 후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동안 낙하 훈련을 수없이 한 결과 30m는 가볍게 뛰어내려 주변 경계까지 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
마지막으로 아리와 소희의 허리를 휘어 감고 내가 뛰어내렸다. 충격을 무릎으로 흡수하며 사뿐히 내려선 후 야들야들한 허리를 놓아주었다.
손을 즐겁게 하는 감촉이 떠나가는 게 아쉬웠지만, 아내들이 쌍심지를 켜고 쳐보고 있어 재빨리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론 교육을 충실히 소화한 소희는 오늘부터 옵서버 자격으로 사냥을 참관하게 됐다.
이른 감이 있지만,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미래 2공대 조교로 발탁된 조은영은 다음 달 10일 미래 2공대 선발과 함께 교련을 시작해야 해 미래 1공대에선 빠지게 됐다.
“우리 풍비도 이제 제법이지?”
“응.”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안 돼?”
“칭찬했잖아.”
“그게 칭찬이야?”
“응.”
“우쒸~”
잘 먹고 잘 자란 풍산개들은 꾸준히 전투에 데리고 다닌 영향으로 1년 만에 죽은 어미들을 가볍게 넘어섰다.
가장 덩치가 큰 첫째 풍연은 전투력 1250, 지능 105, 몸길이 3.5m, 꼬리 길이 1.2m, 무게 220kg에 달했고, 가장 작은 막내 풍아는 전투력 1150, 지능 135, 몸길이 3.1m, 꼬리 길이 1.0m, 무게 170kg으로 전투력은 가장 낮았지만, 지능은 독보적으로 높았다.
지능의 영향인지 막내 풍아와 풍영은 상아의 탐지 스킬에도 걸리지 않는 낮은 전투력의 레드몬을 찾아내는 쪽으로 특화했고, 풍연과 풍비, 풍인은 빠른 몸놀림을 이용한 강력한 타격에 특화했다.
이런 능력을 활용해 지난달부터 정찰과 탐색 훈련을 시작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지만, 타고난 사냥개라 배움이 빨라 원정이 시작되기 전까진 훈련이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우가 레드마우스를 수족처럼 부리는 게 말이나 돼?”
“수족처럼 부린다고 한 적 없어.”
“왕처럼 떠받들고 먹을 것까지 가져다 바친다며. 그게 수족 아니면 뭐야?”
“포베로미스가 잡혀서 그럴 수도 있지.”
“인질극이었어?”
“나도 몰라. 잡아봐야 알지.”
“대체 아는 게 뭐야?”
“헉...”
지리산에 돌아온 다음 날부터 다시 레드몬 지도 작성에 몰두했다. 두만강을 따라 경원과 온성까지 올라간 후 남양, 산성, 삼봉을 따라 내려오다 회령에서 아주 재미난 놈들을 발견했다.
암수 두 마리인 B급 엘리트 레드몬 붉은여우는 호랑이 없는 산에 여우가 왕이라고 회령시를 차지한 채 왕처럼 살고 있었다.
회령시(會寧市)는 함경북도의 북부, 두만강 연안에 있는 도시로 조선 세종 때 육진(六鎭)이 설치됐던 곳이었다.
함경산맥이 시역(市域)의 중앙을 가로질러 산지가 많은 곳으로 북쪽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지린 성(吉林省) 옌볜 조선족 자치주 용정(龍井)과 마주하고 있었다.
“얼마나 돼?”
“포베로미스 한 마리, 레드마우스 1,600마리에요. 특이하게 제리는 한 마리도 없어요. 규모로 보면 최소 3~4마리는 있어야 하는데.”
“제리는 똑똑해서 냠냠했나 보네. 그래야 관리가 편하지.”
중간 보스인 제리는 텔레파시를 이용해 조직을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라 여우 부부가 회령시를 농단하려면 없는 게 나았다.
한국 여우는 일제의 남획과 6·25전쟁 때 뿌린 쥐약, 청산가리를 먹고 죽은 쥐와 야생동물을 섭취하며 많은 수가 줄어들어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레드문과 함께 살아남은 녀석들이 북쪽 지방을 중심으로 급격히 불어나며 최근에는 남쪽에서 간혹 모습을 보였다.
“여우 부부 이렇게 돌아다니며 쥐만 잡아먹으면 굳이 잡을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은 골치 아픈 쥐새끼를 잡아먹어 큰 도움이 되지.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다는 보장이 없잖아.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거나 새끼를 놨게 되면 더 많은 먹이가 필요로 할 거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인간과 부딪치게 되지.”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 피해를 주지 않은 레드몬을 잡아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요.”
“지금까지 잡은 레드몬의 99%는 우리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어. 그런데도 난 보이는 족족 다 죽였어. 우린 그런 존재야. 우리 삶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히잉~”
풀죽은 상아의 볼을 쓰다듬어주고 전투를 준비했다. 폭이 좁은 길목에 자리 잡고 레드마우스를 도발해 수를 줄이기로 했다.
도발에 걸린 레드마우스들을 죽이면 여우 부부가 나타날 테고, 그때 텔레파시와 살기투사로 자극해 흥분한 놈들을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이 자식아~ 나쁜 자식아~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개만도 못한 놈아~ 내 손으로 꼭 죽여 버릴 거야~”
소희에게 큰소리로 레드마우스를 도발하라고 하자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누굴 향해 욕을 퍼붓는지 우린 알고 있었다.
고된 훈련과 아내들의 도움으로 전보다 마음이 많이 풀어졌지만, 엄마와 언니를 잃은 분노와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매일 소희를 괴롭혔다.
소희의 언니 차소은 죽게 한 최동주와 아스모데우스 회원들의 명단확보와 최주욱의 재산 현황, 최동주의 여죄 조사가 이틀 전 끝났다.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아 무려 5개월이나 걸려 놈과 가족, 일당의 죄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전국구 조직폭력단체가 몇 년간 저지른 범죄가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놈은 엄청난 양의 범죄를 저질렀다.
양도 양이지만 잔혹성과 반인륜적 행위는 치가 떨리다 못해 악마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 79명의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이중 상당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최동주는 사회에 진출한 이후 더욱 대담해져 살인만 71건에 폭행과 강간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았다.
이 중 80%가 최근 원산에서 저지른 범죄로 재미로 가족 전체를 죽인 적도 있고, 엄마와 딸을 같이 욕보이고 잔인하게 가슴을 도려내 죽인 일도 있었다.
그 손자에 그 할아버지라고 최주욱 역시 손자에 버금가는 범죄를 저질러 피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독립군의 쥐어짜 부자가 된 최주욱은 최동주와 문정수의 친분을 이용해 대유 백화점의 세 곳을 직접 운영하고, 유럽과 미국에서 고가의 명품을 수입해 큰 이익을 낸 것만으로 모자랐는지 사체와 고리대금에도 손댔다.
그걸로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것도 모자라 돈을 갚지 못하면 신체 포기각서를 쓰게 해 여자는 술집에, 남자는 남해 멸치잡이 배에 팔아넘겼고, 몸이 부실한 사람은 장기를 꺼내 팔았다.
또한, 어리고 반반한 여자들은 최주욱이 데리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비싼 값에 일본에 넘기는 등 조손이 아스모데우스의 화신인 양 행동했다.
“언제 알려줄 거야?”
“이거 처리하고 바로.”
“소희가 최동주를 죽여 달라면 어쩌려고 그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고민 좀 했어.”
“어쩔 생각인데?”
“피를 많이 묻힌 내가 처리하는 게 낫지 않겠어? 어차피 놈과는 끊을 수는 악연도 있고. 소희도 저대로 두면 언제 사고칠지 알 수 없고.”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은 없잖아.”
“왜 없어? 첩자들 35명 모두 내 손에 죽었어. 문정수와 장세룡, 조득렬, 금송무와 황국신민회 소속 여당의원 22명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될 거고.”
“그럼 이제라도 피를 덜 묻혀야지.”
“천살성의 기운을 타고났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겠어?”
“그건 재미로 본거잖아.”
“내가 생각해도 맞는 것 같아. 아니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순 없지.”
지리산 테러 이후 은비가 많이 답답했는지 재미로 점을 보자며 아주 특이한 점쟁이를 나진시로 불렀다.
점쟁이는 도교의 108흉성인 36천강과 72지살을 연관 지어 점을 봤다. 우리 중엔 유일하게 나만이 36천강 중 천살성(天殺星)에 뽑혔고, 아내들은 108흉성과 연관되지 않아 나만 점을 봤다.
천살성은 양산박에서 두 자루 도끼를 사용한 흑선풍(黑旋風) 이규의 별자리로 살육에 미친 사람을 뜻했다.
점쟁이는 내가 천살성으로 피가 끊이지 않는다며 아내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해 피 값을 대신 갚아줘야 한다고 했다.
“재미로 본 거니까 점쟁이 말을 깊이 생각하진 않아. 최동주는 그것과 별개야. 소희의 언니 얘기를 듣는 순간 내 손으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어. 내가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법을 대신할 권리도 없지만, 소희나 나 같은 피해자가 더는 생겨나지 않게 할 책임은 있다고 생각해.”
“그건 억지야.”
“나도 억지라는 거 알아. 하지만 놈에게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굴욕이 얼마나 끔찍한지 몰라. 정말 죽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을 만큼 두려웠어. 그걸 이겨내기 위해 매일 얻어터지면서도 싸운 거야. 물러서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을까봐.”
“.......”
“이 문제는 더는 거론하지 마. 조만간 날짜 잡히면 조용히 다녀올 테니까.”
더는 말하지 못하게 아주 매몰차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소연이었다.
그런데도 이러는 건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상처가 남기 때문이었다.
“모두 준비! 발사!”
은비의 손에서 뇌우가 연속으로 발사됐다. 5m 간격으로 5개의 뇌우가 바닥에 깔리자 서인이 가시덩굴로 좌우에 벽을 만들어 레드마우스들이 빠져나가 못하게 막았다.
소희의 도발에 걸려든 레드마우스 500마리가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다 가시덩굴에 옆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뇌우에 몸을 던졌다.
운 좋게 뒤에 쳐져 그물을 피한 놈들은 소연의 데스 홀드와 은비의 벼락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삵에서 얻은 마비주얼의 영향으로 소연과 은비의 스킬이 스치기만 해도 레드마우스들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나무토막처럼 바닥을 굴렀다.
“오빠! 여우 부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1km까지 다가오면 그때 놈들을 도발해.”
“오빠!”
“응?”
“저기...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한번 물어보면 안 될까요?”
“대신 실패했다고 침울해 하기 없기야.”
“알았어요. 헤헤헤~”
도발에 걸린 레드마우스 500마리가 함정에 걸려 떼죽음을 당하자 서왕(鼠王) 포베로미스를 앞세운 여우 부부가 레드마우스 1,100마리를 이끌고 나타났다.
“오~ 자세 좀 나오는데.”
“너도 쥐들의 왕으로 살고 싶어? 남자 쥐 1,000마리쯤 거느리고.”
“웩~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흐흐흐~”
은비를 놀리는 사이 상아가 여우 부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한 편의 영화처럼 보여주는 것으로 30초짜리 영화가 끝나자 예상했던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카악~”
“마음에 안 드나 본데.”
“제 텔레파시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왕에게 하찮은 인간 따위가 친구가 되자고 하는데 좋아하겠어. 흐흐흐~”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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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