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5 사라진 증거 =========================================================================
215.
“죄송합니다. 미국보다 더 중요한 정보를 마련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미국하고 같은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은 미국처럼 드러난 정보가 아닌 증거와 증인을 없앤 놈들의 정보를 찾아냈습니다.”
“오~ 그래요?”
“러시아는 회장님의 영원한 친구이자 동맹입니다. 이번 일을 가슴 깊이 걱정하고 계신 옐친 대통령께서 이번 달 나진시를 방문해 박지홍 회장님의 아픔을 위로하실 계획입니다.”
“옐친 대통령께서 나진에 온다고요?”
“그렇습니다.”
5월부터 한 번 오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옐친 대통령은 공항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던 계획을 이달 20일 오고 싶다고 알려왔다.
러시아가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면 옐친 대통령의 방문은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었다.
테러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미국 다음의 열강인 러시아 대통령이 나진시를 방문에 테러를 규탄하고 우리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 테러 국가에겐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러시아가 넘겨준 자료에 따르면 증거인멸에 동원된 테러범은 15명으로 이달 3일에서 5일 사이에 작은 항구를 통해 밀입국했다.
일본, 중국, 대만, 러시아를 통해 밀입국한 테러범들은 사건 당일 지리산 인근에 숨어 있었다.
이들은 타격조가 아닌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증거인멸조로 타격조가 우리를 잡지 못하고 생포되자 마천중학교에서 8km 떨어진 대정리 부근 도로에 잠복했다.
경찰 무전을 도청하던 이들은 다음날 새벽 호송차량이 접근하자 사고를 위장해 차를 세운 후 압도적인 화력으로 차량을 5대를 모두 탈취해 죽림리 부근 숲 속으로 데려가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했다.
경찰관과 능력자 57명은 모두 살해해 죽림리 옆 동화호에 버렸고, 테러범 3명도 임무 실패를 이유로 독약을 주사해 시체를 훼손한 후 동화호에 버렸다.
증거를 인멸한 테러범들은 경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인천 부두를 통해 중국 상해로 건너가 그곳에서 필리핀으로 넘어간 후 종적이 묘연해졌다.
“동양인이란 것만 빼면 누군지 모른다는 뜻이네?”
“그렇지.”
“하하하~ 이게 뭐야?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잖아.”
“알고도 알려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왜?”
“그래야 자기들에게 의지하고 더욱 밀접해질 거로 생각할 테니까.”
“배후를 알려주는 게 더 가까워지는 거 아니야?”
“국제 관계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해.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그리고 상대가 강하면 함부로 건들 수도 없어. 잘못 건드리면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설마.”
“당연히 그런 일은 없겠지. 미국은 언제나 적당한 상대를 노려 이익만 취했으니까. 핵무기를 다량 보유한 국가와 싸운다는 건 공멸할 수도 있어. 미국은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아. 또한, 껄끄러운 상대와 얼굴을 붉히고 싶어 하지도 않아. 그래서 범인을 알고 있어도 알려주지 않을 거란 거야. 누군가를 지목하면 그 나라와 사이가 벌어지니까.”
소연은 미국과 러시아가 범인을 알고 있을 가능성에 더 큰 무게를 뒀다. 테러범의 입국 동선과 퇴로까지 알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배후세력을 모른다고 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
이래서 돈이 들어도 제대로 된 정보팀을 꾸려야 하는 것이었다. 남에게 정보를 구걸하면 지금처럼 놀림만 당하게 된다.
비용 탓만 하다간 거짓 정보에 속아 눈먼 장님이 될 수도 있었다. 정보화 시대에서 장님은 도태와 죽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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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즉시 정화수에 담아둔 기생 레드몬을 최정준 박사에게 넘겼다. 새로운 곤충 레드몬의 출현에 눈이 동그래진 박사는 우리 존재는 까맣게 잊고 기생 레드몬을 몸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곤충형 레드몬은 매우 희귀한 레드몬으로 각국 정부와 과학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레드몬이었다.
먹이 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곤충은 번식력이 매우 뛰어나 레드몬으로 변이할 경우 순식간에 퍼져나가 동물과 식물, 사람과 레드몬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최종적으론 지구의 새로운 주인이 될 수도 있었다.
특히 사회성을 갖춘 개미나 벌이 레드몬으로 변이하면 훈련된 군대를 상대하는 것과 같아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었다.
“지난번 말씀드린 바로 그놈이군요. 인간의 몸에 파고들어 숙주로 삼는 레드몬. 아주 흥미롭습니다.”
“흥미로운 게 아니라 아주 위험한 놈들입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말한 것이니 오해하진 마십시오.”
기생 레드몬을 넘겨준 지 고작 일주일 만에 마음이 급해 다시 최정준 박사를 찾았다.
평소 만나자고 하기 전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내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자 박사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알아낸 게 있습니까?”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해 몇 가지 알아냈습니다.”
“그게 뭡니까?”
“첫째 이놈들은 모기가 맞습니다.”
“허허허~ 정말 큰 걸 알아내셨군요.”
“본질을 찾아내는 건 상대를 빠르게 알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연구에선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습니까?”
“이번 경우는 딱 보는 순간 알아볼 수 있어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하하~”
“박사님! 그만 놀리시고 뭘 알아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내가 몸이 달았다는 걸 알아 챈 최정준 박사가 시답잖은 농담을 날렸다. 평소 같으면 얼마든지 받아주겠지만, 놈들이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라 웃으며 농담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정화수에 넣어온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모기가 가진 특성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모기 레드몬의 특성을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퇴치법도 알아낸 겁니까?”
“에프킬라라도 드릴까요?”
“네?”
“이놈도 모양만 모기지 실체는 레드몬입니다. 쥐덫으로 레드마우스를 잡을 수 없듯이 이놈도 모기약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맡긴지 일주일 만에 퇴치법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 지나친 처사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서...”
두 쌍의 날개와 더듬이, 몸통, 긴 다리로 구성된 모기는 보통 15mm 미만으로, 무게는 2~2.5mg, 비행속도는 1.5~2.5km/h였다.
주로 하수구나 연못 같은 고인 물에 알을 낳고, 애벌레인 장구벌레는 물속에서 성장해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는 완전변태성 곤충이다.
1억 7,000만 년 전 쥐라기 후기 때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 등장한 모기는 과즙이나 꽃의 꿀 같은 당분을 주된 먹이로 삼고, 흡혈은 암컷의 난소 발육을 위해서만 필요했다.
“이놈도 모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6개의 침 중 2개가 구멍을 뚫고, 2개가 피부를 썰어내고, 그 구멍을 통해 침이 들어가 타액을 분비합니다. 그 후 흡혈관을 통해 피를 빠는 것이죠. 이 때 모기의 타액은 모기가 흡혈을 하는 과정에서 혈액이 응고하지 않도록 작용합니다. ‘히루딘’이란 성분으로 거머리가 피를 응고하지 않게 하는 물질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모기에 물리면 간지러운 이유가 히루딘을 침입자로 인식해 면역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때 히스타민이라는 물질이 생성돼 피부가 붉게 부어오릅니다.”
“그것과 능력치가 향상하는 게 관계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레드몬으로 변이한 모기가 숙주의 몸에서 영양분을 섭취할 때 히루딘을 분비합니다. 이게 우리 몸의 면역반응과 결합해 능력치를 향상하는 것이죠. 대신 모기에게 영양분을 계속 빼앗겨 종래에는 사망하게 됩니다.”
“영양분만 계속 공급하면 능력치를 유지한 채 살 수 있겠군요?”
“이론상으론 가능합니다.”
“정화수를 사용해본 결과 흡혈로 인해 떨어졌던 체력 수치가 다시 올랐습니다. 정화수를 꾸준히 복용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화수가 대단한 명약이지만 치료제는 아닙니다. 생명을 연장할 순 있지만,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왜죠?”
“그거야 너무 뻔한 이야기죠. 모기가 계속 자라나면 사람이 살아남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가슴에 머리통만 한 기생충을 달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죠. 더군다나 모기가 커지면 더 많은 피를 빨아먹을 테니까요.”
“아아~”
정말 너무나 뻔한 것을 물어봤다. 처음 본 모습 그대로 사물이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 착각 때문에 놈들이 다 자란 것으로 생각했다.
“번식기능을 떼어내 알을 낳을 수 없게 만들어 놨습니다. 또한, 호흡기가 모기와 많이 달라 공기 중에 노출되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임의로 조작해놓은 것이라 안심할 순 없습니다. 일반 동물도 인위적인 외부의 간섭을 이겨내려 하는데, 그보다 재생력과 적응력이 수십 배 뛰어난 레드몬이 이 상태로 계속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모기 레드몬이 실험실을 벗어나게 되면 환경에 적응해 새끼를 낳을 수도 있고, 외부 환경에 적응해 살아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최악의 경우 지금처럼 숙주의 영양분만 빨아먹는 게 아니라 숙주를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도 있겠지요. 뇌에 자리 잡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신신당부했건만, 돌아온 건 위험하단 말뿐이었다. 순수 과학자의 생각과 도시를 책임진 사람의 처지가 다르다는 건 십분 이해하지만, 지금은 대책을 마련할 때지 과학자의 상상력을 설명할 때가 아니었다.
“숙주가 됐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겠죠. 체력적으로 다르니까요.”
“구체적인 걸 원하는 게 아닙니다. 대략적인 거라도 말씀해주십시오.”
“일반인이라면 최대 열흘까진 버틸 수 있을 것이고, 능력자는 최소 한 달 이상은 버틸 겁니다. 중급, 상급 능력자는 체력이 높아 훨씬 오래가겠죠. 회장님처럼 체력이 남다르면 일 년도 버틸 수도 있을 겁니다. 놈들이 너무 크게 자라나지만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입니다.”
“일반인이요?”
“녀석들이 들어앉을 충분한 공간만 있다면 살아있는 생명체면 모두 가능합니다.”
“레드몬에 파고들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그럼 능력자보다 훨씬 오래 버틸 겁니다. 덩치가 큰 만큼 체력도 훨씬 뛰어날 테니까요.”
“놈을 잡아낼 방법이 없겠습니까?”
“살아있는 실험체가 있으면 모를까 현재는 방법이 없습니다.”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만큼 복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물 복제를 말씀하신다면 가능합니다. 체세포 핵이식으로 복제할 수 있으니까요.”
핵이식 기술을 이용하면, 유전자적으로 같은 개체를 복제할 수 있다. 복제하고자 하는 개체의 체세포나, 수정란의 핵만 추출해 핵을 제거한 미수정란에 이식해 대리모를 통해 새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태어난 클로닝(Cloning)의 경우 대리모의 유전자와는 관계없이 핵을 제공한 개체와 100% 같은 유전형질을 가지게 된다.
이 방법은 인위적이고, 화학적인 기술이 많이 첨가되지 않은 방법이지만, 성공률이 10% 미만이고, 대리모 착상과정에서 유산 및 기형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