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3 사라진 증거 =========================================================================
213. 사라진 증거
“소연이 대한당과 대한 일보, 단군 일보에는 연락하고. 특사들은 한숙이 연락해.”
“청와대는?”
“기자회견 시작하기 직전에 연락해. 미리 알려주면 시끄럽기만 해.”
“알았어.”
억수같이 비가 쏟아져 많은 사람이 돌아갔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떠날 때보다 2배나 많은 10만 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려준 미래사랑 팬클럽을 위해 사냥한 레드독 6마리를 먼저 공개했다. 그리고 해외 방송국 기자들을 불러 긴급 기자회견이 있음을 알렸다.
분위기가 냉랭하자 뭔가 큰 사고가 있었음을 눈치챈 기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자회견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미래 레드몬 사냥팀을 공격한 테러범은 총 23명으로 전원이 남성 능력자로 구성됐습니다. 덕전리를 출발한 미래 공대가 5km가량 능선을 타고 이동하다 폭우를 만나 산 중턱에서 잠시 비를 피한 시간은 아침 8시 50분입니다. 이때 미래 공대를 뒤를 따라붙어 테러범들이 다가오는 것을 영특한 레드독이 발견했습니다. 평소 아주 먼 곳까지 냄새를 맡는 레드독 풍산개는 폭우 속에서도 살기를 품고 다가서는 테러범을 발견하는 영특함을 보였습니다. 풍산개와 교감이 깊은 박지홍 회장님은 즉시 방어에 유리한 협곡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웅성웅성~”
“30분 뒤 흔적을 찾아 따라붙은 테러범들은 미래 공대를 발견하자 곧바로 공격을 가해왔습니다. 처음부터 이들이 살기를 품고 다가서는 걸 알고 있던 미래 공대는 압도적인 전투력을 발휘해 10시 15시경 테러범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습니다. 미래 공대는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테러범을 생포하는 방향으로 방어적인 형태의 공격을 취했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3명 중 17명을 생포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14명이 독약을 물고 자살해 세 명밖엔 살릴 수 없었습니다. 죽은 테러범들은 가짜 이빨에 독약을 넣고 있다가 사로잡히자 곧바로 독약을 깨뜨려 자살했습니다. 이들의 시신은 독이 지독해 30초 만에 심한 부패를 일으켜 일단 임시로 매장해 놓고 왔습니다. 위치는 차후 경찰에 통보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테러에 기자회견장은 잠시 고요한 침묵에 빠졌다. 그리곤 성난 분노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모여 있던 10만 명 중 8만 명 이상이 가슴에 삼족오 브로치를 단 미래사랑 팬클럽 회원들로 살아남은 범인 3명과 암습에 사용한 장비들을 공개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 폭동이라도 일으킬 분위기였다.
우리 중 다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진정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나서야 성난 민심(?)을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시신을 수습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데요. 어떻게 하죠?”
“얼마나?”
“내일 점심까진 기다려 달라는데요.”
“시신 수습하는데 하루나 걸려?”
“헬기도 동원해야 하고, 안전을 위해 레드몬 사냥팀도 함께해야 해 시간이 좀 걸린대요. 그리고 저녁엔 위험해 숲에 들어갈 수 없다고, 내일 아침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에요.”
“우리가 도와주면 되잖아.”
“그건 싫은가 봐요.”
“우리가 범인이야? 왜 싫어?”
“현장을 지휘하는 이병두 경찰청장이 황국신민회 소속이라 우리를 배척해서 그래요. 지홍씨가 황국신민회 소속 의원들을 공격했다고 믿고 있어요.”
“흐흐흐~ 요직에 참 많이도 앉아있네. 뿌리가 아주 깊어.”
“무려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어요. 그리고 해방 후에도 권력을 가진 세력은 바뀌지 않았죠. 사회지도층이라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들의 후손이라고 보시면 돼요.”
“참 재미있는 세상이랴.”
“뭐라고 할까요?”
“알았다고 그래. 대신 방해하지 말라고 해.”
기자회견이 끝나자 청와대에서 연락을 받은 경찰들이 범인 인도를 요구했다. 이미 넘기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로 두말없이 놈들을 경찰에 인도했다.
대신 인도한 증거를 확실하게 남기기 위해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이병두 경찰청장의 명령으로 놈들과 증거를 인수해갔다는 것을 말하게 했다.
일개 서장 나부랭이에게 넘겨줬다가 받은 일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면 우리가 독박을 쓸 수도 있었다.
“몸만 동양 삼국이지 놈들이 사용한 장비는 모두 미국 제품이야. 신분을 속이기 위해 신분을 밝힐 만한 물건도 없고. 놈들이 국내에 들어온 기록을 찾아내거나,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면 사건이 미제로 남을 수도 있겠어.”
“배후를 밝혀도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보장은 없어.”
“그럼 뭐하러 범인을 넘겨주자고 한 거야?”
“우리 정부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리려는 거야.”
“범인이 그들 일 수도 있잖아.”
“그들이 범인이면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면 되지. 누구든 상관없어. 공분만 일으키면 되는 거야.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게. 그리고 우리는 뒤로 빠져 있으며 위험에 대비하는 거지.”
기자회견이 끝나자 소연과 은비, 한숙의 전화가 연신 울려댔다. 소연과 은비 전화는 할아버지와 장인어른, 대한당과 미래 레드몬 식구들 전화였고, 한숙에게 걸려온 전화는 각국 정상들과 특사들의 전화였다.
“오빠! 할아버지께 전화 한 통 드려. 많이 놀라셨어.“
“아빠도 많이 놀라셨어. 변병석 대표도 전화 달라고 했고.”
할아버지에 이어 장인어른, 정근욱 회장, 변병석 대표 등 10여 명이 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무탈하다는 것과 걱정해준 마음에 일일이 감사함을 표했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이런 통화는 언제나 어색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꺼내면 등에 식은땀이 나고 몸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클린턴 대통령과 옐친 대통령,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등과 통화했어요. 이번 일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대요.”
“말만 하지 말고 놈들이 누군지, 어디서 보냈는지, 어디로 들어왔는지, 지금 어디 있는지 정보를 가져오라 그래.”
“네.”
시간이 지날수록 몰려드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각국 기자들과 미래사랑 팬클럽 회원, 대한당 의원들과 관계자, 공무원, 평소 우리 일에 관심이 많던 사람들까지 몰려들자 마천중학교가 꽉 들어찼다.
정부는 경찰 1,000명과 군 1개 사단을 보내 이들을 모두 학교 밖으로 쫓아내고 이중삼중으로 학교를 둘러쌌다. 다만 헬기 반경 50m 안은 미래 레드포스 대원들의 영역이라 다가오지 않았다.
“경찰청장 이병두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저와 잠시 동행해주셔야겠습니다.”
“뭣 때문에 그러시죠?”
“이번 살인 사건에 관해 조사할 게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요?”
“네.”
“미래 레드몬 법무팀장 서정재입니다. 지금부터 회장님을 대신해 저와 얘기하시면 됩니다.”
나진시에 있던 서정재 변호사가 지리산까지 내려왔다. 워낙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 곤란을 겪을 수 있다는 한숙의 판단에 따라 미래 레드몬 법무팀이 지리산으로 모두 내려왔다.
“이건 엄연한 테러사건이고 회장님은 피해자입니다. 지금 경찰청장님의 말은 테러사건을 살인사건으로 표현했고, 회장님을 피의자로 몰고 있습니다.”
“참고인으로 조사하겠다는 뜻입니다.”
“이미 진술은 끝났고, 증거와 범인도 모두 인도했습니다. 또한, 테러범들이 묻힌 장소와 사건 현장도 알려드렸습니다. 더 말해드릴 내용이 없는데 참고인이라...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임의동행을 요구한 겁니다. 불응하면 연행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임의동행에 연행이라 하셨습니까?”
“네.”
“임의동행은 수상한 행동이 의심되거나,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를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현장에서 조사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연행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입니다. 지금 연행하겠다는 발언은 회장님을 피의자로 몰겠다는 뜻입니다.”
“일방적으로 한쪽 얘기만 듣고 상황을 판단할 순 없어 조사하겠다는 겁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지난 황국신민회 소속 자유당 의원들 사건을 회장님이 짓이라고 사석에 자주 발언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억지를 부리는 것이죠?”
”그것과 이 사건은 별개입니다.“
“박지홍 회장님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이곳까지 오셔 레드몬을 처리하고 사냥한 레드몬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청장님은 평소 사석에서 회장님을 욕을 입에 달고 다닐 만큼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가 이번 일을 맡게 되자 회장님의 명예를 흠집 내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임의동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나는 공정한 수사를 위해 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한 얘기는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평소 말도 안 되는 욕을 하고 다닌 적이 없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가 꽤 많은 조사를 했는데, 그동안 회장님이 말리셔서 그냥 보관만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지금 날 협박하는 겁니까?”
“전 적어도 누구처럼 피해자를 가해자로 모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언성이 높아지자 기자들이 달려와 카메라를 들이밀고 나와 한숙, 서정재 변호사, 이병두 경찰청장을 찍어댔다.
“이병두 경찰청장님! 이승구 대통령 비서실장님 전화에요. 받아보세요.”
한숙이 전화기를 내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이병두 경찰청장이 인상을 팍 쓰며 마지못해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예! 예! 예! 알겠습니다. 예! 예!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죄송합니다. 예! 예!”
부동자세로 전화를 받은 이병두 경찰청장은 예 소리와 함께 허리를 굽혀 보이지도 않는 이승구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와 죄송합니다, 인사만 5분간 반복적으로 하던 이병두 경찰청장이 땀범벅이 되어 전화기를 한숙에게 다시 넘겼다.
“... 조만간 연락드릴 테니 그땐 참고인 자격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이유가 없을 것 같군요. 얘기 끝나셨으면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얼굴이 벌게진 이병두 경찰청장이 어깨가 축 처져 임시로 마련된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자기 혼자 저런 거야?”
“네, 이병두는 지금까지 금송무의 힘으로 승승장구한 사람이에요. 금송무가 바보가 되며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이리치고 저리 치이자 지홍씨를 엮어 넣어 황국신민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 저런 거예요.”
“든든한 백이 사라졌으니 원망할 만하네. 흐흐흐~”
학연 지연에 얽매인 대한민국에서 같은 학교, 같은 고향, 같은 친일파란 유대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자기들만의 철옹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 중 하나인 경기고, 서울대 KS 라인도 이런 학연으로 뭉쳐 국가요직을 차지한 채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했고, 군 사조직인 하나회도 불법적으로 조직을 결성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이렇다 보니 학연, 지연이 없는 사람은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워 재능을 썩히거나, 꽃피우지도 못한 채 비주류가 되어 소외된 채 살아야 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