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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206화 (206/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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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교화(敎化)

정화수가 세상에 공개되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엘리트 레드몬 사냥 국가 선정과 그로 인한 잡음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대신 정화수에 대한 효능과 가격, 앞으로의 파급 효과 등에 관한 각종 기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특히 미래 레드몬의 영향력 확대와 천문학적인 이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리를 성토하던 중국과 일본, 프랑스도 정화수에 대한 내용을 입수하자 기자회견장 점거를 풀고 쫓기듯 숙소로 달아났다.

그리곤 발 빠르게 전날 사건을 사과하고 난동을 부린 투자단을 즉시 본국으로 소환했다.

[기자회견장 점거 난동은 흥분한 투자단이 일으킨 사건으로 중국 정부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이번 사건은 슝다이린 투자단 대표와 아이샹젠 부대표가 빠진 상황에서 말단 직원들이 흥분해 일으킨 사고로...]

“정말 웃기고 있네. 흥분한 직원들이 일으킨 사고?”

“중국 정부와는 상관없다고 딱 잡아떼네.”

[물의를 일으킨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리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련자 전원을 엄단하겠습니다. 중국은 대한민국의 우방이자 미래 레드몬의 친구로서 모든 일에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시아의 힘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협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애꿎은 아랫사람들만 또 잡아 족치네.”

“시킨 사람이 일한 사람을 나무라고 벌주는 건 중국이나 우리나 똑같은 것 같아.”

“그러게 말이다. 이웃끼리 하는 짓이 똑같네.”

아영과 상아의 말처럼 썩어빠진 위정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하급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실제 문제를 일으킨 명령권자가 책임자가 되어 하급자를 처벌했다.

이건 비리를 저지른 놈에게 수사를 맡기는 것과 같은 일로 비리척결은 고사하고 놈에게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바늘 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우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 아주 흔한 일로 방산비리로 얼룩진 군을 군에서 직접 조사하고, 돈을 받아먹은 검사를 검사가 조사하고, 비리에 연루된 경찰을 경찰이 조사했다.

이러니 비리가 척결되지 않고 같은 일이 계속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고, 포(包)는 포(包)를 못 잡아먹는다고 봐주기 수사로 나라와 국민만 피멍이 들었다.

“대표와 부대표가 빠진 걸 아주 절묘하게 갖다 붙이네.”

“일본도 마찬가지잖아. 프랑스만 아주 곤란하게 됐어.”

“프랑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여전히 정정과 추가발표를 요구하잖아.”

“왜 저러지?”

“자존심의 발로겠지.”

일본도 기자회견장 난동 사건을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중국과 마찬가지로 모든 책임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중국과 입을 맞추기라도 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변명 일색으로 글자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에 반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프랑스는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고 정정과 추가발표를 요구했다.

사실 프랑스는 레드몬이 많은 나라가 아니었다. 국토가 고르게 발전한 프랑스는 레드몬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유럽에서도 레드몬이 가장 적은 나라로 연간 피해규모도 1~2위를 다툴 만큼 적었다.

더구나 세계 3대 공대 중 하나이자 가장 많은 능력자를 보유한 솔로몬 공대가 프랑스 소속이었다.

솔로몬 공대는 공대원 4,678명 중 중급 능력자가 79명으로 세계 3대 공대 중 1위를 차지한 아폴로 공대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아폴로 공대가 레드몬을 조금 더 많이 잡아 1위를 차지했을 뿐 실제 실력은 솔로몬 공대가 훨씬 앞섰다.

또한, 세상의 부를 거머쥔 로스차일드 가문이 자리 잡은 나라로 미래 레드몬 공대에 매달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을 대통령의 아집으로 보는 시선과 만약을 대비한 불가피한 선택 그리고 판단 착오로 인한 망신으로 보는 시각까지 프랑스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오빠! 말씀하신 대로 서류 분류했어요.”

“벌써?”

“아영이가 도와줘서 빨리 끝낼 수 있었어요.”

“둘 다 고생했어.”

상아와 아영이 한 아름 안고 온 서류는 미래 2공대 모집 공고에 응시한 응시생들이 응시원서와 자기소개서였다.

지난달 8일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를 통해 미래 2공대 모집 공고가 나가자 잠능자는 물론 능력자들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틀도 지나지 않아 조일 일보와 대동 일보, 합동 일보 등이 악의적인 기사가 쏟아내자 반응이 금세 시들해졌다.

한반도 최북단이라 점, 오지라는 점, 위험한 레드몬이 가장 많은 곳이라는 점, 왕래가 어렵다는 점 등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부정적 기사를 쏟아내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덕분에 응시자는 애초 예상했던 500명에 한참 못 미치는 157명이 전부였다. 이중 능력자 15명을 뺀 143명은 올해 포스전문학교 졸업 예정자들로 전체 졸업 예정자 485명의 29%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상급 능력자가 스킬을 지도하는 걸 생각하면 졸업 예정자 전체가 몰려와야 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기본 스킬이 뭐가 대단하냐고 생각하겠지만, 기초조차 알려주는 곳이 없었고, 기초만 잘 닦아도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응시자가 몇 명 없는 건 찌라시 언론의 힘도 컸지만, 불법적으로 잠능자를 선점한 재벌들의 횡포 때문이었다.

5년 전 청사자 공대 박용규 공대장의 피나는 노력으로 졸업 예정자를 뺀 잠능자와 계약을 맺거나, 각종 혜택을 미끼로 잠능자를 선점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으로 규정됐다.

입학과 동시에 재벌이 유능한 잠능자를 모두 끌어가자 개인 공대의 질이 점점 떨어졌다.

이를 보다 못한 박용규 대장이 총대를 메고 5년간의 사투 끝에 간신히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이를 단속하고 개도해야 할 정부와 학교장은 뒷짐을 진 채 나 몰라라 했고, 그사이 아이들의 성적과 특기를 빼돌린 재벌들은 자기들 입맛대로 잠능자를 골라 담았다.

“몇 명이나 나왔어?”

“157명 중 44명만 그런대로 자기소개서를 썼고, 나머지 113명은 완전 엉터리예요. 미사여구만 잔뜩 썼지 진심은 요만큼도 없어요.”

“44명?”

“네, 생각보다 많이 적죠?”

“아니, 생각보다 많은데. 흐흐흐~”

우리가 가장 주의 깊게 본 항목은 실력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 이것이었다.

이를 위해 응시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자필로 쓸 것을 요구했다. 타자나 컴퓨터로 쓴 서류는 작성자의 마음이 담기지 않아 진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상아가 진실의 눈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응시자의 72%는 우리를 속이기 위해 소설과 같은 허위사실로 가득한 자기소개서를 썼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순수한 존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편견일 뿐 어른들처럼 아이들도 각자 인성에 따라 극렬한 차이를 보였다.

여중생이 같은 반 여학생을 성매매에 동원해 유흥비를 벌고, 심지어 사창가에 팔아넘기는 일도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노인에게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어려도 80년을 산 노인보다 더 노회하고,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아이들도 있었다.

잠능자들도 특권계층으로 우월감, 자만심, 특권의식, 이기심 등 아주 못된 생각을 하는 놈들이 많았다.

이런 사고방식은 잘못된 교육과 정부정책, 돈만 생각하는 재벌의 행태 그리고 무늬만 잠능자인 학생들에서 비롯됐다.

정부와 재벌들이 잠능자를 일반인과 다른 존재로 떠받들며 녀석들의 인성을 개차반으로 만들었다.

또한, 고급사립학교에서 된장녀, 된장남과 어울리며 허파에 바람이 가득 찼고, 노는 물이 지저분해 어린 나이부터 문란한 성생활 등 탈선의 길로 접어든 잠능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8월 30일까지 나진시로 모이라고 해. 차편과 배편은 소연과 상의해서 마련해주고.”

“제가 골라낸 학생만 불러요?”

“응.”

“오빠가 다시 서류 검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하러?”

“전 진실과 거짓만 판단했어요. 이력서 내용을 보고 분류한 게 아니에요.”

“그거면 충분해. 성적과 집안을 보고 뽑는 거 아니니까. 그리고 면접도 마찬가지야. 실력이 형편없어도 인성만 바르면 뽑을 거야. 모자란 실력은 키워주면 돼. 하지만 삐뚤어진 인성은 절대 고칠 수 없어. 그런 놈들은 있어 봐야 속만 썩여.”

사람은 절대 교화시킬 수 없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타인에 의해 교화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폭력과 고문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그렇게 보이게 할 순 있어도 마음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사람을 교화할 수 있었다면, 오래전 범죄와 전쟁이 사라져 지구엔 평화와 행복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교정시설, 청소년 선도 프로그램 등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도 범죄율이 줄어들지 않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만 봐도 인간이 인간을 교화(敎化)한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그래도 아직 아이들이라 잘 타이르면 되지 않을까요?”

“설마 인간이 선하다는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을 믿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처럼 인간은 악한 존재야. 믿을 수 없는.”

“모두 다요?”

“물론 예외도 있지. 내가 사랑하는 소연, 은비, 한숙, 서인, 상아, 아영이만 빼고. 그 나머지는 모두 악한 존재야!”

“오빠!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이 존재해요. 착하고 선할 때도 있지만, 폭력적이고 사악할 때도 있어요. 저와 언니들 모두 마찬가지예요. 오빠에게만 잘하려 노력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그러지 않아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네에?”

“다른 남자에게 잘하면 그건 배신이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우리도 똑같은 존재라는 말이에요.”

“크크크~ 알고 있어. 농담으로 한 소리야. 성선설, 성악설 이런 거 믿지도 않아. 세상 사람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악인도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위대한 성자도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어. 선과 악은 인과율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어.”

“그런데 왜 인간은 모두 악하다고 생각하세요?”

“선한 존재가 아니니까. 선한 존재였다면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행동이 바뀌지 않을 테니까.”

인간만큼 수시로 마음이 바뀌는 존재가 있을까? 동전은 양면과 둥근 모서리만 있지만, 인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습을 갖고 살아간다.

같은 문제라도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달리했다. 돈이 있고 없고, 권력이 있고 없고, 기분이 좋고 나쁘고, 심지어 자기 꼴리는 대로 판단할 때도 있었다.

성인들이 말씀하신 대로 인간이 정말 선한 존재로 태어났다면 적어도 작은 양심, 작은 배려심, 작은 이해심은 잊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시로 모습을 바꾸며 반성이나 양심 따윈 생각지도 않았다.

그건 악한 존재인 내 모습이기도 했고,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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