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문 진화의 시작-204화 (204/505)

00204  사냥 협정  =========================================================================

204.

“끝으로 미래 레드몬 공대의 안전을 위해 6개월 전 사냥할 레드몬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미래 레드몬 사냥팀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냥은 거부 또는 협정을 파기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고의적으로 정보를 누락할 경우 협정은 자동으로 파기됩니다.”

“웅성웅성~”

안전은 당연히 지켜져야 할 대전제였지만, 받아들이는 처지에선 불합리하게 보일 수 있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우리가 특정 국가와 마찰이 생기면 이 항목을 이유로 협정을 파기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물론 각국 특사들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전 문제에 관해 거론할 것은 예상했지만, 협정 파기까지 명시할 준 모르고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합리적인 이유 없이 협정을 파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귀책사유가 분명할 때 협정을 파기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레드몬 침입으로 정보 제공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이를 빌미로 협정을 파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는 신뢰에 관한 문제로 신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장님의 방침에 따라 협정국가 선정 역시 신뢰를 바탕으로 선정했습니다.”

한숙이 분위를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기 위해 협정 파기에 관한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기분에 따라 언제든 얼굴을 바꿀 수 있어 신뢰, 신의 이런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특사들과 기자들의 표정이 찜찜함을 넘어 불안함이 가득했지만, 차마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입방아로 국가가 바뀌게 되면 여벌로 목숨을 열 개쯤 있어도 살아남길 기대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엘리트 레드몬 사냥협정 국가를 발표하겠습니다.”

한숙이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자중을 천천히 훑으며 특사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50명 특사 모두 한숙과 눈을 마주치며 간절함을 담아 자기 국가 이름을 발표해주기를 염원했다.

“미국!”

“우와~”

미국이라 말에 데이비드 액설로드 특사를 위시한 미국 투자단이 양손을 높이 쳐든 채 환호성을 질렀다.

초일류 강대국 미국의 협정국가에 들어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변수란 항상 존재해 이름이 불리기 전까진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러시아!”

“꺄악~”

나라를 구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명을 질러대는 소트니코바 특사의 행동에 러시아 대표단을 뺀 49개국 투자단이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러시아는 우리와 무기 거래 협정을 맺은 순간 이미 계약을 맺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육중한 가슴을 출렁거리며 방방 뛰는 건 러시아가 아직 살아있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위이자 염장을 지르는 의미도 함께했다.

“영국! 독일! 브라질! 캐나다! 인도!”

이름이 불린 투자단은 얼싸안고 기쁨을 누렸고, 아직 이름이 불리지 않은 국가들은 울상이 되어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끝으로... 터키!”

“헉...”

케말 데르비쉬 터키 특사와 투자단 직원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며 서로의 얼굴만 껌벅껌벅 쳐다봤다.

터키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케말 데르비쉬 특사가 대한민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며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를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숙 역시 터키에 관한 말을 꺼낸 적이 없어 터키 투자단은 탈락을 기정사실화 한 채 짐까지 꾸려 놓고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케말 데르비쉬 특사가 한숙을 향해 연신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엘리트 레드몬 사냥협정 국가 발표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한 채 한숙이 원고를 챙겨 들고 단상을 내려오자 중국과 일본, 프랑스 투자단이 거칠게 항의하며 달려들었다.

미래 레드포스 대원들이 이들을 막아서자 몸싸움을 불사하며 정정을 요구하는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한숙이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기자회견장을 떠나자 성난 중국과 일본, 프랑스 투자단이 단상에 뛰어올라 이번 발표가 무효라며 악다구니를 질러댔다.

이 모습은 CNN, NBC, ABC, BBC, NHK, CCTV 등 10여 개가 넘는 방송사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중국과 일본, 프랑스가 10시간 넘게 기자회견장을 점검한 한 채 정정과 추가발표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동안 미래 레드몬 빌딩 회의실에 모인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캐나다, 브라질, 터키, 인도 특사들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특히 탈락을 예상했던 터키, 인도, 캐나다, 브라질 특사는 너무 좋아 어깨춤이라도 덩실덩실 출 기세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국으로 돌아가면 계약 실패에 따른 책임을 물어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기본이었고 갖은 질타와 모욕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구명줄이 내려와 계약을 따내며 이제 이들의 앞날은 창창 대로나 다름없었다.

“이건 회장님이 그동안 고생하신 특사님들을 위해 드리는 선물이에요. 벽사목으로 이번에 잡은 엘리트 레드몬 은행나무의 몸체 일부에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 중급 레드몬까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해요. 하나씩 챙기고 나머지 하나는 대통령께 갔다 드리세요.”

한숙이 선물을 건네자 특사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중급 레드몬을 쫓는 벽사목의 값어치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안전을 원하는 부호들에게 팔면 수십억 원은 가볍게 벌 수 있고, 연구소 팔면 더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었다.

또한, 금전적 이익을 떠나 친필 사인이 있어 평생 가보로 물려줘도 손색이 없는 보물이었다.

“그리고 이건 정화수라고 하는 거예요.”

“정화수요?”

“네, 마시면 몸속 피로물질을 제거하고 활력을 넘치게 하죠. 1단계 정화수는 3개월 이상 복용하면 면역력 향상과 노화방지 효과가 있어요. 2단계 정화수는 1단계 정화수보다 피로물질 제거와 활력 효과가 더욱 뛰어나고, 장복하면 건강과 젊음을 유지해주죠. 또한, 방사능 피복에 의한 질병도 깨끗이 치료할 수 있어요.”

“그게 사실입니까?”

“의심스러우면 직접 분석해보시면 되잖아요.”

“그런 뜻이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죄송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느끼실 수 있죠. 약장수처럼 평범해 보이는 물을 만병통치약처럼 말하고 있으니까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처음 보는 물건을 그대로 믿을 순 없죠. 일단 한 병씩 마셔보고 얘기하죠. 그래야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죠.”

한숙이 1단계 정화수를 한 병씩 돌리자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만 봤다. 한숙이 시범을 보이듯 뚜껑을 따고 정화수를 들이키자 특사들도 마지못해 정화수를 마셨다.

“꿀꺽꿀꺽~”

입안에 정화수가 들어가자 향긋한 풀 향기가 퍼지며 평생 느껴보지 못한 시원함이 온몸 구석구석 밀려왔다.

신비한 맛에 취해 250㎖를 벌컥벌컥 단숨에 비우자 피곤함에 찌들었던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회의실에 모인 특사 중 최근 제대로 잠을 잔 특사는 한 명도 없었다. 발표 날이 다가올수록 신경이 곤두서며 식욕부진, 소화불량, 수면 장애 등 온갖 잡스러운 병에 걸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찌들고 찌든 피로가 일부 해소되며 활력이 살아나자 축 처진 어깨가 펴지며 머리를 쪼아대던 두통까지 사라졌다.

“대체 이게 뭡니까?”

“정화수라고 했잖아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레드몬에게 나왔는지, 특정한 물질에서 나온 건지, 그것도 아니면 누가 만들었는지 그걸 여쭤본 겁니다.”

“너무 많은 걸 알려 하시네요.”

“죄.죄.죄송합니다.”

한숙이 쏘아대자 데이비드 액설로드 특사가 크게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언제나 갑의 위치에서 횡포를 일삼았던 세계 최강 미국 특사가 손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동양 여성의 말에 쩔쩔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그렇고 그런 동양 여자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움켜쥔 존재였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특사의 뒤에 미국이란 거인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인조차 앞에서 여성의 눈치는 보는 중이라 실수를 하는 순간 거인이 먼저 자신을 걷어찰 게 분명했다.

약소국에선 미국 특사가 대단한 존재지만, 미국 대통령이 보기엔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스페어타이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앞에 있는 여성은 힘 있는 존재로 여느 노란 원숭이완 질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무섭고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농담이에요. 호호호~”

“아~ 그.그.그렇군요. 하.하.하.하.하. 저.저.전 그런 것도 모르고 그만...”

“정화수는 레드몬이나 특정 물질에서 얻는 게 아니라 정화 스킬을 사용해 만들었어요.”

“정화 스킬이란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우리끼리 지은 이름이에요. 촌스러운가요?”

“아닙니다. 효과와 맞아떨어지는 게 아주 입에 착착 감깁니다. 발음도 좋고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아주 기가 막힌 작명입니다.”

조금 전 마음이 덜컥했던 액설로드 특사가 한숙의 비유를 맞추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나이 먹고 고생하는 게 안쓰러웠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관리에게 왕처럼 굴었을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굴욕도 아니었다.

“진짜 놀라운 건 정화수가 레드몬에 당한 독이나 상태 이상 상처를 치료한다는 거죠. 특히 미리 마신 상태에서 레드몬을 상대하면 이런 공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어요. 1단계 정화수는 하급, 2단계 정화수는 중급 레드몬까지 방어하죠. 엘리트 레드몬의 상태 이상 공격을 방어할 3단계 정화수는 아쉽게도 아직 준비가 부족해 다음에 보여드릴게요.”

“.......”

한숙의 폭탄 발언에 특사들은 정화수가 들어있던 병과 한숙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며 입만 뻐끔거렸다.

그만큼 놀라운 일로 한숙의 말이 사실이라면 레드몬 사냥에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이 열리는 것이었다.

능력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레드몬과 싸우며 생긴 상처로 상처 부위에 놈들의 포스가 깃들어 치료에 애를 먹었다.

또한, 독과 얼음, 불, 마비, 출혈 등 상태 이상 공격에 번번이 노출돼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한숙이 말한 효과가 사실이면 레드몬의 상태 이상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1단계 정화수 10병과 2단계 정화수 5병을 샘플로 드릴 테니 제 말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해보세요. 그리고 고생하신 직원들을 위해 1단계 정화수 20병을 따로 준비했어요. 드시고 그동안 쌓인 피로를 말끔히 해소하세요.”

사냥협정 체결보다 정화수 발표가 충격이 더 컸는지 특사들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회의실을 떠났다.

그만큼 정화수가 미칠 영향이 엄청나다는 방증(傍證)으로 연구원들의 말처럼 정화수는 세계 3대 발명품인 종이, 나침반, 화약에 비견되는 물건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