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3 사냥 협정 =========================================================================
203. 사냥 협정
“그러니까 이게 벽조목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뜻이군요?”
“벽조목! 딱 맞는 표현이군요. 아주 그럴싸합니다.”
“현대의 악귀가 레드몬 아닙니까. 그러니 놈들을 쫓아내면 벽조목이라 할 수 있죠.”
“그럼 회장님은 현대판 악귀를 잡는 퇴마사군요?”
“헉...”
벼락 맞은 대추나무 벽조목(霹棗木)은 요사스런 귀신을 쫓는 벽사(?邪)의 기능이 있어 지니고 있으면 잡귀가 다가오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어 예전부터 부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중국 역사상 최고 부호인 진(晋)나라 석숭(石崇)도 중요한 문서엔 벽조목 도장을 사용할 만큼 사람들의 믿음이 강해 지금도 대기업 회장과 정치인, 아줌마, 아가씨 등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물건이었다.
은행나무를 통째로 옮겨달라고 난리를 치던 최정준 박사는 조각난 암수 은행나무에서 아주 재미난 걸 찾아냈다.
은행나무는 자신만의 특징인지, 식물형 레드몬의 고유 특징인지 알 순 없지만, 레드몬의 접근을 막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은행나무가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피톤치드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레드몬의 접근을 근본적으로 막는 향기 때문이었다.
은행나무가 1,000년을 살아온 거목이지만, 처음부터 엘리트 레드몬으로 변이한 건 아니었다.
살아온 생애가 있어 최하급이나 하급보단 중급 레드몬으로 변이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피톤치드와 같은 고급 스킬을 갖출 수준은 아니었다.
잘해야 단풍잎을 쏘아내는 수준으로 최하급이나 하급 레드몬의 공격을 막아낼 순 있어도 중급 레드몬을 상대론 어림도 없는 공격력이었다.
레드몬의 가장 큰 적은 레드몬으로 놈들은 위협이 될 싹은 미리미리 제거했다. 약육강식의 비정한 세계에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선 상대가 힘을 갖추기 전에 죽여야 했다.
최상위 포식자인 사자, 호랑이, 표범, 향유고래 새끼들을 그보다 한 단계 낮은 동물들이 공격해 죽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은행나무도 향기를 발산해 레드몬의 접근을 차단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동물형 레드몬의 공격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중급 레드몬까지 차단한다. 기본 능력이 엄청나네요.”
“살아 있었을 땐 효과가 더 뛰어났을 겁니다. 못해도 C급 엘리트 레드몬까진 막아냈겠죠. 눈에 잘 띄는 그 큰 덩치가 살아남으려면 최소 그 정도는 되어야 했을 겁니다.”
“은행나무에게 향기는 여신의 축복 같은 거군요?”
“여신의 축복? 그게 뭡니까?”
“게임을 처음 시작한 사용자에게 주는 특별한 혜택 같은 겁니다. 일정 레벨에 오를 때까지 타인의 공격에 죽지 않게 보호해주는 버프 스킬이죠.”
“정말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현실에도 그런 기능이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하하~
평생 연구밖에 모르고 산 최정준 박사는 레드몬외엔 아는 것 거의 없어 주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두뇌라 칭송하지만, 가스레인지도 켤 줄 몰라 라면도 끓여 먹지 못했다.
연구실에서 쫓겨나면 굶어 죽기 딱 좋은 스타일로 좋게 말하면 한우물만 판 대단한 인재지만, 나쁜 말로 하면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사람이었다.
“손바닥만 하면 됩니까?”
“그럼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렇게만 되면 세계 최고 갑부가 대는 건 시간문제죠.”
“설마 갑옷을 만들어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무게로 따지면 얼추 비슷합니다. 대략 가로세로 50cm에 두께는 10cm는 되어야 레드몬의 접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게가 50kg이 넘어 사람이 사용하기엔 담이 크죠. 대신 차량에 탑재하면 됩니다.”
“달리면 향기가 흩어져 효과가 없을 텐데요.”
“향기를 풍기는 게 아니라 전파처럼 쏘아내는 방식이라 속도와 바람의 영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향기를 전파처럼 쏘아낸다. 정말 특이하군요. 그런데 나무가 죽은 이상 향기도 사라지지 않을까요?”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담가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안 죽죠? 은행나무도 이와 같습니다.”
“그럼 놈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뜻입니까?”
“음... 반쯤 살아있다는 표현이 적당하겠군요. 그렇다고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세포는 살아있지만, 정신은 완벽히 죽은 상태라 다시 뿌리를 내리거나 스킬을 사용할 순 없습니다.”
박사의 말이 못 미더워 은행나무 조각에 기를 투사해 상태를 살폈다. 세포가 살아있는 건 분명한데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마치 느려터진 달팽이가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아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사용할 수 있습니까?”
“3일에 한 번 6시간 동안 최하급 레드스톤과 함께 물에 담가 놓으면 미량이지만 에너지를 흡수합니다. 이 방식으로 잘 관리하면 평생은 아니더라도 20~30년은 족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스톤만한 효과는 없지만, 개인이 사용하는 장비가 중급 레드몬을 막아낸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안전거리가 30m밖에 안 돼 손이나 발사체를 사용하는 레드몬에겐 위험했지만, 그래도 레드몬의 접근을 막는다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했다.
“이걸 조금 얇게 만들어 전투복에 붙이면 어떻겠습니까?”
“RPG-7이나 로켓 정도는 충분히 방어할 수 있어 생존력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게는 줄일 수 없어 개인 방호복으로 사용하기엔 너무 무겁습니다.”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면 되잖습니까?”
“그렇게 되면 안전거리가 확 줄어 효용가치가 없습니다.”
30m도 매우 짧아 위험한데, 이마저도 거리가 줄어들면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귀중한 은행나무만 낭비하는 꼴이었다.
“박사님! 은행나무로 무기를 만들어 사용하면 효과가 있을까요?”
“괜찮은 방법이군요. 효과가 탁월할 겁니다.”
상아의 질문에 최정준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강한 긍정을 표시했다. 레드몬이 은행나무에 다가서지 않는 건 향기를 들이마시면 순식간에 혈액이 응고되기 때문이었다.
혈액 응고는 혈액이 뭉쳐 혈전이 생기는 것으로 혈관 안에서 피가 엉겨 덩어리가 되는 것을 말했다.
혈전이 생기면 뇌혈관이나 심장혈관, 허파혈관을 막아 뇌졸중, 심장병 등이 생겼다. 이럴 경우 산소 공급이 끊겨 심한 경우 목숨을 잃었다.
“무기에 찔리면 100% 죽겠네요?”
“중급 레드몬까진 그럴 겁니다.”
“지난번 만들어주신 귀마개처럼 향기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풍산개 때문이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항응고제(Anticoagulant)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 것도 있나요?”
“독이 있으면 약이 있는 게 당연한 이치죠.”
“근데 약이면 근본적인 대책은 안 되겠네요?”
“회장님이 갖고 계신 은행잎을 꾸준히 먹이면 몸도 건강해지고 향기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열매가 있다면 더 좋을 텐데 너무 일찍 잡는 바람에 열매가 하나도 없더군요. 정말 아쉽습니다.”
“죄송합니다. 기다릴만한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은행나무는 보통 5월부터 열매가 나기 시작해 6월쯤 되면 파란 열매가 가득 달리고 가을이 오면 노란 은행잎과 함께 열매도 노랗게 익었다.
은행 열매는 글로불린을 비롯해 단백질, 지방, 칼슘, 단백질, 인, 철분, 펙틴, 비타민 A, B1, B2 등이 들어 있어 영양학적으로 가치 매우 높은 음식이었다.
또한, 지방을 제거와 골연화증을 예방, 혈액순환 촉진, 정력 강화, 면역 강화에도 탁월한 기능이 있었다.
놈들의 분신인 묘목을 살려준 이유가 바로 열매 때문이었다. 열매를 얻기 위해 놈들을 키울 생각이었다.
평범한 은행 열매도 이렇게 효과가 무궁무진한데, A급 엘리트 레드몬이 생산한 은행 열매의 효과는 은행잎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이유가 없었다.
최정준 박사와 이야기가 끝나자 창을 만들 가지 30개와 단검, 글라디우스로 만들 단단한 몸통 부위를 크게 베어 김일섭 연구원에게 가져다주었다.
또한, 엘리트 레드몬 사냥협정 발표에 맞춰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캐나다, 브라질, 터키, 인도에 선물로 주기 위해 16조각을 잘라냈다.
한 트럭분을 잘라냈지만, 워낙 덩치가 큰 나무라 살점을 살짝 뜯어낸 정도에 불과했다.
두 그루를 모두 벽사목(요사스러운 귀신을 쫓는 나무)으로 활용하면 적어도 10만 개는 만들 수 있었다.
「개당 10억 원이면 100조 원? 헉... 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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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레드몬 사냥협정을 맺을 국가 발표에 앞서 협정 내용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숙이 입을 열자 도떼기시장처럼 소란스럽던 기자회견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세계적 관심을 끈 협정 국가 발표는 지난주 기자회견 일정이 잡히며 어느 국가가 선정될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미국과 러시아, 영국, 독일 등이 유력시되는 상황 속에 가깝고도 먼 이웃 중국과 일본이 협정국가에 포함될지, 탈락할지가 가장 큰 관심이었다.
지지난달 중국과 일본 관영 언론들이 나에 대해 비방을 쏟아내며 급속도로 사이가 멀어져 탈락할 것이란 의견과 그래도 세계 4강에 딱 달라붙은 이웃이라 제외할 경우 자국에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포함할 거란 의견으로 나뉘어 서로 자기주장이 옳다면 핏대를 세우며 싸웠다.
“미래 레드몬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기업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미래 레드몬 공대는 어려운 처지에 놓은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자 매년 다섯 곳을 선정해 무료로 엘리트 레드몬을 사냥할 계획입니다. 또한, 사냥한 레드몬은 전액 그 지역을 위해 쓰일 것입니다.”
“찰칵찰칵~!”
시작은 미래 레드몬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바른 기업이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재능 기부부터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 책임에 대해 통감한 적은 없지만, 가난한 삶 때문인지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런 생각마저 없었다면 나 역시 금송무나 왕교언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처럼 염치라는 작은 생각이 그들과 나를 극과 극으로 나뉘게 했다.
악인과 선인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작은 배려, 작은 양심, 최소한 염치 이런 것만 있어도 사람들에게 손가락 받진 않았다.
큰 것 같지만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으로 이것조차 없어 매국노, 친일파, 쓰레기란 소리를 들었다.
“협정 기간은 5년, 계약금은 1억 불입니다. 의뢰비용은 C급 엘리트 레드몬 1,000만 불, B급 2,000만 불, A급은 3,000만 불로 사체는 모두 미래 레드몬 사냥팀에 귀속되며, 사냥에 소용된 체류비용 및 운행경비는 사냥 의뢰 국가에서 모두 부담합니다.”
“.......”
“사냥 의뢰 국가는 사냥 기간에 한해 미래 레드몬 사냥팀에 외교관에 준하는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웅성웅성~”
아주 민감한 부분을 발표하자 기자들 사이에 동요가 일었다. 하지만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은 이미 특사들과 사전 조율이 끝난 내용으로 중국, 일본, 프랑스, 스위스 등 일부 국가를 빼곤 모두 합의한 상태였다.
이에 합의하지 않은 중국과 일본, 프랑스, 스위스는 면책 특권과 불체포 특권을 주면 우리가 범죄라도 저지를 듯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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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