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8 응징(膺懲) =========================================================================
198.
1993년 7월 6일 20:00시, 나진시 미래 호텔 연회장.
“진작 찾아뵀어야 하는데 불편을 끼칠까 두려워 이제야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걱정하신 거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헬기를 타고 도착한 변병석 대표와 대한당 의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반가움을 표했다.
후원회 회장인 내가 쓰러지자 대한당도 비상이 걸렸다. 내가 영영 일어나지 못하면 막대한 후원이 모두 사라져 다시 옛날의 빈곤함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또한, 우리 인기에 편승해 쭉쭉 뻗어 나가던 대한당의 인지도와 인기도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었다.
아직 할아버지가 건재하지만, 대중적 인기도 관심도 없을뿐더러 나만큼 파격적인 후원을 받을 재력이 없어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컸는지 변병석 대표는 눈 밑에 다크 서클이 생겼고, 의원들도 살짝 배가 들어가는 등 마음속에 어떤 흑심을 품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나름대로 걱정이 많았던 건 사실이었다.
“쾌유를 축하한다는 대통령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회장님이 쓰러져계신 동안 대통령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사히 쾌차하셔 다행이지 변고라도 있었으면 대통령님도 몸져누우셨을 겁니다.”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저 역시 회장님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잠을 설쳤지만, 마음처럼 일이 되질 않아 큰 도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이승구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도 안 되는 개소리에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양아치들을 자주 상대하다 보니 얼굴이 두꺼워져 이젠 마음에도 없는 고마움을 표할 만큼 뻔뻔해졌다.
“자유당 놈들과 어울려 다니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던 놈이, 자네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을 하다니 정말 뻔뻔하기가 이를 때가 없는 놈일세.”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뭐 그런 일로 화를 내십니까?”
“저놈이 뭐라 그런 줄 알고는 있나?”
“뭐라 했습니까?”
“자네가 대통령에게 모욕을 주며 이 나라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고 떠들고 다녔네. 심지어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는 말까지 했어. 그런데 자네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자네가 죽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렸을 작자야. 그런데도 괜찮다는 말이 나오나?”
화가 많이 났는지 정근욱 회장이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욕을 해댔다. 강승원 국장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으로 은비와 한숙은 크게 화를 냈지만, 난 별다른 감흥조차 없었다.
김XX 대통령과 이승구 비서실장, 자유당은 수십 년간 이 나라 정치를 농단한 매국노들로 중상모략은 이들이 사용하는 아주 흔한 수법 중 하나였다.
권력과 언론, 검찰, 경찰, 세무서 등을 동원해 남에 재산을 빼앗고, 없는 죄를 덮어씌우는 것은 고전적이다 못해 물릴 만큼 흔한 일로 너무 많은 사람이 당해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내가 건재할 때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놈들이라 내가 쓰러지면 당연히 그렇게 행동할 걸 알고 있어 이상하지도 않았다.
“오늘같이 좋은 자리에 이승구 저놈은 왜 부른 건가?”
“친구는 가까이에 두고, 적은 더 가까이에 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불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장어른들도 계신데 다음에 부르지 그랬나.”
“난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하하하~”
이승구 비서실장을 부른 게 마땅치 않은지 정근욱 회장이 계속 채근하자 할아버지와 장인어른이 괜찮다며 내 편을 들어줬다.
소연은 할아버지와 장인어른, 정근욱 회장, 변병석 대표와 대한당 의원들, 이승구 비서실장 그리고 나진시에 머무는 50명의 각국 투자단 대표를 모두 불러 모아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나를 걱정해준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무하고 더욱 굳건한 결속을 다지는 자리이자, 나의 건재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해충박멸’ 작전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증인들을 대거 동원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정근욱 회장이 이빨을 갈며 미워하는 이승구 비서실장도 초청했다. 나와 친한 사람들만 있으면 증언에 무게가 떨어져 확실한 적인 이승구 비서실장을 불러 알리바이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래서 친구는 가까이에 두고, 적은 더 가까이에 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정근욱 회장에게 했던 것이다.
강승원 국장이 알아낸 금송무와 황국신민회 소속 의원 22명은 7월 1일 강릉을 떠나 원산에 도착했다.
대유 그룹 문일권 회장이 후계자 문정준 부회장과 함께 항구에서 이들을 마중했다.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10만 명이 넘는 원산 주민이 강제 동원돼 항구와 길거리를 가득 메운 채 온종일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런 모습은 해외로 자주 놀러 다니던 대통령들을 위해 학생들을 동원하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바람처럼 쌩 하고 달려가는 놈들을 위해 두 시간, 세 시간 길가에 쭉 늘어서 가녀린 팔로 태극기를 흔들어야 했다.
당연히 얼굴은 볼 수도 없었고, 누가 지나가는지, 어디로 놀러 갔는지, 알지도 못한 채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여기서 더욱 열이 받는 건 어린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해야 할 선생들이 아이들을 강제 동원하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이들은 태극기를 제대로 흔드는지, 시간은 잘 지키는지, 도망치지는 않는지 이런 것들을 관리하며 자기 말을 따르지 않은 아이에겐 불이익을 주는 등 교사가 아닌 군사정권의 개 노릇을 충실히 했다.
원산에 도착한 금송무와 자유당 의원들은 공장 두세 곳과 항구를 둘러보는 것으로 ‘인권 보호를 위한 북쪽주민 실태 파악’을 끝내고 그날 밤부터 술판과 계집질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부터 목적이 계집질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탈을 썼으면 주변 시선을 의식해 빈민가와 주민들의 삶을 한 번쯤 둘러볼 법도 한데, 이놈들은 태생이 쓰레기인지 북쪽 주민들에겐 고개도 돌리지 않고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했다.
이틀간 재미를 실컷 본 놈들은 7월 3일 원산을 떠나 함흥에 도착했다. 함흥 역시 광명 그룹 이완영 회장이 직접 마중 나왔고, 주민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열어 금송무와 황국신민회 소속 의원들을 열렬히 맞이했다.
친일 그룹 중 둘째가라면 서러운 광명 그룹은 회장인 이완영이 친일행적을 자랑스럽게 떠버리는 뼛속까지 친일파로 황국신민회 고문이자 금송무와는 형·동생으로 30년 넘게 우정(?)을 다진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함흥에서도 뼈가 녹는 쾌락을 맛본 놈들은 7월 5일 새로운 쾌락을 찾아 현주 그룹이 차지한 김책에 도착했다.
“저와 손을 잡으시면 회장님의 앞날은 탄탄대로입니다. 앞으로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 이승구! 의리와 신의를 빼면 시체입니다. 일평생을 그것만 쫓아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 얘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하하하~ 이래봬도 제가 이 나라의 넘버2입니다. 대통령 각하 바로 다음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앞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저 말고 나를 찾으세요. 뭐든 도와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이승구에게 능사주의 효능을 알려주며 술을 권하자 연거푸 세 잔을 마신 다음부턴 눈이 돌아가 옆에 바짝 달라붙어 능사주만 찾았다.
하여간 나쁜 놈들이 몸에 좋은 건 알아가지고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시며 자기 자랑만 늘어놓았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가 끝난 건 밤 12시였다. 저녁 7시에 시작된 파티가 술자리로 바뀐 건 9시로 이승구 비서실장은 말술도 사양하지 않는 두주불사인지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마지막까지 버티다 결국 탁자에 얼굴을 처박으며 쓰러졌다.
놈이 쓰러지자 유유히 집으로 돌아와 재빨리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무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조심해서 다녀와.”
“빨리 와야 해. 다치지 말고. 알았지?”
“오빠! 조심하세요. 절대 무리하시면 안 돼요.”
“갔다 올게. 자고들 있어.”
아내들의 마중을 받으며 현관을 나서자 김도형 대장과 강승원 국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책시 지도와 놈들이 머무는 김책 호텔 도면입니다. 15층 건물로 15층과 14층에 머물고 있습니다.”
“술 마시며 한창 계집질 중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나이가 50대인데 뭘 먹고 그렇게 정력이 넘치는지 대단들 하시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대체 며칠 째야?”
“나이만 50대지 겉모습은 모두 30대 후반쯤으로 보입니다.”
“혈세로 몸에 좋은 건 다 처먹고 다녔나 보군요.”
“그럴 겁니다.”
“늦어도 아침 8시까진 돌아올 겁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눈치챌 수도 있으니 경계태세는 이대로 유지하세요.”
“알겠습니다.”
애초 작전 지역을 함흥으로 잡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김책으로 바꿨다. 청진이 훨씬 가깝지만, 청진에서 변고가 생기면 형님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 4대 친일 기업 중 하나인 현주 그룹이 차지한 김책에서 놈들을 공략하기로 했다.
나진시에서 김책까진 직선으로 193km라 헬기를 이용하면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작전은 외부로 알려질 경우 파장이 너무 커 풍연을 이용해 육로로 은밀히 다녀오기로 했다.
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김책까지 대략 250km 정도로 달려가기엔 좀 버거운 거리였다.
순간 최대 속도가 300km가 넘지만, 주행속도는 100km 안팎으로 평지도 아닌 굴곡진 길을 최소 세 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상급 피지컬리스트도 피와 살로 된 인간이라 그렇게 오래 달리면 몸에 무리가 생겨 놈들을 잡고 돌아오다 지쳐 쓰러질 수도 있었다.
그에 반해 풍비는 아무리 험한 길도 150km 이상 달릴 수 있고, 지구력도 뛰어나 녀석을 이용하면 김책까진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북쪽 방어벽을 넘어 나진시를 크게 우회한 후 바닷가를 끼고 달렸다. 폐허가 된 해안마을이 바닷가에 산재했고, 그곳엔 어김없이 쥐새끼들이 인간이 사라진 땅에 새로운 주민이 되어 살고 있었다.
적은 곳은 수십 마리에서 많은 곳은 1,000여 마리로 포베로미스도 두 마리나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 레드주얼이 아직 생기지 않아 다음을 기약한 채 생명을 연장해주고 김책을 향해 달렸다.
풍비의 노력에 힘입어 새벽 2시에 김책에 도착했다. 풍비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김책을 향해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고 있었을 것이다. 지친 풍비를 쉬게 하고 놈들이 잠들어 있는 김책 호텔로 조용히 다가갔다.
함경북도 남쪽에 있는 김책시는 본래 성진시(城津市)로 한국 전쟁 당시 전선 사령관으로 참전 중 사망한 김책(金策)의 이름을 따서 1953년에 개칭됐다.
CCTV가 있는지 주변을 면밀히 살펴본 현주 그룹 건물 옥상을 통해 김책 호텔 옥상으로 넘어갔다.
살기투사로 놈들을 병신으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21명이 바보가 되면 지병이나 단순한 사고라 생각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살기투사로 뇌를 반쯤 곤죽으로 만든 다음 헤로인을 투약해 마약 중독자 겸 바보로 만들기로 했다.
1898년 독일의 바이어사가 최초 개발한 헤로인은 모르핀을 아세트산 무수물로 처리하여 얻는 마약으로 모르핀보다 4~8배나 강한 효력이 있었다.
원래는 마약성 진통제로 사용되었으나 진통제의 가치보다 부작용이 커 현재 많은 나라에서 헤로인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강한 쾌감상태를 유도하는 헤로인은 분말 형태의 코로 흡입할 수도 있고, 물에 녹여 피하주사나 정맥 주사로 투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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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