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6 응징(膺懲) =========================================================================
196.
“금송무와 황국신민회는 어쩔 거야?”
“배후가 일본 내각정보조사실이라고 했지?”
“응!”
“황국신민회 소속 자유당 의원 23명이 인권보호를 위한 북쪽 주민 실태 파악한다고 하지 않았어? 벌써 지났나?”
“원래는 지난달에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바뀌어 이번 달 1일부터 원산을 시작으로 함흥, 김책, 청진을 차례로 방문하기로 했어.”
“일정은?”
“2박 3일씩 머물며 이동할 예정이야.”
“기생관광 제대로 하겠네.”
“그렇겠지. 처음부터 목적이 그거였으니까.”
“강승원 국장에게 놈들 일정을 자세히 알아보라고 해. 특히 함흥 일정을.”
“어쩌려고?”
“벽에 더러운 것 바르며 살게 해줘야지. 죽이는 게 간단명료하지만, 그럼 문제가 너무 커지잖아. 아쉽지만 목숨을 붙여놔야지.”
“장세룡과 조득렬, 문정수 일로 의심받을 수도 있어.”
“알리바이를 확실하게 만들면 되지.”
사사건건 우리를 물고 늘어지는 황국신민회와 금송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만큼 친일파라는 이유만으로 해코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 의견만 옳다고 우기면 놈들과 다를 것이 없어 마음 들지 않아도 애써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으려 했다.
하지만 이놈들은 이 땅에 파묻는 것도 오염을 걱정할 만큼 더럽고 추잡한 놈들이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란 놈들이 발의하는 법안은 모두 일본과 재벌을 위한 것뿐이었고, 특기는 이간질과 중상모략으로 국론 분열에 항상 앞장섰다.
또한, 국민의 혈세로 해외 관광을 다니며 구멍파기에 열중했고, 이권 개입엔 빼놓지 않고 발을 담그는 등 나쁜 짓만 골라 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우습고 만만하면 이런 놈들이 판을 치겠어.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눈꼴이 시려 더는 못 보겠다. 개놈들!”
“네 뜻이 그렇다면 알았어. 할아버지와 아빠, KM 정근욱 회장님, 대한당 변병석 대표와 의원들도 모두 날짜에 맞춰 초대할게. 안 그래도 네 걱정으로 매일 안부 전화 걸어오고 계셔.”
“잘됐네. 이렇게라도 일 년에 한 번은 봬야지.”
할아버지와 장인어른, 정근욱 형님은 나의 확실한 우군으로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줬다.
내가 욕을 먹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를 옹호했고, 좋은 일이 생기면 더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그 일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워낙 무심한 성격이라 한 달에 한 번 전화하면 고작인데 반해 그분들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안부 전화를 주셨다.
예쁜 아내들을 데려다 마구 부리는 것도 미안한데 처가에 신세만 지고 있어 미안함이 배가 됐다.
“중국과 일본은 어떻게 할 거야?”
“대충 단물, 쓴물 다 빨아먹었으니 우리도 언론을 동원해 맞불 좀 놔야지.”
“안 그래도 대한 일보와 단군 일보에서 벼르고 있었어. 내가 누워 있는데 자기들이 떠들면 우리 입장이 난처해질까 봐 참고 있었어.
“그럼 떠들라고 해.”
“말하지 않아도 내일 기자회견이 끝나면 가만 안 있을 거야.”
“그 많은 언론 중에 눈치 안 보고 바른말 하는 언론이 이렇게 없어서야... 인수는 언제 끝나?”
“7월 1일. 당분간은 쓰던 건물을 그대로 쓰고, 나진시 본사와 내년 초에, 지사인 서울은 내년 중순에 새 건물로 입주할 거야.”
“방송국은”
“올 12월 10일 개국 예정이야.”
“지원자가 있어?”
“젊은 사람들 위주로 뽑고 모자란 전문 인력은 해외에서 충당하기로 했어. 어느 면에서 그쪽이 훨씬 합리적이니까.”
“씁쓸하지만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달라지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특별한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합리적인 생각과 상식적인 행동을 하자는데 그게 그렇게 힘이 드나? 미치고 환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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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털고 일어난 다음 날 만천하에 나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어 손을 흔드는 촌극을 벌였다.
흥행을 위해 기자회견은 죽은 연리지 앞에서 내외신 기자 50명과 생방송 카메라 10대 그리고 나진시에 머무는 투자단 대표 50명을 모두 초청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한숙의 아이디어는 헬기를 타고 온 기자와 대표들이 분지에 발을 디디는 순간 대박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연리지의 엄청난 위용에 압도된 기자와 대표들은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고, 정신을 차리자 관광객처럼 사진을 찍느라 정신을 쏙 빼놨다.
“이번에 사냥에 성공한 은행나무 암놈의 레드스톤입니다. 에너지양을 측정하겠습니다.”
“삐비빅~”
“59,941몬이 나왔습니다.”
“우와~ 짝짝짝~”
은행나무 암놈의 에너지양에 놀란 기자와 특사들이 감탄과 함께 물개 박수를 쳐댔다.
59,941몬이란 말에 사람들이 놀라는 건 당연한 일로 은행나무 암놈의 레드스톤은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레드스톤 중 가장 높은 에너지양이었다.
에너지양의 높고 낮음이 강함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그건 같은 등급 안에서 허용되는 말로 등급이 다를 경우 에너지양은 절대적 기준이었다.
다시 말해 같은 등급 안에선 스킬과 크기 등 다양한 요인이 전투에 영향을 미쳐 승패를 결정짓기 때문에 에너지양 하나로 1등과 2등을 가릴 순 없었다.
하지만 최하급·하급·중급·엘리트·상급의 등급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절대적 차이로 엘리트 레드몬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중급 레드몬 열 마리가 달려들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수치에 연연하는 것이었다. 숫자는 가장 간단하게 강력함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마법 같은 존재였다.
“삐비빅~”
“60,097... 죄송합니다. 다시 재보겠습니다.”
“삐비빅~”
레드스톤 측정기가 짧은 신호음과 함께 60,097이라 숫자를 다시 나타내자 한숙이 다른 측정기로 교체해 레드스톤을 측정했다.
결과는 여전히 60,097로 기자회견을 맡은 한숙조차 사전에 언질 받은 게 없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분! 보시는 바와 같이 에너지양이 60,097몬으로 나왔습니다. 수놈 은행나무는 A급 엘리트 레드몬이 아니라 상급 레드몬입니다.”
“.......”
한숙의 상급 레드몬 발표에 한동안 조용하던 기자회견장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취재현장으로 바뀌었다.
초청한 기자들 모두 벌떼같이 손을 들어 질문을 던졌고, 친분이 두터운 미국과 러시아, 브라질 대표는 궁금함을 참지 못해 소연과 은비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왔다.
아는 내용이 없기는 아내들도 마찬가지로 어깨만 으쓱할 뿐 특사들이 원하는 답을 주지 못했다.
사냥한 나조차 6만이 넘는 레드스톤이 나올 줄 생각도 못했다.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는 놈을 사냥했지만, 진화가 끝난 것이 아니라서 마지막에 확인한 59,999몬이 나올 것으로 확신했지, 설마 6만이 넘을 줄은 짐작도 못했다.
그 때문에 놈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했다는 말을 아내들에게 안했다. 말해봐야 무리하게 사냥하다 다쳤다고 욕먹을 게 뻔해 시치미를 뚝 뗐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글쎄?”
“글쎄? 마치 모르는 일처럼 말하네. 저기 쓰러져 누워있는 상급 레드몬을 스쳐지나가는 행인이 잡았어? 오빠가 잡은 거 아니야?”
“.......”
“상급 레드몬인줄 알고도 잡은 거지? 내 말이 맞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에너지양이 60,097몬인데 몰랐다고. 지금 장난해?”
“사실은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수놈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해서 그렇게 된 거야. 그전까진 A급이 확실했어.”
“그 말을 믿으라고?”
“진짜야.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갑자기 상급으로 진화하는 바람에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아주 식겁했어.”
“아~ 그래서 다쳤구나. 무리하게 사냥하다가. 그렇지?”
“그.그.그렇게 되나?”
“흥!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려고 그랬지?”
“음...”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아서 참는 줄 알아. 이따 집에 가서 봐. 그냥 놔두면 내가 성을 간다. 알았어?”
“.......”
은비의 섬뜩한 협박에 한기가 든 것처럼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그건 전주에 불과했다.
소연과 한숙, 서인, 상아, 아영의 눈이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들은 한결같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놈의 자식 그냥 뒤지지 상급으로 진화하고 지랄이야. 젠장! 집에 가면 죽었네.」
“많이 당황하신 것 같은데, 상급 레드몬인지 알고 사냥하신 겁니까?”
“미래 레드몬 사냥팀도 다른 사냥팀과 마찬가지로 레드몬의 에너지양을 미리 측정할 기술은 없습니다. 크기와 형태 등을 보고 대략적인 등급을 유추한 다음 사냥에 나섭니다.”
“지금 그 말은 상급 레드몬인지 모르고 사냥했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소문에 박지홍 회장님 혼자 사냥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상급 레드몬과 상급 직전인 A급 엘리트 레드몬 두 마리를 상급 피지컬리스트 혼자 사냥하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가능하니까 지금 이 자리에 상급 레드몬과 A급 엘리트 레드몬의 사체가 함께 있는 게 아닐까요?”
“단장님도 익히 들으신 내용으로 상급 능력자가 한국의 박지홍님과 미국의 마샤 타이엘라 두 분만 있는 건 아니라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실력을 드러내지 않은 상급 능력자들이 최소 다섯 명은 더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래서요?“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다른 상급 능력자도 박지홍 회장님처럼 A급 엘리트 레드몬을 혼자 사냥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실력 차이를 물어본 거라면 동급이라도 실력 차이는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동급이라고 실력이 같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저희 회장님이 가장 뛰어난 실력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세상엔 숨은 고수가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물론 그렇겠죠. 그런데도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린 건 박지홍 회장님이 상급이 아니라 최상급 능력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상급 피지컬리스트가 A급 엘리트 레드몬을 회장님처럼 손쉽게 사냥한다면 이처럼 많은 나라가 나진시에 도움을 청하러 오진 않았을 겁니다. 이 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군 일보 조진우 기자의 질문에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내가 최상급 능력자일지도 모른다는 조진우 기자의 말은 이전부터 솔솔 나오던 이야기라 특별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같은 질문도 때와 장소에 따라 무게감이 다르듯 상급 레드몬 한 마리와 A급 엘리트 레드몬 한 마리를 동시에 잡아낸 상태라 질문이 가진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저희 도움을 바라고 오신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없죠. 조진우 기자님 말씀처럼 자국에 상급 능력자가 있는데 도움을 받으러 왔다면 자국 능력자를 보호하려는 의도일 것이고, 그런 능력자가 없다면 순수하게 도움을 받기 위해 왔겠죠.”
“그야 그렇겠죠, 제가 정말 알고 싶은 건 그런 내용이 아니라 박지홍 회장님이 소문대로 최상급 능력자가 맞느냐는 것입니다.”
“그건 조진우 기자님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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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