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3 연리지(連理枝) =========================================================================
193.
혈기탄으로 소모한 포스를 재빨리 보충하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창을 집어 들었다.
포스와 전류를 가득 담긴 창을 던지려는 순간 수천 장의 은행잎이 폭풍처럼 날아들었다.
창을 풍차처럼 돌려 은행잎을 튕겨내며 뒤로 물러났다. 놈과의 거리측정에 실패해 은행잎이 날아들었다는 생각에 200m나 물러났다.
하지만 은행잎이 끊임없어 날아왔다. 계속 물러나 1.5km나 떨어졌지만, 은행잎 공격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난번 1km는 영악한 놈이 날 속이기 위해 장난을 친 것 같았다. 식물이라고 얕봤다가 곳곳에서 낭패를 당하고 있었다.
놈의 견제에 밀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이 연리지의 잔뿌리가 쭉쭉 늘어나 주변에 타다 남은 사체와 나무뿌리를 칭칭 감아 에너지를 빨아먹었다.
이것도 역시 판단 착오로 잔뿌리는 500m를 벗어나 1km까지 뻗어 나와 닥치는 대로 사체와 죽은 식물들을 휘감았다.
“쾅~ 쾅~”
냉기탄이 날아들자 보호막이 쳐지며 은행이 뚝 끊겼다. 보호막이 있어도 놈이 원하는 물체는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는지 잘도 은행잎을 쏘아댔다.
그러다 보호막이 얼어붙자 은행잎이 보호막을 통과하지 못해 공격이 멈췄다. 창을 꽂아둔 언덕으로 달려가 나머지 한 자루를 마저 쥐고 놈을 향해 달렸다.
다가오는 잔뿌리를 잘라내며 500m까지 다가가 창을 던지고 곧바로 살기를 투사했다.
A급 엘리트 레드몬 은행나무 암놈
전투력 : 9997
지능 : 115
에너지양 : 59,941몬
스킬 : 알 수 없음
A급 엘리트 레드몬 은행나무 수놈
전투력 : 9999
지능 : 115
에너지양 : 59,999몬
스킬 : 알 수 없음
우려한 대로 전투력과 에너지양이 빠르고 치솟고 있었다. 이 상태로 전투가 지속되면 놈들이 언제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할지 알 수 없었다.
냉기탄으로 은행잎을 쏠 수 없게 보호막을 얼리며 보호막 밖으로 삐져나온 잔뿌리부터 공격했다.
둘 다 치료 능력을 갖고 있어 에너지 공급원을 차단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었다. 잔뿌리를 잘라내기 위해 다가서자 팔뚝만 한 굵기의 잔뿌리들이 사방에서 달려들며 몸을 감싸려 했다.
살아 있는 먹잇감에 환장한 잔뿌리가 꿈틀대며 달려드는 모습은 흡사 뱀 떼의 습격을 보는 것 같았다.
괴기스러운 모습과 달리 강력한 전류가 흐르는 글라디우스에 맞자 맥없이 잘려나가며 까맣게 타들어가 재가 되어 부서졌다.
놈들의 에너지 공급원이 잔뿌리를 모두 잘라내고고 마지막 남은 창을 보호막을 향해 힘껏 던졌다.
“콰앙~”
보호막이 뚫리자 글라디우스를 휘둘러 회오리를 만들며 은행잎을 차단하며 암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단단한 나무껍질과 2m가 넘는 파란 예기와 부딪치자 불꽃이 튀며 신경을 자극하는 철판 긁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끼익~”
편두통을 유발하는 철단 긁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글라디우스에 포스를 집중하자 파란 예기가 3m로 자라나며 껍질을 잘라냈다.
손목까지 글라디우스가 박혀들자 번개주얼에 포스를 집중했다. 강력한 전류가 흘러나와 암놈의 몸을 타고 흐르자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수놈의 몸이 밝게 빛나자 맞잡은 손을 타고 흐르던 전류가 막혔고, 암놈의 상처도 빠르게 치료되기 시작했다.
“슉슉슉슉슉~~~”
수놈이 발사한 은행잎이 독침처럼 날아왔다. 암놈의 몸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냉기탄을 발사했다.
“쩌저저저정~”
꽁꽁 얼어붙은 암놈을 뒤로하고 은행잎을 쏘아내는 수놈을 향해 뛰어갔다. 순간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위기를 느낀 놈이 사력을 다해 피톤치드를 뿜어내자 농도가 두 배로 짙어지며 정화수의 효과가 급속히 사그라졌다.
아찔한 느낌에 입술을 질끈 깨물자 살점이 왕창 떨어져 나가며 입안에 피가 가득 고였다.
흐르는 피를 꿀꺽 삼키자 그제야 간신히 정신이 돌아왔다. 수놈에서 멀어지며 정화수를 들이켰다.
“윽~”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손이 멈칫했고, 그 틈을 파고든 은행잎이 왼쪽 허벅지와 옆구리에 박혀 들었다.
너무 급한 나머지 고통도 느끼지 못하다가 정화수를 마시고 나자 그제야 격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판사판 공사판이야. 내가 죽든 네놈들이 둘 중의 하나는 오늘 죽는다.」
겁을 먹고 물러나면 놈들은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할 것이다. 상처가 컸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었다.
글라디우스로 회오리를 만들어 은행잎을 막아내며 혈기탄을 쏘아냈다. 번개처럼 날아든 혈기탄 세 발이 스며들자 폭음이 들렸다.
“펑펑펑!”
혈기탄이 터지는 충격에 공격이 뚝 끊기자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재빨리 퉁겨낸 참격이 단단한 수놈의 껍질을 때렸다.
“쾅쾅쾅!”
부상으로 겨우 세 발밖에 날리지 못했지만, 밑동에 큰 구멍이 뚫리며 수액이 철철 흘러냈다.
상처 난 부위에 글라디우스를 깊숙이 찔러 넣고 포스를 폭발시켜 강력한 전류를 뿜어냈다.
“찌지지지징~~~”
수놈의 고통의 비명을 질러대는지 커다란 나무가 부르르 떨리며 은행잎이 마구 떨어져 내렸다.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는 생각에 쾌재를 부를 찰나에 반쯤 녹아내린 암놈이 은행잎을 쏘아냈다.
포스도 떨어지고 부상도 심해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남은 포스를 쥐어짜 날아드는 은행잎을 향해 글라디우스를 빙빙 돌려 회오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아내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과감한 애정표현도, 사랑한다는 말도, 그 흔한 징표조차 해준 것이 없다는 것에 가슴이 메어왔다.
더더군다나 짧은작별의 인사조차 남기지 못하고 훌쩍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소연아! 은비야! 한숙아! 서인아! 상아야! 아영아! 정말 미안하다. 해줄 게 이것밖에 없다. 놈들은 내가 데려갈게. 잘 살아. 그동안... 고마웠어.」
왼손을 나무속에 깊숙이 박고 흡기를 사용했다. 상급을 코앞에 둔 놈이라 그런지 흡기가 통하지 않았다.
살덩어리나 다름없는 놈의 나무를 한 움큼 뜯어내 흡기를 사용했다. 떨어져 나간 부위라 그런지 흡기가 통했다.
살길이 생기자 부서진 부위에서 나뭇조각을 잡아 뜯어 생명력을 갈취했다. A급 엘리트 레드몬이라 한 움큼씩 뜯어낸 조각만으로도 에너지양이 제법 쏠쏠히 모였다.
열 번쯤 뜯어내자 혈기탄 한 발을 만들어낼 포스가 모였다. 손바닥에서 떠오른 빨간 구슬이 번개같이 날아가 암놈의 몸에 스며들었다.
“펑!”
반쯤 얼어있는 상태에서 혈기탄이 스며들어 폭발하자 동물의 혈관과 같은 수액관이 터지며 공격이 뚝 끊겼다.
마지막 기회를 잡자 상처 난 부위를 글라디우스를 마구 후벼 팠다. 머리통만한 조각들을 떼어내 흡기하자 금세 포스가 차올랐다.
“지지지직~~~”
힘을 찾자 전류로 놈들을 한꺼번에 지졌다. 맹렬히 휘몰아치는 전류에 은행잎이 우수 떨어지며 앙상한 가지가 드러났다.
정말 끝이라고 느낀 순간 수놈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광대한 에너지가 놈을 향해 모여들며 터지고 부서진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수놈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는 모습에 황당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쌍! 개 같은... 」
육두문자를 마구 쏟아내며 수놈의 몸을 사정없이 난도질하며 전류를 쏟아 부었다.
진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상처가 매우 심했고,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해 진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에 전력을 다해 놈의 밑동을 내리쳤다. 잘라낸 나뭇조각에서 에너지를 채우며 정신없이 칼을 휘둘렀다.
30분쯤 미친놈처럼 칼춤을 추자 26m나 되는 밑동 중 3분지 2가 잘려나가며 놈의 몸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허벅지와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지와 신발을 흠뻑 적신 것도 모자라 바닥까지 흘러내리며 피 웅덩이를 만들었다.
평소 같으면 과다 출혈로 쓰러졌을 과중한 부상이었지만, 지금은 내 뒤에 아내들이 있다는 생각에 반쯤 미처 아픈지도 몰랐다.
마지막 남은 정화수를 들이키고 사력을 다해 밑동을 내리쳤다. 78m나 되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천천히 옆으로 기울더니 굉음과 함께 넘어갔다.
“쿠웅~”
자욱한 먼지가 일며 상급 레드몬 은행나무의 숨이 끊어졌다. 하늘이 노랗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암놈이 아직 실낱같은 숨이 붙어 있었다. 피를 뚝뚝 흘리며 어기적거리며 놈에게 다가갔다.
아까 뚫어 놓은 구멍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힘겹게 맞춰 글라디우스를 밀어 넣었다.
“으악~”
기합과 함께 바닥을 드러낸 포스를 쥐어짜 전류를 뿜어냈다. 눈부신 전류가 가지를 타고 돌자 크리스마스트리는 보는 것 같았다. 암놈도 붉은 밤을 휘황찬란하게 빛내며 질긴 숨이 끊어졌다.
“하아~ 하아~ 하아~”
힘겹게 두 놈이 손을 맞잡은 가지로 다가갔다. 지름이 3m가 넘는 단단한 가지가 암놈과 수놈을 연결해주는 통로였다.
수놈이 쓰러지며 떨어져 나간 통로에 은행을 닮은 노란 레드주얼 두 개가 숨어 있었다.
피 묻은 손으로 나무를 파내고 레드주얼을 손에 쥐었다. 흡기를 사용해 간신히 몸 안에 녀석들을 품는 순간 하늘이 노래지며 땅이 빙빙 돌았다.
“털썩!”
[오빠! 오빠! 정신 차리세. 오빠! 오빠~]
“사.사.사.상..”
상아가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입술만 달싹거릴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저 멀리 아내들이 뛰어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릴 힘도,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해 줄 힘도 없었다.
“으앙~”
“안 돼~
누군가의 커다란 울음소리를 끝으로 아무 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죽는 건가? 생각보다 아프지 않은데. 흐흐흐~」
소리가 끊기는 순간 생각도 끊겼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