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91 연리지(連理枝) =========================================================================
191.
연리지를 향해 기감을 집중했다. 단단한 방어막이 쳐진 것처럼 기(氣)가 뚫고 들어가지 못한 채 튕겨 나왔다.
출발 전 산에서 막힘없이 놈을 기감할 수 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존재를 느끼고 경계하는 게 분명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갔다가 철저히 준비한 다음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오는 게 나을 것 같아.”
“최소한 놈의 전투력과 반응은 알아보고 가야지 그냥 갈 순 없어.”
“대책을 세우고 해도 되잖아.”
“그냥 돌아가면 놈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대책을 어떻게 세워?”
“그건...”
“두렵고 무섭다고 도망치기 시작하면 영원히 달아나야 해. 너도 알잖아.”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상급 피지컬리스트라 겁이 없을 줄 알지. 그들이 보기엔 다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난 겁도 많고, 싫어하는 것도 많고, 잃을 것도 많아 항상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 내색하지 않고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려 노력해서 그걸 모를 뿐이지.”
링에 올라가는 권투선수, 종합격투기선수들은 파이팅이 넘쳐 종종 흥분한 모습을 TV로 볼 수 있었다.
우린 그걸 보고 격투기 선수들은 두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려움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더욱 다그치는 것이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누구나 두려움을 안고 산다. 작은 벌레도 말 못하는 짐승도 두려움을 느꼈다.
만물의 영장이라 떠벌리는 사람도 벌레나 짐승과 같이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번에도 이겨낼 거야.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어. 지금 당장은 피해가 없지만, 놈을 내버려두면 언젠간 나진시가 위험해질 거야. 그다음은 함경북도 전체 그리고 한반도 전체가 위험에 빠지겠지.”
“.......”
“난 다른 사람이 피해 보는 건 관심도 없어. 놈 때문에 우리가 피땀 흘려 일군 나진시가 망가지고,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다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을 뿐이야.”
소연이 내가 말한 내용을 몰라서 돌아가자고 한 게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놈의 능력에 내가 다칠까봐 그러는 것이었다.
“이리와.”
소연을 품에 안고 부드러운 입술에 입술을 포개자 찐한 박하향이 풍겨왔다. 달콤한 입술을 탐닉하며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자 마음이 안정되는지 불안정하던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빠! 호흡을 멈추고 다가가는 건 어떨까요?”
“맞다. 물속에서 45분이나 숨을 참았잖아. 숨을 참고 방어복의 미세한 틈을 막으면 피부로 스며드는 피톤치드도 차단할 수 있을 거야.”
아영과 은비가 앞다투어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A급 엘리트 레드몬이나 되는 연리지의 피톤치드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었다.
까치살무사와 싸울 때도 숨은 멈춘 채 지금 입고 있는 레드타이거의 방어복을 입은 채 독 안개에 맞서 싸웠다.
결과는 독 안개가 워낙 미세해 순식간에 방어복 안으로 스며들어 중독 증상을 일으켰다.
더구나 얼굴은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가 전부라 호흡을 차단해도 피부로 독이 스며들어 막을 방도가 없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아내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목과 얼굴 부위, 신발과 팔목에도 알루미늄 테이프를 칭칭 동여 감았다.
이렇게 해도 효과가 없다는 걸 알지만, 플라세보(Placebo)처럼 아내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는 얻을 수 있어 원하는 대로 따라줬다.
“상태만 보고 올 거니까 얌전이들 있어.”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어?”
“혼자보다는 여럿이 같이 가는 게 연리지의 주의력을 분산하지 않을까요?”
“금방 갔다 올게.”
품에 매달리는 아내들을 억지로 떼어놓고 정화수를 마신 다음 준비해온 2m 길이의 투창 두 자루를 손에 쥐고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블링크를 활성화해 순발력을 최대로 끌어올리자 아름드리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이 뒤로 휙휙 지나갔다.
“쑤우우우웅~~~”
바람처럼 다가가 포스와 전류를 가득 담긴 창을 있는 힘껏 던지자 강력한 소닉붐을 일으키며 연리지를 향해 날아갔다.
“쿠앙~”
연리지와 창이 부딪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얀 전류가 보호막을 타고 거미줄처럼 뻗어 나갔다.
A급 엘리트 레드몬 연리지
전투력 : 9985
지능 : 115
에너지양 : 59,857
스킬 : 알 수 없음
A급 엘리트 레드몬 연리지
전투력 : 9996
지능 : 115
에너지양 : 59,963
스킬 : 알 수 없음
「젠장! 에너지양이 상급 레드몬 바로 직전이네.」
창이 연리지의 보호막을 흔들어 놓는 사이 살기를 투사해 알아낸 놈의 전투력과 에너지양은 상급 직전이었다.
에너지 6만은 상급과 엘리트 레드몬의 경계로 6만이 넘어가면 지상 최강의 괴물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한다는 뜻이었다.
상급 레드몬과 엘리트 레드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 놈들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는 순간 나진시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 나아가 동아시아 대륙에 대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었다.
지금 내 실력으로 상급 레드몬을 잡는다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로 대한민국 능력자가 모두 모여 도와준다면 모를까 혼자서는 도망치기도 버거운 수준이었다.
“쑤쑤쑤쑤쑹~~~”
놈들이 가지를 흔들자 파란 은행잎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 수가 족히 10,000개는 넘어 보였다.
창에 포스를 투입해 바람개비처럼 돌리자 파란 방패가 되어 은행잎이 튕겨져 나갔다.
“탕탕탕탕탕~~~”
총알이 날아와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왼손을 들어 연속으로 냉기탄을 쏘아냈다.
“쩌저정~ 쩌저정~”
번개처럼 날아든 냉기탄이 투명한 보호막에 때리자 둥근 보호막과 바닥을 삽시간에 얼려버렸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형 레드몬이라 원거리에서 공격하면 쉽게 처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놈은 강력한 보호막과 무색무취의 독 피톤치드 그리고 나뭇잎을 사용한 원거리 공격 능력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하긴 이런 능력이 없다면 예전에 다른 레드몬의 먹이가 되겠지.」
놈의 나뭇잎 공격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처음 공격 지점으로 잡아놓은 낮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거리가 대략 1km로 나뭇잎의 무게 탓인지 이곳까진 날아오지 못했다. 대신 피톤치드의 농도가 짙어지며 아내들이 맡은 상쾌한 향기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몽롱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재빨리 정화수를 삼킨 후 창을 집어 던졌다. 1,000m를 날아간 창이 방어막에 꽂히는 순간 방전현상이 일어나며 방어막에 구멍이 뚫렸다.
방어막이 깨진 찰나 창의 뒤를 바짝 뒤쫓아 간 냉기탄이 왼쪽에 있는 암컷의 몸에 틀어박혀다.
“쩌저정~”
순간 영하 150도까지 온도가 떨어지며 커다란 나무가 얼음에 뒤덮였다. 연리지는 아주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정직하게 날아든 냉기탄도 막아내지 못했다.
암놈의 몸을 얼음덩이로 만든 냉기탄이 붙어 있는 수놈으로 전이되자 수놈의 몸이 환하게 빛나며 냉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근처에 있던 레드몬들이 놈을 향해 빠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혼이 빠진 레드몬들이 근처에 다가서자 잔뿌리들이 땅을 뚫고 올라왔다.
잔뿌리들이 누에고치처럼 레드몬의 몸을 감싸고 체액과 피를 빨아먹자 단단한 육체가 순식간에 푸석푸석한 미라로 변했다.
레드몬의 체액과 피를 빨아 먹은 수놈의 몸이 더욱 환하게 빛나자 암놈의 몸을 감쌌던 얼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와! 정말 별거 별거 다 하네.”
“그러게요. 보호막에 피톤치드, 나뭇잎 공격, 생명력 갈취, 치료까지 못 하는 게 없네요.”
“어떻게 상대할 거야?”
소연의 질문에 놈을 어떻게 상대할지 머리를 쥐어짰다. 다양한 스킬을 갖추고 있는 놈이라 다가서는 건 매우 위험했다.
움직일 수 없는 상대라 원거리에서 힘을 빼놓고 결정타를 먹이는 게 가장 무난한 전법이었다.
이 작전이 실효를 거두려면 놈의 에너지 공급원부터 말살해야 했다. 에너지 공급원을 놔두고 놈을 공략하는 건 시간 낭비이자 놈을 상급으로 이끄는 길이었다.
“주변을 싹 밀어버린 다음 놈을 공격하자. 먹잇감이 있는 한 놈을 잡는 건 요원한 일이야.”
“그럼 폭탄을 이용해 주변을 밀어버리면 되겠네?”
“KA-50 호컴 헬기 인수했지?”
“현재 조종사 교육 중이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어.”
“오늘 중으로 모두 불러들여. 무장은 네이팜탄으로 하고.”
“알았어.”
지난달 10일 러시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통일신라 금동보살입상(金銅普薩立像)과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을 선물로 보내왔다.
반환한 문화재가 고작 두 점이라 미안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워낙 많은 무기를 수입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지 KA-50 호컴 헬기 5대를 함께 주기로 했다.
무료로 준 5대에 15대를 합쳐 20대를 인수하고 지난달 15일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종사와 정비사를 파견해 교육 중이었다.
“늦어도 이틀 안에 분지 안에 있는 숲을 다 태워야 해. 네이팜탄을 최대한 많이 가져오라고 해.”
“알았어.”
“아영아! 사흘 후 사용할 수 있게 정화수 좀 만들어줘. 이번에 만든 것과 같은 강력한 것으로.”
“네, 오빠!”
“점심 먹고 분지 주변을 청소할 거니까 아영이 빼고 모두 늦지 않게 준비해.”
“너무 급하게 서두르는 거 아니야? 숲을 태우면서 며칠 더 네이팜탄과 폭탄으로 연리지를 공격하면 좀 더 수월하게 잡을 수 있잖아.”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두 놈 다 상급 직전이야.”
“에너지양이 육 만에 근접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상급 레드몬이 되는 건 아니잖아.”
“물론 그렇지. 한 달이 걸릴지, 일 년이 걸릴지, 십 년이 걸릴지 아니면 평생 저 상태로 늙어 죽을지 알 수 없지.”
“그런데 왜 서둘러?”
“그동안은 적수가 없어 성장이 느렸거나 정체된 상황일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내가 나타나며 놈들에게 적수가 생겼어.”
“연리지가 너를 적수로 보고 빨리 성장한다는 말이야?”
“그럴 가능성이 크지. 놈들에게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야. 그러나 이제 위협을 느끼며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알 수 없게 됐어. 놈들이 상급 레드몬으로 진화하면 나진시는 끝장이야. 그전에 승부를 봐야 해.”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