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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90화 (190/505)

00190  연리지(連理枝)  =========================================================================

190.

산 정상에서 바라본 분지는 좌우 폭이 4km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연리지만 없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 집 짓고 살면 끝내주겠다.”

“집 짓고 살기엔 레드몬이 너무 많아. 자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물려 죽기 딱 좋겠어.”

“레드몬이 그렇게 많아?”

“한 마디로 버글버글해. 한 지역에 이렇게 레드몬이 많이 몰려 있는 건 레드마우스 빼곤 처음 보는 거야.”

“먹고 살기가 좋아서 그런가?”

“먹이도 풍부하고 병풍처럼 둘러친 산이 바람을 막아줘 겨울에도 따뜻해서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좀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

“그게 뭔데?”

“족제비와 담비가 토끼와 쥐를 소 닭 보듯이 무심하게 보고 그냥 지나쳐가. 이런 일은 보다보다 처음이네.”

“배가 불러서 그런가?”

“족제비와 담비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먹잇감인 토끼와 쥐는 겁을 먹고 도망가는 게 맞지 않을까?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다면.”

“아! 그렇지.”

아름드리나무가 숲을 이루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분지 중앙엔 A급 엘리트 레드몬 연리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높이 78m, 밑동 둘레 26m인 은행나무 두 그루는 가지와 입이 무성해 것만 봐도 최소 1,000년은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두산 폭발에도 살아남은 녀석들은 두 그루가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엉켜있는 형태로 밑동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한 그루로 보일 만큼 밀접하게 붙어있었다.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은행나무는 공룡시대인 쥐라기 이전부터 지구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식물로 북미는 700만 년 전, 유럽은 250만 년 전에 멸종됐고, 극동아시아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다.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며 수많은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도 은행나무가 의연히 살아남은 이유는 강력한 환경 적응력 때문이었다.

극단적으로 춥거나 덥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살아갈 수 있고, 아무리 오래된 나무라도 줄기 밑에서 새싹이 돋아나 생명을 이어갔다.

또한, 잎에 플라보노이드(Flavonoid), 테르페노이드(Terpenoid), 비로바라이드(Bilobalide) 등 항균성 성분들이 가득해 병충해가 거의 없고, 열매는 외피에 함유된 헵탄산(Heptanoic acid)의 심한 악취와 긴코릭산(Ginkgolic acid) 등이 피부염을 일으켜 사람 이외에 아무도 먹지 못했다.

“은영씨는 풍산개와 이곳에 남아 있으세요.”

“저도 미래 레드몬 공대인데 같이 가야죠.”

“레드몬들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풍산개는 데려가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 누군가 한 명 남아 녀석들을 돌봐야 합니다.”

“그래도...”

“주위를 보세요. 남으라고 한다고 남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알았어요.”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오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내들의 모습에 조은영이 어쩔 수 없이 풍산개들을 지키기 위해 산 정상에 남았다.

“저기 앞에 보이는 언덕까지 다가가 공격할 거니까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려!”

산등성이를 타고 조용히 분지로 내려갔다. 30년 이상 사람의 발길이 끊긴 울창한 숲은 태곳적 신비를 닮고 있는 듯 이름 모를 야생화가 활짝 피어 진한 향기를 피워냈고, 산새마저 지저귀며 평화롭지만,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산에서 내려와 한발 한발 연리지를 향해 걸어갈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며 머리까지 맑아졌다.

살짝 의심이 갔지만, 스킬 저항력이 발동하지 않아 맑은 공기와 풍부한 산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거로 생각했다.

더구나 마음이 차분해지며 긴장감이 풀어지자 평소 주변을 꼼꼼하게 살피던 주의력마저 사라졌다.

500m쯤 걸어가자 만사가 귀찮고 무기력증이 몰려왔다. 이렇게 고생하며 레드몬을 잡아야 하는 건지 깊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다 때려치우고 냇가에 앉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내들과 수다나 떨며 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 순간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강렬한 통증과 함께 후두부를 강타하는 강한 충격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300m 앞에 집채만 한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뒤엉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언덕을 향해 500m쯤 걸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놈의 코앞까지 다가간 상태였다.

등에 식은땀이 솟아나며 온몸이 떨려왔다. 다행히 스킬 저항력이 발동해 죽음을 피했지, 그렇지 못했다면 얌전히 놈에게 다가가 죽음을 느끼지도 못한 채 시체가 되어 뒹굴었을 것이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며 아내들을 바라보자 인형처럼 몽롱한 상태로 연리지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리와 팔이 흐느적거리는 게 인형의 마디를 실로 묶어 사람이 위에서 그 실을 조정하는 마리오네트를 보는 것 같았다.

“은비야! 소연아! 정신 차려! 상아야! 아영아! 서인아! 정신 차려!”

소연과 은비, 서인, 상아, 아영을 차례로 흔들었지만,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시체처럼 흐느적거리며 연리지를 향해 걸어갔다.

“으악~~~”

힘을 모아 포효를 내질렀다. 하지만 포효로도 아내들을 깨울 수 없는지 여전히 몽롱한 상태로 연리지를 향해 걸어가려 했다.

“으으~”

또다시 몸이 나른해지며 정신이 몽롱해지려 했다. 입술을 질끈 깨물자 피가 솟구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영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화수를 들이키자 그제야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내들을 깨울 시간이 없어 손을 포개지고 정신없이 달렸다.

바닥에 질질 끌 듯 출발지점인 산등성이 아래에 도착해 2단계 정화수를 먹이고 포스로 가슴을 마사지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

“여기 어디야?”

겨우 정신을 차린 소연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디 인지 물어왔다. 의아한 표정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은비야! 정신이 들어?”

“이상하다. 나 집에서 오빠랑 점심 먹고 있었는데, 언제 여기 온 거지?”

“난 오빠랑 둘이서 바다낚시 하고 있었는데...”

“저는 잔디밭에 누워 오빠랑 뽀뽀하고 있었어요. 기분 정말 좋았는데... 대체 여긴 어디에요?”

모두 연리지의 알 수 없는 공격에 정신을 빼앗겨 꿈을 꾸었는지 횡설수설 꿈 얘기를 늘어났다.

“정신 차려! 우리는 연리지를 잡으러왔어.”

“아! 맞다.”

“분명 저 앞 언덕까지 간다고 했는데, 어째가 다시 제자리죠?”

“우리는 놈의 코앞까지 갔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거야.”

“정말?”

“응.”

“너도 정신을 잃었어?”

“300m 앞까지 가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어.”

“아!”

믿었던 나마저 정신을 잃자 충격이 매우 컸는지 소연이 놀란 눈으로 나와 연리지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휴우~~~”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포스를 주입하자 놀란 가슴이 진정되는지 그제야 숨을 크게 내셨다.

“일단 산 위로 올라가자.”

조은영이 기다리고 있는 산으로 올라가자 연리지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났는지 아내들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과학자들이 왜 곤충형 레드몬과 식물형 레드몬을 출현을 걱정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곤충형 레드몬이 출현할 경우 엄청난 번식력과 파상적인 공격성향을 걱정한 것이고, 식물형 레드몬은 어렵게 변이에 성공한 만큼 상상을 초월할 기이한 능력을 갖출 수도 있다는 것에 긴장했던 것이었다.

“연리지까지 무작정 걸어간 거야?”

“응.”

“몽유병 환자처럼 걸어가면서 꿈을 꾸고 있었던 거네?”

“꿈인지 환각인지 몰라도 정신을 빼앗겼다고 볼 수 있지.

“너도 우리처럼 그랬어?”

“난 꿈을 꾸진 않았어. 그냥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할까? 만사가 귀찮고 쉬고 싶단 생각만 들었어.”

“대체 그게 뭘까?”

“내가 처음 느낀 건 아영이의 정화 스킬처럼 몸을 편안해졌다는 했다는 거야. 그 이후엔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졌어.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졌어. 그때서야 저항력이 발동해 놈의 기이한 능력에 대항하기 시작했어.”

“난 향기를 맡았다고 느낀 게 전부야. 그다음부턴 너와 함께 해변을 걷는 즐거운 꿈을 꿨어.”

소연을 비롯해 아내들 모두 산등성이를 내려와 언덕을 향해 출발한 후 상쾌한 향기와 함께 꿈속에 빠져들었다.

“책에서 봤는데 식물은 피톤치드라는 방향성 물질이 내뿜는데요. 피톤치드를 이용해 벌레를 물리친다고 했는데, 혹시 그게 아닐까요?”

피톤치드(Phytoncide)는 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내뿜는 물질로 살균, 살충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이 피톤치드를 호흡하면 피부와 마음이 맑아져 심신의 안정을 가져오며 건강에 매우 유익해 삼림욕에 주로 사용하는 물질이었다.

“피톤치드를 조금 흡입하면 머리가 상쾌하고 심심이 안정되지만, 일정량 이상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게 아닐까요?”

연리지가 뿜어낸 요상한 향기가 피톤치드가 맞든 아니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한 건 연리지가 이제껏 상대한 레드몬 중 가장 특이하고 위험한 레드몬이라는 것이었다.

“상아가 생각한 게 맞는 것 같아. 처음부터 독이나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물질이었다면 네가 바로 감지했을 거 아니야?”

“독인데 독이 아니라... 후유~”

“정말 다행이다. 만약 너까지 연리지의 피톤치드에 당했다면...”

긴장이 풀리자 겁이 나는지 아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불과 30분 전 우리는 죽음의 사신 앞에 길게 목을 내밀고 있다 간신히 빠져나온 꼴이었다.

“모두 자리에 앉아 명상으로 긴장을 풀어.”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때가 지나친 긴장으로 몸이 굳어지는 것이었다. 이럴 경우 실력의 10%도 발휘하지 못하고 상대의 먹이가 될 수 있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 먼저 나 자신부터 이겨내야 했다. 그래야 실력을 120% 발휘해 후회 없이 싸울 수 있었다.

아내들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동안 저 멀리 우뚝 선 연리지를 바라보며 피톤치드에서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계산했다.

다행히 아영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화수가 피톤치드에 효과가 있었다. 아내들을 끌고 나오는 1.5km 동안 버텨준 걸 생각하면 적어도 2~3분은 피톤치드를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놈의 공격 무기를 아는 만큼 아까처럼 넋 놓고 당할 일도 없었다. 이걸 대충 계산하면 정화수 한 병에 3~4분, 4병이면 15분은 버틸 수 있었다.

문제는 놈이 피톤치드 스킬만 사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스킬을 숨기고 있을지 그걸 알 수 없다는 게 고민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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