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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진화의 시작-189화 (18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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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연리지(連理枝)

1993년 6월 1일, 선봉군 일대를 빙 둘러싸는 방어벽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작년 11월부터 시작한 공사는 상아가 기부한 문스톤 덕분에 공사 기간을 두 달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방어벽 안쪽에 숨어 있는 레드몬은 풍산개들을 이용해 소탕했다.

태어난 지 1년이 넘어가며 완벽한 성견으로 자란 풍산개는 후각이 예민해 나와 상아가 없어도 레드몬을 귀신같이 찾아냈고, 전투력이 1200에 육박해 최하급과 하급 레드몬은 손쉽게 잡아냈다.

조직력을 이용한 무리 사냥,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치고 빠지기, 탁월한 반응력을 이용한 약점 공격,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충성심 그리고 하울링(Howling)을 통한 대상의 공격력 약화 등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 중이었다.

이 때문에 방어벽 안쪽은 내가 일일이 따라다니지 않고 조은영과 함께 녀석들을 보내 레드몬을 소탕했고, 저택 경비도 경호대와 함께 운용하며 대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었다.

“상아야! 괜찮아?”

“네. 괜찮아요.”

“휴~ 괜한 짓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요. 레드몬이 어디 사는지 지도에 표시해 놓으면 모두가 안전할 수 있잖아요. 꼭 필요한 일이에요.”

“그렇긴 한데... 네가 너무 힘들잖아.”

“저만 힘든 건 아니잖아요. 오빠도 힘들고, 아영이도 힘들잖아요.”

“내가 하는 일이라곤 네가 불러주는 대로 레드몬이 어디 있는지 지도에 기재하는 것밖에 없어. 넌 날아가는 헬기에서 탐지 스킬을 쓰는 바람에 머리가 아파 땀을 뻘뻘 흘리는데,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미뤄왔던 레드몬 지도 만들기에 착수한 건 일주일 전이였다. 헬기를 타고 주변을 돌며 레드몬이 어디 사는지, 어떤 레드몬인지, 등급은 어떻게 되는지, 일일이 지도에 표시하는 일이었다.

이는 레드몬이 사는 지역과 이동 경로를 파악해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차후 자료가 쌓이면 레드몬의 습성과 생태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시작할 땐 하루 이틀이면 끝날 아주 간단한 일로 생각했다. 까치주얼을 사용하면 탐지 거리가 두 배로 늘어나 한 번에 반경 15km를 탐색할 수 있어 상아도 식은 죽 먹기로 여겼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자 변수가 너무 많았다. 돌아다니는 레드몬도 많고, 땅이나 바위에 숨은 놈들도 많아 다음날 지도가 완성된 지역을 다시 돌면 맞는 게 절반도 안 돼 처음부터 일을 다시 해야 했다.

더구나 헬기를 이용한 작업이라 쏟아져 들어오는 데이터양이 너무 많아 상아의 정신적 피로가 극심했다.

이 때문에 시작한지 3일 만에 상아가 지쳐 쓰러지며 이틀간 휴식을 취하는 등 복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 만에 동쪽으로 두만강, 북쪽으론 은덕·아오지, 남쪽으론 삼해리까지 반경 30km에 달하는 넓은 지역을 지도로 만들 수 있었다.

“오늘은 회령까지 직선으로 갔다 돌아오는 것만 하자.”

“더 둘러봐도 돼요.”

“오늘은 거기까지만 하고 내일과 모레는 쉬자. 급한 일도 아닌데 무리할 필요 없어.”

“알았어요.”

나와 상아, 아영을 태운 MI-26 헤일로 헬기가 사뿐히 날아올라 54km 떨어진 회령으로 곧장 날아갔다.

날아가는 속도가 빠를수록 탐색지역이 빠르게 변하며 데이터양이 급격히 늘어나 뇌에 부담을 줬다.

고통을 줄이고자 최저 속도로 날았지만, 평소보다 3~4배나 많은 데이터의 유입으로 상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상아가 슈퍼컴퓨터에 버금가는 천재라 해도 한계가 있었다. 컴퓨터도 한계 용량을 초과면 과부하가 걸려 다운되거나 고장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열을 식혀줄 쿨러(냉방장치)를 달았다.

컴퓨터는 CPU 손상을 막기 위해 쿨러라도 달수 있지만, 상아 머리에 구멍을 뚫을 수도 없는 일이라 차가운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오빠!”

“왜?”

“헬기 멈추라고 하세요. 빨리요. 급해요.”

“알았어.”

상아의 다급한 외침에 기장에게 헬기를 멈추라고 소리치고 재빨리 전방에 기감력을 투사했다.

최대한 폭을 좁혀 4.5km를 기감했지만, 상아가 다급히 말할 만큼 대단한 놈은 찾을 수 없었다.

“뭘 봤는데 그래? 난 거리가 짧아 잡히는 게 없어.”

“12km 떨어진 커다란 분지 안에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추정되는 나무 두 그루가 있어요. 나무 높이는 70~80m, 밑동 둘레는 대략 20~25m 사이에요.”

“레드몬이 나무라고?”

“네.”

레드문이 뜨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는 캘리포니아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으로 구한말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일으킨 미국 선박 이름과 같았다.

나무 높이는 83.8m, 밑동 둘레는 31m, 수령은 대략 2,500년 정도인 제너럴 셔먼은 1879년에 세쿼이아를 탐사했던 군인 울버턴(Wolverton)이 발견한 나무로 남북전쟁 당시 자신의 사령관이었던 셔먼 장군의 이름을 나무에 붙였다.

100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로 미국의 사랑을 받던 제너럴 셔먼은 레드문 이후 100m가 넘는 나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지금은 그저 조금 키 큰 나무에 지나지 않았다.

레드문 이후 대자연의 기운이 왕성해지며 높이가 20~30m 되는 나무는 아주 흔했고, 50m가 넘는 나무도 오래된 숲엔 자주 볼 수 있어 적어도 100m는 넘어줘야 키가 좀 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연인처럼 몸이 엉켜 있어 멀리서 보면 한 그루처럼 보여요.”

“연리지?”

”네, 맞아요. 연리지처럼 서로 몸이 연결돼 있어 전혀 별개의 레드몬이지만, 하나라고 볼 수도 있어요.“

“둘 다 A급 엘리트 레드몬이 확실해?”

“느낌상 그래요.”

“아영아! 위치 확인했지?”

“네.”

“돌아가자.”

레드몬이 나타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식물형 레드몬이 나타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릉에서 먹은 기이한 산삼이 식물형 레드몬일 가능성이 컸지만, 녀석은 아기처럼 앙앙 울어대는 것 외엔 공격 능력이 없어 레드몬이라 부르기엔 모자란 점이 많았다.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식물형 레드몬이, 그것도 A급 엘리트 레드몬으로 추정되는 놈이 나타난 만큼 함부로 다가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었다.

오늘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 놈들을 처리할 방법을 아내들과 논의한 다음 필요한 장비를 갖춰 다시 오는 것이 현명했다.

“어느 쪽이 남자야?”

“그건 왜?”

“남자부터 죽이려고. 연리지는 남녀 간의 사랑 또는 열렬한 부부애를 비유하는 말이잖아. 그런데 감히 아내들을 속이고 바람을 피워? 그러고도 살아남길 바라면 안 되지. 안 그래?”

“풉!”

은비의 말에 마시던 오렌지 주스를 시원하게 내뿜었다. 말 속에 뼈가 있다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자못 흉흉했다.

“켕기는 일이라도 있어?”

“그.그.글쎄... 기.기.기억이 잘...”

“글쎄? 기억이? 지금 장난해? 여자를 네 명이나 데려왔으면서 켕기는 게 없다는 게 말이나 돼?”

“흐흐흐~”

“이게 웃음으로 끝날 일이야?”

“적당한 시기 봐서 풀어준다고 했잖아.”

“적당한 시기? 그게 언제인데?”

“음... 당장은 어려울 것 같고, 몇 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재미는 다 보겠다는 말이네?”

“아니야. 절대 그런 일 없어.”

“없어? 정말이야? 있으면 내 손에 죽는다.”

“.......”

“청와대 초청 때문에 은하 언니네 우리 모두 몰려갔던 날 새벽에 어디 갔다 왔어?”

“그.그.그게... 그러니까...”

“모른 척 눈감아주니까 정말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 우리가 바보 멍청이로 보여.”

“미안해!”

“흥~”

“다음부턴 조심할게.”

“내가 걔들 만나러 갔다고 이렇게 화내는 게 아니야. 만나러 가면 간다고 말하고 가면 되잖아. 못 가게 막았어? 그런 거 아니잖아. 그런데 왜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다녀? 그건 우리를 기만하고 배신하는 일이야. 내 말이 틀렸어?”

“아니.”

아내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지영이와 연희, 민영이를 보러 옆집에 잠시 다녀왔었다.

갈 때는 음흉한 생각으로 갔지만, 양심에 찔려 차 한 잔 마시고 수다 좀 떨다가 돌아와 혼자 잠이 든 것이 전부였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은비가 방에 다녀가며 옆집에 놀러 간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오빠가 차만 마시고 온 거 알고 있어. 그래서 말 안 했던 거야. 하지만 생각할수록 기분이 나빠. 우리가 언제 오빠를 구속했어? 아니잖아. 그럼 오빠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줘야지.”

“미안해!”

“정상 참작해서 이번만 봐주는 거야. 한 번만 더 그러면 그땐 정말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알았어.”

「욕먹을 줄 알았으면 신나게 놀기라도 할걸. 고민만 잔뜩 들어주고 와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젠장!」

“모양으로 봐선 은행나무 같아요.”

“은행나무는 해발 500m 이상의 고원지대와 한반도 북부에선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분지 지형이라 열 손실이 적어 살아남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은행나무가 왜 함경북도 북부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놈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그게 중요한 일이었다.

“일단 최대한 먼 거리에서 투창과 냉기탄을 사용해 놈을 공격할 거야. 그다음 놈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접근전을 펼칠지, 계속 원거리에서 공격할지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식물형 레드몬의 가장 큰 약점은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과 화공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놈이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나무 정령 엔트(Ent)가 아닌 이상 걸어 다닐 수는 없어, 불화살이 전부인 화공보단 원거리 공격을 택했다.

“아영아! 2단계 정화수보다 더 강력한 정화수를 만들 수 있어?”

“힘을 최대한 쏟아 부으면 가능해요.”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까?”

“2단계 정화수의 두 배는 안 돼도 50% 정도는 효과가 향상될 거예요.”

“몇 병이나 만들 수 있어?”

“지금부터 시작하면 내일 아침까지 다섯 병은 만들 수 있어요.”

“그럼 내일 중으로 다섯 병 만들고, 2단계 정화수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사냥은 글피로 연기할 테니까 움직일 수 있게 힘도 비축하고.”

“네.”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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