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5 초대(招待) =========================================================================
185.
“적정수준 이하로 레드몬 자료를 제공하거나, 은폐하는 행위가 발각되면 안전을 위해 사냥을 거부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을 생각이야.”
“소연 언니 생각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야. 지금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만, 언제 마음을 바꿔 희생양으로 삼을지 몰라.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냥은 나설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소연과 은비 의견은 매우 중요한 내용으로 기본적인 정보제공도 없이 사냥을 의뢰하는 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자 함정으로 내모는 것과 같았다.
엘리트 레드몬을 처리해줄 영웅의 등장을 모든 인류가 한뜻으로 환영해줄 거로 생각한다면, 그건 아직 세상을 모르는 풋내기란 뜻이었다.
나, 우리, 민족, 국가 등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에 따라 인류 공존이라는 대의명분쯤은 우습게 차버릴 사람이 한강 백사장 모래알만큼 많았다.
국가 역시 다를 게 없어 당장은 우리 도움이 필요해 선물도 갖다 바치고 간이라도 빼줄 듯 굽실거리지만, 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것이다.
그건 같은 민족인 우리 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오늘 나눈 웃음과 악수는 기억 저편으로 날려 보내고 등 뒤에 칼을 꽂을 것이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항상 등 뒤를 조심하고 주위를 살펴야 했다.
“하지만 너무 가난해 레드몬에 관한 자료를 구할 수도 없고, 너무 급박한 상황에 부닥쳐 손쓸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그건 핑계야. 헬리캠을 이용하든, 열상감시장비 이용하든, 하다못해 사람을 동원하든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 그런데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그건 직무유기이자 명백한 함정이라 봐야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가령 일본 도쿄에 A급 엘리트 레드몬이 쳐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소식을 듣고 우리가 도쿄까지 날아가려면 빨라도 두 시간은 걸려. 그럼 그사이에 사람들을 투입해 어떤 레드몬인지, 크게는 어느 정도나 되는지, 팔다리는 몇 개인지, 그 정도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어.”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죽는 것 때문에 그래? 죽은 사람이 불쌍하긴 하지. 그렇다고 우리가 대신 죽어줄 순 없잖아.”
“흐음...”
“상아야! 어떤 일이든 원칙이 있어야 해. 그걸 지키지 못하면 우리 중 누군가가 죽거나 다칠 수도 있어. 그걸 바라는 건 아니잖아.”
“전 절대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에요.”
“네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알고 있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거나 도저히 상황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생각해 달라는 말이잖아. 그렇지?”
“네, 맞아요. 우리가 논의하는 나라는 모두 큰 나라잖아요. 아주 작은 나라와 작은 마을도 우리 도움을 바라는 곳이 많을 거예요. 그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말씀드린 거예요.”
상아의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 했다. 난 힘없는 나라와 가난한 마을을 도와줄 생각 따위는 해본적도 없었다.
미국, 러시아, 영국, 브라질 같은 큰 나라와만 계약을 맺을 생각이었다. 그것이 일하기도 편하고, 돈벌이도 짭짤하며, 쉽게 인지도를 쌓고 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 주머니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도 없던 판자촌 빈민가 출신이 돈 냄새를 맡더니 머리가 훼까닥 돌았었네. 젠장! 창피하고 또 창피하다.」
“안전이 제일 우선이라는 소연과 은비의 의견에 나도 동의해. 하지만 안전만 따진다면 해외원정에 나설 이유는 없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안전과 대승적 견지도 함께 생각하자.”
“그럼 그 부분을 이원화하는 건 어때요?”
“어떻게?”
“정식 계약국가와 무료로 도와줄 국가를 따로 구분하는 거예요. 그럼 양쪽 다 만족할 수 있잖아요.”
아영의 아이디어에 나와 상아, 서인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했고, 은비와 한숙은 좌우로 고개를 휘둘러 부정을 표시했다.
소연과 홍은하 소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꼭 감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둘 다 원칙을 벗어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영이가 말한 대승적 견지는 꼭 필요한 일이에요. 원칙 안에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면 전 찬성이요.”
“나 역시 은하 언니와 생각이 같아.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건 우리 위상을 높이는 일이자,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홍은하 소장과 소연이 부분적인 찬성을 표하자 은비와 한숙도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정됐으니 그 안에서 결론을 도출해보자고.”
“큰 원칙이 정해졌으니 가격부터 정하는 게 좋겠어요.”
“얼마가 적당하겠어?”
“C급 엘리트 레드몬은 1,000만 불(1달러/791원), B급은 2,000만 불, A급은 3,000만 불을 받으면 적당할 것 같아요.”
“사체는?”
“당연히 우리 몫이죠.”
“근데 너무 싼 거 아니야? 올 초 태국에서 B급 엘리트 레드몬 나타났을 때 현상금이 5,000만 달러였어.”
현재 현상금이 붙은 엘리트 레드몬은 100여 마리가 넘었다. 도시를 차지한 채 눌러앉거나 중국 혈랑들처럼 주기적으로 피해를 주는 레드몬들로 금액도 500만 달러부터 1억 달러까지 아주 다양했다.
“대신 계약금을 1억 불 받을 거예요. 체류비용과 운행경비도 의뢰한 나라에 모두 부담시킬 거고요.”
“현상금 붙은 놈들은?”
“현상금이 의뢰비보다 낮으면 의뢰비만 받고, 의뢰비보다 많으면 차액까지 받아야죠. 손해 볼 순 없잖아요.”
나 같으면 말하기가 곤란해 그냥 넘어갈 텐데, 한숙은 뼛속까지 장사꾼이라 그런지 작은 것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멋져!”
“고마워요. 호호호~”
“근데 계약금은 뭐야?”
“계약 기간을 정해야죠. 종신계약을 맺을 순 없잖아요.”
“아~ 맞다. 그걸 생각 못했네. 계약 기간은 어느 정도 하는 게 좋겠어?”
“3년? 5년? 어떤 게 좋을까요?”
“1억 불이나 받는데 3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5년으로 하자.”
“알았어요.”
세부적인 토론에 들어가자 CEO 출신의 한숙이 대화를 주도했다. 미래 레드몬 총괄지원단장에 특사들을 상대하며 나름대로 생각해둔 게 많은지 술수 막힘없이 의견을 개진했다.
“금액은 정했고, 이제 나라를 정해야겠네. 몇 개국이 적당할까?”
“7~8개국이면 적당할 것 같아요. 그리고 레드몬도 일 년에 한 마리면 숫자가 너무 적다고 생각할 거예요. 최소 B급 엘리트 레드몬 두 마리는 잡아줘야 계약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죠.”
“15마리에 무료사냥까지 더하면 최소 20마리는 잡아야겠네?”
“그 이상이죠.”
“왜?”
“선물 준 나라도 생각해야죠. 선물 받고 입 싹 닦으려고 했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귀찮아도 한 번은 도와줘야 해요. 그래야 잡음이 없어요.”
“알았어.”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법칙이었다. 약탈당한 귀중한 문화재를 돌려받은 이상 그에 대한 보답은 당연히 해야 했다.
“사냥 기간은 며칠로 정한 거야?”
“한 마리당 10일이요.”
“20마리면 200일이나 외국에 나가 있어야 하잖아. 너무 오래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그렇지만, 동선을 최대한 묶고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한 번에 돌면 기간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거예요.”
“그게 가능해?”
“그럼요. 6개월 전에 사냥할 레드몬을 미리 접수하라고 할 거예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최단코스를 정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갑자기 레드몬이 쳐들어올 수도 있잖아.”
“그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 150일 이내에 사냥을 마주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마지막으로 어느 나라가 좋겠어?”
“이건 어쩔 수 없이 국제 관계를 고려해야 해요. 우리나라가 미국 같은 힘이 있다면 국제 관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슬프게도 대한민국은 세계 4강의 한가운데 끼어있는 약소국이에요.”
씁쓸했지만, 한숙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이 동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 있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GDP와 국방력으로 따지면 대한민국은 세계 10강에 들어가는 강대국으로 자리만 잘 잡았다면 주변 국가를 압박하며 큰소리를 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신이 되길 바라는 것처럼 허황하고 부질없는 생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제일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었다.
“그래서 전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프랑스, 인도, 브라질, 이탈리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빼고 호주와 인도네시아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대륙을 제외하는 건 커다란 시장을 놓친다고 할 수 있어.”
“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인도, 브라질, 캐나다, 스페인인...”
어느 나라를 계약 국가에 넣을지 아내들이 돌아가며 자기 생각을 차례로 이야기했다.
재미있는 건 중국과 일본을 거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국제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한 한숙조차 중국과 일본의 이름조차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싫든 좋든 중국과 일본은 세상을 움직이는 강대국으로 우리와는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중국 전국 시대 범저(范雎)가 주창한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이웃 나라를 공략하라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은 힘 있는 나라가 취할 행동이었지 힘없는 대한민국이 취할 행동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중국과 일본을 배척하는 건 우리가 나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두 나라를 죽도록 미워하기 때문에 도움을 준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전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캐나다, 브라질, 터키를 넣었으면 좋겠어요.”
“터키를 넣자고?”
“네, 6·25전쟁 때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이 파병한 국가가 터키에요. 15,455명을 파병해 전사자가 무려 741명이고, 실종 163명, 부상 2,068명, 포로 244명으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어요.”
“우리를 도와줬으니 이번엔 우리가 도와주자?”
“그것도 있지만, 터키가 우리를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
“네.”
“왜 우리를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지? 바로 옆에 있는 나라도 아니고 저 멀리 아시아 서쪽 끝에 있는 나라가.”
“그건 그들이 돌궐의 후예이기 때문이에요.”
============================ 작품 후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모두 메르스 조심하세요.)